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내 시와 시집에 대한 평론

거문고의 노래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1. 1. 22:35

거문고의 노래

나호열

 

 

백년 후면 넉넉하게 사막에 닿겠다

망각보다 늦게 당도한 세월이

수축과 팽창을 거듭한 끝에

빅뱅 이전으로 돌아간 심장을 애도하는 동안

수화로 들어야하는 노래가 있다

떨쳐내지 못하는 전생의 피

증발되지 않는 살의 향기로

꽃 핀 악보

사막이란 말은 그렇게 태어났던 것이다

 

 

오동나무 한 그루가 사막을 키우고 있다 사막을 건너가는 꿈이 넉 잠을 자는 동안 바람은 고치에서 풀려나오며 오동나무에 날개를 뉘였다

 

짧은 생은 촘촘한 기억의 나이테로 현을 묶고 백년쯤 지난 발자국으로 술대를 젓는 늦가을을 기다리는가

 

 

아, 거문고의 긴 날숨이 텅 빈 오동나무의 가슴을 베고

아, 거문고의 깊은 들숨이 나비가 되지 못한 음을 짚어낼 때

나는 다만 첫 발을 딛는 꽃잎의 발자국 소리를

사막에 담을 뿐

수화로 그 노래를 들을 수 있을 뿐

 

       - 『문학의식』 2015년 봄호 원고

 

 

사막을 건너가는 꿈

안혜숙 시인․ 소설가

 

전혀 어울리지 않고, 조우할 일조차 허락되지 않을 것 같은 생명들의 숨소리가 묘한 음률로 모아졌다가 이윽고 흩어지는 꿈을 꾼다. 불모의 사막이 사실은 뭇 생명의 모태였다는 노래는 오동나무의 삶과 죽음이 각인된 거문고에 의해 불꽃으로 타올랐다 사라지고 나는 어느덧 노래의 진원지 사막에 닿는다. 모든 생명이 각기 다른 수화로 서로에게 길을 묻는 삶의 외로움이 신기루 너머의 나비로 펄럭이는 꿈을 꾼다. 바람의 은유가 노래이고 노래의 은유가 나비가 되는 이 무아지경 속에 길게 누워있는 거문고를 탄주하고 싶은 가을날이다.

 

               - 『문학의식』 2015년 가을호

'내 시와 시집에 대한 평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름철 불청객, 모기 다루는 2가지 방법과 시  (0) 2016.07.15
타인의 슬픔  (0) 2016.06.08
저 너머 / 나호열   (0) 2015.12.30
스물 두 살 - 전태일  (0) 2015.12.29
발밑  (0) 2015.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