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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게 길을 묻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4. 2. 1. 12:26

 

길에게 길을 묻다

 

길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떠올려 봅니다.

 

길을 가다보면 무수히 많은 표지판을 만나게 됩니다. 표지판이 없으면 수월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표지판은 지나온 길을 알려 주지 않습니다. 이 길을 걸어가는 나와 이 길의 저쪽에서 오는 사람은 오직 자신 앞에 있는 표지판을 볼 수 있을 따름입니다.

 

道에서 道를 넘어가거나 都市에서 다른 都市로 지나칠 때 익숙한 푯말이 나타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와 '어서 오십시오'는 나들목의 경계에 없어서는 안될 포근한 인사입니다.

 

똑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갈 때에도 우리는 똑 같은 길을 가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사람은 빠른 시간 안에 도달할 수 있는 지름길을 택하기도 하고 어느 사람은 풍경이 아름다운 길을 유유자적 흘러가기도 합니다. 직선만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느 사람은 먼 길을 애돌아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길에 대한 생각이 여러 갈래인 것처럼, 우리의 삶도 같은 듯 한데 사실은 매우 다릅니다. 한 개인의 생각이 다른데 하물며 한 나라를 이끄는 데 있어서 萬事亨通의 한 길 만이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國難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심각한 國論의 분열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해 묵은 논쟁 같지만 경제가 먼저냐, 민주화가 먼저냐 하는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일에 우선을 두자는 것도, 사람답게 살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결코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이 두 가지 과업이 동시에 이루어졌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인간의 역사는 그리 호락호락 한 것 같지 않습니다.

 

국민의 복리증진과 사랍답게 살 권리의 확장은 同床異夢이 아니라 同床同夢이어야 하는데 우리의 형편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진보'와 '보수'는 철천지 원수가 아니라 사이좋게 어울려 살아야 하는 이웃인데 우리에게 그 둘은 물과 기름 같은 사이입니다.

 

다시 길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길은 수단이지 목표가 아닙니다. 목표가 달라도 우리는 같은 길을 선택할 수도 있고, 같은 길을 가더라도 목적지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과 역사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의 목표는 다를 수가 없습니다. 앞서 말한 국력의 신장과 사람답게 살 권리를 향유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상황은 도달해야 할 목적지는 안중에도 없고 온통 길에 대한 논쟁 뿐입니다. 자신이 제시한 길 이외에는 어느 길도 허용하지 않는 過信이 국민들을 우롱하고 협박하고 회유하고 있습니다.

 

요즘 둘레 길 걷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느리게 이리 돌고 저리로 휘어지면서 걷는 것이 자신을 둘러보는 명상의 체험으로 각광받고 있는 것입니다. 길은 사람이 만들었지만 사람의 두 발로 걷지 않으면 길은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쉬엄쉬엄 걸어가며 느끼는 삶의 희열을 이제 우리 대중들만 느낄 것이 아니라 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 여러분께도 권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길이 없으면 우리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거미줄 같이 얽힌 길은 모두 한 세상으로 모였다 흩어지는 和而不同의 세계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당신이 걸어온 길을 내가 되짚고 있고 내가 흘러온 길을 당신이 다시 더듬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길에게 길을 묻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