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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호열 시집 『촉도』/ 장인수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10. 8. 23:04

나호열 시집 『촉도』

장인수

 

 

나호열 시인의 『촉도』는 길 떠남의 시집이다. 여정 시집, 여로 시집, 여행 시집이다. 순례자의 시집, 나그네의 시집이다. 유목민의 시집이다. 길을 떠나면서 풍경을 노래하고, 어떤 장소에 도착해서 그곳 풍경을 노래하고 , 지나가면서 풍경을 노래한다.

거진, 강화도, 장항, 태장리, 신두리, 봉선사, 맹지, 도선사, 괴산......'바람의 소리를 듣고/ 해의 기울기에 온몸을 맡기며/ 물음표를 닮은 커다란 귀와 하늘에 가닿은 눈'('어느 유목민의 시계'중)으로 떠난다. 떠돌이의 노래다. '어두워서 춥고/ 추워서 더욱 어두운 마을 밖에서/ 칼바람을 남루로 얻어 쓰고/ 저, 외톨이 나무의 꿈은 꺾어져 돌아가는 길 끝까지 걸어가 보는 것'('태장리 느티나무의 겨울'중)이 그의 길 떠남이다. 수행자처럼, 순례자처럼 길을 떠난다. 나그네가 되어 그가 가장 많이 본 것은 아마도 별과 바람인 듯하다. '사그락거리는 내 몸이 배운 단어들은 / 한 마디로 축약하면 별이다/ 모래시계 속에서 낙하하는 별들은 /도 한 마디로 더 줄이면 바람이다'('낡아가고...익어가고' 중)라고 노래한다.

 

내 눈길이 눈물에 가닿는 곳

내 손이 넝쿨손처럼 뻗다 만 그곳부터

시작되는 촉도

 

 

손 때 묻은 지도책을 펼쳐놓고

낯 선 지명을 소리 내어 불러보는 이 적막한 날에

정신 놓은 할머니가 한걸음씩 밀고 가는 저 빈 유모차처럼

절벽을 미는 하루가

아득하고 어질한 하늘을 향해 내걸었던

밥줄이며 밧줄인 거미줄을 닮았다

 

- 「촉도」 부분

 

 

촉도는 매우 험한 길을 뜻하는 말이다. 소설 삼국지를 읽은 사람이라면 중요무대로 촉이 등장하고 유비가 촉한을 세우는 과정에서 자주 접하게 된다. 그 길이 얼마나 험하던지 시선 이백은 촉도난 이란 시에서 '촉도로 가는 길이 험난하니 푸른 하늘 오르기보다 어렵구나'라고 표현 하였을 정도다. 천길 낭떠러지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길이니 오죽하였겠는가. 목숨을 걸고 가야하는 험로다. 담쟁이 넝쿨손이 뻗는 절벽의 길. 인생길도 때로는 이와 비슷할 때가 있다. 험난한 길조차 건너가야 한다. 거미에게는 허공이 길이다. 허공에 거미줄을 치면 그곳에 거미의 길이 생긴다. 절벽도 길이며, 허공도 길이다. 시집 촉도는 길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통찰이며, 길 떠남의 시편들로 가득 차 있다.

 

 

섬들이 부딪치지 않으려고

파도로 외로움을 만드는 시간

눈에 불심지를 매단 차들이

조심조심 좌우로 앞뒤로

순례의 길을 간다

 

 

섬 속에 살고 있는 또 하나의 섬

무언의 깜빡이를 켜고 능숙하게 핸들을 돌리는

신을 닮은 우리는 스스로 고독한 채

말문을 닫는다

길 위에 떠도는 다도해

긴 팔을 뻗으면 닿을 듯해도

물 속에 다리를 묻은 두루미처럼

몹시도 가려운 그리움의 바닥을 쳐다보며

커엉컹 개 짖는 소리 들린다

급히 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어둠의 벼랑 아래로 아득히 추락하는

떠도는 섬

 

- 「떠도는 섬」 전문

 

 

'섬' 이라는 말에는 묘한 어감이 있다. 파도는 외로움을 만든다. 파도는 외로움의 성분이다. 섬은 외로움의 성분으로 둘러싸여 있다. 섬에는 외로운 사람이 살고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을 ' 섬 속에 살고 있는 또 하나의 섬'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섬은 가만히 있는 듯 하지만 섬은 떠돈다. 다도해에는 섬이 많다. 섬 사이를 섬이 떠돈다. 섬 사이를 사람이 떠돈다. 섬과 섬 사이에 외로움이 있고, 순례의 길이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고, 섬과 섬 사이에 사람이 있다. 섬과 사람이 구별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섬은 나, 너, 우리, 그리고 또 다른 고독한 섬이다.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우리의 뒷모습은 모두 섬을 닮았다. 섬은 사람을 닮고, 섬은 신을 닮았다. 나도 너도 섬이다. 시골도 섬, 도시도 섬, 이 지구도 섬이다. 신 앞에서 모두 섬이다. 섬은 창조의 근원이며 실존의 근원이다.

 

 

날개가 되어주고 싶어

저 벽의 날개

너와 나를 가르는 저 벽의 날개

견고한 모든 슬픔이

새가 되어 날아갈 그날까지

나는 푸르게 푸르게

날개를 키울꺼야

 

- 「담쟁이의 꿈」 부분

 

 

그는 늘 어디로든 가고 있다. 때로는 바람이 되어, 때로는 새가 되어 경계를 넘고 있다. 때로는 나무가 되어 바람의 전언을 듣고 있다. 담쟁이를 보면서 벽을 넘어서는 꿈을 꾼다. 날개를 달고 새가 되어 날아가는 꿈을 꾼다. 험난한 인생길을 떠돌며 삶의 속성을 깨우치고, 세상의 이치를 통찰하고 있다. 우주 안에는 무수한 흐름과 길이 존재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길 떠남은 숙명이다. 넝쿨을 뻗는 일조차 떠남과 날아감의 징표들이다. 나그네에게 고정된 풍경은 없다. 나그네에게는 모든 존재가 흘러가는 풍경이다.

 

장인수

충북 진천 출생. 200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교실, 소리 질러』 외

계간 《시와 경계》 2015년 가을호에 게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