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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 是非의 나라, 詩碑의 나라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11. 9. 14:37

 

시비 是非의 나라, 詩碑의 나라

 

茶山은 목민심서 束吏에서 목민의 책무를 맡은 자가 송덕비나 선정비를 살아 생전에 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였다. 물론 민중의 자발적 의사에 따라 떠난 이의 행적을 기리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제법 큰 고을 한 모퉁이에 말라 비틀어진 대나무처럼 서 있는 비석들을 바라볼 때마다 오늘날 힘깨나 쓰는 위정자들의 자화자찬을 보는 것 같아 쓸쓸하기 그지 없다. 나라를 걱정한다는 사람들이 얄팍한 술수를 부리고 이편 저편 갈라서서 호객을 하며 是非를 논하는 이 백가쟁명의 시대에 또 하나의 시비거리가 있으니 걱정 아닌 걱정이 든다.

 

어느 날 부터인가 우리 주변에 詩碑가 늘어나고 있다. 이미 유명을 달리한 시인들의 시를 기리며 後人들이 세운 시비야 말할 필요가 없으나 문단의 어른이라고 하는 분들부터 이제 시단에 발을 들인 신인에 이르기까지 이곳 저곳에 자신의 시비를 세우고 자랑꺼리로 삼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비싼 돌을 캐내어 다듬고 아무리 좋은 글씨로 새겨 넣은들 만고에 남을 명문장을 가려 읽고 마음에 간직하는 수준 높은 독자의 눈을 속일 수는 없을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은 틀림이 없으나 자신의 이름을 남긴다는 것이 다시 말해 자신을 기억해주는 사람, 자신의 언행이 훌륭함을 인정해 주는 이들이 없이는 불가능함은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구재기 시인은 인생의 선배요, 문단의 선배일 뿐만 아니라 멀다고는 할 수 없는 인척이기도 하다. 교단에서 은퇴한 시인은 생가를 산애재라 이름 짓고 화초를 가꾸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나는 그런 유유자적을 부러움 반 시샘 반으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시비를 하나 둘 세우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럼 그렇지!

 

그는 30개의 시비를 세우f고자 했는데 이제 28개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자. 산애재에는 그의 시를 새긴 시비는 하나도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들의 시를 자비를 들여 자신의 마음 속에 들여놓는 일을 구재기 시인은 하고 있는 것이다. 어림잡아 몇 천 만원은 내놓아야할 그 일을 그는 몇 년 동안 뚝딱하고 해 놓았다. 詩歷 40 년에 가까운 시인이 스스로 아끼고 자랑하고 싶은 시가 어찌 없겠는가?

 

나는 그에게서 愼獨의 경지를 본다.

 

 

2011년 10월 상주문인협회 주관 낙강시제에서 (싱주 도남서원) 구재기 시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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