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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론과 인과론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3. 2. 11. 10:12

우연론과 인과론

 

김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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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삼촌의 귀향에 대한 얘기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집을 아주 예술적으로 지어 놨더라.”
   이런 말로 아빠는 운을 뗐다. 그 예술적인 집을 짓느라 6천만 원의 거금이 들어갔단다. 아이러니는커녕 동경이 십분 배어나오는 어조였다.
   “사는 것도, 뭐라 카꼬, 억수로 예술적이더만.”
   삼촌은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먹고 책상 앞에 앉는다. 최근에는 희랍어를 배우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전에는 텃밭을 가꾸고 오후가 되면 차를 몰고 읍내로 나간다. 늦은 저녁, 텃밭에서 거둬들인 것을 다듬고 다시 책상으로 간다. 어둠이 내리면 기다렸다는 듯 잠자리에 든다.
   “용태가 돈도 어북(어지간히) 벌었 놨는 갑더라. 딸들도 다 컸것다, 차도 있것다, 냉장고도 있것다, 에어컨도 있것다……. 옛날에 우리 살 때랑 같나…….”
   그 옛날, 그 자리에는 우리 집이 있었다. 부산의 달동네로 올라가기 위해 정든 고향집을 버린 아빠의 눈에 삼촌은 해탈한 지식인, 진정한 영웅이었다.
   엄마 얘기 속의 삼촌은 영 딴판이었다.
   “마누라도 없이 그래 혼자 불쌍하게 살더라.”
   예술적인 집은 졸지에 귀신이라도 나올 법한 폐가로 탈바꿈했다. 먹을거리가 풍성한 초여름도 시련의 도가니가 됐다.
   “혼자 저카고 있으니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 안 카나. 보리밥이나 콩밥에 오이나 고추 같은 거 그냥 생 걸로 먹고. 나보고 반찬이라도 해다 주라 카지만…….”
   이어지는 엄마의 말은 시동생의 뒤를 봐줄 수 없는 형수의 가식적인 변명이었다. 시부모 봉양은 물론 중고교생 시동생들의 뒤치다꺼리까지 도맡았던 젊은 맏며느리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 끝에 일반론도 하나 도출되었다.
   “인생 다 살아 봐야 안다 카더니, 용태가 저리 될 줄 우찌 알았겠노?”
   첩첩산중에 혼자 방치된 괴상한 중년 기러기. 청승과 궁상도 저 정도로 떨면 나름 예술이려나.

 

   삼촌의 운명에 우연론을 적용할까, 인과론을 적용할까. 옛 남자 친구의 소식을 들었을 때도 던져 본 질문이다.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결혼과 동시에 유럽으로 유학을 갔다가 학교를 다니는 대신 적도 한가운데로 떠난 남자. 우간다를 다녀온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그는 위도 25도 안팎, 커피벨트의 몇몇 나라를 오가며 커피콩을 사왔다. 공정무역이 그의 방랑벽에 명분을 제공해 준 것 같았다.

 

 

   2.

 

   금요일 오후, 걸레질하느라 바쁜 손에 메시지가 훼방을 놓는다.
   “전주 출장. 내일 일어나자마자 출발한다!^^”
   둘째 출산을 전후하여 착실하게 곪아 온 고름이 뭉툭한 손톱만 닿아도 터져버릴 것 같다. 말이 주오일 근무지, 영업사원에게는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어김없이 일이 있다. 상무 아들 결혼, 거래처 사장 딸 결혼, 생산 팀 부장 부친 사망……. 인도네시아 검수단 도착, 일본 바이어 도착, 호주 바이어 긴급 방한……. 합천 파이프 사고, 나주 파이프 사고, 홍성 파이프 사고……. 왜 모든 파이프는 주말을 앞두고 터질까. 수사적 표현이지만 처자식 먹여 살리려고 인생의 절반을 고속도로 위에서 보내는 남편이 딱한 것도 사실이다.
   욕실 문을 닫고서 게슈타포에게 들킬세라 조용조용, 조심조심 걸레를 빤다. 짧은 울음소리가 들린다. 후다닥 달려가 아직도 정신이 멍한 아이를 안아 올린다. 거의 동시에 핸드폰이 윙윙댄다.
   “새댁, 잘 지냈어?”
   주인 할머니의 용건인즉,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것이다.
   “이번에 우리 딸이 애들 교육 때문에 호주로 갔거든.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대. 추석 때 나오니까 그때 얼굴도 한 번 보고 계약서도 다시 쓰고 하면 좋겠는데.”
   남편과 상의해 보고 연락을 드리겠다고 했다. 그 참에 수압계 문제도 다시 꺼낸다. 세입자의 요구에 할머니는 예의 그 비굴할 정도로 불쌍한 저자세를 취한다.
   “그러게 내가 가서 한번 봐야 하는데, 돈 들어갈 일이 좀 많아야 말이지. 자식 많으면 바람 잘 날 없다고 우리 작은아들도 지금…….”
   이어 할머니의 사정이 쭉 이어진다. 전부 딱하기 그지없는 것들이다.
   원래 우리 아파트의 주인은 중국에 살았다. ‘우연이’라는 인상적인 이름에 복사된 주민등록증의 흐릿한 사진으로도 두드러지는 미모였다. 69년생 우연이가 캥거루와 코알라의 나라로 갔단다. 겸사겸사 커피콩을 사러 다니는 옛 남자친구가 69년생이었다.

 

   냉장고에서 어젯밤에 만들어 둔 당근 브로콜리 진밥을 꺼낸다. 끓인 물을 부어 찬기를 없앤다. 엄마가 부산을 떨자 아이도 흥분한다. 그러나 쟁반에 담겨 온 물그릇과 밥그릇을 보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밥숟가락을 입에 갖다 대니 고개를 도리도리 내젓는다. 한 손으로 머리를 쥐고 억지로 먹이려고 하자 소리를 지르고 몸을 비틀고 팔을 마구 내젓는다.
   “건우 밥 먹기 싫어? 그럼 엄마도 건우 밥 안 줄 거야.”
   모자는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대치한다. 잠깐 움직임을 멈추었던 아이는 한 손을 들더니 쟁반으로 가져간다. 그러고는, 엎을 줄 알았는데, 저리로 슬쩍 밀어내는 것이다. “으음!”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도리도리 내젓기까지 한다. 결국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엄마가 냉장고의 쪽문을 여는 모습을 보자 아이의 목소리와 표정이 금세 달라진다. “아, 아!” 격렬한 기쁨 뒤에 어설프지만 “치! 즈!” 소리도 들린다.
   치즈 한 장을 바닥내고 밥 반 공기를 비운 다음 나른한 포만감에 젖어 엄마 품으로 안겨드는 아이. 이 아이가 나의 둘째 아이 건우다. 아들이다. 첫 아이는 딸이고 이름은 우진이다. 우진이는 예정일보다 두 주 빨리 태어났고 8개월이 지나면서 걸음을 떼고 돌을 넘기고는 뛰어다녔다. 건우는 예정일보다 닷새 늦게 태어났고 십오개월이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기고 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생길까? 성별? 딸아이는 빠르고 남자아이는 늦다고들 한다. 순서, 즉 첫째냐, 둘째냐? 보통 첫째는 느리고 둘째는 빠른데, 그 이유는 말 그대로 둘째이기 때문, 즉 첫째의 행동을 모방하기 때문이란다. 몸집의 차이? 몸집이 작으면 발달이 빠르고 몸집이 크면 그 반대라고들 한다. 그러나 실제로 두 아이가 생겨나 자라 가는 과정은 이런 인과론을 지지해 주는 척하면서 의뭉스럽게 비켜 간다. 아니면, 엉성하고 느슨한 우연론의 망 밑에 촘촘한 인과론의 고리를 숨기고 있는 것일까.

 

   4시가 훌쩍 넘은 시각, 건우를 유모차에 태우고 집을 나선다. 우진이가 막 어린이집에서 나온다. 셋이 함께 근처 부동산에 들렀다가 놀이터로 간다. 우진이는 말을 탄다. 시커먼 때가 낀 노란 플라스틱 말인데 정말 볼품없는 생김새다. 그 옆에는 시소가 하나 있다. 열서너 살쯤 돼 보이는 소녀가 한쪽에 앉아 있다. 얼굴이 제법 예쁘장하게 생겼는데 어딘가 이상하다. 맞은편에는 늙은 엄마인지 젊은 할머니인지 헷갈리는 중년 여자가 앉아 있다. 둘이 함께 춤추듯 시소를 탄다. 그 소리에 맞추어 건우가 시나브로 잠이 든다.
   우진이가 말에서 자동차로 옮겨간다. 역시나 시커먼 때가 낀 볼품없는 빨간 플라스틱 자동차다. 시소를 타던 소녀가 큰 소리로 “엄마!”라고 외치며 뭐라고 옹알댄다. 순간, ‘다운증후군’이라는 말이 뇌리를 스친다. 임신 중에 받았던 각종 검사와 그때마다 정도의 차이를 두고 수반되었던 불안이 상기된다. 의학은 모든 것을 인과론으로 환원하지만, 본질상 그래야 하지만……. 소년들이 돌멩이처럼 굴러와 파란 시소와 노란 말과 빨간 자동차를 몽땅 차지한다. 모녀의 행복한 시소 놀이도 끝난다. 여전히 자고 있는 건우도 깨울 겸 유모차를 조심스레 밀며 슈퍼마켓에 간다.
   찬거리를 사는 동안 잠에서 깬 건우가 칭얼댄다. 허기가 진 탓도 있을 것이다. 진짜 허기가 졌고 자기가 허기가 졌음을 아는 우진이는 대놓고 짜증을 낸다. 애호박과 표고버섯과 두부를 유모차 밑의 광주리에 넣고, 칭얼대는 작은 아이는 등에 업고, 짜증내는 큰아이는 유모차에 태운다. 볼썽사나운 귀갓길이다.

 

   밤 9시를 넘긴 시각. 스무 평 남짓한 아파트, 우레탄 덮개 밑에 모래를 감춰 놓은 놀이터, 공터와 잔디밭과 나무 벤치가 있는 구청 앞, 매일매일 축산물과 수산물과 채소 중 하나를 싸게 파는 슈퍼마켓 사이를 오가며 그리는 동선이 마무리되었다. 어둠이 내렸고 아이들이 잠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고 아무 움직임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 이 상황이 너무 좋아 얼마간 그렇게 있다. 인스턴트커피 몇 알을 뜨거운 물에 녹인다. 코를 간질이는 뜨거운 기운과 향기, 혀끝에 와 닿는 옅은 커피 맛. 다시금,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고 아무 움직임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이 상황이 너무 좋다. 너무 좋아 아무데도 가고 싶지 않다. 아무데도 가지 않고 전주로 간 남편, 거창의 산골로 들어간 삼촌, 코알라와 캥거루의 나라로 떠난 69년생 우연이, 값싸고 질 좋은 커피콩을 찾아 우간다와 네팔과 페루를 오가는 69년생의 옛 남자 친구를 되는 대로 마구 생각한다.

 

 

   3.

 

   내 기억 속의 용태 삼촌, 즉 막내 삼촌은 항상 대학생이었다. 다른 삼촌들과는 달리 키가 훤칠 크고 몸매가 늘씬했으며 깨끗하게 면도한 얼굴에는 풍성한 턱수염과 구레나룻의 파르스름한 뿌리자국이 도드라졌다. 우리 집에 얹혀사는 처지임에도 삼촌은 왕자처럼 늠름하고 성주처럼 당당했다. 단층짜리 주택에 방 두 칸을 빌려 쓰는 우리 집에는 참 어울리지 않는, 향긋한 비누냄새를 풍기는 미남의 영문학도. 이 초상화를 완성하는 데 꼭 필요한 소품이 그의 손에 들린 한 권의 양서였다. 책은 주기적으로 바뀌었다. 그는 “햄릿”에 “맥베스”였고 “등대로” 떠나는 “율리시스”,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힌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었다.
   영문학도는 대학에 오래 머물렀다. “4월은 잔인한 달”로 시작되는 얄궂은 작품이 그의 연구 대상이었다. 석사논문을 준비하는 동안 삼촌은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이 년쯤 뒤에는 얼굴이 달걀처럼 갸름하고 쌍꺼풀이 크게 진 예쁜 언니와 결혼했다. 뽀얀 피부에 젖살이 다보록한 그녀는 삼촌 강좌의 수강생이었다.
   숙모가 뱃속에서 둘째를 키우고 있을 때 삼촌은 거의 사오 년간 붙들고 있던 석사논문을 끝냈다. 이른바 엄정한 심사를 거쳐 석사학위를 따고 박사 과정을 밟는 동안 그의 청춘도 저물어 갔다. 처자식이 딸린 삼십대 가장, 육아와 가사에 시달리는 서른을 목전에 둔 아내, 앞서거니 뒤서거니 올망졸망 커가는 두 딸, 방 두 칸의 전세 연립 주택……. 삼촌은 모든 희망을 박사논문에 걸었다. 일단 쓰기만 쓰면 박사논문이고 제출만 하면 학위를 따는 것이고 학위만 따면 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석사논문을 통해 엘리엇의 쓴맛 단맛을 다 보았다고 판단한 삼촌은 일찌감치 주제를 바꾸었다. 파고 또 파도 마르지 않는 샘물, 셰익스피어였다. 주제 하나를 잡아 몇몇 작품을 연구해 볼까, 아니면 한 작품을 골라 집중적으로 해부할까. 이 고민을 하는 동안 한 학기가 흘렀다. 아무래도 후자가 낫다는 결론에 도달, 작품을 고르기 시작했다. 비극과 희극과 로맨스와 역사극 중 어떤 걸로 할까. 돌고 또 돌아 저 유명한 「햄릿」으로 낙착되는 데 꼬박 세 학기가 지났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나는 삼촌 집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삼촌은 강의가 없는 날이면 하루 종일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었다. 삼촌의 책상 위에는 원서들이 여보란 듯 펼쳐져 있었다. 책장에 입추의 여지도 없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것도 전부 그렇게 두툼하고 묵직한 원서들이었다. 녹초가 되어 귀가하는 삼촌의 손에도 원서가 들려 있었다. 부질없이 손때를 탄 어딘가 처량해 보이는 『Hamlet』. “To be, or not to be…….” 어느덧 삼십대 후반으로 접어든 햄릿은 “사느냐 죽느냐”도 아닌, 그 문구의 해석을 담은 무수한 논문과 연구서를 정리하느라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었다. 그 사이 삼촌의 시간의 돌쩌귀가 왕창 어긋나 버렸다. “The time is out of joint.”
   몇 년이 지나도록 논문이 쓰이지 않자 삼촌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놈의 박사, 그놈의 교수는 남한테 주고 영어 강사로 살자, 그렇게 자본금을 모아 마흔다섯이 되기 전에 학원을 하나 세우자. 그러고서 애매하게 발가락 몇 개를 걸어 두었던 대학을 박차고 나왔다. 할아버지 수준의 지지부진한 늦깎이 연구생보다 여전히 젊은 축에 들어가는 관록 있는 강사가 몇 배는 더 상쾌해 보였다. 실제로도 그의 삶은 상쾌했다. 그럴수록 삼촌에겐 더 잘사는 동네, 더 넓은 아파트, 더 질 좋은 음식이 필요했다. 그 요구를 삼촌은 간당간당 만족시켰고 그 간당간당함을 즐겼다. 다른 변수가 없었더라면 그의 한 세월은 그렇게 끝났을까.
   ‘유나이티드 킹덤’에서 누군가가 날아왔다. 영문학도 아닌 영어학 전공에 교수법까지 공부한 데다가 어엿한 박사였다. 그런 자가 대학에 자리 잡는 것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학원 판에 뛰어든 것이다. 학원이 통째로 흥분했다. 삼촌은 자신의 성실함과 노회함,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의 입시제도에 대한 방대한 정보력을 믿었다. 그 자신감으로 ‘네이티브 스피커’나 다름없는 박사 강사와 맞섰다. 패배가 예정된 싸움이었다. 그럼에도 삼촌은 오랜 시간, 호기롭게 저항했다. 질기게 버팀으로써, 그리하여 참담한 파국을 맞이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듯. 정녕 서사는 몰락에서 시작된다.

 

   사십대의 삼촌은 거창 군민이었다. 그는 영강 근처의 새 아파트에 살면서 고물처럼 낡은 엘란트라를 몰고 거창 일대의 소도시를 돌아다녔다. 교육적으로 소외된 사람들, 적어도 그런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부산에서 이름을 날리던 명강사의 출현은 가뭄의 단비였다. 게다가 바람을 쐬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귀향한 것이라지 않나. 다들 나가려고만 하는 세상에서 다시 들어오는 데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지는 누구나 알았고, 이 점을 높이 쳐주었다. 영어 선생으로서 그의 주가는 나날이 치솟았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 삼촌은 비교적 건강한 생활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숙모의 얼굴은 형편없이 망가져 있었다. 커다란 두 눈은 허허로운 구멍처럼 덩그러니 뚫려 있었다. 부산 토박이인 그녀가 일거리도, 친척도, 친구도 없는 산간벽지에서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됐다. “너거 삼촌 평생 한 될까 봐 들어가긴 했지만 애들 대학만 가면 나도 거창 나올라고.” 삼촌은 그녀 옆에 헐렁하고 엉성한 자세로 앉아 초연과 달관의 표정을 지었다. 각각 엄마와 아빠를 쏙 빼닮은 두 딸은 부모의 찬란했던 한 시절을 다부지게 보여주려는 듯 너무나 예뻤다. 인간의 몰락과 상승의 찰나적인 접점을 포착한 것 같은 풍경에 눈이 시려 왔다. “거창에도 있을 건 다 있어요.” 큰 딸은 쌍꺼풀이 크게 진 영롱한 두 눈을 굴리며 이런 말도 했다.

 

 

   4.

 

   토요일 아침. 건우가 누나 뒤를 졸졸 따라 다닌다. 그러다 얼음망치 놀이를 하는 것처럼 갑자기 움직임을 멈춘다. 발끝을 살짝 들면서 다리 한쪽을 움찔하기도 한다. “엥!” 한 차례의 파고가 지나갔는지, 터질 것처럼 시뻘게졌던 얼굴빛이 원래대로 돌아온다. 잠시 뒤 아이는 엄마에게로 설설 기어오더니 엄마의 어깨를 잡고 엉성하게 선다. 다시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얼굴이 시뻘게진다. 조심스레, 격려하듯 아이의 등을 쓰다듬는 동안 두 번째 파고가 지나간다. 저만큼 기어가는 아이에게서는 막 나온 똥이 모락모락 연기처럼 냄새를 피워낸다.
   “엄마, 건우 응가했어!”
   우진이는 손뼉까지 친다. 엄마를, 엄마 젖을 빼앗아간 동생을 마구 할퀴고 싶어도 혼날까 봐 그러지도 못하고 분한 마음에 손만 부르르 떨던 녀석이 동생이 대변을 볼 때는 그렇게 신이 나는 모양이다.
   건우의 대변을 치우는 걸로 시작된 하루는 또다시 말과 움직임으로 채워진다. 아이들 아침을 먹이고 나도 먹고 아이들 목욕시키고 나도 씻고 청소를 하고 빨랫감을 싹 쓸어 세탁기 안에 넣고……. 어느덧 점심때다. 한숨을 가다듬고 전열을 정비하는 엄마를 향해 건우가 엉금엉금 기어온다. 내 어깨를 잡고 선 아이를 살포시 안아 준다.
   “엄마, 나도, 나도!”
   우진이가 옆에서 까불어댄다.
   “엄마 몸은 하나인데 둘을 어떻게 다 안아 주니?”
   큰아이는 금세 불퉁하고 시무룩해진다. 짧은 시간, 분노와 반항, 체념과 인내 사이를 오가다 후자 쪽으로 마음을 굳혔는지, 슬그머니 내 등 뒤로 와서 머리를 기댄다. 몸의 앞판과 뒤판에 아이 둘을 붙이고 있자니 묘하게 뿌듯하고 푸근한 느낌이다. 갑자기 건우의 몸에 힘이 들어가는가 싶더니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린다.
   “엄마, 오늘 건우 응가하는 날이야!”
   날도 덥고 양도 많아 다시 씻기지 않을 도리가 없다. 10킬로가 훌쩍 넘지만 아직 제 몸도 잘 못 가누는 사내아이를 두 번이나 씻기자니 힘에 부쳐 슬슬 성질이 난다. 이런 심사를 귀신같이 아는 건우는 또 건우대로 더 버둥거린다. 건우의 손에 크림 통 뚜껑을 쥐어 주고 간신히 기저귀를 채우고 나니 우진이가 크림 통에서 크림을 신나게 파내고 있다.
   “김우진!”
   그 일에 어찌나 몰입했는지 우진이는 몸을 부르르 떤다. 엄마의 성난 얼굴을 보면서도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는 투다. 그 사이 건우는 냉큼 몸을 뒤집은 다음 누나 옆으로 기어가고, 눈 깜짝할 사이에 어설픈 몸짓으로 크림 통에 손을 푹 집어넣는다. 나는 얼른 건우의 손에서 통을 낚아챈다. 그 반동 때문에 건우의 상체가 앞으로 수그러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자지러질 것 같은 울음이 터져 나온다. 순식간에 건우의 입이 피범벅이 된다. 건우를 안아 올려 달램과 동시에 손에 잡히는 대로 가제수건을 입안에 넣었다가 뺀다. 내 어깨도, 가제수건도 금방 피에 흠뻑 젖는다. 우진이도 옆에서 엉엉 울고 있다. 이 최악을 멋지게 장식해 준 것은 막 도착한 남편의 메시지.
   “마누라야, 흑흑, 늦잠 잤어. 저녁은 아빠랑 먹자^^;”
   목 놓아 울고 싶은 마음을 두 아이가 표현해 준다. 우선 건우에게 젖을 물린다. 금방 곯아떨어지는 걸 보니 상처는 크지 않은 모양이다. 그 사이 울음을 그친 우진이는 엄마의 젖무덤에 얼굴을 파묻은 채 새근대는 동생을 우수에 찬 눈으로 하염없이 지켜보다가 조용히 잠이 든다.


   남편이 집에 온 시각은 밤 9시경. 서울 근처에서 길이 막혔단다. 항상 이런 식이다. 길은 어디선가, 언젠가는 꼭 막힌다. 막히기 위해 뚫려 있는 것이 길이다.
   “그렇게 큰 교통사고는 처음 봤어. 뇌수가 터졌나 봐. 노란 물이 뇌수밖에 더 있겠어?”
녹초가 된 그의 얼굴에는 죽을죄를 지은 것 같은 표정이 드리워져 있다. 그 죄를 사해 달라는 듯 플라스틱 상자 두 개를 내놓는다. 그것은 놀랍게도, 오디였다. 한 알을 집어 입안에 넣어 봤다. 물컹하고도 달달한 기운이 입안으로 퍼지지만 어딘가 울적한 맛이다.
   “아빠, 이거 블루베리야?”
   누나의 물음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동생은 손부터 갖다 댄다. 손에 닿는 감촉이 신기한지 움찔 물러서더니 한 박자 쉬고 다시 손을 갖다 대는데 이번에는 제법 대담하다. 낮잠을 푹 잔 탓에 둘 다 눈이 말똥말똥하다. 박스 두 개를 냉큼 냉장고에 집어넣었지만 뭔가 마뜩치 않다. 시쳇말로 ‘즉취 식품’이 아닌가.

 

 

   5.

 

   7시경, 남편은 부장과 함께 전주의 대리점에 도착했다. 업무는 곧바로 끝났지만 먼 길을 온 김에 자기 처남을 한번 보고 가라는 대리점 사장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완주군에서 대규모 농장을 경영하는데 파이프 산업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었다.


   남편과 부장의 차는 GPS의 가르침을 받으며 푸르디푸른 논밭을 착실히 가로질러 갔다. 마침내, 황량한 들판에 숲 속의 오두막처럼 호젓하고 자그마한 집 한 채가 나타났다. 한 남자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짙은 구릿빛 얼굴, 그 얼굴에 새겨진 산 지렁이처럼 굵은 주름살, 앙상한 팔뚝과 손등을 휘감은, 툭툭 튀어나온 검붉은 핏줄……. 아무래도 대규모의 농장을 경영하는 농장주의 느낌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씨방, 매형이 전화했드라고. 어서들 오셔.”
   남편과 부장은 거실로 안내되었다. 선반과 탁자와 벽 곳곳에 아들딸과 손자손녀의 사진이 세워져 있고 붙어 있고 걸려 있었다. 공간 자체가 사진을 위해 존재했고 그것이 곧 역사였다. ‘빛바랜’이라는 수식어를 꼭 붙여야 될 것 같은 흑백사진 속의 올망졸망 촌스러운 아이들이 학사모로 자라났고, 그 학사모들이 제 짝을 만나 아들딸을 낳은 다음 컬러 가족사진의 주인공으로 거듭났다.
   농장주의 아내가 밥상을 차려왔다. 자반고등어 한 토막을 빼면 풀 천지였다. 부장은 황홀경에 들떴다.
   “요즘은 염분이 나쁘다고 자반고등어도 싱겁게 만들던데 이건 진짜네요! 된장국은 이거, 아욱인가요? 머위며 완두콩이며……. 다 유기농일 거 아닙니까.”
   “암, 그렇고말고. 옛날에야 부지런히 농약을 쳤지만 요새는, 씨방, 몸이 따라 줘야 말이지, 농약 치는 건 엄두도 못 내. 그러니까 그냥 지들이 알아서 크고 알아서 열매 맺고 그려. 절로 유기농이 된다니껴.”
   애매한 동문서답이 오가는 중에 풀밭 밥상이 나가고 술상이 나왔다. 인삼주, 복분자주, 매실주, 솔방울술, 왕벌술, 뱀술 등 열 개는 족히 넘는 장독에 가득 담겨 있는 술을 일일이 다 퍼온 것이었다. 풋풋한 솔방울이 알코올 속에 송골송골 맺혀 있고, 형체와 질감과 색감이 고스란히 보존된 벌 수십 마리가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차 있고, 알코올 속에 생매장된 얼룩무늬 뱀 한 마리가 대가리를 위로 쳐들고서 병마개를 향해 독을 뿜어내고 있었다. 부장은 그 술을 한 모금씩 홀짝홀짝 들이켜며 음미했고, 남편은 표정 관리를 하느라 애썼다.
   “각설하고, 여다가 대리점을 낼까 하는디, 씨방, 좀 도와들 줘.”
   “안 그래도 한동수 사장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정확히 어디에다……?”
   “여다가 낸다니께! 이게 다 내 땅이여. 작년에는 집도 새로 지었구만.”
   “아, 예……. 그래도 대리점을 내려면 우선 자본금이 많이…….”
   “나 돈 많이 벌었어, 씨방, 재산이 십억도 넘는당께. 우리 아들딸도 다 서울 살어, 씨방, 큰놈은 의사고 작은놈은 변호사고 큰딸은 교사고 작은딸은 인물이 정윤희 뺨치게 좋아서 판사한테 시집을…….”
   농장주의 목구멍에서 뱀술 냄새가 솔솔 풍겨 나왔다. 뱀이 허물을 벗듯 그의 말도 계속되었다. 인생의 각 시즌마다 조금씩 변주됐을, 꼭 압운을 맞춘 것처럼 질서정연한 자식 자랑은 숙연하고도 권태로운, 또 권태롭고도 숙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무리 그래도 파이프 사업이 생각보다 어렵고요, 파이프에 대한 전문 지식도 필요하고…….”
   “허, 이 양반이 참! 씨방, 뭘 해도 농사짓는 것보다 어렵깐디? 좀 잘 가르쳐줘 봐이, 씨방, 내가 칠십둘이라도 머리가 잘 돌아가는 편이여.”
   ‘칠십둘’이라는 나이에 부장은 눈앞이 아찔해지는 느낌이었다.

 

   농장주는 굳이 그들을 숙소까지 바래다주었다. 온갖 편의시설을 갖춘 민박집이고 엎드리면 코 닿을 데 있다고 했다. 도무지 코가 얼마나 길어야 할까. 남편과 부장은 어느덧 캄캄해진 논밭 사이로 난 시골길을 하염없이 걸어갔다. 종류별로 골고루 마신 술이 다 깰 정도였다. 드디어 자그마한 집 한 채가 나타났다. 문을 두드리자 쉰 살은 족히 됐을 법한 남자가 나왔다.
   “이 양반들 오늘 여기서 자야 쓰겄는디?”
   남자는 별다른 대꾸도 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가 얇은 잠바 하나를 걸치고 다시 나왔다. 농장주가 부장을 향해 말했다.
   “그래도 이 사람한테 숙박료는 줘야 쓰겄는디?”
   넋 놓고 있던 부장은 얼른 지갑을 꺼냈다.
   “저어기, 얼마나?”
   “좀 넉넉히 줘, 씨방, 한 삼 만원이나…….”
   창졸지간에 집을 뺏기고도 무덤덤한 기색이던 중년 남자는 지폐 세 장도 무성의하게 받아들었다. 그러고는 부장과 남편이 막 뚫고 온 시골길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부장은 안방에서 자고 남편은 마루에서 잤다. 일어나는 즉시 혼자 서울로 출발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눈을 떴을 때는 남쪽 나라의 뜨거운 아침 햇살이 얼굴을 사정없이 찔러대고 있었다. 아차! 시계를 본 남편은 벌떡 일어나 마당으로 나갔다.
   “이제 일어났는겨?”
   한 아주머니가 인사를 건넸다. 생면부지의 관계지만 우리 집에서 잤으니 가족보다 더 허물없는 사이라는 투였다. 그녀는 툇마루에 앉아 완두콩의 꼬투리를 벗기고 있었다.
   “읍내 나가는 버스 어디서 서요?”
   “저어기 전봇대 보이지? 저기서 옆으로 꺾으면 금방이여.”
   전봇대까지도 백 미터는 족히 넘어 보였다. 남편은 곧바로 가방을 들쳐 메고 마당을 나섰다.
   “벌써 가는겨? 한 11시는 돼야 오는디.”
   버스 배차 간격이 그렇게 길 수 있다는 사실이 서울내기인 남편에게는 부조리처럼 여겨졌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완두콩 더미를 헤적였다. 꼬투리를 벗기니 완두콩 다섯 알이 동화의 주인공들처럼 소복이 들어 있었다. 부장이 졸린 눈을 비비며 문을 열고 나왔다. 비슷한 시각에 농장주도 나타났다.

 

   부장과 남편은 점심을 얻어먹고 떠날 채비를 했다. 농장주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아참, 어젯밤에 내가 뭘 좀 했는데 말이여…….”
   순식간에 일회용 플라스틱 박스가 나타났다. 거의 검다고 할 만큼 짙은 보라색에 알이 포동포동 굵은 최상품 오디였다. 부장이 환호성을 질렀다.
   “아이고, 이 귀한 걸! 오디 아닙니까! 부모님이 양잠을 하셔서 집 주변이 전부 뽕나무밭이었거든요. 야, 거 참, 어릴 때 형이랑 오디 따먹고 입이며 손이 전부 시퍼레져 갖곤, 하하!”
   “어허, 씨방, 이 양반이 뭘 좀 제대로 아는구먼. 내가 어제 밤새 딴 거여!”
   농장주와 부장은 신이 나서 떠들어댔고 남편은 양미간을 찌푸렸다. 가느다란 초록색 줄기는 날카로운 칼날에 싹둑 잘린 쥐꼬리 같고 열매 부분은 기형이나 돌연변이 굼벵이에 색소를 입혀 놓은 것 같았다. 박목월의 시에서나 들어 본 오디, “뽕나무 열매”를 그날 처음 본 것이었다.
   남편과 부장이 차에 탔다. 농장주는 막 닫히는 창문에다 대고 간밤에도 곱씹었을 법한 얘기를 꺼냈다. 천기 누설하듯 반쯤 속삭이는 어조에 자신이 노회한 사업가임을 과시하려는 듯 눈도 찡긋했다.
“씨방, 대리점은 언제쯤 낼 수 있을까, 엉?”

 

 

   6.

 

   “그 할아버지한테 연락할 거야?”
   남편은 바지호주머니를 뒤적여 지갑을 꺼냈다. 명함을 잔뜩 꽂아 둔 칸에 줄무늬 종잇조각 하나가 생뚱맞게 들어 있다. 옛날 공책에서 찢었는지 냄새가 난다. 그의 이름과 주소와 전화번호가 또박또박 적혀 있는데, 볼펜 똥이 시커멓게 묻어 있다.
   “뭐? 부장은 아예 전화도 받지 말래. 혹시라도 대리점 차렸다가 노후 비용 다 날리면 어떡하느냐고.”
   이렇게 말하며 남편은 자기 배에 붙이다시피 안고 있는 건우를 내려다본다. 일요일 오전, 온 가족이 다함께 마트에서 장을 보며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는 중이다.
   우리 옆을 지나가던 중년 여자들이 쑥덕댄다. “주중에는 실컷 일하고 주말에는 애보고……. 우리 아들도 저런 대접 받을까 봐 장가를 못 보내겠어.” “에이, 저런 사위 보면 되잖아?” “난 아들만 셋이잖아.”
   중년들의 대화에 귀가 간질간질하고 눈도 따끔거린다. 이런 불편함에 종지부를 찍듯 시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온다.

 

   작년에도 둘째 출산을 핑계로 쉬었으니까 올 추석 때는 꼭 성묘를 가야 한다는 요지다. 곁다리 얘기처럼 지난 주말에도 안 왔는데 이번에도 안 오느냐고 묻는다. 물김치 새로 담갔다, 소 꼬리뼈 고아 두었다, 장조림도 해놓고 멸치도 잣을 넣어 함께 볶아 뒀다 등의 말도 이어진다.
   “애들 먹기 좋게 소금도 거짓말같이 조금만 넣고…….”
   소와 소의 꼬리와 그 꼬리의 뼈 대목부터 대략 놓고 있던 정신 줄을 얼른 붙잡는다.
   “어머니, 오디 드실래요?”
   “어?”
   “애들 아빠가 출장 갔다가 오디를 얻어 왔는데요, 어머니는 뭔지 아시죠?”
   간만에 고부간의 대화가 활기를 띤다. 그 와중에 주말을 통째로 희생하느니 지금 후다닥 움직이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어마어마한 깨달음처럼 뇌수를 뒤흔든다.

 

   시어머니는 웬일로 손자손녀도 보는 둥 마는 둥 오디부터 찾는다. 불과 삼십여 분 거리지만 이 한여름에 냉장고에서 아이스박스로, 거기서 다시 실온으로 옮겨오는 동안 오디는 형편없이 망가져 있다.
   “아이고, 아까워 죽겠네. 그러게 가까이 살면 내가 어젯밤에 바로 처리를 했을 텐데…….”
   진짜 아까운 건 응급처치를 못 받아 망가진 오디가 아니라 먼 곳으로 장가를 보낸 아들이다. 그 아들과 그 아들의 가족 앞에서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을 방치해 두고 있는지 보여주겠다는 듯 그녀는 이내 행동에 돌입한다.
   불에 덴 살갗처럼 짓물러버린 오디는 살림의 대가의 손 안에서 마파람에 게 눈 사라지는 속도로 씻김과 선별 작업을 거쳐 믹서 안으로 들어간다. 바싹 갈린 오디는 블루베리와 체리를 섞어 놓은 것 같다. 거기에 우유를 붓고 얼음을 몇 개 띄우자 과일 주스가 따로 없다. 두 아이는 신바람이 나서 날뛴다. 남은 오디는 시댁의 냉동실로 들어간다.

 

 

   7.

 

   욕실 문이 닫힌다. 따뜻한 물이 흘러나와 욕조를 데우며 사라진다. 무더운 여름임에도 물은 따뜻한 것이 좋다. 욕실에 뽀얀 증기가 어린다. 닫힌 공간에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 바로 알몸으로 욕조 안에 앉아 샤워기의 물세례를 받는 이 시간이다.
   청신한 초록빛의 뽕나무 숲 위로 검푸른 어둠이 내린다. 시커먼 천장에 환한 구멍처럼 뚫린 달의 비호를 받으며 칠순을 넘긴 촌부가 오디를 따고 있다. 뽕나무 사이를 누비는 솜씨가 탄복할 만하다. 촌부의 밤은 어느덧 거창의 밤으로 바뀐다. 시퍼런 어둠이 내린 산비탈, 저승사자처럼 우뚝 선 나무들을 바라보며 초로로 접어든 영문학도가 희랍어 알파벳을 외우고 있다.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시그마, 오메가……. 그 풍경화 속의 나뭇가지 사이에 코알라가 매달려 있다. 만년 영문학도의 고독을 완성해 준 침엽수가 유칼립투스로 바뀐다.
   어제만 해도 엄마 똥을 먹던 아기 코알라가 엄마 등에 찰싹 붙어 있다. 엄마와 아기 코알라는 슬며시 잠드는 듯, 그 잠에서 슬며시 깨어나는 듯, 무심히 죽어가는 듯, 그 죽음에서 무심히 부활하는 듯 우아한 춤을 춘다. 그 사이사이,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늙은 유칼립투스 이파리를 먹는다. 옆집 코알라들이 이사를 한다. 땅바닥으로 내려가지도 않고 공중에서 유칼립투스를 갈아타는 기술이 거의 신공, 공중부양 수준이다. 휘청대는 유칼립투스나무 가지 사이로, 어딘가 뜨거운 나라에서 커피콩을 고르는 옛 남자 친구가 출몰한다. 얼핏 그의 얼굴이 보이려는 찰나.

 

   참을 만큼 참았다는 듯 욕실 문이 활짝 열리면서 우진이가 뛰어 들어온다. 문 앞, 깔개 위에는 건우가 엄마를 기다리며 떡하니 앉아 있다. 누나가 공습경보를 발령하자 즉시 두 손을 들고 엉덩이를 든 채 무릎을 세운다. 곧 일어설 기세, 아니 일어서다가 앞으로 꼬꾸라질 기세다. 딱딱하고 미끄러운 욕실 바닥에 얼굴이라도 찧는다면! 이런 말들이 머릿속을 획획 오가는 짧은 순간, 고함이 터져 나온다.
   “애들 안 보고 뭐해, 정말!”
   희뿌연 증기가 의식의 흐름처럼 자욱이 드리워진 가운데, 내 눈앞에서 어른거리던 칠순의 촌부와 초로의 영문학도와 유칼립투스를 갈아타는 코알라와 커피콩을 고르는 남자는 온데간데없다. 알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을 수건으로 닦아내는 둥 마는 둥 얼른 건우를 안아 올린다. 마루에는 장난감과 주방도구와 걸레통과 옷가지가 한껏 널브러져 있다. 계속 졸다가 이제 막 눈을 번쩍 뜬 남편은 아직도 마누라의 호통이 잘 접수되지 않는 눈치다. 누적된 피로와 수면부족 때문에 시뻘겋게 충혈된 그의 눈에 문자 몇 개가 제멋대로 찍힌다. “여기가 묵시록이다” 혹은 “Welcome to the real world.”

 

   아침부터 신경질을 부린 대가가 참혹하다. 우진이의 체온이 급속도로 상승한다. 37도를 넘긴 열은 순식간에 38도를 뛰어넘는다. 많이 보채지는 않지만 저녁 무렵에는 39도에 육박한다. 해열제를 먹이고 가제수건을 미지근한 물에 적셔 이마며 목덜미, 겨드랑이를 닦아 준다. 하강한 열은 네다섯 시간이 지나자 또 상승하더니 기어코 40도를 찍는다. 동틀 녘, 아이의 몸은 땀방울 하나 흘리지 못하고 마른 나뭇잎처럼 바싹바싹 타들어가며 부지깽이처럼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월요일, 새벽같이 소아과로 달려간다. 입안이 헐고 목 안에는 하얀 물집이 잡혀 있다. 역시나 또 구내염이다. 배가 고파 음식을 입안에 넣으면 엉엉 울음이 나온다. 그럼에도 배고픔을 해소하려고 힘껏 음식을 삼키면 이제는 목구멍이 아파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엄마, 나, 아파, 아파…….” 아이는 엄마보고 어떻게 좀 해달라고 계속 보채다가 까무러치듯 잠이 든다. 아플까 봐 차마 다시 입안에 넣지 못한 곰 젤리를 쥔 채로.
   이틀쯤 지나자 우진이는 열이 가셨다. 그동안의 치열했던 전투를 증명하듯 배와 등에 좁쌀 크기만 한 붉은 반점이 울긋불긋 피어난다. 열꽃이 만개하자 밥 한 공기를 바닥내고 곰 젤리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숟가락으로 퍽퍽 퍼먹는다.
   한숨을 돌리자니 건우의 몸에 열이 오른다. 평생 처음 겪는 바이러스의 침입에 몸이 얼마나 놀랐는지 눈동자가 풀리고 끈적끈적 신음소리를 내며 온몸을 부들부들 떤다. 숨이 곧 끊길 것 같은 무서운 경련이 10분, 어쩌면 20분은 족히 지속된다. 우진이에게서는 본 적이 없는 현상에 오장육부가 다 뒤틀린다. 허겁지겁 응급실로 달려가니 경련은 멎어 있다. 그러나 열은 여전히 높아 해열 주사를 놓는다. 건우의 울음이 귀청을 찢어 놓을 것만 같다. 평생 처음으로 목이 잠길 만큼 운 아이는 비몽사몽간에도 악착같이 젖을 빨아댄다.
   힘겨운 하루를 마감한 다음날, 건우는 정상 체온을 되찾았다. 경련은 흔적도 남아 있지 않지만 시종일관 보챈다. 함께 보채는 남매를 상대하느라 나는 나대로 보챔을 경험한다. 뒤틀렸던 오장육부가 제자리를 찾는지, 식은땀을 뻘뻘 쏟고 방과 화장실을 오가며 구토와 설사를 반복한다. 남편은 지방 출장 중. 그것도 경기도 어디도 아닌 합천에 가 있다. 결국 두 아이를 할머니에게 맡겨 놓고서, 어제 아이가 누워 있던 응급실의 그 침대에 누워 수액과 혈관주사를 맞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 주가 사라지고 없다. 남편의 한 주도 만만치 않다.

 

 

   8.

 

   부장의 염려대로 다음 주가 시작되자마자 완주군 농장주가 전화를 걸어왔다. 얼결에 전화를 받은 남편은 사건 아닌 사건을 수습하느라 진땀을 뺐다. 이삼 일 뒤 걸려온 전화는 아예 받지 않았다.
   하루 이틀이 지나는 사이 남편은 오늘도 무사히 지나갔다는 생각도 하지 않게 되었다. 잊힌 농장주를 대신하듯 남쪽에서 태풍이 올라왔다. 나주가 쑥대밭이 됐다는 기사를 보자 문득 완주가 생각났다. 지갑을 열어 보았다.
   한영수, 전라남도 완주군 ***, 010-***-***.
   고도로 상큼한 명함이었다. 안부전화라도 해볼까. 그러나 오디 박스를 건네주며 눈을 찡긋하던 표정이 떠올라 이내 아서라 싶었다.

 

   볼라벤의 소멸과 함께 다시 출장 인생이 시작됐다. 운전대, 카페인이 다량 함유된 각성제, 고속도로, 휴게소. 내가 팔에 링거를 꽂고 있을 때 남편은 부장, 합천 거래처 사장과 함께 해인사 근처 음식점에서 산채 정식을 먹고 있었다. 같이 나온 자연산 송이버섯의 맛이 일품이었다. 멀찍이 앉아 있던 할머니가 직각으로 굽은 허리를 움직이며 어기적어기적 다가왔다.
   “더 먹을라나?”
   이번에 나온 송이의 양은 처음 것의 서너 배는 족히 됐다. 구운 송이는 물론 그 물까지 다 받아먹었다. 그러나 나른한 포만감은 계산서 앞에서 경악으로 바뀌었다.
   “어, 그거 서비스 아니었어요?”
   “젊은 양반들이 미쳤나, 요즘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노?”
   할머니는 직각 허리를 용케 잘 움직이며 천연덕스레 돈을 받아 챙겼다.
   〈고바우식당〉을 나와 노래방으로 향하는 중에도 부장은 계속 투덜댔다.
   “촌 인심이라서 후한 줄 알았더니, 무슨 귀곡산장이냐, 꼬부랑 할머니가 우리를 홀린 거잖아, 원. 그나저나 도우미가 있어야겠죠, 사장님?”
   부장의 선심에 거래처 사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대구에서 불러와야 되는데, 출장비가…… 부장님이 내실라우?”
   시커먼 노래방 안, 도우미도 없이 시커먼 남자들만 엉거주춤 설쳐대니 분위기도 영 침침했다. 일찌감치 자리를 파한 남편과 부장은 오늘따라 웬일로 문을 연 인근 여관으로 향했다. 갑자기 사나워진 바람을 타고 굵은 빗방울이 우박처럼 떨어졌다.


   〈만봉장〉. 낡은 4층짜리 건물 옆에는 건물보다 더 낡은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텅 빈 여관을 홀로 지키고 있는 주인의 차였다. 투숙객이 없어 방도 골라잡을 수 있었다.
   2층. 문을 열자마자 텔레비전이 눈에 들어왔다. 두툼한 몸체며 목재 틀에 새겨진 ‘Gold Star’라는 문자며 영락없이 골동품이었지만 멀쩡히 잘 나왔다. 남편은 불을 끄고 텔레비전만 켜놓은 채 침대에 누웠다. 장마철에 제대로 말리지 않은 빨래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가 가득했다. 에어컨은 다이얼을 돌리는 식이었는데, 냉방은 고사하고 제습도 안 됐다. 남편은 창문을 살짝 열었다. 창밖의 비바람이 여관방 벽을 뚫고 들어올 기세로 거칠었다. 남편의 눈꺼풀 위로 낡은 여관방의 어둠이 드리워지고 그 위로 간간이 ‘골드 스타’의 불빛이 번득거렸다. 거세고 대범한 비바람 소리와 윙윙대는 잡음 속으로 뭔가 분절적인 말도 들려왔다.
   “태풍 볼라벤에 이어 태풍 덴빈이 지금 경상남도 거창을 지나고…….”
   남편은 아내, 즉 나의 고향이 거창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맞다, 아까 거창을 지나왔지…… 참, 아무것도 없는 그런…… 촌구석에도 사람들이 살고……. 이런 상념과 함께 의식이 완전히 명멸하기 직전의 황홀한 찰나를 짧고 날카로운 기계음이 망쳐 놓았다. 남편은 입안에 막 고인 침을 추슬렀다. 역시 대리운전이었다. 10시가 다 됐음을 알려주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남편은 다시 등이 바닥에 닿기가 무섭게 고된 행군을 마친 군인처럼 곯아떨어졌다. 이번에는 길고 긴 음악소리가 단잠을 부숴 놓았다.
   “이봐, 김 대리, 씨방, 난데 말이야, 알지? 나, 한영수?”
   완주의 농장주였다. 왕벌과 솔방울과 뱀 등 각종 술 냄새가 한꺼번에 풍겨 나왔다.
   “젊은 사람이 말이야, 인생 그렇게 살면 못 써!”
   말끝을 그윽하게 끌며 거국적인 말로 입을 연 농장주는 평생 쌓인 울분을 토로했다. 걸쭉하게 재구성된 그의 전기의 말미에 소일삼아 파이프 대리점을 경영하는 노년의 풍경이 펼쳐졌다. 남편은 졸지에 소박하고 착실한 촌부의 꿈을 잔인하게 짓밟은 질 나쁜 깡패, 양아치가 되었다. 그러나 어리둥절한 미안함과 본능적인 짜증 사이를 오가다가 후자 쪽으로 폭발해 버렸다.
   “할아버지, 지금 누구한테 신세타령이세요? 보자보자 하니까 정말! 나이 많은 게 무슨 유세예요?”
굳이 이런 말까지 내뱉은 것은, 누적된 수면부족을 해갈하려는 순간, 막 진입에 성공한 잠의 세계로부터 느닷없이 호출당한 까닭이었다. 농장주는 뜻밖의 응수에 당황한 나머지 한마디 대꾸도 못 했다.
   남편은 다시 잠을 청했으나 잠도 성질이 났는지 좀처럼 다시 찾아와 주지 않았다. 캔 맥주 하나를 마셨다. 몸이 묵직하고 머리가 알딸딸하고 눈앞이 침침해졌다. 그럼에도 잠은 들지 않고 오히려 늙은이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자책감이 커졌다. 혹시 무슨 몹쓸 짓이라면 하면 어떡하지. 이런 염려에 스마트폰을 잡는데 갑자기 잠이 왕림해 주었다.

 

 

   9.

 

   토요일 오후, 아파트 근처 복덕방. 그녀, 69년생의 우연이가 나타났다.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참 예쁘다. 차분하면서도 이지적인 표정과 몸가짐도 눈에 들어온다. 육아와 살림의 최전선에서 연일 참혹한 전투를 치르는 전업주부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선망이 꿈틀댄다.
   “애기 너무 예쁘네요. 안아 봐도 돼요?”
   그녀는 내 표정을 잠시 살핀 다음 건우를 조심스레 안아 올린다.
   “낯가림도 안 하네요? 어쩜, 웃는 것 좀 봐. 돌 지났어요? 애 키운 지 너무 오래돼서…….”
   건우와 달리 아기 때부터 낯가림이 심했던 우진이는 지금도 내 옆에 꼭 붙어서 눈알만 굴린다.
   “돌이 한참 지났는데도 아직 못 걸어요.”
   “지희도 그랬잖아? 나중에는 다 잘 걸으니까 걱정할 것 없어, 새댁.”
   일전에 통화한 주인 할머니가 끼어든다. 꾸부정한 허리를 받치고 있는 삭정이처럼 마른 두 다리가 양옆으로 애매하게 벌어져 금방이라도 무너질 기세다. 살과 뼈를 팔십여 년의 세월에 충실히 헌납했음을 보여주는 얼굴도 새삼스럽다. 쭈글쭈글한 얼굴 한가운데로 진분홍색 립스틱이 기세등등하게 굴며 입술의 기를 꺾는다. 그악하고 왁살스러운 노파의 얼굴에서 순간순간 우연이의 모습이 잎사귀에 이는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다.

 

   갱신한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있을 때 한 남자가 헐레벌떡 복덕방 안으로 들어온다. 삼십대 중반, 배가 둥그렇게 나오다 못해 이제는 옆으로 지긋이 퍼져 가는 전형적인 회사원. 양복바지는 접촉 부위마다 주름이 가 있고, 그 사이로 반들반들하니 때가 앉아 있고, 와이셔츠 소매는 걷어 올리고, 맨 위의 단추 두 개는 풀려 있고, 넥타이는 둘둘 말린 채 바지 주머니 안에 들어가 있다. 그리 덥지도 않은데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고 고불고불한 머리카락이 땀범벅이 된 관자놀이 주변에 들러붙어 있다.
   “아빠다!”
   “아빠, 빠, 바, 밥!”
   두 아이가 듀엣처럼 화음을 넣는다. 정말 감격한 건 오히려 내 쪽이다. 어제 오후에 통영으로 출발한다고 할 때 이미 체념한 터였다. 아빠를 보자 안심이 되는지 우진이가 마침내 입을 연다.
   “아줌마, 캥거루 나라에서 왔어요?”
   “어? 그런데?”
   “아줌마, 캥거루 봤어요?”
   “응.”
   “아줌마, 코알라는 봤어요?”
   “아니. 코알라는 외곽으로 나가야 볼 수 있거든.”
   “외곽? 그런 말, 나는 몰라요.”
   “코알라는 멀리, 숲 속이나 야생동물 공원에 산다는 얘기야.”
   아줌마가 방실대며 대꾸를 해주자 우진이도 자꾸 질문거리를 생각해 낸다.
   “아줌마, 캥거루 고기 먹어 봤어요? 코알라 고기도 먹을 수 있어요? 동물은 다 고기예요? 아줌마, 미어캣도 거기 살아요?”
   우진이의 질문은 천일야화처럼 이어진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외식, 만찬이 따로 없다. 남편의 통영 얘기는 간장 양념에 총총 썰어 넣은 쪽파 같다.
   “오줌은 여 아무데나 싸고 큰 거 마려우면 우리 집으로 오이소, 라고 하는 데 미치는 줄 알았어. 무슨 방이 화장실도 없냐.”
   숙박료 2만 원. 처음에는 너무 싸다고 생각했지만 그럴 만했다. 성인 남자의 몸 하나만 간신히 들어갈 만한 크기의 쪽방에 화장실은커녕 수도시설 자체가 없었다. 남편은 손도 제대로 씻지 못하고 반쯤 실신하듯 잠이 들었다가, 새벽녘 눈을 뜨자마자 자신이 밤을 보낸 공간의 비루함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후다닥 짐을 챙겼다. 그리고 오줌은 “여 아무데나 싸고” 일단 차를 몬 다음 “큰 거”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해결했다.
   “부장님도 진짜, 그쪽에 마땅한 숙소가 없다는 말도 안 해준 거야. 거기에 비하면 완주나 합천은 완전히 양반이더라고.”
   “아참, 그 오디 할아버지는 어떻게 됐어?”
   “우리 경쟁사로 옮겨갔대. 걔네들, 순 양아치거든.”
   남편의 얘기가 더 이어진다. 대리점을 내주고 양아치 소리 듣는 이유가 잘 납득되지는 않는다.

 

 

   10.

 

   추석을 일주일 앞둔 주말, 함안에 성묘 가는 날이다. 외갓집 성묘도 겸하기로 했다.
   남편의 회사 차로 시댁 도착. 만나기로 한 시각은 7시였으나 미혼의 시아주버니와 시동생은 샤워 중이다. 온 가족이 6인승 차에 탔을 때는 8시 15분. 남편의 회사 차는 시동생이 몰기로 한다. 한편 이쪽, 시아버지 차의 운전대를 잡은 것은 시아주버니다. 그 옆에는 시아버지가 앉고, 그 다음 열에는 나와 남편이 두 아이를 끼고 앉고, 마지막, 다락방과 같은 느낌의 구석 자리에는 시어머니가 앉는다. 이런 식의 배치가 된 것은 손자손녀와 한 차에 타려는 시어머니의 열망, 그러면서도 아이들을 엄마와 아빠 옆에 앉히려는 그녀의 배려 덕분이다. 오만 사람 고생을 다 시키면서까지 굳이 친정 쪽 성묘도 가겠다는 며느리에 대한 불만을 우아하게 푸는 셈이다.
   오후 2시경, 시아버지의 고향 도착.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토를 해대던 우진이는 땅바닥에 발을 내딛자마자 쌩쌩, 건강해졌다. 막 선잠을 깬 건우는 불쾌감도 잠시, 평생 처음 보는 특이한 풍경에 격렬한 호기심을 보인다. 주름 가득한 얼굴에 함박웃음을 머금고 자기를 안는 사람에게는 방실방실 미소로 화답한다. 이 사람은 시아버지의 당숙모다. 그녀는 해마다 이맘때면 추어탕 밥상을 차려 놓고 우리를 맞이한다. 동네어귀의 도랑에서 잡은 추어와 직접 가꾼 채소와 방아를 넣고 끓인 귀한 음식이다. 민어 조기 구이, 오이소박이, 가지나물 무침, 부추전과 같은 평범한 반찬도 토속적인 맛깔스러움을 뽐낸다.
   “당숙모, 화장실도 개조하셨네요?”
   이른바 통시가 있던 자리에 세면대와 양변기를 갖춘 어엿한 신식 화장실이 들어섰다. 얼기설기 엮어 세워 둔 싸릿대도 걷어내고 철문도 하나 달아 놓았다. 이런 변화 때문에 자그마한 곁채가 오히려 생경하다.
   “엄마, 그 귀신 할머니 아직 있을까?”
   우진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척 문고리를 톡톡 두드린 다음 문을 연다. 전래동화처럼 늙은 꼬부랑 할머니는 언제 죽었는지 온데간데없고 온갖 잡동사니가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차 있다.
   식후의 성묫길. 마을 뒤쪽, 좁다란 계곡 하나를 끼고 잡초만 무성한 넓은 밭이 보인다. 조만간에 채석장이 들어온다고 한다. 좀 더 들어가자 나지막한 언덕이 나온다. 봉긋 솟은 두 개의 봉분 주변에는 시할머니를 묻은 날 심었다는 백일홍나무가 무던히 잘 자라고 있다. 시골의 따가운 햇볕을 받으며 무덤 앞에서 보내는 시간은 길어야 일이십 분이다.

 

   화창한 오후, 우리는 소담한 시골길을 벗어난다. 우리, 즉 나와 남편과 우진이와 건우. 추수를 앞둔 벼들의 빛깔과 광택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고향 땅을 밟는다, 라는 말이 선사하는 설렘도 크다. 그러나 차가 국도의 허리를 자르고 고속도로로 들어서자 속이 메슥거리고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초로의 영문학도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이제 막 ‘예술적인 집’에 당도한 그의 형과 형수, 즉 나의 부모의 왁살스러운 소리도 들린다. 우진이의 몸을 꽃밭삼아 활짝 피었던 열꽃과 건우의 의식을 앗아갔던 경련이 동시에 내 몸을 덮칠 것 같다. 불현듯, 아무데도 가고 싶지 않다.

 

 

   《문장웹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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