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큰 나무 / 나호열
1.
슬플 때면
팔 뻗쳐 푸른 하늘
한 장 뜯어내어 눈물 닦고
그 손마저
발밑에 버리고
2.
나는 말할 수 없다. 나를 붙잡고 욕설처럼 내뱉는 삶의 더러움에 대하여
늦은 밤 식은 오뎅 국물 흘리며 포장마차를 끌고 가는 늙은 부부에 대하여
죽음을 앞두고 새벽기도회에 나서는 이웃들에 대하여
더 이상 떠날 곳이 없는 나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다.
3.
예고되지 않은 빙하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뒷덜미에 내리꽂히는 불확정의 겨울
살아 있으나 수동형의 두려움에 묶인 서늘한 등줄기
다시는 봄이 오지 않으리라는 안타깝게 뻗치는 팔의 노동과
깊은 흙 내음에 취할 수밖에 없는 죽음에 가닿는 어질한 뿌리
누구에게든 집이 되고 싶었던 젊은 날의 기억이
발밑에 퇴색한 깃발로 쌓여가고 있었다
4.
바라보았다.
삶을 지탱하는 것은 바라보고 싶다는 꿈 하나를 잊지 않는 것, 그리하여 어디에선가 나를 찾는 사람에게 이정표가 되는 것, 더 키를 세우고 이 겨울 잠들지 않도록 바람의 매, 그 회초리를 즐거이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
'우리는서로에게슬픔의 나무이다97'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는 서로에게 슬픔의 나무이다 . 2 (0) | 2013.04.25 |
---|---|
우리는 서로에게 슬픔의 나무이다. 1 (0) | 2013.04.20 |
실크로드 (0) | 2013.04.18 |
背景 / 나호열 (0) | 2013.04.16 |
문득 길을 잃다 3 / 나호열 (0) | 2012.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