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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와 시집에 대한 평론

단절과 비약, 여운이 지난 자리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5. 1. 8. 22:48

단절과 비약, 여운이 지난 자리

 

김유중 (한국항공대 교수, 문학평론가)

 

 

시라는 양식 자체의 특성이랄까 미학적 조건은 무엇일까하는 생각을 뜬금없이 해보게 된다. 여러 차원의 설명이 있을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시는 반드시 논리적일 필요가 없다는 I. A 리차즈 식의 주장이 제법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논리적인 글에서라면, 전후적인 논리적인 연결이나 인과관계의 혼란은 그것만으로도 치명적이다. 그러나 같은 글이라도 시에서는 문제가 다르다. 논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독자의 내면에 어떤 정서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가 하는 점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단절이나 비약은 시에서 하나의 유효적절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좋은 시란 반드시 모든 것을 글로 풀어내야만 달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리어 적절히 건너뛰고 생략하면서도 표현된 것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때가 가장 바람직한 경우라고 하겠다. 단절이나 비약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사실을 망각한 채, 우리 시가 점차 서술적, 요설적인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불안감은 단지 나혼자만의 착각은 아닌 듯하다. 암호처럼 의미소통이 불가능한 것도 문제겠지만, 시적인 긴장감 확보 노력을 도외시하는 것 역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시란 논리 밖에서 논리를 넘어설 수 있는 진리의 세계를 기도하는 양식인 까닭이다.

지난 연말, 문예지에 실린 시들을 훑어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적 긴장감의 재탈환이라는 목표가 현재 우리 시단의 당면과제가 아닐까 한다. 이른바 촌철살인의 경지에 다다른 시의 출현이 아쉽다. 그게 어디 그리 말처럼 쉬운 일이겠는가마는, 요즘 들어 부쩍 그런 아쉬움이 더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재치나 현란함만이 능사가 아니겠기에 하는 말이다

 

자연과의 교감

 

자연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그러한 관찰로부터 촉발된 시적 영감은 가장 흐노한 소재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흔한 만큼, 또한 그에 걸맞을 정도의 완성도 높은 텍스트를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무의 눈물이라고 너를 부른 적이 있다

햇빛과 맑은 공기를 버무리던 손

헤아릴 수 없이 벅찼던 들숨과 날숨의

부질없는 기억의

쭈글거리는 허파

창 닫히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

더 이상 슬픔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하였다

슬픔이 감추고 있는 바람, 상처, 꽃의 전생

그 무수한 흔들림으로부터 떨어지는,

허공을 밟고 내려오는 발자국은

세상의 어느 곳에선가 발효되어 갈 것이다.

기다리지 않는 사람에게 슬픔은 없다, 오직

고통과 회한으로 얼룩지는 시간이 외로울 뿐

슬픔은 술이 되기 위하여 오래 직립한다

뿌리부터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취기가 없다면

나무는 온전히 이 세상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너는 나무의 눈물이 아니다

너는 우화를 꿈꾼 나무의 슬픈 날개이다

                                         - 나호열, <낙엽에게>, <<시인시각 2007년 겨울호>>

 

 내가 이 텍스트에서 주목한 것은 “낙엽”이라는 소재, 그리고 이 소재에 담긴 하강적 이미지를 “날개”라는 상승의 이미지로 승화시킨 시인의 놀라운 상상력이다. 그에 따르면 낙엽이란 더 이상 슬픔이 아니며, 눈물이 아니다. 다만 맺지 못한 상승에의 슬픈 열정을 간직하고 있는 “날개”인 것이다.

그것은 시인의 이루지 못한 꿈과도 통한다. 누군가에게 이 꿈을 들려주기 목적에서 그는 이 텍스트를 완성했으리라. 그리고 되뇌었으리라. 내 시도 이와 같은 것이라고. 그러나 텍스트의 면면을 유심히 훑어본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시인이 너무 그렇게 자책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 텍스트의 수준은 그런 시인 내면의 원초적인 아쉬움을 능히 상쇄할만한 것으로 생각되기에.

 

                                                           -  문학사상, 2008년 1월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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