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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와 시집에 대한 평론

스물 두 살 - 전태일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12. 29. 20:03

스물 두 살

- 전태일

 

너도 걸었고 나도 걸었다

함께 스물 두 살을 지나가면서

너는 맨발이었고 나는 평발이었을 뿐

티눈이 박이는 세월을 막지 못하였다.

어쩌랴 너는 스물 두 살에 멈추어 섰고

나는 쉰 하고도 여덟 해를 더 걸었으나

내가 얻은 것은 평발이 된 맨발이다

나는 아직도 스물 두 살을 맴돌고 있고

너는 아직도 더 먼 거리를 걷고 있을 터

느닷없이 타오르던 한 송이 불꽃

하늘로 걸어 올라가 겨울 밤을 비추는 별이 된 너와

그 별을 추운 눈으로 바라보는 중늙은이

걸어 걸어 스물 두 살을 지나가면서

너는 맨발이었고 나는 평발이었을 뿐

같은 길을 걸었으나 한 번도 뜨겁게 마주치지는 못하였다

 

 

-『문학과 의식』 2012년 겨울호

    시집 『촉도』(2015, 시학) 수록

 

*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봉제 노동자로 일하던 22살 청년 전태일은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했다. 45년 전의 일이다. 전태일은 스물 둘에 멈춰섰지만, 노동자들의 삶과 미래를 위해 자신을 불살랐던 열사 정신은 오늘날에도 소중히 계승되고 있다. 다만 지금껏 전태일의 고향인 대구가 그를 외면해 왔으니 이제라도 그 정신을 지켜가고자 '맨발'과 '평발'이 함께 모여 '시민문화제'를 연 점은 다행한 일이다.

 

    - 권순진 (『시와시와』, 2015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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