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내 시와 시집에 대한 평론

자연에서 사람을 찾다; 나호열의 『촉도』/ 황정산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11. 27. 22:52

다시 사람이다

황정산

시인 ․ 문학평론가

 

최근 우리 시에서 사람이 사라지고 있다. 사람인 시인이 쓴 시이고 또 무엇보다도 시를 쓴 주체의 정서와 사고가 전면에 드러나는 시에서 사람이 사라졌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 그것은 욕망의 과잉과 깊이 관련이 있다. 최근 우리 시는 과잉된 자기 욕망의 현시가 주류가 되어 왔다. 내밀한 자기 욕망을 감각적인 언어로 드러내는 현란한 언어유희가 하나의 유행을 이루며 좋은 시로 평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욕망의 표현들이 이제까지 우리의 자유로운 욕망의 실현을 통제해온 권력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고 자본의 힘에 내맡겨져 주체성을 상실한 욕망의 편린들을 과감하게 들춰보임으로써 자본의 지배에 대항하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이러한 언어들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함으로써 그것이 가진 문제의식은 사라지고 하나의 언어적 컨벤션이 되어가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시적 언어가 최초의 문제의식을 상실할 때 그것은 죽은 언어가 되고 결국 상투적 표현의 답습이 되어 결국은 말하는 주체도 그 말해지는 대상도 모두 진정성을 상실하게 된다. 최근 시에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이다.

그런데 최근 두 시인의 시집에서 사람에 대한 회복과 그것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무척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연에서 사람을 찾다; 나호열의 『촉도』

 

나호열 시인은 언어의 구도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는 말을 통해 삶의 형식과 방향을 탐색하고 또 거꾸로 삶에서의 깨달음을 시적 언어로 표현해 왔다. 이번 시도 그의 이런 시적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번 시집이 크게 눈에 띄는 이유는 바로 그의 시들에서 보이는 사람에 대한 새로운 관심 때문이다.

이번 나호열 시인의 시집에는 자연친화적 성격들의 시가 많다. 하지만 이 시들에서 보이는 자연은 자연에서 유유자적을 말하는 전통적인 동양적 자연이나 목가적인 자연은 아니다. 그의 시에서 자연은 항상 경계에 놓여 있다. 그의 시는 자연과 도시, 자연과 인간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의 사유를 보여주고 이를 통해 삶을 성찰한다. 그 중심에 바로 사람이 있다. 가령 이런 것이다.

 

길은 옛길이 좋아

강 따라 굽이치며 가다가

그리움이 북받치면 여울목으로 텀벙 뛰어들고

(중략)

풀꽃마냥 주저앉은 사람들

고난으로 땀 흘리는 마을이라고

지상에서 가장 슬픈 이름을

누가 부르기 시작했는지 몰라

             

                          - 「고한에서」 부분

 

이 시에서 자연은 사라져 가는 것들로 존재한다. 굽이치는 강물과 풀꽃이 있지만 고한은 이미 탄광촌으로 이제는 스키장이 있는 레저 단지로 개발된 곳이다. 하지만 시인은 여기에서 자연과 인간과의 대립이나 농촌과 도시의 대립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자연이 사라져 가듯 거기 사는 인간들도 가장 슬픈 노래를 부르며 고난의 삶을 살다가 사라져 갈 운명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자연과 인간은 별개가 아니고 자연이 사라져 가면 거기 사는 인간들 역시 사라져 가게 된다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 시도 마찬가지이다.

 

늦은 밤 고개 들어 도시의 손톱달을 본다

너도 있으나마나

그러나 흐린 날이든 맑은 날이든 달은 떠오르고

끊임없이 이울고 벅차오른다

시궁창에도 빛살무늬를 남기고

풀벌레 울음에 넌지시 손을 내민다

내 그림자만 봐도 마음 든든하다고

늙어가는 아내가 저만큼 달려오듯이

 

                                   - 「있으나 마나」 부분

 

우리 모두는 "있으나 마나"한 잉여의 존재이다. 특히 자연 속의 나를 들여다보면 더 그렇게 느껴진다. 그런데 사람들은 거꾸로 자신을 중심에 놓고 세상의 모든 것들, 특히 우리의 삶의 근원이고 또 터전이기도 한 자연을 있으나 마나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시인은 바로 있으나 마나한 풀벌레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자 늙어가는 아내만큼 모든 사람들이 소중한 존재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이런 성찰을 통해 시인은 모든 떠나는 것들을 바라본다.

 

경비원 한 씨가 사직서를 내고 떠났다

십년 동안 변함없는 맛을 보여주던 낙지집 사장이

장사를 접고 떠났다

이십 년 넘게 건강을 살펴주던

창동피부비뇨기과 원장이 폐업하고 떠났다

(중략)

아득하고 어질한 하늘을 향해 내걸었던

밥줄이며 밧줄인 거미줄을 닮았다

꼬리를 자른다는 것이 퇴로를 끊어버린 촉도

거미에게 묻는다

 

                            - 「촉도」 부분

 

삶이 모두 가파른 언덕 위의 외줄기 길이고 우리의 삶이 가느다란 공중의 그물줄에 매달린 거미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인식을 시인은 보여준다. 이 도시의 삶 속에서 자본이 횡행하는 도시의 삶 속에서는 자연도 인간도 모두 슬프고 쫓겨가는 존재일 뿐이다. 거기에는 자연으로의 도피도 인공 도시에서의 찬란한 미래도 없다. 인간도 역시 자연의 일부이고 그리고 서서히 퇴로가 없는 촉도에 내몰리는 삶을 강요받을 뿐이다.

 

                                               - 계간 『미네르바』2015 겨울호 (시집 골라읽기)

 

황정산

1994년 『창작과 비평』으로 평론 등단. 2002년 『현대시문학』으로 시 등단. 평론집 『주변에서 글쓰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