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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와 시집에 대한 평론

저 너머 / 나호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12. 30. 21:36

저 너머 / 나호열

 

'저 너머' 라는 말이 가슴 속에 있다. 눈길이 간신히 닿았다가 스러지는 곳에서 태어나는 그 말은 목젖에 젖다가 다시 스러지는 그 말은 어디에든 착하다. 주어가 되지 못한 야윈 어깨에 슬며시 얹혀지는 온기만 남기고 사라지는 손의 용도와 같이 드러나지 않아 오직 넉넉한 거리에 날 세워두는 '저 너머' 그 말이 아직 환하다.

 

- 계간 『시인정신』 2015년 봄호

 

속도의 길의 끝에서 벗어나는 지점에 서 있었습니다. 답답했던 안경을 벗고 ‘저 너머’를 바라보았습니다. 햇살의 실루엣 사이로 흐릿하게 보일 듯 말듯 둥글게 윤곽을 드러내는 한 작은 마을. 어쩌면 나빠진 제 몸의 시력은 달리고 달리던 길의 ‘속도’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보이지 않던 제 ‘눈길이 간신히 닿았다가’ 스러지는 곳에 착하게 순하게 숨 쉬고 있는 듯한 마을의 모습이 아스라이 보였습니다.‘젖은 목젖’을 울리며 마음속으로 ‘ 저 너머’라는 말을 침묵 속에서 되뇌어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말없이 둥글고 흙내 나는 작은 길로 발을 디뎠습니다. ‘ 저 너머’는 어쩌면 도달과 결과의 지점이 아닌 꿈꾸고 열망하는 과정의 길 위에 있다는 믿음이 마음 속으로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저 너머’ 그 말이 환하게 세상을 물들이고 있습니다.

 

사실 세상은 온통 ‘주어’가 되려고만 하는 사람들과 사물들로 넘쳐나고 있지 않습니까. ‘주어’가 되려는 욕망이 곧 ‘속도’의 욕망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시는 지금 이 곳에서 ‘주어가 되지 못한 어깨’에 ‘슬며시 얹혀지는 따스한 온기가 되어야 한다고 되뇌어 보았습니다. 생성과 생명의 기쁨에 넘쳐 있을 때라도 그 환희를 노래하더라도 언제나 그 그늘로 존재하는 소멸과 스러짐에 대해 시력을 들이대고 바라보고 노래해야 하는 게 바로 시의 운명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봄날입니다. ‘저 너머’로 가는 길이 되돌이표가 되더라도 우선은 계속 걸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 계간 『시인정신』 2015년 여름호 계간평

 

이창훈 시인

경희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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