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stranger
백영옥
1
집은 삼중으로 잠겨 있었다.
그녀가 내게 준 집 열쇠는 모두 세 개였다. 첫 번째 열쇠를 돌려 흰색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문을 열면, 문고리가 망가진 문이 눈앞에 나타났다. 130년이나 됐다는 집의 문고리를 열면 삭은 나무 냄새가 코끝을 누르듯 스쳤다. 3층까지 계단을 오르는 동안 쉬지 않고 삐꺼덕대는 소리가 들렸다. “집으로 바로 들어가는 문 열쇠는 하트 모양의 스티커가 붙어 있어요.” 마지막으로 통화했을 때, 그녀는 내게 열쇠 구별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나는 푸른색 스티커가 붙어 있는 열쇠를 보았다. 열쇠를 쥔 엄지손가락으로 수없이 문대졌을 하트였다. 열쇠를 넣고 오른쪽으로 돌렸다. 문이 열렸다.
1) 12월 24일에 돌아옵니다. 열쇠는 오전 12시 이전에 1층 주인집에 맡겨 주세요.
2) 침대와 베개 시트는 돌아가기 전, 집 근처 ‘Jenny Cleaners’에 맡겨 세탁해 주세요.
3) 냉장고 안에 있는 음식은 드셔도 됩니다.
4) 낡은 집이라 전기배선이 좋지 않습니다. 밥솥과 전자레인지, 토스터나 헤어드라이어를 동시에 돌릴 경우 퓨즈가 나갈 수 있습니다.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섰을 때 냉장고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에는 ‘주의사항’이라고 적힌 글이 붙어 있었다.
그가 쓴 것은 아니었다.
그가 노트에 쓴 글씨를 본 적이 있었다. 잘 나오지 않는 볼펜으로 힘을 줘 눌러 쓴 가늘고 긴 글자들이었다. 누군가 자신의 노트를 훔쳐볼지도 모른단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이 쓴 글처럼 보이기도 했다. 검정색 몰스킨 노트에는 알 수 없는 단어와 추상화된 기호, 그림들이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쓴 글은 달랐다. 글자는 정갈했고 한글 맞춤법에 신경을 쓴 흔적이 보였다. 내용도 구체적이었다. 한 달 전, ‘서블렛(sublet)’을 구하는 사이트에 그녀가 올린 집 설명 역시 그랬다.
‘윌리엄스버그. 베드포드(Bedford) 지하철역에서 8N 방향, 도보로 2분 거리. 동남향 3층. 지하철 L라인. 맨해튼까지 한 정거장. 렌트 2,400달러. 가구와 침구 식기 포함. 금연의 미혼여성 구함. deposit 200달러. 인터뷰는 전화로 대신합니다.’
윌리엄스버그는 더 이상 팽창할 수 없을 정도로 카페와 레스토랑, 바 밀집 지역이었다. 맨해튼에서 브루클린 쪽으로 넘어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나서 부동산 폭등세는 점점 더 심각해졌다. 월세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의 2배가 넘었다. 하지만 나는 서블렛 사이트에서 글을 확인한 후, 곧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건 그녀였다. 나는 한 달 동안 쓸 집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달 동안 새로 이사할 집을 구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여행자가 아닌 유학생이 왜 서블렛을 구하려고 하는지 정도의 구실은 있어야 했다.
“예치금 300달러 괜찮으세요? 룸메이트가 이전에 서블렛을 놨다가 전자레인지를 고장 낸 사람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좀 높게 잡았어요. 이건 제 조건은 아니니까 부담스러우면 얘기하세요.”
다른 사람의 조건이라면 그가 내건 조건일 것이다.
“어차피 받을 돈이잖아요.”
내가 말했다.
서블렛(sublet)은 누군가에게 빌린 것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걸 의미했다. 빌린 것을 다시 빌려주는 이런 미국식 제도는 유독 긴 여름 방학 동안 고향에 가거나 여행을 떠나는 유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
“그럼요. 당연히 돌려드리죠.”
그녀의 목소리는 가늘고 낮았다.
가끔 그녀의 얼굴을 상상하곤 했었다. 그와 그녀가 부엌에 서 있는 모습, 그녀가 요리하고 그가 뒤에서 그녀를 안고, 그의 오른쪽 심장과 그녀의 오른쪽 심장이 한쪽 방향으로 포개어지는 모습을. 그들이 서로의 목덜미에 키스하고, 침대에 도착하기 전 부엌 바닥 위에서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그와 함께 공부했던 여자, 그가 사랑한 여자, 2년 3개월째 그와 동거 중인 여자, 그가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여자. 내가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건 그 정도였다.
“200달러만 받을게요. 아무래도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알겠다고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
2
집은 가로가 좁고 세로가 긴 레일로드 형태였다.
집세로 악명 높은 뉴욕이나 홍콩에선 흔한 형태였다. 하지만 각 방마다 밖으로 나가는 문이 달려 있는 건 꽤 특이해 보였다. 주인이 오래된 자신의 집을 월세 전용으로 바꾸며 여러 개의 방으로 개조하는 과정에서 기이하게 구조가 일그러진 것 같았다.
공간은 크게 두 곳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한쪽 방에는 책상과 모니터, 사진을 뽑을 수 있는 대형 프린터 등이 놓여 있었고, 이케아에서 산 조립식 책장 안에는 사진집과 책이 꽂혀 있었다. 살만 루시디의 한밤의 아이들,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순수 박물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책장 끝에는 스트렌드 서점 마크와 16달러 가격표가 붙어 있는 르네 마그리트의 화집이 놓여 있었다.
나는 『순수 박물관』을 펼쳤다.
그가 지하철에서 읽고 있던 책이었다. 그의 옆에는 배에 칼이 꽂힌 뚱뚱한 배트맨이 앉아 있었다. 할로윈을 이틀 앞둔 날이라 맨해튼으로 나가는 지하철 안에는 할로윈 분장을 한 우스꽝스러운 뉴요커들이 북적댔다. 지하철 안에는 그들을 찍으며 낄낄대는 관광객들도 여럿 있었다. 사람들이 웃고 있을 때, 그는 분홍색 어그 부츠를 신고 스티로폼으로 만든 커다란 십자가를 지고 있는 나사렛 예수와 흑인 배트맨 사이에 있었다.
그때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공공장소에서 책을 읽다가 우는 남자를 본 적이 없었다. 만약‘메이’가 내 옆에 있었다면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실연당한 게이일 거라고 중얼거렸을 것이다. 그의 무릎이 조금씩 떨렸다. 북적이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그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눈물이 떨어지기 전, 그의 눈물을 닦아 주고 싶었다. 떨리는 무릎의 진동을 내 손끝으로 멈추고 싶었다.
그날 밤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그가 읽고 있던 『순수 박물관』을 주문했다. 며칠을 기다려 읽은 책은 삶의 조건이 뒤바뀌는 어느 순간에 관해 서술하고 있었다.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그 여자 때문에 모든 것이 완벽했던 삶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그가 읽고 있던 책을 가슴에 안았다. 나는 손끝으로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순수 박물관』의 321페이지에는 서점 이름이 적힌 책갈피가 꽂혀 있었다. 어쩌면 그는 이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결말을 그는 알지 못할는지도.
방을 서성이다 잠겨 있던 문 하나를 더 열었다. 거실과 침실, 부엌이 함께 있는 방에는 철제 프레임으로 만들어진 침대와 칼로 깊게 긁힌 자국이 선명한 작은 책상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가 앉았을 의자에 앉아, 그가 마주했을 책장을 바라보았다. 책장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분홍색 포스트잇 세 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 구김 없는 침대보에선 희미한 샤프란 냄새가 났다. 침대 위에는 두 개의 베개와 하나의 커다란 쿠션이 삼각형 모양으로 놓여 있었다. 나는 메고 있던 가방을 침대 옆에 내려놓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천장 위를 바라보자 세 개의 전구가 나간 오래된 샹들리에가 반짝였다. 어쩐지 모든 게 제자리에 놓여 있는 기분이었다.
그. 그녀. 나.
그를 사랑하기 시작한 지 1년 8개월 만에 나는 그의 집에 와 있었다.
드디어.
3
그는 내 얼굴을 본 적이 있다.
그는 내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다.
지난 봄, 우리는 맨해튼 30번가 근처의 NYU 부설 아카데미에서 함께 강의를 들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시각 예술가들이 작품을 발표하고, 그것에 대해 토론하는 자유로운 형식의 강의였다. 뉴욕에선 흔하게 열리는‘오픈 스튜디오’의 아카데미판인 셈이었다.
“3주일 후네. 과제 끝나는 기간이잖아. 돌아가면서 자기 작품도 발표하고 많이 도움 될 것 같지 않아?”
남자친구의 페이스북에서 강의 정보를 알아낸 건 일본인 룸메이트인 메이였다. 나는 가만히 메이를 바라봤다.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다. 하지만 메이는 말수가 거의 없는 나를 좋아했다. 내가 계획 같은 걸 미리 세우지 않는 사람이라는 건 그녀도 알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던 것도, 이혼을 했던 것도,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쓰고 유학을 온 것도 전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사촌언니가 2주에 한 번 그곳에서 강의를 하게 됐나 봐. 첼시에서 활동하는 독립 큐레이터거든. 어제 통화했는데 나한테 꼭 들어 보라고 하더라. 너랑 말이 아주 잘 통할걸?”
메이가 크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3주 후, 강의에 나가기 시작한 건 시각 디자인을 공부한 메이가 아니라 나였다. 삼청동에 있는 작은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던 내가 비주얼 아티스트들과 함께 강의를 들은 이유를 찾자면 그런 게 아니었을까.
당시 나는 비자를 유지하기 위해 1년 동안 한 무리의 기러기 엄마들과 함께 교육심리학 강의를 들어야 했다. 그들에게서 1년 동안 내가 들은 가장 큰 테마는 아이들 대학 보내기와 현지에서 만난 남자 이야기였다. 그때 나는 서른 살 생일을 맞이했다. 혼자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켜던 순간, 지난 삼 년 동안 내가 누구도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겐 남편도 아이도 없었고 당연히 불륜도 없었다.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서 생기는 외로움과 사람을 좋아해서 생기는 서러움 중 어느 것이 더 나쁜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외로움과 그리움, 서러움이 섞여 도대체 어떤 감정인지조차 알 수 없을 때, 내가 법정에 서서 이혼 도장을 찍은 건 분명했다.
메이는 누구든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고선 살 수 없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사랑이 끝나면 누구도 사랑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헤어진 남자의 첫 번째 이니셜을 자신의 오른쪽 등 뒤에 차례로 새겨 넣었다. 알파벳이 열한 개로 늘어났을 때, 그녀는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뉴욕에 온 지 5년 만에 메이는 11명의 남자를 사랑했다. 11명의 남자. 11번의 이별. 1이 2개 겹쳐 있는 모습이 시각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메이는 내가 찍은 사진을 좋아했다. 그녀는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 대문 사진으로 걸어 놓았다.
“메이, 문신은 쉽게 지울 수 없어. 바보 같은 짓이야.”
“그래도 내 몸에 담배 빵 만드는 것보단 문신이 훨씬 더 뉴욕적이잖아?”
메이의 말대로 모든 사랑은 우연의 소산인 걸까. 내가 알고 있는 건, 누구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어떤 의미로 되돌아올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싫어했던 사람을 불현듯 좋아하게 되는 건 의지와 상관없었다. 강의실에서 그와 내가 나란히 앉아 있었던 것도, 그의 아이폰과 내 아이폰이 바뀌었던 것도, 아이폰에 저장된 그의 사진들을 본 순간 내가 그를 좋아하게 된 것도.
두 번째 그를 봤을 때, 그는 역시 뭔가를 찍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벽 위에 붙어 있는 아이비라고 생각했다. 그는 나뭇잎과 벽에 반사된 빛을 찍고 있었다. 빛의 형태를 일정한 프레임 안에 가두고, 그것을 소리로 채집해 표현하는 작업이 그의 관심사였다.
“미스터 셰도우!”
몇몇 사람들은 그의 이름 대신 별명을 불렀다.
그중에는 메이의 사촌언니가 있었다.
뉴욕에 와서야 나는 세상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걸 알았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인종이 다를 수 있고 그것으로 인해 다양한 혈족 관계가 생길 수도 있다는 사실 말이다. 머리와 눈동자 색깔이 따로 명시되어 있는 운전면허증을 보는 것이나, 이해하기 힘든 억양의 영어를 듣는 일에 익숙해지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식어버린 에스프레소에 커다란 각설탕 하나를 넣어 스푼으로 온전히 휘저어 녹이는 일처럼 느껴졌고, 때때로 내겐 뉴욕 지하철이 서울 메트로만큼 쾌적해지길 바라는 일만큼 불가능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메이가 사촌언니 얘기를 했을 때, 나는 그녀가 당연히 일본인일 거라고 생각했다.
김수영.
그녀는 첫 강의에서 자신의 한국 이름을 칠판에 썼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한국에서 전위적이고 강렬한 시를 썼던 시인과 같은 이름이며, 영어로‘Swimming’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얼마나 물을 좋아하는지, 어린 시절 동생과 함께 미시시피 호수에서 발가벗고 했던 수영을 얼마나 좋아했는지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한국에선 아이가 태어나면 모두‘사주’라는 강력한 삶의 지도가 생기는데, 자신에겐 물을 뜻하는‘水’가 두 개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녀는 하루에 3리터가 넘는 물을 마신다고도 말했다. 그러니 자신과 친해지려면 카페가 아니라 화장실에 자주 들락거리는 게 좋을 거란 농담을 하며 크게 웃었다.
나는 환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생기는 건 필연적인 빛 때문이다.
‘빛’을 찍는 남자에게 ‘그림자’라는 별명을 지어 준 건 메이의 사촌언니였다.
4
냉장고 문을 열었다.
‘Cage Free’라고 적힌 종이박스 안에는 달걀 세 개와 브루클린 맥주 세 병이 남아 있었다. 식품으로 가득 차 있던 냉장고 안은 내가 머문 나흘 동안 거의 비어 있었다. 가스의 버튼을 돌리고 물을 끓였다. 냄비에 달걀을 모두 넣었다. 삶은 달걀 세 개와 브루클린 맥주 세 병. 저녁 식사로 나쁘지 않았다. 아이폰을 도킹시킬 수 있는 스피커의 볼륨을 높였다. 그가 즐겨 듣던 카를라 브루니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맥주 한 병을 따고 그들의 방을 서성였다.
그의 입술이 닿았을 컵과 머리카락이 스쳤을 베개와 그의 지문이 찍혔을 책들이 있는 방이었다. 나는 이제 막 발굴에 성공해 모든 흔적이 사라질까 두려움이 가득한 고고학자처럼 주변을 맴돌았다. 가끔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듯 방의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방의 어떤 곳은 때때로 위험구역처럼 느껴졌다. 나는 방 안이 보존되길 바랐다. 청소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먼지가 날아올라 그의 방을 감싸는 풍경 안에 서 있었다. 시간에 따라 흩어질 정경을 상상하면서, 나는 이곳에서 나흘을 보냈다.
이 집에서 보내는 동안, 정체불명의 멍들이 생겼다. 늘 조심스레 다녔기 때문에 어딘가에 부딪힌 기억은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무릎과 팔의 멍 자국은 보라색으로 더 선명해졌다. 나는 그것이 내 몸에 생긴 그림자 같다고 생각했다. 눈을 감으면 몸 안의 멍이 다리와 발가락 밑을 흘러 바닥을 적시는 것 같았다. 발밑이 늘 젖은 느낌이었다. 수건으로 발을 닦아도 발에선 습기가 가시지 않았다. 음악을 틀어도 방 안에선 시계 초침 소리가 들렸다.
가스레인지 옆에 서서 달걀이 익길 기다렸다. 불을 끄고 서서 찬물로 달걀을 씻고, 달걀 껍데기를 조금씩 깠다. 나는 티슈 위에 하얀색 달걀 껍데기를 부수어 조금씩 뿌렸다. 그리고 매끈하게 반짝이는 달걀 표면을 바라보았다. 만약 세계가 막 까놓은 삶은 달걀의 표면 같다면 어떠한 균열도 없이 평온할 것이다.
강의실에서 때때로 그는 메이의 사촌을 그런 눈빛으로 바라봤었다. 상대방이 전혀 볼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너무나 투명했고 슬퍼 보였다. 나는 우리 세 사람의 시선이 조금도 부딪히지 않고 빗겨 나가는 것 역시 지켜보았다. 가망 없는 사랑에 빠진 젊은 남자 특유의 조급함을 낱낱이 목격했다. 그러므로 매혹이 자신이 숭배하는 대상의 냉담함에서부터 나온다는 것도 알았다.
강의실에서 자신의 작품을 발표할 때, 그는 말했었다. 희망 없이 사랑을 사랑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고,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 순수한 고통을 주고, 순수한 고통만이 예술의 심장을 찌를 수 있다고 말이다. 자신의 몸에 일부러 상처를 만들고 그것을 날인하고 증언하는 것이 예술가의 임무라고도 말할 때, 그의 눈은 수영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집에 들어온 건 결코 충동적인 게 아니었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찍는 사람은 누군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사람을 알아보기 때문이었다. 비오는 날 찍힌 그의 발자국에 자신의 발을 대어 본 적 있는 사람은, 좋아한다는 말 대신 그녀의 립스틱이 희미하게 찍힌 머그 컵 위에 자신의 입술을 대어 본 사람이라면, 어떤 것으로도 멈춰지지 않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여자와 살고 있는 남자를 짝사랑한 건 내가 원한 일이 아니었다. 그녀 역시 그랬을 것이다. 나는 그가 앉아 있던 의자에 앉았다. 그의 키에 맞춰져 있는 의자에 맞춰 발꿈치를 들어 올리자 이내 무릎이 떨려 왔다. 나는 그녀와의 마지막 통화를 떠올렸다.
“서블렛을 주는 건 이번이 마지막일 거예요. 깨끗하게 써주세요. 남편이 정말 까다로운 사람이거든요.”
5
130년 된 이 집은 그의 세계보다 그녀의 것에 가까웠다.
나는 낡은 창틀에 걸린 하얀색 커튼을 바라보았다. 커튼을 흔들자 햇빛 사이로 먼지가 털려 나왔다. 집안 먼지의 대부분이 사람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각질 때문이란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이 집의 먼지 역시 내 몸이 만든 것일 터였다. 뉴욕에 오기 전 재개발 직전의 낡은 아파트에서 살았었다. 나는 오래된 집에 먼지가 더 많이 쌓인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처음 왔을 때 이 집은 새것처럼 반짝거렸다. 하지만 그것이 곧 착시현상이고, 낡은 것을 소중히 다루었을 때 생기는 광택이라는 걸 알았다.
깨끗하게 세탁된 베개와 커피 잔이 가득 들어 있는 찬장, 유리창 틀을 바라보았다.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식기와 12곡물선식이라고 적힌 봉투, 유기농 밀가루, 현미와 검은콩이 들어 있는 병의 숫자들을 헤아렸다. 누군가 물건의 위치를 조금만 옮겨도 집 안의 모서리가 기울 것 같았다. 수건이나 탁상시계, 작은 그릇들이나 유리 화병은 그곳이 반드시 자기 자리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책은 제목이나 장르에 상관없이 색깔과 키 순서로 정리되어 있었고, 신발은 종류에 상관없이 굽 높이에 따라 구별되어 있었다.
집 안에는 그녀만의 분류표가 존재했다. 나는 신발장을 열어 유독 굽이 높은 그녀의 구두를 바라보았다. 서랍장을 열면 속옷과 양말, 머플러가 색깔과 소재별로 각을 맞춰 일렬로 정리되어 있었다. 집 안의 수건과 속옷, 침구류와 식기는 하얀 색깔이었다. 흰색을 좋아하는 사람 특유의 강박이 집 안에 가득했다. 그녀는 빨래를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다. 모든 것은 예각처럼 날카로웠다.
애초의 계획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그가 자신의 컴퓨터에 기록한 즐겨찾기 목록들이나 숨겨진 편지, 오래된 일기장이 아니라 다른 것들이 조금씩 마음을 움직였다. 그가 사용한 물건들과 그가 즐겨 듣는 음악과 영화 저장 목록에서 취향과 습관을 발굴하려던 계획은 잠시 중단됐다. 무엇보다 외도 중인 남자 특유의 조심성이 그의 주변을 고요히 감싸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편지를 한 장도 남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내가 발견한 건 그의 편지가 아니었다. 짜다 만 스웨터 바구니 안에서 나는 편지를 발견했다. 그것은 절박한 사람이 자신의 상태를 헤아릴 틈 없이 마구 써내려간 글이었다. 애처로울 만큼 노골적이었고, 그래서 읽는 사람의 마음까지 너덜대게 했다. 편지는 세 부분으로 찢어져 쪽지 모양으로 접혀 있었다.
그것은‘물’로 시작되는 편지였다.
넌 늘 나를 젖게 해. 네가 내 성기에 키스할 때마다 나는 강물이 되어 흘러가는 것 같아. 네가 내 입술에 키스할 때마다 나는 뜨거운 눈물이 되어 마를 것 같지가 않아. 네가 내 얼굴을 바라보며 울었을 때, 나는 네 눈물이 되어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네가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어, 네가 나를 다시 사랑했으면, 네가 내 곁을 떠나지 않았으면,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으면, 절대로 헤어지고 싶지 않아, 네가 날 떠나면 난 곧 죽고 말 거야, 널 사랑해……… 제발.
나를 예뻐해 줘. 나를 더 예뻐해 줘. 나를 더 예뻐해 줘. 예뻐해 줘. 예뻐해 줘. 예뻐해 줘. 예뻐해 줘. 예뻐해 줘, 예뻐해 줘, 사랑해 줘, 사랑해 줘, 사랑해 줘, 사랑해 줘, 사랑해 줘, 사랑해 줘, 나를 사랑해 줘, 나를 더 사랑해 줘, 사랑해 줘, 사랑해 줘, 사랑해 줘…………
편지의 모서리는 처음부터 끝까지‘예뻐해 줘’와 ‘사랑해 줘’라는 문장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것은 패턴처럼 편지의 가장자리를 장식하고 있었다. 썼다가 지우고, 지웠다가 찢어버리는 편지의 형식이 말하는 건 한결같다. 그것은‘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너는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라는 눈물겨운 고백인 동시에 분노에 찬 질문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잘못 누른 리플레이 버튼처럼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다. 반복되는 것들의 서글픈 숙명을 가지고 있었다. 반복될수록 멀어지고, 반복될수록 더 희미해지고, 결국은 사라져 버리는.
나는 그녀가 짜다 만 스웨터를 잡아 올렸다. 스웨터의 가슴 부분은 안뜨기를 하면서 너무 잡아당겨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이 결이 빳빳해져 있었다. 하지만 왼쪽 팔의 윗부분은 너무 헐거워 1센트짜리라도 곧장 빠져 들어갈 것 같았다. 나는 안뜨기와 겉뜨기를 교차하며 뜬 스웨터의 조직을 바라보았다. 스웨터는 조직의 결이 엉망이었다.
서머 타임이 끝난 11월에는 생각보다 어둠이 빨리 밀려왔다. 언제 어두워졌는지 모른 채 밤이 지나가는 날이 많았다. 어둠 속에서 나는 한쪽엔 스웨터를, 한쪽에는 그녀가 쓴 편지를 든 채 오래 서 있었다. 뉴욕에 오기 전, 전남편과 마지막 통화를 하고 이렇게 서 있었던 적이 있었다. 발등에 커다란 못이 박힌 것처럼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가까스로 초록색 뱅커스 스탠드를 켰다. 빛이 들어오자 잠복했던 어둠이 물러나며 출렁였다. 나는 빛을 좇으며 그녀가 정리한 것들을, 이름표가 붙어 있는 병의 숫자나 시폰 커튼 끝에 수놓은 작은 하트를 세었다. 45개의 하트는 정상적인 자궁 안에서 자라지 못한 아이처럼 등이 솟아올라 조금씩 굽어 있었다. 하트의 숫자를 세는 동안 신발장을 열어 그와 그녀의 신발들을 관찰했다. 17개의 신발이 놓여 있었다. 커다란 운동화 옆에 놓여 있는 하이힐. 신발장은 키가 큰 누군가에게 가닿기 위해 유독 발꿈치를 들어 올린 사람이 가지는 위험천만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6
그의 집에 온 지 이주일이 지나고 있었다.
시간은 이제 흐르지 않았다. 그것은 먼지처럼 쌓여 가고 있었다. 먼지를 털 듯 시간을 털면 몸 안이 텅 빈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시계를 보지 않았다. 볼 필요가 없었다.
12월 14일.
집 밖으로 나가기 위해 그의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커다란 운동화에 발을 넣으니 운동화를 신는다기보다 발이 운동화에 잠겨 있는 기분이었다. 낮 기온이 16도를 넘어서는 봄 같은 날씨였다. 오랜만의 외출이었다. 헐렁한 신발 때문에 발고랑 사이로 바람이 들어왔다. 걸음을 멈추고 그의 운동화를 바라보았다. X 자가 아닌 – 자 모양으로 신발 끈이 가지런히 묶여 있었다.‘걷는 밤’이라는 그의 사진이 떠올랐다. 두 개의 그림자가 땅바닥에 포개져 커다란 발 모양처럼 보이는 사진이었다.
동네 카페엔 루이 암스트롱이 부르는 캐럴이 흘러 나왔다. 빵집에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예약 판매한다는 광고판이 붙어 있었다. 크리스마스 70퍼센트 세일을 알리는 빨간색 현수막이 걸린 가구점 앞에 긴 줄이 보였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윌리엄스버그 푸드’에 들렀다. 그곳에서 브루클린 맥주 3박스와 Cage free 달걀 한 박스를 샀다. 딱히 식욕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으로 충분했다. 주머니가 없는 옷을 입고 나오느라 남은 동전은 계산원에게 팁으로 주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윌리엄스버그에는 남자 운동화가 분명한 커다란 신발을 신고 어기적대며 걷는 여자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사람은 없다. 지하철 L라인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도, 신호를 무시한 채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도, 갈 길이 급해 저절로 걸음이 빨라지는 동네였다. 하지만 비좁은 나무계단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동안, 그곳의 세입자 한 명이 나를 바라보며“도와줄까?”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괜찮아. 고마워!”라고 소리 질렀다. 타인의 질문에 분명히 대답한 건 오랜만의 일이었다.
살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건 근사한 일이다. 지하철에서 무거운 짐을 들어 주던 사람을 만나거나, 절대로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책을 찾아 주는 사람을 만나거나.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었을 때 함께 걸어 주는 사람을 만나는 일 말이다.
그는 길을 잃은 내게 길을 알려주었다. 맨해튼 이곳저곳이 보수 공사 중이었다. 39번가부터 꽤 긴 거리를 우리는 소음 속에서 말없이 걸었다. 우리는 30번가의 좁고 어두운 계단을 함께 걸어 올라갔다. 그때 나는 그의 왼쪽에 있었다. 숨소리가 더 잘 들리는 쪽이었다. 그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그의 왼쪽에 자신의 몸을 뉘었을 것이다. 그의 왼쪽에서 공부하고, 그의 왼쪽에서 말하고, 그의 왼쪽에서 사랑을 나눴을 것이다. 왼쪽 베개에 붙어 있던 곧고 긴 머리카락을 떼어내며 나는 사라져 버릴지도 모를 그녀의 왼쪽 세계를 상상했다.
사랑이 여간해서 멈춰지지 않는 것이라면 이별은 어떨까. 살면서 어느 순간 멈출 수 없는 것들이 생긴다. 둥글게 말린 회색 털 뭉치를 발견한 순간, 나는 고뇌하듯 서성이고 골똘하던 발걸음을 돌연 멈췄다. 집 안의 모든 사물이 내게 속삭이던 소리의 볼륨을 줄였다. 스웨터를 쥔 순간 소리는 사라졌고 풍경은 정지되었다. 나는 스스로 고고학자이길 포기했다. 스웨터가 놓여 있던 상자 안에는 회색과 붉은색, 주황색과 올리브 그린 털실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나는 내 몸 위에 스웨터를 대보았다. 팔 길이와 품을 보아 남자 스웨터일 것이었다. 그것은 반도 떠지지 않은 채 바구니 안에 돌돌 말려 있었다. 스웨터 안에는 형체를 파악하기 힘든 그림들이 있었다.
나는 그녀가 스웨터에 짜려다 멈춘 그림들을 상상했다. 예정대로 완성됐다면 그것은 그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었을 것이다. 전나무와 루돌프가 그려진 따뜻한 크리스마스 스웨터. 나는 배꼽 위에서 사라진 나머지 스웨터를 상상했다. 스웨터는 누군가의 잘려 나간 몸 같았다. 눈을 감고 스웨터를 왼쪽 뺨에 조심스레 갖다 대었다. 따뜻한 털 뭉치에선 오래된 먼지 냄새가 났다. 그것은 채 마르지 않은 눈물 냄새 같은 것일지 몰랐다. 누군가 멈춘 일을 다시 시작하는 일. 털실에 묻어 있던 눈물 자국을 좇아 읽는 일. 짜 넣었던 실을 풀어 그것의 처음과 끝을 다시 잇는 일, 그것이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이었다.
낮에는 그가 읽다 만 책들을 찾아 읽었다. 그가 밑줄을 친 곳은 두 번 더 읽었고, 그가 모퉁이를 접어놓은 곳의 글은 노트에 필기했다. 밤에는 그녀가 뜨다 만 스웨터를 떴다. 오후 두 시에 의자에 앉아 서울의 심야 라디오 방송을 연결해 듣기도 했다. 뜨개질이 잘 되는 날에는 낮밤이 바뀌었고, 그런 날에는 낮에 읽던 책들이 밤에 짜다 만 뜨개질 위에 노곤한 잠처럼 꾸벅꾸벅 쏟아져 내렸다.
뜨개질을 하다가 메이에게 전화가 오면, 그녀가 만나고 있는 대만인 남자친구에 대해 들었다. 굽다가 실패한 라즈베리 파이 얘기도 들었고, 오븐에 구울 수 있는 100가지쯤 되는 파이 얘길 듣는 중간에 메이의 사촌언니 소식도 들었다. 수영이 내년 봄이면 남편을 따라 한국의 대학에서 강의를 맡게 될 것이란 얘기였다. 나는 메이에게서 그녀가 세 번째 아이를 임신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세 번째 아이가 남편 집안의 혈통을 이어받아 쌍둥이일 거란 얘기도.
12월 셋째 주, 윌리엄스버그의 밤은 조금씩 길어졌다.
나는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뜨개질하며 보냈다. 새로 뜬 디자인 도안을 바라보다가 맥주를 마셨고 의자에 앉아 짧게 잠들었다. 아침이면 Cage free 달걀을 삶았고, 저녁이면 그것을 두 개씩 먹었다. 쌉쌀한 브루클린 맥주가 목을 적실 때마다 나는 그녀를 생각했다. 잠이 오지 않는 밤, 그녀가 스웨터를 뜨면서 떠올렸을 그의 뒷모습을 그렸다.
나는 그들을 생각했다. 코와 코 사이에 털실을 끼워 넣으며 혼자서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들은 짝사랑이 한 사람을 혼자서 좋아하는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결과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짝사랑은 ‘그는 누구인가!’라는 진지한 질문이지만 그것은 자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그렇다면 나는 누구여야 하는가!’라는 잘못된 질문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소요되는 혼란이 이 적요로운 사랑 앞에선 어느덧 무의미해진다.
핸드폰 배터리는 메이와 짧은 통화를 할 수 있을 만큼만 충전되어 있었고 대부분은 꺼져 있었다. 스웨터를 짜다가 창밖을 내려다보며 시간을 헤아렸다. 건너편 창틀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나는 그 누구의 사랑도 이어지지 않는 저녁 속에 앉아 있었다. 그런 것들이 더 이상 서글프지 않았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것이란 점에서 짝사랑은 선한 인간들이 선택하는 자학이며 자책이니까.
스웨터를 다 뜨려면 두꺼운 털실처럼 밤이 더 길어져야 했다. 나도 모르게 그들을 위해 몇 년 동안 밤잠을 아껴 둔 것처럼 졸리지 않았다.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삶은 달걀과 맥주라고? 뭐야! 탄수화물과 단백질의 균형식이었잖아.”
맥주가 보리빵이라고 믿는 메이에겐 맥주는 알코올이 아니라 변형된 탄수화물이었다.
“일주일 후면 돌아오는 거지? 네가 그리워.”
나는 이제 그립다는 말이 자신의 이야길 들어줄 귀가 필요하다는 말로 이해한다. 메이에게 크리스마스 저녁을 그녀와 그녀의 대만 남자친구와 함께 먹겠다고 약속했다. 메이는 전화를 끊기 직전, 돌아오면 브루클린 맥주를 원 없이 마시자고 말하곤 했다.
스웨터는 그들이 돌아오기로 한 전날, 아침에 완성되었다. 완성된 스웨터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나는 그것을 옷걸이에 걸어 두었다. 나는 분홍색 하트와 작은 리본이 달린 스웨터를 내 몸에 대보았다. 피식, 웃음이 났다. 난롯가에 앉아 엄마가 겨울 내내 짜주었을 법한 예쁜 스웨터였다.
그와 나는 2주에 한 번 같은 강의실 안에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한 번도 함께인 적이 없었다. 그와 나는, 그녀는 지금 어딘지 모를 곳에 멀리 떨어져 있다. 하지만 스웨터를 짜는 동안은 씨실과 날실처럼 시간의 조직들이 그들과 나를 단단히 엮어 매듭짓고 있었다. 스스로 커다란 스웨터가 되어 누군가의 어깨를 감싸 안는 기분이었다.
나는 옷걸이에서 스웨터를 꺼내 침대 위에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내가 이 집에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면, 그건 그녀가 놓고 간 이 스웨터를 원래의 주인에게 온전히 되돌려주는 것이었다. 한때 그의 몸이었을 실을 풀어, 그녀의 몸에 다시 입혀 주는 일이었다.
냉장고에 브루클린 맥주를 채워 넣어 두었다. 내가 빌린 맥주의 숫자를 세어 보니 모두 11병이었다. 흰색 달걀도 숫자를 맞춰 넣었다. 집 안의 먼지도 깨끗이 청소했다. 창틀에 묶여 있던 리본도 원래의 매듭대로 묶었다. 잠시 빌렸던 컵과 식기들도 형태와 색깔대로 찬장 안에 넣어 두었다. 이 집에 들어서기 전, 내가 보았던 원래의 풍경이 내 눈앞에 놓여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책에 밑줄을 쳤던 문장을 적어 놓았던 노트를 태웠다. 나는 웅크리고 앉아 불붙은 종이가 까만 재로 흔적 없이 사라지는 걸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가 『순수 박물관』 앞장에 적어 놓은 쉼보르카의 ‘끝과 시작’의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만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지나간 옛 사랑이여, 새로운 사랑을 첫사랑으로 착각한 점 뉘우치노라. 먼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이여, 태연하게 집으로 꽃을 사 들고 가는 나를 부디 용서하라.” 그 시의 마지막 구절은 “모든 전쟁이 끝날 때마다 누군가는 청소를 해야 하리”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책상 옆에 있던 그들의 휴지통을 깨끗이 비웠다.
스웨터를 뜨고 있는 동안, 메이가 수영이 서울로 ‘돌아가는’ 걸 기뻐한다는 얘길 전해 주었을 때, 나는 한 번도 그녀가 뉴욕에 살지 않았다는 걸 직감했다. 그녀는 잠시 뉴욕에 체류한 것뿐이었다. 서울은 그녀에게 언제든 ‘돌아가야 할 곳’이었고, 그녀의 고향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그것은 ‘뉴욕을 떠난다’라는 말로밖엔 설명할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돌아가는 것’과 ‘떠나는 것’이 이토록 다르다면 그것은 서울과 뉴욕 사이에 생긴 14시간의 시차만큼 돌연한 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지하철에서 그가 『순수 박물관』을 읽으며 흘렸던 눈물을 떠올렸다. 그는 어떤 장면에서 그토록 눈물이 났을까. 침대 위에 놓인 여자 스웨터를 바라보았다. 스웨터를 입고 편안하게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여자가 떠올랐다.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나는 그에게 마지막 작별 편지를 쓰듯 중얼거렸다.
나는 당신의 집을 떠나는 게 아니에요.
나는 이제 나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크리스마스이브 오전이었다.
첫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문장웹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