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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서 행복하게 살기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9. 30. 19:51

 

아파트에서 행복하게 살기

 

나호열 (시인)

 

아파트가 산업화시대의 완결된 상징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좁은 국토와 많은 인구를 가진 우리나라의 형편에서 편리성을 갖춘 아파트는 도시적 삶의 향유뿐만 아니라 부의 축적수단으로 인식된 나머지 대도시를 벗어나 농어촌 산간벽지까지 우후죽순 숲을 이루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 인구의 65% 그러니까 1000만 가구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음을 볼 때 공통주택에서의 삶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버린 셈이다. 그러나 회색의 콘크리트 벽과 얇은 철근으로 엮은 천장을 잇댄 아파트는 공동체적 삶의 즐거움 대신 불화와 단절의 고통을 슬그머니 던져주고 있다. 옆집, 아랫집, 윗집에 어떤 사람이 사는 지 알 필요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은 까닭에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도 가벼운 목례조차 나누지 않은 채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은 이 시대가 개인주의에 함몰되어 있고 익명의 편안함에 익숙한 세태에 물들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유목민의 정서가 깃든 우울한 아파트의 삶은 그래서 유쾌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만드는 공장으로 변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아파트 공터나 주차장에 천막이 쳐지면 어느 한 생이 이승을 떠났음을 알 수 있었다. 어느 집에 혼사가 있으면 온 동네가 떠나갈 듯 함잡이의 실랑이가 구경거리가 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아파트에서의 죽음은 혐오감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병원 영안실이나 장례식장으로 서둘러 떠나야하고 함잡이의 우렁찬 목소리는 누군가의 신고로 제지당하는 것이 오늘의 풍경이다. 어디 그 뿐인가? 층간소음으로 인한 윗집 아랫집의 분쟁은 쌍방 간의 고소, 고발을 넘어 살인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급기야 정부는 층간소음 분쟁을 줄이기 위해 아파트 시공사에 기술개발을 요구하고 표준관리규약준칙안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얇은 벽으로 충격과 소음 방지에 소홀했던 건축방식은 마땅히 개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조치만으로 공동주택의 크고 작은 분쟁이 해소되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십 오년을 한 아파트에 살아오면서 날이 갈수록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나이든 탓이라고 애써 위로해 보지만 눈 앞에 펼쳐지는 일상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공정한 아파트 관리운영을 뒷전을 둔 채 사리사욕에 눈 먼 사람들, 관리비를 절약하겠다고 자체 경비원을 감원하고 용역업체 파견직으로 교체하는 일들, 쓰레기를 불법 투기하고 나몰라라 하는 주민들이 하나 둘 늘어나는 세태를 시로 노래할 수도 없고, 교육자의 훈계로 나무랄 수 없기에 현실을 고발하지도 못하고 항거하지도 못하는 방관자의 무력함을 절실히 느끼게 될 뿐이다. 이제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서 애완동물 키우지 않기, 야간에 세탁기 돌리지 않기, 고성방가 금지, 쓰레기 불법 투기 방지 등등이 담긴 법적 효력을 가진 서약서에 서명하고 몇 시간의 교육을 이수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은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라는 옛말이 있듯이 애써 이웃을 외면하는 삶보다는 사이좋은 이웃을 만들 수 있는 여력이 우리에게 있다는 희망을 버리고 싶지는 않다.

 

오래 전 우리 선조들의 품앗이 정신과 향약의 鄕約의 전통을 끄집어내어 희생과 배려를 강조하는 것은 현실적 대안이 되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누군가가 그 비현실적인 대안을 전파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면 공동주택의 삶은 다시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그런 일을 내가 할 수 있을까?” 하고 자문해 본다. 역지사지易地思之는 공동체의 삶에 있어서 반드시 체득해야할 덕목이다. 나에 대한 배려를 타인에게 요구하기 전에 타인에 대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 본 적이 있는가? 그래! 애써 모른 척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해볼까? 방치한 애완동물의 배설물을 소일삼아 일주일에 한번쯤 치워볼까? 길은 보이는데 그 길에 선뜻 나서기가 왠지 부끄럽고 두렵다.

 

 

월간 에세이 201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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