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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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키 큰 나무 / 나호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4. 19. 21:59

 

키 큰 나무 / 나호열

 

 

       1.

  슬플 때면

  팔 뻗쳐 푸른 하늘

  한 장 뜯어내어 눈물 닦고

  그 손마저

  발밑에 버리고

 

 

       2.

 

  나는 말할 수 없다.  나를 붙잡고 욕설처럼 내뱉는 삶의 더러움에 대하여

  늦은 밤 식은 오뎅 국물 흘리며 포장마차를 끌고 가는 늙은 부부에 대하여

  죽음을 앞두고 새벽기도회에 나서는 이웃들에 대하여

더 이상 떠날 곳이 없는 나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다.

 

 

     3.

  예고되지 않은 빙하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뒷덜미에 내리꽂히는 불확정의 겨울

  살아 있으나 수동형의 두려움에 묶인 서늘한 등줄기

  다시는 봄이 오지 않으리라는 안타깝게 뻗치는 팔의 노동과

  깊은 흙 내음에 취할 수밖에 없는 죽음에 가닿는 어질한 뿌리

  누구에게든 집이 되고 싶었던 젊은 날의 기억이

  발밑에 퇴색한 깃발로 쌓여가고 있었다

 

     4.

  바라보았다.

  삶을 지탱하는 것은 바라보고 싶다는 꿈 하나를 잊지 않는 것, 그리하여 어디에선가 나를 찾는 사람에게 이정표가 되는 것, 더 키를 세우고 이 겨울 잠들지 않도록 바람의 매, 그 회초리를 즐거이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