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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도 蜀道를 꿈으로 넘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8. 4. 00:03

<자작시집 엿보기>

촉도 蜀道를 꿈으로 넘다

나호열

 

 

촉도는 뜻 그대로 촉蜀으로 가는 길이다. 형해만 남은 한漢나라를 놓고 삼국이 쟁투를 벌이던 시절 위의 수도 낙양과 촉의 성도를 잇는, 현재의 사천성과 섬서성 경계의 고산준령을 일컫는 말이다. 이 험준한 곳을 통과하기 위하여 천 길 벼랑에 잔도 棧道를 놓으니 지금도 그 길은 넘기 힘들다. 당唐의 시선 詩仙 이백은 시 「촉도난 蜀道難」서두와 말미에 두 번 '蜀道之難 難於上靑天 : 촉으로 가는 길의 험난함은 푸른 하늘 오르는 것보다 어렵네' 라고 읊어, 오르기도 내려가도 힘든 지세를 형형하게 그려 내었고, 이에 감응한 듯 조선 중기의 화가 심사정은 촉잔도권蜀棧圖卷을 통해 촉도를 조감할 수 있는 즐거움을 후대에게 물려주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건대, 이백이 살던 암울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이 몰려오던 시대와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대역죄인의 자손으로 낙인찍힌 심사정의 불우했던 개인사를 겹쳐 보면 오늘의 나의 삶, 장삼이사의 삶 또한 촉도와 다름없이 녹록치 않음을 깨닫게 되니 저절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촉도에 비견되는 삶의 어려움은 피할 수도, 망각할 수도 없는 길이니 나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시집『촉도』는 열다섯 번째 내 삶의 기록이다. '이순 耳順을 넘어 아직도 자폐 自閉와 유폐 幽閉 사이에 걸린 세월을 꿈꾸듯 걷고 있는' (「자서」부분)나와 부조리한 세상은 여전히 불화를 겪고 있고, 더 나아가서 자연과 인간의 대립에 몸서리치며 여전히 출발 선상에 서 있는 자신을 위무하는 중얼거림이기도 하다. 서평을 쓴 정유화의 지적대로 현실에 맞서 싸우기에는 근력이 부족하고 '언어의 집' 속에서 두꺼운 비유와 상징의 미학을 추구하기에는 타고난 재능이 모자람을 어찌하랴. 문명이 준 시계를 '바람의 숨소리를 듣고/ 해의 기울기에 온몸을 맡기는 /....../ 물음표를 닮은 커다란 귀와 /하늘에 가닿은 눈( 「어느 유목민의 시계」 마지막 부분)'을 가진 유목민의 삶을 동경하면서도 '하루의 풍진을 씻어내는 거울 앞에/ 수척해진 채 돌도끼를 만들 줄 모르는' (「구석기의 사내」)임을 처연히 확인하는 하루하루는 ' 이 밝은 세상에서 어두운 세상으로/ 온몸을 꿈틀거리며 긴 일획을 남기며' (「지렁이」 부분) 가는 비루한 꿈으로 버려지고 있음을 또 어찌하랴.

어디 또 그뿐인가! '구름이라는 낭만의 집 (구름의 집)'에는 '몸통은 없고/ 날개만 퍼덕이는' 하루살이가 이 편한 세상으로 정원수로 팔려 온 삼백년 벼락 맞은 느티나무(「이사」)에 머물 때 나에게 촉도는 '내 눈길이 눈물에 가닿는 곳/ 내 손이 넝쿨손처럼 뻗다만 그곳( 「촉도」 2연)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세상과의 불화, 유쾌하지 않은 자의식에 함몰되지 않고,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새로운 언어를 탐색하며 얻은 꿈은 '사랑'이다. 내 나름대로 '사랑'을 연역한다면 모든 존재에 대한 연민'이며 그 연민을 우주로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종교와 신앙의 힘을 빌리지 않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의 '대화'야 말로 시 쓰기의 출발이며 종착지이다.

 

 

늘 배고픈 저 아가리

복음은 눈으로 볼 수 없고

관음은 귀로 들을 수 없어

허공을 밟고 오시는 어떤 사람

오늘도 수신불량이다

 

 

시 - 「Sky life 」전문

 

 

편견과 오독된 신념으로 비롯된 증오를 넘어서서 '부르는 사람 없어 이름 오래 전 잊어버린(「선물」부분) 할머니, 깃발이 되지 못해도 바람에 휘날릴 수 있다는 듯 가슴을 여는(「보자기의 꿈」부분) 나일론 인생들, 죄 짓지 않고 자랑스럽게 번 돈으로 붉은 마음을 불판에 올려놓는 나그네' (「고한에서」부분)의 넋두리 속에서 '마악 알에서 깨어난 휘파람새가 처음 배운 그 말'(「칠월」)을, 사랑이라는 한 단어만으로 가득한 나만의 사전을 갖고 싶은 것이다.

 

 

맹목으로 달려가던 청춘의 화살이

동천 눈물주머니를 꿰뚫었는지

눈발 쏟아지는 어느 날 저녁

시인들은 역으로 나가 시를 읊었다

 

 

오고 가는 사람들 사이에

장미가 피고 촛불이 너울거리는 밤

누가 묻지 않았는데 시인들의 약력은

길고 길었다

 

 

노숙자에게 전생을 묻는 것은 실례다

채권 다발 같은 시집 몇 권이

딱딱한 베개가 될지도 모르겠다

어둠한 역사 계단 밑에서 언 손을 녹이는

불쏘시개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늘이 내리시는 무언의 시가

발밑에 짓이겨지는 동안

가벼운 재로 승천하는 불타는 시가

매운 눈물이 된다

 

 

아, 불타는 시

- 「「불타는 詩」 전문

 

나는 다시 중얼거린다. 부정否定은 긍정의, 절망은 희망의 필요조건이야. 촉도를 넘어가면 또 다른 촉도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야. 나는 더 고독하게 단독자의 포즈를 추스려야 해. 스스로 깨닫지 못한 길에 무임승차할 수는 없어. 시인이 되기에 아직 먼 길이라도 머리보다는 가슴을 믿어야 해!

 

나는 당신에게 건너가는 꽃다발이 되고 싶다

- 「기억하리라」 마지막 연

계간 『시에』 2015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