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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봄날 /이재백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2. 24. 17:08

 

따뜻한 봄날

이재백

 

 

적막강산이란 게 따로 없는 모양이다. 내가 사는 이 골짝을 두고 한 말이 분명한 모양이다. 예부터 골짝나라 사람들이라고 심심할 적마다 농담조로 조롱되기 일쑤인 이 곳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이런 생각에 잠기게 되면 곧장 의기소침해진다. 한 마디로 맥조차 풀려버릴 지경이다. 지질이도 못난 사람이거나 쓸데없는 일에 전신을 몰두하는 정신병자로 단정해버릴 수 있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정상적이고 가장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나를 그렇게만 치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흔한 자동차 구경조차 하루에 몇 번 정도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라면 험한 오지奧地에 산다는 이유가 분명할 것이다. 보슬비가 소리 없이 진득하게 나리는 초봄의 어느 날인가는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마을 앞을 지나는 자동차를 일일이 헤아렸다는 것이다. 의례히 넘겨 집고 마는 허드레 소리로 치부하겠지만 그걸 누군가 반박할 생각은 안 했다. 사실이라고 인정해버린 것이다. 어떤 근거가 있는 건 아니지만 사실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변했지만 중학교는 고사하고 초등학교 하나 없는 면이 이 나라에 또 있으리란 법은 없으니 말이다. 겨우 대여섯 될까 말까한 학생의 머릿수 때문에 유일한 초등학교마저 폐교가 된 지 십년이 지난 터이니 두말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런 빈한한 면에서도 변두리중의 변두리에 위치한 마을이니 어쩌고저쩌고 할 변명거리란 애당초부터 없는 게 당연한 일이다, 마을 앞 고샅길에서 1킬로 이상 나가야 큰 차들이 다닐 수 있는 신작로가 나오니 하루에 세 번씩인가 지나는 군내郡內 버스라도 타려면 미리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은 불평이라는 걸 몰랐다. 옛날에다 비하면 이게 어디냐 싶었다. 광주나 순천 쪽으로 가는 버스라도 타려면 월경재를 넘어 창촌까지 십리 길을 터벅터벅 걷는 걸 생각하면 참으로 다행스런 일로 여겼던 것이다.

“나, 이제부터 저 월경재를 안 넘어 갈 거야. 헬리콥터나 타고 가면 모르지만….”

안식구의 밑도 끝도 없는 투정이다.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이 골짝 귀신이 된다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무슨 소리인지 난감할 일이다.

“공자님 말씀이야, 아님 하나님 말씀이야?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는 알 수 있어도 당신 말은 도무지 감조차 못 잡겠는 걸.”

“역시 당신 감정은 알아 모셔야 된다니까. 무슨 말인지 짐작조차 못하니.”

이런 식으로 무조건 밀어부처 가슴 한 쪽을 도려내고야 말겠다는 악습이 도진 게 분명했다. 그렇지만 이유는 오리무중이다. 지피는 게 없다. 젊은 시절에도 그랬지만 반백이 되어서도 같은 소리를 되씹는 데는 진저리조차 쳐지는 것이다.

“모르니까 태평성세지. 안 그래? 여보.”

그렇지 않아도 찜찜하기 그지없는데, 또 다른 혹조차 엉켜붙은 형상이었다.

어제는 진종일 배 밭에서 농약을 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놈의 농사라는 건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이론이나 경험이 필요 없는 거였다. 너무나 간단하여 한 눈에 죄다 들어와 일사천리 형식으로 밀어대면 간단하게 끝장날 것 같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잘 나가다가도 삐끗하여 허공으로 빠져버리기 일쑤이니.

사월중순만 되면 우리 마을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해버린다. 마을을 둘러싼 배 밭들이 한 폭의 풍경화로 변한다. 꽃 천지가 따로 없다. 은은한 배꽃 향내. 흰 색깔 속에 감춰진 순수함의 극치들. 이울어 떨어지는 꽃이파리들과 리듬을 함께 하는 미풍들.

사진기를 둘러맨 한량들이, 화구를 둘러맨 아마추어 화가들의 발길이 멈추질 않았다. 처음에는 인적조차 드문 이 골짝까지 찾아온 데 대해 고마움이 앞섰으나 해가 갈수록 그런 느낌은 엷은 색으로 변했다. 생명과 아름다움의 상징이던 배꽃은 어느 날인가 그 의미를 거짓말처럼 사그리 걷어내고 말았다. 그것은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그 꽃들이 지고 난 뒤 토실한 열매들이 나타나면 생명에 대한 애착이 앞섰지만 잠시였다. 일주일 간격으로 농약을 뿌려야 한다. 중간에 빗방울이라도 흩날리면 다시금 농약을 뿌려야 하는 것이다. 조금만 방관하면 과일 전체가 병에 걸려 일년 농사가 도래미타불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일손마저 엄청나게 부족하지. 매년 같은 과정을 되풀이 하면서 지쳐가는 육체의 고통은 사물을 보는 시각마저 변화시켰다.

자연에로의 귀환이란 말 때문인지 대여섯 평도 못 돼는 밭두렁에 무슨 주말농장이란 간판이 유행가 가사처럼 발길이 닿는 곳마다 널려 퍼져 있어 농사꾼들의 자존심을 짓밟는걸 아무도 모른다. 주말농장,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진종일 밤낮없이 징징대도 일감이 넘쳐난 나머지 정신조차 못차리는 데 주말이라니? 농사일이 그런 정도로 헐거운 것이라면 농사짓는다고 누가 불평할 것인가? 그건 신선놀음이 아니겠는가? 신에게 점지 받은 행운아들에게 나려진 축복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농, 자가 뭔지도 모르는 주제에 농장이라는, 거대한 간판을 앞세운 데는 조소 대신 모멸감마저 앞서는 것이다. 책 몇 권 읽었다고 자칭 학자라고 으스대는 꼴이나 별 다름 없는 것이다.

요런, 싸가지 없는 것들. 아무나 농사야? 저건 장난감이 분명한 거야. 농사꾼을 경멸해도 유분수지. 우리 과수원에 와서 하루만이라도 일을 해봐라 해여. 그땐 농, 자만 앞세워도 학을 뗄 녀석들이….

몹시 피곤했다. 전신이 몇 미터 땅 속 깊이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젊었을 적에는 이보다 더한 일을 하고도 멀쩡했는데 나이란 건 속일 수 없는 모양이다. 언제까지 이 일을 되풀이해야 할 것인지 난감하다. 힘들다고 그만둬버리면 뭘 하고 밥을 먹을 건지. 외지로 나간 자식들도 나이를 생각하셔야죠, 어쩌고저쩌고 나불대지만 겉치레에 불과하다.

위로 세 딸들은 말썽 없이 자라 쓸만한 신랑을 만난 것도 대견한 일인데 아들 딸 제대로 낳아 훈김 풍기고 살아가는 게 우리 노부부들에겐 그나마 위안거리다. 사람이 늙어갈수록 자식 힘이 중요한 모양이다. 살아가는 거야 뻔하겠지만 요모조모 마음 써주는 게 고맙기 한량없다. 심심할 적마다 전화를 넣어주고 수다 떨고. 꼬마들의 재롱섞인 반말에 대꾸질하기.

하루의 피로가 그런 일로 말끔히 가시는 모양이다. 아픈 허리가, 아픈 다리가 곧장 어긋날 듯이 엄살을 피우다가도 전화 몇 통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청명한 하늘이 되고 마니. 그럴 때마다 한마디씩 던지는 나의 익살도 마누라를 즐겁게 만드는 것이다.

“약이 따로 없단 말이여. 그 보약, 혼자만 묵지 말고 나도 좀 주구려.”

그렇지만 남들이 보기와는 달리 근심걱정거리가 없는 건 아니다. 서른 살이 다 된 아들놈 때문이다. 아무리 구직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지만 대학을 졸업하고도 이태가 지났지만 변변한 직장을 못 잡고 있으니. 그 놈 문제만 해결되면 만사가 형통일 것 같지만 맘대로 안 되는 게 인생사인 모양이다. 숙명을 거부할 수 없는 게 농사꾼의 타고난 운명임을 아무도 모른다. 가장 가까운 자식들도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역시나 방관자일 뿐이다. 노후대책? 역시, 말 그대로일 뿐이다. 그런 걸 셈할 수 있는 사람이 이 농촌에 몇이나 있단 말인가?

전신이 찌뿌드드하다. 맘 같아선 모든 일을 팽개치고 며칠이고 한가하니 쉬어야 될 것 같다. 그렇지만 그럴 형편이 아니다. 농약 뿌리기를 끝낸 터라서 한가하다 싶었는데 그 우라질놈의 비가 간밤에 또 다시금 내리고 말았으니. 역시나 뒷골 여우라도 돌봐야 할 텐데…. 완전한 배 열매를 만들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햇살이 퍼지면 또다시 농약을 뿌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애써 가꾼 배 밭이 폐허가 되기 십상이다. 이런 사정을 훤하게 꿰뚫으면서도 오금을 박아대는 아내가 서운하여 성깔이라도 부리고 싶었지만 뭔가 지펴오는 게 있어 나는 딴전을 부리고 말았다.

“오늘도 농약을 쳐야 된단 말이여.”

엉뚱하게 날씨 타박을 했다.

“그것도 하느님 탓이요.”

아내의 얼굴에 희뜩한 미소가 번진다.

 

그놈의 체면이라는 게 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뱁새가 황새걸음 따라가려니 된 일이라곤 하나도 없다. 무리의 연속이었다. 자신의 처지에 알맞게 살면 되는 거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안 되니 말이다. 자신의 길을 걷는 게 아니라 때에 따라선 옆 사람이 어느 쪽으로 가는지 곁눈질도 잘 해야 하는 모양이다.

바쁜 와중에서도 주위의 혼인대사까지 챙기려면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다. 다음 주 일요일에 윗마을 누구의 아들이 광주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이장의 방송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가실 분들은 9시까지 마을 회관 앞까지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마을의 뒤쪽이나 앞쪽에선 햇살이 퍼지기가 무섭게 농약들을 뿌리느라 S,S기 엔진소리가 윙윙거렸다. 며칠이 지나면 배 알 속기가 시작될 거고 그 일이 끝나면 숨돌릴 틈도 없이 봉지 씌우기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이 아니라 가도 가도 끝날 줄 모르는 초원의 길이다. 많은 일손들이 필요하지만 그것마저 요원하다. 임기응변식으로 땜질하는 방법뿐이다. 벌써 몇 년째인가. 절망감이 앞서기 때문에 이젠 농사짓는 걸 그만 둘 때라고 투덜대지만 대안이라곤 없는 공염불에 불과한 것이다.

낯선 목소리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것 같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며칠 전이었다.

아내의 동창생이라는 것이었다. 아내가 없어서 출타중이라고 말했지만 믿으려 들지 않았다. 숨겨놓고 전화를 안 바꿔주려는 모양새로 억양조차 변하는 것이었다.

“정말이요?”

“들어오면 전할 게요. 용건을….”

내가 정중하게 대꾸했지만 아내의 동창이란 사내는 뜸을 들여가며 끝까지 미심쩍어 하는 눈치였다. 아내가 동창회에 참석하는 것조차 용인할 수 없는 용졸한 남자로 취급하려는 모양새가 역력했다. 향우회니 동창회니 친목계니 뭐니 하는 모임들의 이름은 천차만별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잡담들로 소일하고 먹고 마시고 노래방에 가서 한 가락씩 뽑아내고. 너무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현상이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이라는 내 생각에 찬물을 끼얹은 꼴이 되었지만 나는 시치밀 뗀 체 정중하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꼭 참석하게 권하겠습니다.”

내 말은 아내의 동창이라는 사내에게 생색내기 용이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몇 년 동안 참석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미안스러움조차 포함시킨 것이었다. 아내의 불참을 내가 사죄한 꼴이나 다름없었다.

아내의 동창생들로부터 동창회에 참석해달라는 전갈이 온건 몇 년 전부터였지만 남의 일이나 된 것처럼 외면하는 바람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아내의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어린 시절의 얼굴들을 확인하고 동심으로 돌아간다는 순수함을 외면하려는 처사가 불만스러웠지만 그걸 아내 탓으로만 여길 수는 없었다. 어느 모임이나 진실은 감춰두고 겉치장이나 자기과시를 위한 전시장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그랬지만 아내 역시 어느 모임에서나 떳떳할 수 없었던 것이다. 농사꾼이라는 어원 자체가 그런 것이었다. 인생 낙오자란 베일을 둘러 쓴 꼴이었다. 게다가 우리가 사는 지형적인 요건이 그 색깔에 더 강열한 색깔을 가미하는 꼴이었다.

인생사란 것도 미미한 물결의 흐름이나 다름없었다. 작은 시냇물은 어디로 향해 흘러가는지 알지 못한다. 자그만 호수로 유입될 수도 있고 큰 강의 흐름에 더부살이를 하다 바다의 일원이 될 수도 있다. 재수 없고 팔자 사나운 사람들, 이런 골짜기로 시집 온다는 자체가 고생바가지를 싸들고 온 셈 아닌가? 꿈 많은 결혼생활이란 게 얼마나 허무한지는 며칠이 안 되어 당장 깨닫게 되는 것이다. 재수 옴붙은 사람들이란 우리 마을로 시집온 아낙네들을 두고 한 말이 틀림없었다. 번화 번지 서울이나 광주는 관두고라도 중소도시의 어디로만 갔어도 이런 고생을 안 하고 살 텐데 말이다. 아낙들의 이런 푸념을 들을 때마다 나는 할 말이 없어지고 만다. 그 흔한 도시의 일원이 못된 주제라니? 이런 한탄이 저절로 나오기 마련이다.

이따금 고향을 찾아온 친구들은 듣기 좋은 말로 너스레마저 떠는 것이다. 자네같이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으니 우리들이 고향을 찾아올 수 있다고. 하지만 이 말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이다. 진실이더라도 받아들이는 쪽은 그게 아니었다. 일종의 비꼼이나 비양이었다.

“못난 사람들을 두고, 괜히 쓸데없는 소리여.”

“아냐….”

진심은 진심으로 통하질 않는 게 원칙이다. 20평짜리, 아니 30평짜리 아파트 값이 얼마에서 얼마만큼 오르고 얼큰히 취한 김에 무심코 내뱉은 말이 가슴에 못질하는 걸 그들은 모른다. 쓸데없이 떠벌리는 일상적인 용어일 뿐이지만. 사람이 사는 집은 똑같은 것이다. 고대광실이던 초가삼간 오두막이던 역시나 집일 뿐이다. 사람이 사는 것이지 돈이 사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몇 억이라니? 사람이 사는 걸까, 아니면 돈이 사는 걸까? 거주지가 돈으로 바뀌는 걸 인간의 역량으로 풀이하다니…. 우스운 말 같지만 그게 현실이니 두말 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지만. 역시 그들의 능력은 대단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부러운 건 사실이다. 그렇다 해서 그들을 존경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주위의 여건이 그렇게 만들어 줬을 뿐이니까.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우드라고.”

이런 일에 고시랑거리는 아내를 단박에 무질렀지만 전혀 틀린 건 아니었다. 시시콜콜한 줄거리야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 귀담아 들을만한 가치조차 없는 것이지만. 결국에는 부동산 투기와 상통되기 마련이다. 다 타고난 운명 아녀? 나는 가끔 이런 말을 풀쑥 던져놓곤 어설픈 웃음을 던지지만 씁쓸한 감정을 숨길 수는 없었다. 어쩜 천하에 둘도 없는 천치라는 게 알맞을는지 모른다. 다들 잘도 가는 서울 행 열차를 못 탔으니 말이다. 호남선 열차를 못 탔으면 경부선 열차라도, 그나마 안 되면 광주로 가는 직행버스에라도 내 운명을 실었다면 이런 결과는 없을 텐데.

흰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는 데도 배 밭에서 농약이나 뿌리고 논두렁의 풀이나 베야 하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물론 이곳 태생이고 조상대대로 물려온 텃밭이니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나와 함께 사는 여자는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이따금 속으로 웅얼거린다. 그것도 하루에 몇 번 씩이나.

“여보, 미난해.”

미안해가 아니라, 빗대는 방언으로 분위기를 슬쩍 변화시키는 술책.

한술 더 떠,

“이쁜, 당신을…….”

아내는 그런 나를 모른다. 일절 내색을 못한 내 성격에도 문제가 있지만 하나마나 한 소리로 된통 맞을 일은 미리 예방하는 내 간사스런 교활함 때문에.

“새삼스럽게 그런걸 따져서 뭣해? 다 팔자소관으로 풀이하더라고.”

목소리조차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콩이야 팥이야 따져봤자 새로운 이야깃거리도 없는 것이다. 천편일률적인 경제시스템이 시골 촌부들의 불평으로 바뀔 리도 없는 것. 평생 못 팔아먹을 땅 아냐? 이렇게 위로할 뿐이다. 여기 땅값이 똥값이지만 한 열배쯤 올랐다고 생각하면 고만 아녀? 아뿔싸, 아내의 심통에 불을 지른 꼴이었다. 반격엔 속수무책이다. 그대로 앉아서 된통으로 당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예쁜 얼굴이 분노라는 색깔로 뒤범벅이는 것이다.

어느 땅에서나 나가는 사람이 있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세월이 지나면 알만한 사람 대신 낯선 얼굴들이 그 땅을 지배해버린다. 이곳으로 들어온 사람들의 운명도 거의 결정되지만 이곳으로부터 나가야 되는 사람들은 새로운 세계를 만남과 동시에 새로운 운명이 기다린다는 이치는 당연한 것이었다.

“이 골짝으로 시집 온 사람들이 액을 메고 왔다면 이 골짝에서 시집간 사람들을 뭐라 할까요?”

엉뚱한 아내의 질문에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여우처럼 잘 준비한 언어만 멋지게 구사하면 된다. 구차스런 동문서답이라는 지혜도 필요 없는 것이다. 살아가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아파트 값이 올랐다고 히히거린 대신 이런 궁상맞은 재미로 히히거리면 햇배가 나오는 가을이 성큼 다가오는 것이다.

 

“여보, 우리도 자동차 좀 수리하지.”

예년과 다름없이 아내에게 동창생 모임이라는 안내장이 또 왔다. 그리고 여기서 저기서 몇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 같으면 동창들에게서 오는 전화라곤 외면하려 기를 썼는데 그게 아니었다. 거부반응이 좀 누그러졌다고 할까. 너무 한다 싶었지만 아내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유일한 아낙이라는 궁색한 꼴을 보이기 싫다는 의지임이 너무나 당연하다. 그 응어리를 풀어줄 방법이라곤 없었다. 아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시골 생활을 당장 접어야 된다는 것도 말이 아니니 말이다. 마침 좋은 소식조차 있었던 터라 전처럼 아내의 눈치만 조심스럽게 살피지 않아도 무방했다. 아들녀석에게서 좋은 소식조차 왔으니 말이다. 알아주는 기업체의 채용고시에 일차 합격이 되었다는 것이다. 히히낙락 거리기엔 이른 감이 있었지만 오랜만에 들리는 좋은 소식이었다.

단돈 일원이라도 아끼려고 발버둥치는 아내의 입에서 자동차를 수리하자는 말이 나오다니 참으로 뜬금없는 일이었다. 카렌스 1인가 뭔가 하는 차종이었는데 성능이 아직도 쓸만한 거였다. 구입한 지 겨우 2년 정도로 외관상으로도 아무런 흠집도 없어 새 차나 별다름 없었다. 과수원에 오가다가 씻긴 탓인지 앞부분의 페인트가 약간 벗겨진 게 험이라면 험이지만. 간단한 내부 수리와 겉치장하는 데 일금 40몇 만원인가 하는 거금을 지출하고 세차조차 하고 보니 말끔한 새 차로 변해버렸다. 어디를 가나 꿀릴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멋진 차, 농사꾼의 차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봐도 우리 차란 생각이 안 드는 것이었다. 대문 옆에 주차되어 있는 우리 차지만 어디서 온 손님 차인지 착각할 지경이었다. 사람이나 물건은 역시 치장하기 나름이었다. 자신이 소유한 것에 대한 집념보다 사물을 판단하는 시각의 정확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아니…….”

우리 내외는 오랜만에 얼굴을 펼 수 있었다. 게다가, 금년 봄처럼 유난히 흐린 날씨가 많아 은근히 걱정했던 과수원의 병해가 생각한 만큼 심각하지도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아무리 관리를 잘해도 흐린 날씨가 많으면 병해가 극심하기 마련인데 이것도 참 이상한 일이었다. 뜬금없는 일이 일어나면 그것도 연속인 모양이다. 재수가 없는 해에는 안 좋은 일로 속상할 일이 계속인데 운 좋은 해에는 좋은 일의 연속, 금년에도 과수원의 배가 풍성하리란 예감이 앞섰다.

자동차 수리를 하자고 말했을 때만 해도 나는 또 쓸데없는 짓을, 하고 면박이라도 주고 싶었지만 모른 척해버렸다. 굴러가는 데 이상 없는 건 놔두고라도 보기에 멀쩡한 차에 거금을 쏟아부을 필요가 없었다. 경제력 여유가 있더라도 자동차 마니아도 아닌 주제에. 차 수리를 끝내고 나서도 이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아내의 비위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일감이 앞서면 의례히 짜증부터 앞서는 성정머리에 적당히 아부하는 근성이 나쁠 건 없었다. 해마다 되풀이 되는 동창회의 모임에도 앵돌아지는 모습을 안 보이는 것도 신기하려니와 아들 녀석으로부터 날아온 소식으로 그럴듯한 분위기를 깨트리고 싶진 않았다.

“여보, 자동차 수리 잘했지? 돈은 쓸 곳에 써야 된다니까.”

대단한 일이라도 저지른 듯 싱글벙글거린 게 백치를 닮은꼴이다. 여자란 별수 없는 모양이다. 그것도 호사라니 말이다. 차 단장이 자신의 단장으로 변해버리니.

나는 담배를 한 대 꼬나물었다. 앞산 쪽에서 뻐꾸기가 우는 것 같았다. 계절에도 색깔이 있다면 봄이란 짙어가는 녹음이 아닐까? 마을 주위에 널려 퍼진 배 밭의 색깔들은 푸름의 연속이다. 너무나 평화스러운 모습이다. 짙은 아지랑이라도 끼었으면 싶었다. 풍성한 녹음은 몸속에 겹겹이 쌓인 노독조차 모조리 삭여버릴 것 같았다. 앞산 쪽 배 밭 쪽에서 다시금 뻐꾸기가 목소릴 높인다. 맑은 허공도 역시 영근 초록색으로 변해가고.

“어린시절 친구를 만나면 좋겠군.”

농을 쳐도 들은 체 만 체였지만 다른 때완 분위기가 달랐다. 동창생들의 모임 이야기만 나오면 찌무룩하던 얼굴이 오히려 환하게 변했으니. 물론 시절의 변화도 중요한 일이었다. 가지치기. 퇴비뿌리기. 거름주기. 농약하기. 열매속기. 배 봉지 싸기. 풀베기. 연속되는 일감에 시달린 육신들이 만신창이가 된듯 싶으면 인상조차 험악하게 찌그러지는 데 이런 과정들이 거의 다 마무리 된 시점이라서 그런지 마음조차 느긋해지는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성깔이나 내는 춘삼월이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마님, 동창회 출근은 언제쯤 하시나요?”

얼어붙은 마음이 풀리는 계절이 경칩이라는 속담이 그럴 듯한 것이다. 다행인 것이 마누라의 마음씨가 요즘같이 계속 경칩이면 싶었다. 언젠가 얼토당토 않은 일로 삼한으로 돌아갈지 모르지만. 아무튼 이상한 일은 계속되었다.

아들 녀석의 소식을 은근히 기다렸지만 아예 마음을 접어둔 상태였다. 쓸만한 기업체의 공채에 일차관문인 서류심사를 통과하고도 이차 면접시험에서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꼴을 몇 번인가 보아왔던 터라서 이번에도 그러겠지 마음을 비우고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행운을 외면한 건 아니니 말이다. 이번에는 예감부터 이상했다. 돌아가는 판국이 좋게만 풀릴 것 같았다. 게다가 연 이틀 동안 택배가 배달되었다. 처음, 다음다음 물건은, 배달 순서가 정해진 듯. 모른 척 시치밀 떼었지만 뻔한 거였다. 엄마의 희희낙락하는 얼굴을 떠올리며 귀띔을 하고 보낸 게 분명했다. 여우같은 딸네미들이.

“내가 입은 옷 한 번 볼 거여?”

한 수 더 떠,

“나 예쁘지? 애들이 보내준 거야. 당신한테는 이런 호강 한 번 못 받았는데 말이야”

은근한 비꼬임의 말투는 기분이 좋아질 때면 사용하는 아내의 전용 메뉴였다. 남편의 기분 따위야 알 바가 없다는 투였다. 어쨌든 제 멋대로의 자아도취. 오랜만에 느끼는 아늑함이었다. 이 고즈넉한 평화로움이 얼마나 계속할지 모르지만 혼자만 보기엔 아까운 풍경이었다. 새옷으로 단장한 것만으로도 부족한지 새로운 하이힐까지 신고서.

평생 몸 비비며 함께 살아온 여자가 아니었다. 농사일에 진이 빠진 나머지 시답잖은 일에도 삿대질이나 해대던 여자라니? 완전히 낯선 얼굴이었다. 곰살궂은 곱다시가 따로 없었다. 게다가 그늘진 얼굴이 활짝 펴지니. 거금을 들인 카렌스만 얼굴을 바꾼 게 아니었다.

동창생이라는 아주머니의 전화를 받은 건 아침이 막 끝난 뒤였다.

“아저씨, 이번에는 꼭 보내주세요. 그동안 한 번도 못나왔던 거 탓하지 않을 테니. 아시겠죠? 늙어가는 주제들에 얼굴이라도 한 번씩 봐야지요. 안 그래요?”

모든 허물은 내게 뒤집어씌운 꼴이었다.

“네,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꼭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쪽에서 모시로 가야 되나요?”

모임 장소는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닌 모양이었다. 이십 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모든 윤곽이 서서히 나타나는 것이었다. 아내의 말마따나 눈치는 고사하고 코치(?)조차 못 느끼는 반편이 따로 없는 모양이었다. 헬리콥터 대신 새로 치장된 승용차로 농사꾼의 아낙이라는 서글픔을 조금치라도 숨겨보려는 아픔이 가슴을 저미게 하는 것이다. 아내가 거칠게 수화기를 바꿔 챘다. 그리고 뭔지 모를 소리로 한참 히뜩거렸다. 모른 척 시치밀 떼지만 그 말이 그 말일 것이다. 역시 짐작하던 대로였다. 끝말만은 분명했다.

“내 차로 갈 테니 걱정 말아.”

“정말이야?”

상대방은 그래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몇 번이고 확인하는 모양이었다.

“걱정 말아, 이번엔 믿어도 되니까…….”

나는 아내에게 아무 말도 안 했지만 긴가민가 하여 귀를 의심할 뿐이었다. 마지못하여 참석할 것으로 여겼지만 그게 아닌 셈이니. 어쨌든 한시름 놓인 거나 다름없었다. 동창회에 참석하여 어린시절의 벗들도 만남은 물론 머리라도 식혀 오기를 얼마나 바랐던 일인가.

농사짓는 사람이라고 무조건 비굴해지고 자기 비하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나는 이 직업에 대해 스스로를 경멸해본 일이라곤 없었다. 어디를 가나 당당하게 처신했다. 그리고 떳떳하게 굴고 싶었다. 다들 기피하는 직업을 내가 좋아하여 선택한 일은 아니지만 운명적으로 다가온 이 직업에 대해 경멸하고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마누라의 말마따나 나 같은 별종이 그렇게 흔한 건 아니지만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머릿속에 깊이 안치된 체념이라는 의식은 자기비하의 의미로 연결될 것이다. 몇 천 평이 남아대는 광활한 과수원의 열매가 익어지는 계절이면 느낄 수 있는 포만감은 아무라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부부간이라지만 이 간극間隙은 끝내 메워질 수 없는 것도 비극의 요소일 것이다.

초등학교 여자동창생 중에서 단 하나뿐인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은근한 자만심이 농사꾼의 아내라는 허울에 숨막혀 지내온 세월의 장막을 거둬들인다면……. 바보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 대신 마음조차 아파오는 것이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할 말이 없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꼭꼭 숨겨야만 할 것 같았다. 한참 신이 나 있는 아내의 심정이 어느 순간에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다. 햇살이 쨍쨍한 맑은 날씨였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검은 먹구름으로 가득 찬 여름철의 장맛날씨나 다름 없었다. 언제 뇌성벽력을 내려칠지 아니면 장대비를 쏟아낼지 기다리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그리하여 아내가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출발할 때에도 아무 소리도 안 하기로 작정했지만 근질거리는 입을 다물 수는 없었다. 맑게 트인 허공의 솜구름들이 오랫동안 머리 위에 머물기를 바라면서.

“당신한테 미안해서 어쩌지?”

내가 머뭇거리자 아내는 반쯤 열려진 차창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아냐, 그건 내가 할 말인데. 혼자 일 하려는 당신이 짠해서…….”

“걱정 말고 신나게 놀다 와. 기죽지 말고.”

안성맞춤인가. 핸드폰이 울렸다. 큰딸한테서 온 전화였다.

“엄마가 전화를 안 받아….”

“알았다, 알았어.”

나는 핸드폰을 아내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근엄하게 말했다.

“당신, 핸드폰 이젠 압수야, 압수….”

일 하는 거나 뭐나 빈틈없이 야무지지만 항상 야무지란 법은 없는 모양이다. 두고두고 쓰는 말이지만 나는 심심할 적이면 아내를 골린다. 핸드폰을 압수하겠다고. 자신이 사용할 때는 사용이 가능하지만 안 그럴 때는 있으나 마나 한 것이니.

“작년에도 그랬대. 농사짓는 사람은 하나도 참석 안 했다고….”

가시 박힌 말이었지만 이해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그려, 그럼 옛날처럼 오늘도 유일한 사람이겠네….”

자동차의 시동이 걸린 상태에서 둘은 한바탕 웃었다.

“나, 내년에 참석할 땐 외제 차 한 대 사줘. 농사꾼 한을 그때라도 풀어야지….”

그려, 기는 안 죽어야지, 농사꾼이라고. 그렇게라도 자존심을 세워야지.

“금년 농사만 잘 되면 외제 차가 문제야. 헬리콥터라도 대령해야지….”

보기에도 번듯한 카렌슨가 뭔가 한 우리 차도 사실은 우리가 산 게 아니었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들을 생각하여 마음씨 고운 자식들이 만들어 준 것이지. 아무래도 운수 좋은 날이란 예감이 적중된 건 사실이었다.

그날 점심 때였다. 핸드폰이 또 다시 요란하게 울렸다.

엄마가 전화를 안 받은 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하고 기다리던 소식이 이번에는 불발탄이 안 된 모양이었다. 굵직한 아들 녀석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것도 잔뜩. 녀석의 얼굴에 번진 미소가 목소리 속에 숨겨진 게 한 눈에 보일 것 같았다.

“엄마가 전화를 안 받아….”

같은 말의 되풀이다.

“임마, 엄마가 없으면 아빠한테 하면 될 것 아녀? 글고, 임마, 엄마 핸드폰 압수하라고 아빠가 몇 번이나 말했어.”

“그래도, 엄마한테 먼저 말 하려고…….”

 

 

 

 

 

이재백 / 1939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났으며 1995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했다. 창작집 『돌각담』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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