자연으로 돌아가라!
나호열
1.
계간지로 새롭게 발돋음 한 『산림문학』2017년 봄호는 예전에 비해 훨씬 짜임새 있고 다양한 기획이 돋보였다, 누가 뭐라 해도 『산림문학』의 지향점은 산림으로 상징되는 자연에 대한 경외와 가치보존을 문학을 통하여 세간에 널리 알리는 일이다. 그러므로 다른 계간지와의 변별점은 자연을 주제로 삼거나 소재로 삼거나간에 지속적으로 자연에 대한 관심과 경각, 나아가서는 “자연으로 돌아가라!”의 금언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를 모색해 보는데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산림문학』의 시평詩評은 기고, 문학회 탐방 등으로 기획된 초대시는 논외로 두고, 가급적 현재 산림문학회 회원으로 등재되고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는 시편들을 중심에 두고 있다. 이는 『산림문학』이 지향하는 숲 사랑 ․생명존중 ․녹색환경보전 ․ 정서녹화라는 주제를 시로 구현하는 일에 힘쓰고 있음을 증명하는 일에 『산림문학』의 시평이 놓여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산림문학』(2017년 봄호)에 실린 45편의 시는 계절 감각에 어울리게 대부분 꽃과 계절의 흥취를 담고 있어 이채로웠다. 『산림문학』(2017년 봄호) 권두언에서 김청광 시인은 『노자도덕경』 25장을 인용하면서 “순천順天의 삶, 순천의 문학”으로의 매진을 독려 하였는바, 자연을 응시하고, 관조하며 얻은 상념을 형상화하거나 아니면 꽃과 나무들과 같은 자연물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일은 메말라가는 심성의 정화와 일상의 피로를 가시게 하는데 마중물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강조함과 일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수년간 살펴본 바 산림문학회의 많은 시인들이 보여준 일관된 열정과 시의 성취는 『산림문학』만이 가질 수 있는 뚜렷한 개성이라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2.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봄의 어원은 ‘보다’의 명사형이기도 하고, 불(火)이 의미하는 ‘따스함’의 상징으로 읽히기도 한다. 영어의 봄은 'spring'인데 이는 분수 噴水처럼 ‘솟구침’이나 새싹처럼 ‘돋아오름’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기나 긴 혹한을 이기고 마주한 「천마산 너도바람꽃」(강연순)의 ‘가는 대궁 여린 꽃잎 / 자꾸만 어리는 엷은 눈물’이나 ‘마침표로 / 쏟아지는 / 까아만 씨(김관식의「현호색」), 같은 수선화를 노래하면서도 류종택 시인은 ‘속죄한 듯 옹알옹알 피운 꽃’이라 하고, 손수여 시인은 ‘횃불 켠 수선화는 가느린 몸매타령’이라고 묘사했다. 이와 같이 어떤 특정한 대상의 관찰을 통해 사물 그 자체에 자신의 마음을 담는 시편들이 있는가 하면, 대상을 조금 더 넓게 잡아 ‘비 - 꽃 - 새’ 의 역동적 움직임을 통해 오네(하강) - 피네(식물) - 우네(동물)의 순환 고리로 봄의 역동성을 노래한 구자운의 「봄 산에는」과 같은 시, ‘누군가의 손끝만 스쳐도 / 치마말기 주르르 흘러내릴 것 같은(김선아의 「봄」)이 일깨워주는 관능적 봄의 이미지의 시, ‘봄이 봄인 것은/ 침잠 속에서 생명을 보는 것’(김청광의 「봄이 오는 날」)으로 관조의 세계를 보여주는 시 등, 봄 이라는 시적 대상이 보여주는 감성을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이와는 달리 봄이 주는 적막함을 ‘집배원이 나뭇가지마다 하얗게 편지를 꽂아놓고 ’ 갔으나 ‘주인은 언제 돌아와 편지를 뜯어볼런지’로 묘사한 장희완의 「꽃 편지」나 ‘나무는 늙었어도/ 꽃 / 꽃은 어려요’로 새 생명을 잉태하는 늙은 매화의 장엄함을 노래한 임술랑의 「화엄사 홍매화」는 시 읽기의 즐거움을 배가시켜 주기에 충분하다.
이와 같이 시인들은 대상(소재)들과의 대화를 통해 대상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받아 적거나 상식을 벗어난 인식을 뒤틀어 새로운 심상(이미지)를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시 쓰기는 말 걸기”(이문재)라는 시의 정의는 명쾌하다.
3.
마지막으로 이 번 호에서 눈길을 끈 시들은 「벼랑에 몰린 할아버지 산지기」(차옥혜), 박수빈의 「왜 철쭉」,「가리왕산 숲의 비밀」(윤준경)이었다. 이 세 편은 어떤 사건(산, 꽃)을 시의 중심에 놓고 벌어지는 이야기 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우선 「벼랑에 몰린 할아버지 산지기」를 살펴보기로 한다. 이 시는 7연 70여 행의 장시로, 물신 物神의 시대의 슬픈 풍경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쉽게 잊어버린 두레의 마음을 애써 강조하고자 한다. 가난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팔아넘긴 산의 산지기가 되어 평생을 가꾸었으나 산을 깎아 물류센터를 짓겠다는 새 주인의 말에 낙담하여 왕나무에 투신하고야 마는 노인과 그런 노인의 결기에 호응하여 함께 산을 지키겠다는 동네사람들의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모든 것이 자본의 논리로, 실용의 가치로 평가절하되는 정신을 산을 매개로 하여 절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간간히 시인의 시를 보아온 필자의 좁은 소견으로 절제와 함축의 미를 보여주었던 시인이 과감하게 형식과 표현의 탈바꿈에 도전하고 있음에 경의를 표한다.
꽃 잃은 꽃의 핏빛 통곡들
맨발로 끌려 간 꽃잎들
생리혈 떨구는 밤에도 군홧발이 덮쳤다 한다
이를 악물고 몸을 봉해도 총칼에 으스러진 몸
눈물로 씻어 그리운 고향을 향하면
새롭게 피어날 수 있을지
위안은 누구의 수심 修心인가
수심 愁心은 커녕 수심 獸心이여
...하략...
햇살과 바람과 새가 합세하여
온천지에 붉고 또 붉다
- 박수빈의 「왜 철쭉」
「벼랑에 몰린 할아버지 산지기」는 시인이 드러내고자 하는 메시지가 자본의 논리로 아무렇지 않게 산 하나를 허물어버리는 생태계의 파괴와 두레의 정신 회복이라는 절박함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고민한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면 「왜 철쭉」은 보다 구체적이고 분명한 사례가 인지되고 있는 위안부의 실상을 ‘철쭉’으로 매개함으로써 여성성과 더 나아가 인간성의 파괴의 실상을 생생하게 파헤치고 있다. “철쭉 = 위안부” 즉 “A는 B이다”의 은유는 쉽게 간파할 수 있는 이미지이지만 修心, 愁心, 獸心으로 이어지는 수심의 중첩을 통해서 효과적으로 분노의 표출 의도를 잘 전달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벼랑에 몰린 할아버지 산지기」와 「왜 철쭉」이 사회적 현상과 인간성의 회복에 대한 절박한 외침을 들려주었다면, 「가리왕산 숲의 비밀」은 보다 개인적이고 내밀한 자연과의 소통을 이야기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쓸쓸한 나이에 비밀 하나쯤 갖는게
무슨 큰 흉이 될까만
- 「가리왕산 숲의 비밀」의 1연
화자 話者는 자신을 ‘쓸쓸한 나이’라고 고백함으로써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지경을 던져놓고 또 슬쩍 비밀 하나 갖고 있다고 농을 치고 있다. 화자(시인)는 겨울 산에 들었던 소회를 비밀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그 소회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전율이거나 황홀감이었을 것이다. 산이 주는 남성적 이미지, 즉 웅대함, 포용력, 안온함에 빠짐과 동시에 ‘어느 신선의 딸이 되어/ ...중략 ... / 낡은 생의 살림을 차리고 싶’어 하지만 회자정리 會者定離, ‘인생의 황홀한 순간이 어디 오래 간 적’이 없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산과의 교감을 비밀 하나로 간직하고자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시의 미덕은 단순히 산에 대한 예찬이나 감동을 드러내는 것에 방점을 두는 것보다 그런 감동의 순간을 비밀로 간직하겠다는 별리別離의 아쉬움을 ‘가끔씩 꺼내보는’ 즐거움으로 바꿀 줄 아는 깨달음에 있다.
시가 잘 써지지 않을 때, 시에 대한 감각이 떨어질 때 꺼내어 읽어보는 글이 있다. 이 글을 마치면서 황현산 문학평론가의『잘 표현된 불행』 (문예중앙, 2012. 02)중에 몇 구절을 『산림문학』의 여러 시인들과 함께 읽어보고 싶다.
시는 모든 것에 대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끝까지 말하려 한다. 말의 이치가 부족하면 말의 박자만 가지고도 뜻을 전하고, 때로는 이치도 박자도 부족한 말이 그 부족함을 드러내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능변의 재능을 가진 사람이 시를 잘 쓰는 것은 그럴 만도 한 일이겠지만, 어눌하게 말을 잇다가 자주 입을 다무는 사람들도 좋은 시를 쓴다. 물을 떠낸 자리에 다시 샘물이 고이듯 시가 수시로 찾아오는 사람도 있지만, 유장한 말이 되기에는 너무 기막힌 생각이나 너무 복잡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마음의 특별한 상태에서 그 생각이 돌처럼 단단한 것이 되거나 공기처럼 숨 쉴 수 있는 것이 되기를 기다린다. 시는 사람들이 보았다고 믿는 것을 명백하게 볼 수 있을 때까지 저를 지우고 다시 돋아나기를 반복하며, 진실한 것이건 아름다운 것이건 인간의 척도로 파악하기 어려운 것에까지 닿으려고 정진하는 시의 용기와 훈련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이 이 세상의 것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지극히 절망적인 순간에 그 절망을 말하면서까지도, 포기하지 않는다. 시는 포기하지 않음의 윤리이며 그 기술이다.
*『산림문학』2017년 봄호 계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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