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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5. 1. 21:32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입력 : 2016.04.28 03:00

큰 집회 없이 내실만 다져오던 원불교
100주년 맞아 세상 속으로 큰 걸음
5월 1일 기념대회, 23개국 5만여명 참가


박중빈 대종사
박중빈 대종사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오늘(28일)은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1891~1943) 대종사가 오랜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어 원불교를 연 '대각개교절(大覺開敎節)'이다. 당시 소태산 대종사는 개교의 동기를 '정신개벽'으로 밝혔다. 원불교가 5월 1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100주년 기념 대회'를 열면서 똑같은 표어를 내걸었다. 원불교는 "현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정신개벽의 간절함이 필요한 시대라는 판단 때문"이라고 밝혔다. 100년 전에 소태산 대종사가 제시한 개교의 동기가 100년 후인 지금도 유효하다는 이야기다.

좀처럼 외부 공간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지 않고 내실을 다져오던 원불교가 100주년을 맞아 세상 속으로 큰 걸음을 내딛는다. 100주년 기념 대회가 그 첫걸음이다. 기념 대회엔 전 세계 23개국에서 5만여 교도가 참석한다. 전 세계에 흩어져 활동하고 있는 교무 2000여 명도 모두 참석한다. 해외 교도들은 기념대회를 앞두고 속속 도착해 성지순례도 할 예정이다. 원불교100주년기념사업 성업회 정상덕 사무총장은 "참가 신청이 쇄도해 인원을 제한하고 있을 정도"라며 "그래도 연로한 교도님들이 '꼭 참석하고 싶다'고 하셔서 휠체어석도 많이 마련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모든 원불교인이 한마음으로 기다려온 100주년인 것이다.

기념 대회는 러시아, 스와질란드 등 외국에서 온 교도들의 태권도 시범, 사물놀이 공연 등 식전 공연으로 예열(豫熱)한 후, 오후 2시 전남 영광의 영산 성지와 익산 중앙총부 등 10곳의 범종에서 울리는 종소리로 문을 연다. 기념대회에는 6대 종단의 수장들과 삼부 요인 등 국내외 주요 인사, 그리고 세계종교인평화회의 사무총장 벤들리 박사,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 의장 삼수딘 박사와 하타케야마 사무총장, 팔롭 태국 세계불교도우의회 사무총장 등 해외의 이웃 종교인들도 대거 참석한다.

기념 대회는 원불교 100년 역사를 중간 결산하는 의미도 있다. 소태산 대종사와 함께 원불교의 초석을 놓은 초기 제자 9인에게 종사(宗師)라는 법훈을 서훈하는 의식이 대표적이다. 아홉 제자는 1916년 원불교가 개교했을 때 소태산 대종사를 모셨던 정산 송규, 일산 이재철, 이산 이순순, 삼산 김기천, 사산 오창건, 오산 박세철, 육산 박동국, 칠산 유건, 팔산 김광선 등이다.

원불교가 오늘(28일) 100번째 생일을 맞는다. 원불교 성직자와 신자들이 인간 띠를 이어 숫자 ‘100’을 만들었다. 

 

원불교가 오늘(28일) 100번째 생일을 맞는다. 원불교 성직자와 신자들이 인간 띠를 이어 숫자 ‘100’을 만들었다. /원불교 제공

 

이들은 개교 초기 간척 공사를 마친 후 어지러운 세상을 구원할 뜻을 품고 4개월간 각각 아홉 봉우리에 올라 같은 시간에 맞춰 천지신명을 감동시킬 기도를 올렸다. 1919년 8월 21일 소태산 대종사는 이들을 불러 '사무여한(死無餘恨)'이라고 쓴 백지에 맨손으로 지장을 찍게 했다. 그런데 이들이 지장을 찍은 백지에 혈인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른바 '백지혈인(白指血印)' 사건이다. 이날 기념 대회에서는 이 9명의 업적을 영상으로 소개하고 원불교 성인(聖人)으로 추대하는 의식을 올린다.

이어서 경산 장응철 종법사의 법문이 발표되고 법어 봉정식이 열린다. 법어 봉정식은 세계 10개국어로 번역된 경전인 '원불교 전서(全書)'를 봉정하는 의식.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독일어, 아랍어, 포르투갈어, 에스페란토어, 중국어 등이다. 20년이 걸린 역사(役事)다.

기념 대회의 하이라이트는 '정신개벽 서울 선언문' 발표다. 한은숙 교정원장은 최근 간담회에서 "소태산 대종사께서 말씀하신 개벽은 단순한 점진적 변화나 발전이 아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모두 변하고 지혜로워져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개벽 선언문에는 지난 100년을 돌아보며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는 원불교인의 실천 강령과 미래에 대한 비전과 각오가 담긴다.

이날 기념 대회는 모든 참석자가 함께하는 대동 한마당과 '새 천년 아리랑'합창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키워드로 본 원불교의 가르침

"현하 과학의 문명이 발달됨에 따라 물질을 사용하여야 할 사람의 정신은 점점 쇠약하고, 사람이 사용하여야 할 물질의 세력은 날로 융성하여, 쇠약한 그 정신을 항복받아 물질의 지배를 받게 하므로, 모든 사람이 도리어 저 물질의 노예 생활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 생활에 어찌 파란고해(波瀾苦海)가 없으리요."

원불교 경전인 '정전(正典)'의 첫머리 '개교(開敎)의 동기'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바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정신이다. 과연, 20세기 물질문명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개벽했고, '정신개벽'을 내걸고 소태산 대종사와 제자 9인으로 소박하게 시작한 원불교는 100년간 137만 교도의 한국 4대 종교로 성장했다. 핵심 키워드를 통해 원불교의 가르침을 짚어본다.

일원상(一圓相)

원불교 교당에는 불상이 없다. 대신 벽에 둥근 원 하나가 걸려 있다. 일원상(一圓相)이다. 일원상은 원불교에서 궁극의 진리를 상징한다. 법신불 일원상이라고 한다. 원불교 교도들에게 일원상은 신앙의 대상인 동시에 수행의 표본이다. 원불교 정전은 "일원은 우주 만유의 본원이며, 제불 제성의 심인이며, 일체 중생의 본성이며, 대소 유무에 분별이 없는 자리며, 생멸 거래에 변함이 없는 자리"라고 정리하고 있다.

사은(四恩)·사요(四要)·삼학(三學)

원불교는 네 가지 은혜를 잊지 말라고 강조한다. '천지' '부모' '동포' 그리고 '법률'이다. 특히 법률의 은혜를 강조한 대목이 눈에 띈다. 원불교 정전은 "개인의 수신(修身)하는 법률, 가정의 제가(齊家)하는 법률, 사회의 다스리는 법률, 세계 다스리는 법률이 없고도 안녕 질서를 유지하고 살 수 있겠는가"라고 묻고 "없어서는 살 수 없다면 그같이 큰 은혜가 또 어디 있으리요"라고 적고 있다.

사요(四要)는 구체적 실천 덕목을 가리킨다. '자력양성' '지자(智者)본위' '타자녀(他子女) 교육' '공도자(公道者) 숭배'다. 특히 타자녀 교육은 자타의 구분을 떠나 모든 후진을 양성하자는 철학을 담고 있다. 삼학(三學)은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의 세 가지다. 여기서 '작업취사'는 정의를 취하고, 불의를 버린다는 뜻이다.

영육쌍전(靈肉雙全)

"과거에는 수도인(수행자) 가운데 직업 없이 놀고 먹는 폐풍이 치성하여 개인·가정·사회·국가에 해독이 많이 미쳐 왔으나, 이제부터는 묵은 세상을 새 세상으로 건설하게 되므로 새 세상의 종교는 수도와 생활이 둘이 아닌 산 종교라야 할 것이다."

원불교 교전은 '영육쌍전'을 이렇게 설명한다. 영적인 삶(수행)과 일상의 삶(생활)을 온전히 함께 완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원불교가 초창기부터 낮에는 간척 사업과 저축조합 등 사업을 하면서 저녁엔 수행을 병행한 '이사(理事) 병행'의 정신과도 통한다.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

원불교 대사전은 "곳곳이 부처님, 일마다 불공'이라는 뜻의 원 불교 교리 표어"라고 뜻을 풀이하고 있다. 곧 삼라만상을 모두 부처님으로 대하고, 행하는 모든 일을 불공으로 생각하자는 취지다. 소태산 대종사는 "세상 일을 잘하면 그것이 곧 불법(佛法)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요, 불법 공부를 잘하면 세상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수행과 생활을 분리하지 않고 지금 사는 이 세상을 불국토로 만들자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