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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구두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7. 4. 20:24

 

아들의 구두

 

 

경비실에서 찾아온 택배물을 살펴보니 아들에게 온 구두다. “이런, 구두를 또 샀어?”하는 게 첫 번째 내 반응이다. 나는 어떤 물건이든 값이 나가더라도 질 좋은 제품을 사야 오래 사용할 수 있고 싫증도 덜 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반면에 아들은 오래 쓸 수 없어도 값이 싼 물건을 그때 그때 구입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건 취향의 문제이므로 누구 말이 옳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내 생각을 바꾸고 싶지는 않다. 아마도 이런 나의 취향은 꼭 50년 전 얼굴만을 기억하는 아버지 영향이 큰 것이 아닐까 한다. 은행원이었던 아버지는 깔끔한 정장과 세련된 악세서리로 멋쟁이의 풍모를 버린 적이 없다. 말년에 이르러 가세가 기울고 초췌하고 왜소해진 모습을 맞이하긴 했지만 ‘신사는 이런 것’이라는 무언의 풍모는 내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던 모양이다.

 

두 달 뒤면 아들도 한 가정을 꾸리고 독립해 나간다. 요즘 부쩍 드는 생각은 말과 행동으로드러내지 못하지만 한 마디로 짚어 말하자면 아들에 대한 미안함이다. 아버지로서 자상하지도 못했고, 풍족하게 뒷바라지도 해 주지 못한 지난 날의 회오悔悟는 여간해서 떨쳐내기 힘들다.

 

나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나의 아들도 은행원이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 늦게 돌아온다. 기억 속의 아버지는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을 하신 분이다. 그러나 그 때의 환경보다 지금의 현실이 더 힘들고 치열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래 전 사회 초년병 시절에 직장 상사 한 분이 말씀하시길 자신은 구두 한 켤레를 사면 10년을 신는다고 하였다. 좋은 구두를 몇 켤레 사서 돌아가면서 신게 되면 싫증도 나지 않고 오래 신을 수 있다는 말씀. 그 당시의 나는 구두 한 켤레가 1 년을 넘기지 못하고 헤져 버리는 까닭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젊고 아래 직급에 있을 때는 일도 많고 움직임도 많으니 신발이 빨리 닳는 것은 당연지사!

 

오늘 아침 쓰레기를 버리려고 보니 구두 한 켤레가 눈에 들어 왔다. “아들의 구두? 겉은 멀쩡한데... 이걸 버려?” 하며 구두를 집어드는 순간 구두 밑창이 뻥 뚫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밑창이 닳도록 신고 다녔을 구두..... 고단함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구두...... 아무리 어려웠어도 밑창이 닳도록 신고 다녔던 구두의 기억은 내게는 없다.

 

아들아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