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시]
뉴스천지 | newscj@newscj.com2015.08.04 19:40:03
칠월
나호열(1954~)
청포도 같은 싱그러움으로 익어 가야 할, 물들어 가야 할
입 안에 붉은 앵두 몇 알 터질 듯
오물거리는 그 말
사분음표로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같은
그 말
마악 알에서 깨어난 휘파람새가
처음 배운 그 말
하늘을 푸른 술렁거림으로 물들이는 그 말
[시평]
칠월이 지나가고, 이제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왔다. 밤에도 열기로 인하여 잠 못 드는, 한 여름의 무더위. 이 무더위가 오기 전 칠월은 왠지 싱그러움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듯한 이름의 달이다. 왜 그런가? 칠월에는 포도를 비롯한 싱그러운 과일들이 익어가고, 그 익어가는 과일들을 감싸며 싱그러운 장맛비가 후드득 떨어지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꼭 그러한 기후와 환경 때문에 칠월이 싱그럽게 느껴지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칠월’ 하는 그 칠월을 부르는 음(音). ‘칠’하며 왠지 입안이 싱그럽게 퍼져오는 듯한 그 음의 맛, 그 맛 때문에 ‘칠월’이 싱그럽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마악 알에서 깨어난 휘파람새가 처음 배운 그 말처럼, ‘칠월’의 ‘칠’은 왠지 입안에서 앵두 몇 알 터지는 듯, 우리의 입안에서 오물거리며 싱그럽게 퍼져가고 있는 음이기도 하다.
그러나 ‘칠월’의 ‘칠’이라는 음이 그렇듯 입안에서, 하늘을 푸른 술렁거림으로 물들이는 그 말로 살아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칠월의 싱그러운 과일과 그 반짝이는 듯한 과피(果皮)에 떨어지는 햇살과 또 이를 적셔주는 장맛비 때문이리라. 계절의 환경과 함께 그 음까지 모두 어울리어 싱그러움을 주는 계절, 칠월이 이제 지나고 무더위와 힘겹게 싸우듯 건너야 할 팔월이 왔다. 그러나 이 역시 돌고 돌아야 하는 자연의 순환, 그 이치 아니겠는가.
尹錫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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