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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11. 2. 22:54

 

미당 닮은 구수한 익살 … 질마재서 손님 맞는 92세 동생

올해 아흔둘인 미당의 동생 서정태(오른쪽)옹과 미당문학상 수상자 최정례 시인. 서옹은 전북 고창 질마재 마을의 미당 생가 바로 옆에 산다. ‘우하정’이라 이름 붙인 자신의 집 툇마루에 최씨와 나란히 섰다. 정정한 서옹은 “형의 산소를 지키는 시묘살이를 하는 중”이라고 농담했다. [고창=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탄생 100돌 … 고창서 미당문학제
올 미당문학상 수상 최정례 시인
“60세 때 미당처럼 저도 산문시
1000편의 시, 읽을 때마다 새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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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전북 고창 미당시문학관 건물 앞에 마련된 시비 제막식. 대표작 ‘동천’이 새겨져 있다.

미당(未堂) 서정주(1915∼2000) 시인은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아직도 건너야 할 강이고, 넘어야 할 산이다. ‘시의 정부(政府)’라는 극찬이 있는가 하면 친일과 독재 정부에 대한 그의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가파르다. 시의 정부라는 표현은 대체 어떤 뜻인가. 일체의 권위와 속박을 거부하는 문학의 영역에서조차 미당에게만은 특별히 ‘통치권’을 인정하겠다는 의미 아닌가. 반면 그의 정치적 오점으로 인해 ‘국화 옆에서’ 같은 대표작들이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사라지고 있다. 그런 상반된 평가 자체가 미당 문학의 깊이와 넓이를 말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강연호 시인·원광대 문예창작과 교수).

 어쨌든, 올해는 미당이 태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예년보다 성대하게 그의 고향인 전북 고창 질마재 마을에서 그의 문학을 기리는 미당문학제가 열렸다. 본지가 운영하는 미당문학상의 그해 수상자가, 미당의 산소에서 내려다보이는 미당시문학관 앞마당에서 시상식을 하는 건 미당문학제 행사의 하이라이트다.

 올해 수상자인 최정례(60) 시인과 함께 지난달 30·31일 이틀간 질마재 마을을 다녀왔다. 파란 하늘은 드높고, 가을 바람은 서늘했다. 소요산·질마재 품에 안겨 서해 바다를 내다보는 마을. 시심(詩心)이 절로 솟는 듯했다.

 # 다채로운 미당의 시 세계

 30일 하루종일 열린 문학 세미나와 최씨의 문학강연은 미당 문학의 크기와 다채로움을 증명했다. 우선 세미나. 발제자 네 명의 발표 주제가 천차만별이었다. 이숭원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는 요즘 각광받는 심층생태학(인간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가치를 동등하게 봐야 한다는 입장)의 시각에서 미당의 시 세계를 설명했다. 이은봉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미당 특유의 ‘떠돌이 의식’, 장영우 동국대 국문과 교수는 미당 시에 나타나는 ‘영원성’을 실마리 삼아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고형진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미당 시가 초기에는 운율을 중시하는 서정시에서 환갑인 1975년 출간한 『질마재 신화』에서는 이미지가 돋보이는 산문시로 변모했다고 했다.

 최씨의 올해 미당문학상 수상작 ‘개천은 용의 홈타운’은 공교롭게 산문시다. 최씨는 “미당이 60세부터 본격적으로 산문시를 썼는데 나도 미당과 비슷한 나이에 산문시를 쓰고 있다”고 운을 뗐다. 하지만 곧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미당의 좋은 시가 많다”고 실토했다. 『질마재 신화』에 실린 시 ‘간통사건과 우물’을 사례로 들었다.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쓴 1000편의 시. 미당의 작품 중에는 읽을 때마다 새롭게 읽히는 시가 많다는 얘기였다.

 # 형 못지 않는 동생의 입심

 “내가 미당 동생이란 말여. 또 가만히 생각하니 내가 형 집(과거 함께 살던 생가) 바로 아래 살고 있단 말여. 그래서 우하정(又下亭)이라고 이름 붙였지. ‘또 아래’란 말이여.”

 31일 오후. 미당보다 여덟 살 어린 동생 서정태(92)옹은 최씨가 집 이름이 우하정인 이유를 묻자 우스갯소리를 하며 집 안으로 이끌었다. 그는 16번지인 생가 바로 옆집인 14번지에 살며 형의 산소, 고향마을을 지킨다.

 집 울타리에 해당화를 심어 놓고 방문객들에게 꽃잎 하나씩 따먹으라고 한다는 얘기, 자기 나이 때의 독거 할머니는 더러 있어도 자기 같은 독거 할아버지는 세계적으로 자기밖에 없을 거라는 얘기…. 정정한 서옹은 입심이 대단했다. 『질마재 신화』에 나타난 허풍과 과장, 익살과 통찰력은 집안 내력인 것 같았다.

 #“자연스러워야 아름답다”

 31일 오후 3시. 시상식 단상에 선 최씨는 판에 박힌 수상소감을 말하지 않았다. ‘돌직구 발언’으로 문학제 주최 측을 긴장시켰다. 잔뜩 기대하고 왔는데 막상 질마재 마을을 둘러보니 꾸미려는 노력이 지나쳐 눈에 거슬리는 구석이 많더라고 지적했다. 가령 생가 앞에 커다란 흰 날개를 설치해 관광객들이 날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곤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미당 시 중에 날개를 진지하게 다룬 작품은 없다는 얘기였다.

 “감정을 과장하지 말아야 한다. 자연스러운 게 아름다운 법이다.”

 고창군에 대한 당부이자 주문이었지만 꼭 고창군에만 해당되는 얘기도 아니었다. 미당 시를 감상할 때나, 그의 공과를 논할 때도 그런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글=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