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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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읽기(소설과 수필)

도베르만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6. 29. 19:15

 

 

 

 

도베르만

배성환

 

 

대부분의 애견가들은 파시스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파시스트라는 사실을 모른다. 수술대에 마취되어 있는 개들을 대할 때면 어김없이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집도하는 나는 범죄의 공모자쯤 될 것이다. 마취되어 누워있는 검은 개의 주인은 수술실 블라인드 틈으로 수술실 안을 엿보고 있었다. 애견의 수술이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우리 똘이, 중성화 수술하면 뭐가 좋죠?”

블랙탄 치와와의 이름은 ‘똘이’이다. 견주는 똘이에게 이미 6시간 금식까지 시키고 왔다. 견주는 수술하기로 결정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결정이 정당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려 하였다.

“나이가 들면서 생길 수 있는 생식기 질환이 예방이 되고 수캐의 경우 난폭한 행동이 없어집니다.”

견주의 입장에서는 질환의 예방보다는 난폭한 행동의 교정이 더 마음에 드는 이유일 것이다. 똘이의 견주는 똘이가 오래도록, 그야말로 귀여운 애완견으로 남아있길 원할 것이다. 대부분의 견주들은 원하지 않는 특성을 보이는 개를 참지 못해 한다. 그것이 개의 본능에 기인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개의 난폭한 행동이야말로, 견주의 입장에서는 인간 사회에서 나타나는 반사회적인 행동이나 다를 바 없다.

“우리 똘이가 어찌나 극성스러운지, 이것저것 물어뜯어서 남아나는 게 없어요, 글쎄.”

20세기 초반에 한창 들끓었던 우생학은 범죄학에서부터 개 품종 구분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다. 우생학적 관점에서 불임 처치는 열등한 유전자를 제거하는 매우 효과적이고 직접적인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지극히 파시즘적인 발상이다. 그 때문에 중성화수술을 희망하는 견주들이 파시스트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수캐의 경우 소변을 볼 때 영역표시를 하지 않게 됩니다.”

“그렇죠, 선생님. 수술하는 게 훨씬 좋죠?”

견주는 자신의 결정이 정당하다는 것을 확신한다는 표정으로 수술을 의뢰했다. 병원을 찾는 견주들은 중성화 수술의 좋은 점은 묻지만 그것의 단점은 잘 묻지 않는다. 단점은 많다. 심장의 혈관 육종, 갑상선 기능 저하, 전립선암, 백신에 대한 거부 반응 등의 리스크가 증가한다. 그러나 애견가들은 중성화 수술에 대해 이런 문제에 대해선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 수캐가 난폭해지고 소변을 볼 때 집안에 영역 표시를 하는 것이 신경쓰일 뿐일테니까. 수캐에게 영역 표시는 중요하다. 영역 표시를 하지 않는 수캐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때에 나의 계획은 도벨을 죽이는 것이었다. 쥐약 한통을 물이 담긴 스테인리스 그릇에 고스란히 부어 넣었다. 그리고 초여름 햇볕 아래에서 한참동안 줄넘기를 하였다. 줄넘기를 하는 동안 내가 뚫어지게 바라본 것은 쥐약이 담긴 스테인리스 그릇이었다. 마당 한 구석에 놓인 물그릇은 김치 그릇으로 쓰던 것이었다. 표면은 은색으로 반질반질한 광택이 돌았다. 나는 숨이 심하게 차올랐지만 줄넘기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흥분되는 마음을 차오르는 가쁜 숨으로 억누르고 있었다. 줄넘기를 하는 동안 나는 줄곧 스테인리스 그릇의 고요한 은색을 응시하고 있었다. 은색이 이렇게 긴장되는 색인지는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다. 도벨을 죽이는 계획을 세운 것은 오래 전의 일이었다.

 

 

 

토요일. 학교 대표로 과학경진대회에 나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부모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집으로 서둘러 달려왔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집 앞에 다다라서 내가 마주친 것은 검은 개였다. 녀석은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허연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녀석의 눈빛은 한창 날이 서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날카로움 속에서도 차분하고 당당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물가에 튕겨져 나온 젖은 몽돌이 햇볕을 받으며 물기를 지워내면서 결국에는 검은 몸을 드러내는 것 같은 끈기라고나 할까. 맹렬하게 천방지축 짖어대는 똥개의 극성스러움과는 격이 달랐다. 녀석은 눈빛만으로도 나의 부모에게 자랑하고 싶은 들뜬 기분을 물고 뜯어서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검은 개의 날카로운 이빨을 보는 순간, 난 꼼짝도 하지 못했다. 검은 개는 보기에도 한 입 거리밖에 되지 않는 어린 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검은 개은 서서히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도벨!”

검은 개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코 앞까지 다가 왔을 때, 검은 개의 야수성을 한 순간에 거둬들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였다. 아버지.

“사내 녀석이 계집애같이 무서워하긴…쯧쯧.”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신기하게 그쳐 있었다. 눈을 떴을 때, 검은 개는 아버지 곁에 가 있었고 아버지의 입가에는 비웃음이 묻어 있었다. 검은 개 역시 거만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검은 개는 나를 겁쟁이 아이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검은 개는 엄청난 공포의 시작이었다. 공포의 시작. 그때, 그것이 검은 개에 대한 두려움이었는지,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인지 지금도 분명하지는 않다. 그러나 아버지가 양부(養父)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또한 아버지가 파시스트라는 사실도.

 

 

 

두렵다. 뒷걸음질로 물러선다. 검은 개는 한 걸음, 한 걸음 나에게 다가선다. 눈에는 푸른 광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녀석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더욱 커진다. 소리가 커지는 만큼 녀석의 검은 몸도 커진다. 헬륨 가스에 부풀어 오르는 풍선처럼 검은 개는 순식간에 거대해진다. 검은 그림자가 나의 키를 넘어간다. 나는 돌아선다. 달린다. 힘껏 달리지만 검은 개의 그림자는 여전히 나의 키를 넘어선다. 나는 넘어진다. 돌아본다. 검은 개의 앞발이 나의 몸으로 날아든다. 나를 누른다. 힘을 써 보지만 꼼짝 할 수가 없다. 녀석의 송곳니가 다가온다. 그러나 나는 꼼짝 할 수가 없다. 온 몸이 땀으로 젖는다. 비명을 지르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검은 개의 얼굴은 어느 새 아버지의 얼굴로 바뀌어 있다.

도벨! 도벨! 검은 개의 이름이다. 도베르만, 아버지는 도베르만이라는 검은 개의 애칭을 도벨이라고 불렀다. 내가 웅크린 몸을 조심스럽게 폈을 때, 마당에서 아버지가 도벨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시계는 이미 알람도 꺼진 채 넘어져 있었다. 땀으로 젖은 몸을 일으킨 나는 눈을 감고 벽에 기대어 한참동안 앉아 있었다.

도벨이 우리 집에 온 지, 벌써 세 달이 지났지만 난 아직도 아침마다 처음 듣는 이름처럼 도벨의 이름을 되뇌어보곤 하였다.

“일어섯!”

“앉아!”

마당에서 도벨을 훈련시키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도벨이 우리 집에 오지 전의 아버지 모습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사업체가 부도가 나면서 서울에 살던 우리 집은 지방의 소읍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예고 없는 갑작스런 이사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당시에는 잘 몰랐다. 다만 내가 느낀 변화라는 것은 한 학년이 열다섯 학급이었던 서울의 초등학교에서 한 학년이 네 학급뿐인 초등학교로 전학을 왔다는 것과 아버지가 더 이상 출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이사 온 후로, 아버지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지나칠 정도로 집안에서만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나 고모 집에 갔던 아버지가 도벨을 데려오면서부터 아버지는 달라졌다. 대부분의 시간을 도벨과 함께 하였다. 마당에서 주로 도벨을 훈련시켰고 때때로 도벨을 데리고 동네 이곳저곳을 누비기 시작했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 나는 주방에서 아침식사 준비를 하는 어머니와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에서 도벨을 훈련시키던 아버지는 도벨에게 구충제를 먹이고 있었다. 내가 도벨의 눈치를 보며 화장실로 재빠르게 뛰어 들어간 후에, 어머니는 화장실을 갈 때마다 무서워하는 나를 생각해서 팔짱을 끼고 아버지에게 한마디 했다.

“영호 아버지, 글쎄 도벨 집 좀 옮기라니까!”

“뭐?”

“영호가 화장실 가기 무서워하잖아요!”

“괜찮테도 그러네.”

“그리고 영호, 학교 대표로 과학경진대회에 나가게 되었대요.”

아버지는 알약을 도벨의 입 속으로 던져넣고 도벨의 입을 닫아 힘껏 잡고 있던 중이었다.

“뭐?…그래서?”

“과학상자 사야 된대요.”

“돈이 어딨어?”

“대회 나가기 전에 사서 만들기 연습을 해야 한대요.”

도벨은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려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구충제를 삼킨 후에, 아버지가 잡았던 도벨의 입을 놓자, 화장실을 나오던 나에게 도벨이 펄쩍 뛰어올랐다. 놀란 나는 필사적으로 뛰어 나왔다.

“녀석, 겁은 많아가지고!”

“애니까, 무섭워하지. 그러니까 도벨 집 좀 옮기라니까!”

어머니 뒤로 재빨리 숨자, 어머니는 겁먹은 나를 변호했다.

“너도 임마, 과학 대횐지 뭔지 할 생각하지 말고 다른 애들처럼 밖에 나가 뛰어 놀아, 책 본다고 맨날 집 안에서만 지내니 골골하지!”

아버지는 과학상자를 사주지 않을 것이다. 양부니까, 아버지가 양부라고 말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엄격했다. 엄격함은 나를 점점 더 왜소하고 나약하게 만들었고 급기야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소통이 불가한 높은 벽이 생겨져 버렸다.

9시 저녁뉴스를 보면서 아버지는 늘 한국 정치를 걱정하고 정치인들의 부도덕한 모습을 비난했다. 또한 경제에 관한 뉴스가 나올 때마다 사회정의에 대해 역설했다. 특히 재벌기업들의 부도덕한 모습을 맹렬히 비난했다. 그것은 아버지가 중소기업을 운영하면서 늘상 느껴야만 했던 H전자와의 갑과 을에 대한 불합리한 관계에서 오는 불만의 토로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정의에 대해 잘 아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비겁했다. 자신의 사업체가 부도가 나자 빚쟁이들의 빚 독촉을 피해 우리는 밤에 몰래 이사를 해야만 했다. 결국 아버지는 세상 밖으로 도피해 버렸다. 도피처에서 아버지는 한동안 우울하고 지루한 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도벨이 우리 집에 오기 전까지.

도벨의 집은 마당 왼쪽 편에 있는 화장실 앞이다. 원래는 바둑이가 묶여있던 곳인데 세달 전에 도벨이 우리 집에 오면서 사랑을 독차지하던 바둑이는 뒷마당으로 밀려났다. 사람 그림자가 뜸한 뒷마당에서 당분간 바둑이의 짖는 소리가 처량하게 들렸다. 그래서 방과 후에 집에 오면 뒷마당에서 바둑이와 놀아주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되었다.

나에게는 도베르만처럼 무서운 개가 아닌 스누피나 플루토와 같은 친구가 필요했다. 한번은 내가 아버지 몰래 바둑이의 목줄을 풀어 주었다. 바둑이는 신이 나 대문을 나가서 동네 곳곳을 쏘다녔다. 나는 바둑이를 좇았지만 바둑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대문 앞에서 한참을 기다렸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가 바둑이를 찾아 나섰고 한참 후에 바둑이는 목줄에 매어져 끌려왔다. 바둑이는 아버지에게 발로 몇 차례 걷어차인 뒤 물을 마실 수 있었다. 혀를 내밀고 헐떡거리는 바둑이는 오랜만에 느낀 자유 때문인지 들뜬 모습이었다.

어쩌면 바둑이는 자유를 찾아 가출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 집을 벗어나면 바둑이는 스누피처럼 나랑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걸을 것이다. 우리가 갈 곳은 딱히 없지만 아마도 스위스일 것이다. 중립국이나 적십자 본부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얼마 전에 본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서 알프스를 넘는 트랩 대령과 마리아와 아이들의 모습은 자유로워 보였다.

“인간과 함께 산다는 건 힘들고 괴로운 일이야.”

“왜? 개는 그래도 인간들이 먹을 걸 꽁짜로 주잖아.”

“넌 인간이니까 몰라. 배부른 돼지보다 난 소크라테스가 되기를 원한다고!”

“일을 하지 않아도 너희들은 꼬리만 잘 흔들면 먹을 게 생기는데도?”

“도벨같은 권력의 하수인들은 배부른 돼지를 선택하겠지. 주인이 뼈다귀 한두 개 던져주면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니까.”

“도벨은 나도 싫어. 하지만 바둑이 너처럼 착한 개는 좋아. 그래서 난 개를 아직까진 좋아하나봐.”

“그리고 개라는 말이 얼마나 안 좋은 말인지 아니?”

“그래?”

“개떡같다느니, 개기름, 개차반 정도는 참는다고 하더라도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 이런 말은 정말 싫어.”

“…”

“아주 먼 옛날부터 동고동락 했으면서도 개를 똥같이 보는 인간들이 어떨 때는 ‘개는 참 충직하다’고 말하기도 해. 인간 자신들 편한 대로 개는 똥이 됐다가 친구가 됐다가 하는 거야. 그러니 인간은 얼마나 이기적이야.”

나와 바둑이는 이러한 진지한 얘기를 나누면서 알프스 산맥을 오르고 있을 때였다. 도벨의 짖는 소리가 무섭게 들렸다. 나와 바둑이는 놀라서 몸을 움추렸다.

“영호야, 도벨 물 좀 떠다 줘라!”

아버지가 나를 찾았다. 도벨에게 물을 떠다 줘야 하는 이유로 나와 바둑이는 알프스 산맥을 넘지 못했다. 바둑이는 알프스 산맥을 넘지 못하고 불행하게도, 다시 뒷마당 그늘진 곳에 혼자 묶여있어야만 했다.

바둑이나 나의 이런 박해와는 반대로 도벨은 더욱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도벨 때문에 동네에서 유명한 집이 되었다. 그 당시 바둑이나 해피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잡견이 대부분인 동네에 이국적으로 생긴 개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며 동네 사람들이 도벨을 구경한다고 틈틈이 우리 집을 방문하였다.

“영호 아버지, 이게 뭔 개래여!”

“이게 물 건너 온 독일산 도베르만이라는 개 아닙니까?”

“도베…르만”

“왜 영화에서 보면 경비견으로 나오는 그런 개 있잖아요? ”

“맞아, 그러고 보니 영화같은 데서 본 것 같네, 그럼 비싸겠네, 그려.”

“그럼요 굉장히 비싼 놈이죠. 헤헤.”

“고놈 새까만 것이 성질 고약하게 생겼네.”

아버지는 도벨 때문에 받게 된 동네 사람들의 주목에 적지 않게 목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이렇게 힘이 들어간 어깨도 간혹 난감한 질문에 기운이 빠지기도 했다.

“영호 아버지, 그럼 이 개 머시냐, 족보같은 것도 있겠네?”

“그려, 물 건너온 비싼 개면 족보가 있어야지, 암.”

“네…원래 족보가 있었는데, 거시기…잃어…….”

아버지는 족보를 보여줄 수는 없어도 자신의 도베르만이 혈통있는 훌륭한 개라는 점을 침을 튀기며 여러 번 강조했다. 동네 사람들도 아버지의 주장에 굳이 이의를 제기할만한 이유가 없었기에 도벨은 혈통있는 명견으로 잠정적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던 중에 도벨이 혈통있는 명견이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되는 계기가 생겼다. 동네에서 절도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도 두 번이나 인근 집들에서 귀중품이 도난당했다. 사건 이후 경찰이 와서 탐문조사를 했지만 별 성과는 없었다. 그러던 중에 세 번째 도난사건이 우리 옆집에서 벌어졌다. 동네 골목은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시끄러워졌고 그 속에 아버지도 끼여 있었다.

“도대체 어느 늠이 이 지랄을 하는 겨?”

“대체 별 일 다 보겠네.”

“애들 돼지저금통까지 털고 아주 지 안방마냥 라면까지 끓여 퍼먹고 갔더라니까요, 글쎄.”

“분명 이 동네 사는 놈인디, 이런 놈은 잡아야지. 맨날 불안해서 죽겄네.”

잇따른 절도로 범인은 동네 사정을 잘 아는 주민 중에 한 명이라는 것이 몇몇 사람들의 잠정적인 결론이었다. 경찰을 다시 불러서 동네 전체를 다 뒤져서라도 당장 범인을 잡아내자고 아우성이었다.

“아이고, 경찰이 와 봤자여, 즈번에도 광민이네 털렸을 때도 경찰이 와서 모, 할 일이 없더만.”

“맞어. 금붙이 없어져도 경찰이 이곳저곳 얼굴만 디밀고 모 해결을 한게 있간디!”

“차라리 김 씨네 도베르가 낫겠구만.”

연이은 절도가 있은 후에 경찰이 와서도 아무런 해결이 되지 않은 답답한 상황에서 누군가 아버지의 도벨을 얘기했다. 그때 아버지는 동네에서 도베르만이라는 이름있는 견종을 소유하고 있다는 자부심에 한껏 심취해 있었다. 더구나 경비견으로서도 손색이 없을 뿐만 아니라 범죄 수색에도 월등한 능력이 있다고 자랑해온 바가 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흥미로운 도전에 불과했지만 아버지 입장에서는 자신의 명견의 존재를 이 동네에서 확실히 부각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겼던 것 같다.

“못할 것도 없지만서도 우리 도벨이가 범인을 추적하려면 뭔가 범인의 체취가 있는 물건이 있어야 되는데, 흠.”

“장갑이 있긴 있는대요. 라면 끓여 먹고 목장갑을 놓고 간 게…….”

목에 잔뜩 힘이 들어간 아버지의 물음에 옆집 주인 최 씨가 미덥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렇게 아버지의 흥미로운 도전은 시작됐다. 범인이 동네 주민 중에 한 명이니 재범의 막기 위해서라도 꼭 잡아야 된다는 사건 현장 분위기에 편승해서 아버지도 잡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바람에 가능한 도전처럼 보였다. 도벨을 목줄로 연결하고 자신도 빨간 색 코팅 장갑을 끼고 범죄 현장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개선장군처럼 위풍당당하기까지 했다.

옆집 주인이 내미는 장갑에서 범인의 체취를 도벨에게 맡게 하고 아버지는 도벨이 이끄는 대로 범인의 향방을 물색해 나갔다. 그 뒤로 옆집주인과 동네 어른 몇 명이 따라 붙었고 이어 나를 비롯한 동네 꼬맹이들까지 합세해서 행진의 길이가 제법 되었다. 게다가 행진해 나가면서 동네 이곳저곳에서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까지 눈덩이처럼 더해져서 행진은 장황한 모양세가 되었다. 심지어 영문 모르는 지나가는 행인도 관심을 갖고 한동안 따라오기도 했다.

이 긴 행진의 첫 번째 도착지는 37번지였다. 길에서 냄새를 맡으며 범인의 체취를 추적하던 도벨이 갑자기 37번지에서 멈춰 짖어대기 시작했다. 도벨의 범인 지목에 사람들은 웅성되기 시작했다.

“여기는 홍 씨 아저씨넨데.”

“아주머니는 일 나가고 안 계실거고.”

도벨의 범인 지목에 아버지조차도 도벨의 목줄을 힘껏 잡아 끌며 난감해 하였다. 37번지의 홍 씨 아저씨는 하체가 마비되어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도벨을 37번지 대문에서 멀찍이 끌고 나와서 진정시키고 도벨에게 다시 범인의 장갑 체취를 맡게 하였다. 이렇게 행진은 다시 시작되었다. 동네 길 이곳저곳을 뒤지던 도벨은 다시 범인의 체취를 맡았는지 아버지가 잡고 있는 목줄을 팽팽히 잡아끌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걸음이 빨라졌고 뒤에 따르던 많은 추종자들 역시 흥미진진한 얼굴로 걸음이 빨라졌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긴장감을 잡아끌며 도벨이 도착한 곳은 37번지에서 백 미터 정도 떨어져있는 19번지였다. 도벨은 집 대문 근처에서 서성이며 안절부절 못 하였다.

“아니, 이 집은 며칠 전에 도둑 맞은 양 씨네잖여.”

뒤따르던 많은 추종자를 향해 돌아보는 아버지의 얼굴이 어색한 웃음으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이 노무 개새끼는 남의 집 앞에서 변을 보고 지랄이여.”

아버지와 추종자들이 잠깐 얘기를 하는 사이에 도벨은 19번지 대문 앞에 변을 보고야 말았다. 양 씨 아저씨가 나오면서 도벨의 비행을 목격하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도벨에게 집중되었다. 도벨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굵은 변을 중력이 이끄는 방향으로 힘차게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 사람들의 이목이 도벨에게 집중되자 난감한 것은 아버지였다. 결국 아버지의 추종자들은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고 아버지와 도벨, 그리고 나와 같은 꼬맹이들만이 남았다. 아버지는 다시 도벨의 목줄을 잡아끌어 범인의 장갑을 도벨에게 내밀었다. 도벨은 아직도 변의를 느끼는지 아버지가 내미는 장갑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아버지가 도벨의 목줄을 거세게 잡아 당겼고 도벨은 엉거주춤한 자세를 고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금 아버지의 추적은 시작되었지만 초라한 행진은 얼마가지 못하였다. 초여름이긴 하지만 정오가 지나면서 햇빛이 드는 양지가 덥다고 느껴질 무렵, 그나마 따라다니던 꼬맹이들도 관심이 시들해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초여름치고는 무덥게 느껴지는 동네 길에 아버지와 도벨, 나만 남았다.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찌그러진 음료수 깡통을 이리저리 발로 차고 있던 중이었다. 찌그러진 음료수 깡통이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이 눔의 개새끼!”

깡통이 내는 요란한 소리 사이로 아버지의 거친 욕설이 들린 것도 같았다. 아버지의 초라한 뒤를 따르던 나는 도벨과 아버지의 도전이 실패로 끝난 것에 기분이 좋았다. 화난 아버지는 도벨을 집으로 거칠게 끌고 갔고 나는 깡통이 더 이상 차기 어려울 정도로 납작하게 찌그러질 때까지 깡통을 차며 한참을 놀았다. 아버지는 도벨에게 그날 저녁밥을 주지 않았고 나는 뒷마당에서 바둑이에게 새우깡으로 점프 훈련을 시키며 놀았다. 그렇지만 이런 잠깐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도벨의 실패 이후 아버지의 화풀이는 도벨뿐만이 아니라 바둑이에게까지 미쳤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나는 바둑이의 비명소리를 싣고 골목길을 빠져나오던 개장수의 오토바이와 마주쳤다. 철망 안의 바둑이를 확인한 나는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바둑이는 나를 보고 더욱 크게 울부짖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철망 사이로 주둥이를 내밀고 목이 터질 듯이 울부짖는 바둑이의 마지막 길을 오래도록 지켜봐 주는 것 외에는 별도리가 없었다. 대문 앞에서 아버지는 만원짜리 지폐 몇 장을 침을 묻혀 세고 있었다. 나는 지폐 몇 장으로 바뀐 바둑이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했다.

바둑이는 라이카처럼 떠났다. 구소련 스푸트니크 호가 우주로 발사될 때 라이카라는 멍멍이가 자신의 의지가 아닌 인간의 의지로 우주선에 태워졌던 것처럼 말이다. 바둑이도 개장수 철망에 태워져서 어디론가 멀리 떠났다. 난 바둑이가 우주멍멍이와 조우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우주에서 떠돌던 외로운 라이카에게 바둑이는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나에게 좋은 친구였듯이.

바둑이가 우주 미아가 된 이후에도 오래도록 오토바이의 엔진소리와 바둑이의 울부짖는 비명소리가 뒤엉켜 머리 속에서 어지럽게 공명되었다. 나는 더 이상 뒷마당에 가지 않았다.

나는 도벨을 독살하기로 결심했다. 팔려간 바둑이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도벨을 죽이기에 가장 좋은 수단은 쥐약이었다. 쥐 잡는 날이 다가오면 쥐약을 이장이 직접 집집마다 나누어 주었다. 우리 집에도 그동안 받아놓고 미처 쓰지 못한 쥐약 몇 개가 현관 신발장 위에 늘 놓여 있었다. 조그만 종이 박스에는 쥐가 혐오스럽게 그려져 있었지만 쥐 그림보다도 빨간 색깔의 색감이 더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쥐 잡는 날에 동네 전체에서 쥐약을 놓은 이후에는 목줄이 풀어진 개나 들고양이 한두 마리 정도 죽는 일이 흔했다. 그 때문에 도벨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쥐약이었다. 혐오스러운 빨간 쥐약으로 쥐를 죽이는 것이나 도벨을 죽이는 것이나 나에게는 마찬가지 경우였다.

아버지가 도벨을 앞장 세워 조깅을 나간 사이에 쥐약을 묻힌 빵조각을 화단 가장자리에 던져두었다. 화단에는 붓꽃과 맨드라미가 촘촘하게 올라와 있었기 때문에 은폐가 잘 되었다. 하지만 도벨의 코라면 충분히 찾아낼 것이다.

그 날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생각나는 것이라곤 도벨과 빵조각뿐이었다. ‘도벨은 지금쯤 빵조각을 먹었겠지? … 먹었다면 죽었을까? …어떻게 죽었을까? … 그냥 죽었을까? … 죽지 않았다면! … 먹지도 않았다면! … 혹시라도 아버지가 먼저 발견했다면! … 죽었을 거야, 죽었을 거야!’ 학교 수업 시간 내내 머리 속은 복잡했다. 검은 도벨이 짖고 있었고 빵조각들이 날아다녔다.

도벨은 이미 나의 마음속에서 죽어 있었다. 나의 치밀한 계획대로 라면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 도벨은 혀를 내밀고 마당 한 구석에 쓰러져 있을 것이고 아버지는 그 옆에 무릎 꿇고 명 짧은 충견의 비운을 슬퍼해 하고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도벨의 죽음을 나에게 알릴 때, 나의 얼굴은 놀라움 이상의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위장을 해야 한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난 10분 간의, 짧은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로 가서 윗모서리가 깨진 거울 앞에서 놀라움과 충격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어 보았다. 얼룩진 거울 속에 나의 모습이 보였다. 비누와 때로 얼룩진 거울 속에 환희를 슬픔으로 위장하는 나의 모습이 약간은 괴기스럽기까지 하였다. 그렇게 나의 마음속에서는 도벨의 검은 털과 검은 눈동자는 점점 희미하게 바래져 가고 있었다. 집 대문 앞에 도착할 때쯤, 도벨을 마당 한 구석에 묻을까, 뒷산에 멀찌감치 묻을까를 고민하며 첫 삽을 뜨고 있는 나의 머리 속은 잔인한 기대감으로 어지럽기까지 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집 안은 조용했다. 죽음이 스쳐간 곳은 정적이 있게 마련. 난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일단 오른쪽 마당에 시선이 닿는 곳까지 도벨은 보이지 않았다. 회색빛의 마당과 담 주위로 푸른 풀빛이 어우러진 화단에 도벨의 검은 그림자는 없었다. 검은 비닐 봉지조차도 찾을 수 없지 않은가.

그러나 도벨 무덤의 첫 삽은 내가 뜨리라는 바람은 무너졌다. 도벨은 살아있었다. 내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는 분명 개소리였다. 장독대 밑에 초여름의 뜨거워진 햇볕을 피해서 낮잠을 자다 깬 것은 살아 있는 도벨이었다. 난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현관 계단 위로 튕겨져 올라갔다. 몇 번 짖어대다가 힐끔 날 쳐다본 도벨은 크게 하품을 하고 입맛을 다시며 시원한 콘크리트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주인의 변변치 못한 꼬맹이가 자신과 놀아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덜 다물어진 검은 입 밖으로 허연 송곳니가 싱싱하게 빛났다. 그 녀석은 여느 때와 별반 다른 모습은 없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화장실 옆이 아니라 그늘이 드는 장독대 밑으로 묶인 위치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내 머리 속에 견고하게 세워졌던 잔인한 계획은 송두리째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 사그라져 버렸다. 난 허겁지겁 집 안으로 쓰러지듯 빨려 들어갔다.

“아이구, 영호 왔구나!”

낯익은 목소리였다. 보이는 것이 없었다. 초여름 오후의 눈부신 태양으로 잠깐 눈이 멀었다. 정확히 말하면 실외의 밝음과 실내의 어두움의 차이보다도 도벨이 건재하다는 충격으로 시력이 아닌 정신이 약간 혼미했던 것 같다.

“영호야, 고모하고 고모부님께 인사해야지!.”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눈앞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거실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고모 일가가 둥글게 자리잡고 있었다. 어정쩡한 자세로 인사하는 날보고 웃는 사람들은 모두 싱겁다는 듯이 웃었다. 난 나의 유치한 독살 계획이 들통난 것같은 두려움으로 나의 방으로 몸을 급히 숨겼다. 웃음 소리가 방안까지 따라들어왔다. 나의 독살 계획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한 비웃음처럼 들렸다.

조금 더 뜨거워진 햇볕 속에서 난 다급히 증거물을 찾아 없애야만 했다. 아침에 화단 가장자리에 던져둔 빵조각은 말라서 그대로 있었다. 다만 그 위에 버글거리는 개미가 집을 짓고 있었다.

“요즘엔 도벨이 사람 안 무나?”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온 고모였다.

“네? … 네.”

“그래, 도벨이 사람됐네, 아니 개 됐네 … 호호호.”

“사람을 물다뇨?

“거시기, 그 전에 우리 옆집에서 키울 때, 그 집 애를 물어가지고 개 주인이 죽인다는 것을 네 애비가 가져가겠다고 해서….”

아버지한테서 도벨이 우리 집에 어떻게 오게 된 것인지는 정확히 듣지 못했다. 다만 고모집에 갔던 아버지가, 도벨이 밥을 많이 먹고 똥을 아무데나 싼다는 이유로 버림을 받은 것을 가져오게 되었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고모를 본 도벨이 컹컹 짖으며 펄쩍펄쩍 뛰었다. 그럴 때마다 도벨을 붙잡고 있는 쇠사슬이 무겁게 철렁거렸다.

“아이구, 무서워리! 원 … 저런 극성시런 개가 모가 좋다고.”

도벨이 날뛰는 와중에 스테인리스 그릇을 밟으면서 그릇에 담겨있던 물이 엎질러졌다. 물줄기가 흘러가는 것을 보며 나는 독살 계획을 수정했다. 좀 더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다음 날 아침, 나는 마당에서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줄넘기를 하는 동안 나는 줄곧 스테인리스 그릇의 고요한 은색을 한참동안 응시하고 있었다. 스테인리스 그릇 안의 물은 햇빛을 받아 싱싱하게 반짝였다. 나는 숨이 심하게 차올랐지만 줄넘기를 멈추지 않았다. 줄넘기를 멈추면 마음이 더욱 초조해질 것 같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도벨을 데리고 아침운동을 하러 나갔다. 난 도벨의 물그릇에 이미 쥐약 한 병을 고스란히 부어 넣었다.

아침밥을 먹고 현관을 나왔을 때, 도벨은 자신의 집 앞에 있는 물 그릇에서 허겁지겁 물을 먹고 있었다. 난 도벨이 물 먹는 모습을 조금 바라보다가 대문의 손잡이를 힘차게 열며 집 밖으로 나왔다. 대문 손잡이를 잡은 손에는 땀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서는 한참 동안을 동네를 배회하듯이 떠돌아 다녔다.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동네 사람들은 큰 구경거리라도 있는지 우리 집 대문 앞에 모여 있었다. 사람들 틈으로 내 작은 머리을 우겨넣다시피 집어 넣었다. 그 때 아버지는 도벨의 물 그릇에 빨래비누거품을 풀고 있는 중이었다. 도벨은 화단 속에서 쉴 새없이 오가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도벨의 눈에는 광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도베르…도베르…이리온, 약 먹고 정신 차리자. 이 놈아야!”

아버지는 빨래 비누 거품을 풀어 만든 물이 담긴 도벨의 스테인리스 물그릇을 들고 있었다.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에도 도벨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적의를 드러낼 뿐, 아버지의 호의를 순순히 받아들일 것 같지 않았다.

“영호 아버지, 그러다 물리면 큰 일 치르는 구먼!”

“맞아요. 차리리 몽둥이로 때려잡는 게 낫겠어요!”

구경하던 동네 사람들이 아버지를 만류하였지만 아버지는 단호했다. 도벨을 잡아서 기어코 해독시킬 물을 먹일 생각이었다. 그 동안 아버지의 말이면 유달리 잘 듣던 도벨이 아니었는가.

“저번에도 쥐약 먹은 쥐 잡아먹고 홍 씨 발발이도 시름시름 앓아서 팔았지 않았는감.”

“그래서 개는 풀어 기르면 안 된다니까, 그래.”

“허…허, 저러다 큰일 나려고…….”

아버지는 이리저리 피하는 도벨과 숨바꼭질하듯 마당 이곳저곳의 화초와 나무 사이로 잡고 도망치기를 반복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지쳤고 도벨도 도벨 나름대로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도벨은 눈에 독기를 잔뜩 품은 눈의 광채도 더욱 뚜렷해졌다. 도벨과 한참동안 숨바꼭질을 한 끝에 도벨은 구석에 몰렸고 아버지는 도벨의 목걸이 끈을 잡았다. 도벨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완강히 저항하였다.

“아이고, 큰일 났구먼.”

아버지가 비눗물을 도벨의 입에 강제로 넣으려고 하는 순간, 도벨은 아버지의 팔을 물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아버지의 팔을 물고 힘있게 도리질을 하는 도벨의 눈은 시퍼런 광채로 섬뜩했다. 아버지는 힘없게 쓰러졌다. 비눗물이 담긴 스테인리스 그릇은 마당에 나뒹굴렀다. 도벨이 물고 있던 아버지의 팔을 풀고 물러나자, 도벨의 눈치를 보던 동네 사람들이 아버지를 현관 쪽으로 재빠르게 옮겼다. 그러자 도벨은 극에 달한 광기를 퍼붓듯이 화초 사이를 이리저리 헤치고 돌아 다녔다. 도벨은 극도의 혼란 속에서 출구를 찾았다. 여전히 대문을 막고 있던 사람들을 향해 달려들었고 사람들은 허겁지겁 대문 밖으로 피했다. 도벨은 대문을 뛰쳐나왔다. 대문 밖에 놀란 눈으로 현장을 목격하던 몇몇 아저씨와 아줌마 틈에 나도 있었다. 그 때 도벨의 눈을 잠깐 봤을 때, 시퍼런 빛이 뿜어져 나왔다. 도벨은 사람들을 피해 큰 길 쪽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도벨은 미친 듯이 달려 나갔다.

119구급차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싣고 골목을 다급하게 빠져나가고 한참 후에 도벨이 손수레에 실려서 왔다. 동네 앞 도로에서 발견됐다. 도로가에 쓰러져 있는 도벨을 동네 아저씨가 손수레에 실어 왔다. 차에 치여 뒷다리 쪽의 몸이 많이 뒤틀려 있었다. 혀는 입 밖으로 힘없이 늘어뜨리고 있었다. 입 주위에는 거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을 오래도록 감고 있다가 간혹 눈을 떴다. 난 아저씨들 틈에서 도벨의 얼굴을 확인했다. 집에 남은 유일한 유가족으로 내 얼굴은 다소 상기 되어 있었다. 기쁜 것인지, 슬픈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 기분이었다. 도벨의 얼굴에는 이미 날카로움이나 야수같은 광폭함이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도벨이 오래 감고 있던 눈을 떴을 때, 내 눈과 마주쳤다. 날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주위에 서 있는 많은 구경꾼의 한 사람쯤으로 보는 것 같았다. 도벨은 힘겨운 듯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오래도록 눈을 뜨지 않았다.

도벨에게 물린 이후에 내가 아버지의 얼굴을 본 것은 3일 뒤에 병실에서였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그 전의 우악스러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입술은 바싹 말라 있었다. 오랫동안 병실에 누워 지낸 것같은 환자의 얼굴이었다. 눈동자는 천장을 향해 있었다. 아니, 천장을 관통해서 더 멀리 있는 무언가를 응시하는 것 같았다. 병실 침대 옆에 서있는 나를 알아보았는지 아버지의 메마른 입술이 달싹이며 무언가 얘기하려 했다. 하지만 난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병실을 나와야만 했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공수병이라는 얘기를 나중에 어머니한테 들었다.

집은 평화스러워졌다. 마당은 다시 나의 차지가 되었다. 어머니가 도벨의 개집과 스테인리스 밥그릇을 없애버린 것을 제외하면 마당은 도벨이 아버지를 물었을 때, 사고 났던 모습 그대로였다. 화단을 가득 채웠던 붓꽃과 맨드라미들은 쓰러져서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무엇인가 조금 달라진 마당에서 여름의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나는 오래도록 줄넘기를 했다.

며칠 후, 어머니는 나에게 아버지의 차 트렁크에 있었다며 과학상자 5호를 건네주었다. 마당에서 줄넘기를 하던 나는 과학상자를 건네 받고 마당에서 한참동안 서 있었다. 과학상자의 묵직한 무게도 느끼지 못한 채.

 

 

 

“똘이야!”

수술이 끝나고 마취에서 깨어난 치와와는 혀를 입 밖으로 힘없이 늘어뜨리고 있었다. 입 주위에 거품이 흘러내렸다. 움직이지 못한 채 약간의 신음소리만 내뱉었다. 견주가 개 옆에서 안타까운 표정으로 개의 애칭을 불렀지만 녀석은 견주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눈을 오래도록 감고 있다가 간혹 눈을 떴다. 녀석은 힘겨운 듯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오래도록 눈을 뜨지 않았다.

“수술 부위 소독 후 외상연고 발라주시고요. 수술 부위는 핥지 못하게 일주일 정도는 꼭 넥카라를 착용해 주셔야 됩니다.”

그녀는 집에서 애완견을 극진히 돌볼 것이다. 미안한 감정에 사료도 듬뿍 줄 것이다. 애완견이 사료를 잘 먹지 않으면 맛있는 간식으로 애완견의 상처를 보상해 주려 할 것이다. 활기 잃은 애완견을 위해 눈물을 흘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거세된 녀석에게는 아무런 보상이 되지는 않는다. 개는 사람이 아니다. 개는 개일 뿐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그 누구도 친아들을 중성화 수술을 시키지는 않는다.

진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개는 대단히 성공한 존재이다. 야생으로부터 인간영역으로 들어와 정착하여 지금까지도 번성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개의 진화의 역사에서 가장 치명적인 결함은 현대, 도시, 아파트라는 주거환경에 거주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애완견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환경에 자신의 영역 표시를 하게 두지는 않는다. 개는 현대 도시에서 인간과 같이 살려면 거세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필연적인 운명인 것이다. 인간이 필연적으로 파시스트가 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수술 후 개의 모습은 수술 전의 개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개에게는 더 이상의 생존 본능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수술한 개의 얼굴을 보면 도벨과 아버지의 얼굴이 오버랩 된다. 입 주위에 거품을 물고 차에 치여 죽어가는 도벨과 공수병으로 병원에 누워있던 아버지의 메마른 얼굴이. 아버지는 그때 메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난 과학 상자를 뜯지 않았다. 아버지의 유품처럼 남겨진 과학 상자는 한 번도 뜯기지 않은 채, 다락방에 있었다. 그 후 고물상 손수레로 옮겨지는 것을 고등학생이 된 나는 목격했다.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고물상 손수레를 바라보며 난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내 뇌리 속에서 사라져 주길 바랐다. 그 골목길로 바둑이가 떠나고 도벨이 떠나고 아버지마저도 진정 떠나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 우울한 골목길로 많은 계절이 오고 갔지만 발등으로 걷어찬 퉁툭한 돌멩이마냥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내 곁을 좀처럼 떠나질 않았다.

 

배성환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과 졸업.경기도 신인문학상 소설부문 당선.

<젊은시> 동인. 계간 《서울문학인》소설부문 당선.

계간 『문학과 의식』 201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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