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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와 시집에 대한 평론

발밑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12. 9. 01:07

  발밑

 

                      나 호 열​

 

애써 보이지도 않는 먼 길을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돌부리는 발밑에 있고

발밑에는 굳은 땅 밀고 올라오는 새싹이 있다

돌부리에 차이면 발이 아프고

무심코 내 발이 싹의 머리를 누를 때

지구는 온몸으로 기우뚱거린다

발밑을 조심하라

발밑을 내려다볼 때

너는 땅에 경의의 절을 하고 있는 것이니​

 

                   시집 <蜀道>에서​

 

자연을 사랑했던 슈바이처에 대해 하나만 얘기하겠다. 20세기의 성자(聖者) 그가 한 말.

<자기만의 행복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된다. 남에게 베푸는 인생을 살자. 나는 내가 즐길 곳을 찾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살아왔소.>

음악, 의학, 철학, 신학 등 네 개의 박사를 소유했고, 명예박사만 20 개를 가진 슈바이처는 모든 명예를 뿌리치고 가난한 아프리카로 가서 그들과 같이 생활하며 일생을 바쳤다. 질병에서 허덕이는 아프리카 빈민촌에서 그들을 치료해주었다. 슈바이처는 어느 날 숲을 통하는 길을 새로 내는데 개미들의 집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래서 길을 개미굴을 피해 다른 곳으로 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개미 한 마리에도 신경을 썼던 그는 1945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

 

여기 <발밑>이란 시를 읽으면서 슈바이처의 생각을 많이 했다. 새싹이 돋아나는 땅에 발을 딛을 때 새싹의 머리를 밝으면 지구가 기우뚱 거린다,는 것은 돌부리를 차면 발끝이 아픈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새싹 하나의 순을 밝아버리면 싹이 아파한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을 시인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이런 감각의 소유자가 아니면 시를 쓸 수 없을 것이다. 생명에 대한 애착이 없으면 그건 무감각의 돌멩이와 같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했던 윤동주나 이 시를 쓴 나호열 시인이나 다 일맥상통하는 생명사랑의 멘탈이 돋보인다.

 

정일남 시인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jungin3507에서 옮겨 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