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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교육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12. 25. 11:58

 

 

인간 교육

 

윤보인

 

 

  밤의 놀이터는 고요하다.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다.

   밤의 놀이터는 불온하다. 지나가는 개조차 보이지 않는다.

   놀이터에서 시소를 탄다. 그네를 탄다. 철봉에 매달린다. 거꾸로 매달려 세계를 바라본다. 멀리 교회의 불빛이 보인다. 놀이터 건너편에는 교회가 있다. 간혹 찬송가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를 나는 가만히 듣는다. 가끔 의자에 누워서 잠을 청한다. 의자가 길어진다. 의자가 거대해진다.

   집에서 자는 것보다 놀이터 의자에서 자는 게 더 편할 때가 있다. 어둠이 다가왔다가 사라진다. 간혹 쓰레기통 옆에 숨어서 잘 때도 있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을 최대한 늦춘다. 할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자주 나를 때린다. 그럴수록 나는 더 삐뚤어진다. 반항을 한다. 할머니는 더 세게 때린다. 내 마음에서 증오라는 감정이 생겨난다.

   할머니를 보면서 나는 악마를 떠올린다. 악마는 멀리 있지 않다. 가족이라는 단어로 함께 묶인다는 것. 그것을 거부하고 싶다.

   할머니는 부모 없는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들다고 말한다. 자신은 점점 늙어 가고 아이는 점점 버릇이 나빠진다고.

   할머니에게 매를 맞고 나면 나는 밖으로 나간다. 공터로 간다. 놀이터로 간다. 텅 빈 곳으로 간다. 거지가 다가와 나에게 손을 내민다. 하지만 줄 게 없다. 결국 거지는 놀이터에서 잠을 청한다. 의자가 점점 거대해진다. 점점 길어진다.

   거지는 나에게 어린이라고 말한다. 못생긴 어린이. 버림받은 어린이. 추방된 어린이라고. 어느 것이든 상관없다. 거지는 집에 들어가서 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집으로 가지 않는다. 밖에서 떠도는 게 더 편안하다. 그게 내 운명인지도 모른다.

 

 

   거지는 놀이터를 떠난다. 어디로 가는 걸까? 공원? 지하도? 쉴 곳을 찾아서 헤매는 걸까? 나는 조용히 집으로 돌아온다. 할머니는 간밤에도 나를 찾지 않았다. 누군가 나를 기다려 준다면 그토록 오래 밖에서 서성이지 않을 텐데. 지난밤처럼 그렇게 의자에 꼼짝없이 묶여 있지도 않을 텐데.

   의자가 아니라 거대한 구름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의자가 아니라 거대한 침대라고 생각했다.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는 밤새 기도를 한다.

   돈을 많이 벌게 해주시옵시고…….

   기도는 계속된다. 그러나 노인네가 청하는 간절함을 나는 믿지 않는다. 신이 있다는 걸까? 대체 있다는 걸까?

   할머니는 결국 짐을 챙긴다. 봉사활동을 하러 간다. 함께 떠날 생각 없느냐고 할머니가 묻는다. 그러나 나는 가지 않는다. 앞으로도 봉사활동은 안 하게 될 것이다. 되도록 이기적으로 살 것이다. 훗날 돈이 생긴다 해도 기부나 자선과는 관계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건방진 어른이 될지도 모른다. 내가 배운 방식대로 상대를 경멸하고 모욕할지도 모른다.

   마귀 같은 것.

   할머니는 내게 말한다.

   네 부모는 감옥에 있어!

   부모에 대해선 아는 게 없다.

   다만 그들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것밖에는. 언젠가 한번쯤 그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반항적이고 불길한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다. 한없이 초라한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다.

   그들과 함께 한 침대에 묶이고 싶다. 그들이 내게 동화책을 읽어 준다면. 착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따뜻한 세계를 알려준다면.

   그들은 지금 세상 어딘가에 숨어 있다. 그러니 주눅 들 필요 없다.

   먼 훗날 의자 만드는 사람이 되어도 좋겠다. 아가들을 의자에 묶어 두고 싶다. 먼 훗날 테이블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도 좋겠다. 그 앞에서 와인을 마시고 싶다. 미래를 생각한다. 언젠가 다가올 날들을. 부서질 날들을.

 

 

   아직 나에겐 많은 친구들이 있다. 뚱뚱한 아이, 홀쭉한 아이, 부잣집 아이. 그 아이들을 보지 못한 지 꽤 되었다. 학교를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내키면 학교에 가고 가기 싫으면 가지 않는다.

   담임은 늘 나를 걱정한다. 가난으로 점철된 아이라서? 누군가 나를 연민 어린 시선으로 본다는 것. 때로는 그게 버겁다. 너에게 부모가 없다니. 너무 슬픈 일이다. 그토록 힘든 상황에서 혼자 싸워야 하다니.

   부르주아인 담임은 나를 쳐다보면서 들고 있던 고가의 핸드백을 뒤로 감춘다. 그녀가 압구정동과 청담동 일대를 돌아다니며 쇼핑한다는 걸 반 아이들은 알고 있다. 구두와 지갑, 심지어 스타킹까지도 고가를 선호한다는 걸 다 알고 있다.

   어느 날 담임은 왕십리를 지나가다가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이 동네에 산다고요? 이렇게 가난한 동네에 살 수 있나요? 담임은 그 얘길 하면서 다른 선생 앞에서 호들갑을 떨었다고 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고 말았다.

   가난한 동네에도 아이들이 모여 살고 때리는 부모 밑에도 아이가 살고 쓰레기로 가득 찬 곳에도 아이들이 모여 산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이따금 내가 밖에서 잠을 청한다는 걸 알면 담임은 무슨 말을 할까?

   어쩐지 너를 볼 때마다 슬프고 불쾌했다. 결국 이런 것이었다니. 너를 어쩌면 좋니? 그렇게 말할까? 그러나 동정은 필요 없다. 눈물도 연민도 거둬 주길 바란다. 다만 나에게 몇 푼의 돈을 쥐어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해질녘이면 할머니가 너를 매질한다면서? 내가 너를 어떻게 도와줘야 하니?

   담임은 다시 내게 묻는다. 도와줄 수 있을까? 당신이 과연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결국 너처럼 구박을 받은 아이는 사춘기 무렵이면 학업에서 손을 떼고 나쁜 일에 휩싸이게 되지. 그러면서 결국 자격지심을 느끼고 범죄를 저지르는 거야. 아직 성인이 되지도 않았는데 담임은 나를 범죄자 취급한다. 결국 내가 가야 할 길은 그 길뿐이라는 듯 담임은 구석으로 나를 몰고 간다.

   가끔 담임과 마주하고 있으면 나는 점점 타락해 가는 것 같다. 저렇게 누군가를 걱정할 수 있을까? 내가 만약 죄를 짓고 도망을 친다면 담임은 모든 게 자신의 책임이라며 눈물을 흘릴까? 어쩐지 역겹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할머니는 내게 말한 적이 있다.

   “배울 필요는 없어. 다 똑같아. 쓰레기들이야. 대학 갈 필요 없어. 고등학교도 중학교도 필요 없어.”

   할머니는 기도와 돈 이외에는 다 필요 없다고 말한다. 신발 공장과 시멘트 공장에서 평생 노동을 하며 살아온 할머니는 지금보다 월급이 2배 이상 오르길 바라고 우연히 길에서 돈 가방을 발견하게 되길 바라고 기도로 인해 생활이 더 나아지길 바란다. 그러면서도 할머니는 자주 목사 욕을 하고 강남에 사는 인간들을 벌레 취급하고 배운 자들을 사기꾼 취급하고 감옥에 있는 이들마저 병신 취급을 한다. 사회악이라고 할머니는 말한다. 할머니는 온갖 욕설로 자신의 사나움을 드러낸다. 그리고 할머니는 이따금 기분이 상할 때면 장독대가 보이는 곳에 나를 묶어 두고 매질을 한다.

   해질녘이 되면 춥고 무서워진다.

   무섭다.

   한때 할머니가 나를 때리는 이유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다. 사실 다른 집 아이들도 다 그렇게 매질을 당하는 줄 알았다. 돈 많은 부모나 허약한 부모나 다 자식을 그렇게 대하는 줄 알았다.

   그 어리석음. 어리석음으로부터의 도피.

   해질녘이면 인생에 대해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이런 시간이 계속된다면 인생은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할머니가 집에 없는데도 나는 밖으로 나온다. 집 안의 공기가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한낮의 놀이터. 나는 조용히 의자로 다가간다. 저 멀리서 복면을 쓴 도둑들이 다가온다. 그들은 놀이터에 있던 긴 의자를 떼어낸다. 밤에 거지들이 찾아올 텐데. 휴식처를 빼앗아 가면 안 될 텐데. 도둑들은 이곳의 비밀을 모른다. 밤이 되면 놀이터 의자가 얼마나 거대해지는지 그들은 알지 못한다.

   잠시 후 놀이터는 텅 빈다. 혹시 도둑들에게 물어봐야 했던 건 아닐까. 감옥에 가본 적 있는지. 이 세계의 음모를 아는지 물어보고 싶다. 어쩌면 도둑들도 불안한 건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저렇게 얼굴을 감추고 다니는 건지도 모른다.

 

 

   봉사활동을 떠났던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온다. 봉사를 했던 시간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할머니는 말한다. 나는 귀담아듣지 않는다.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고 나를 다그친다. 봉사에 대해 생각한다고 나는 대답한다. 할머니는 자신의 선행으로 받게 될 보상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한다. 선행. 물론 좋은 일이다.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고 나에게 묻는다. 진정한 어른이 무엇인지 그것에 대해서 생각한다고 나는 대답한다. 할머니는 온전히 자신이 진정한 어른이며 대접받고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아마도 그런 것 같다고 나는 대답한다. 하지만 나는 알지 못한다. 어른들의 위선과 가식, 숨겨진 악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할머니는 함께 봉사활동을 떠났던 목사 얘기를 하면서 흉을 본다. 젊은 여자들에게만 친절하게 대했다고, 할머니는 목사에 대한 의견을 털어놓는다.

   젊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할머니가 묻는다. 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할머니가 묻는다. 없는 자들에겐 모멸이자 치욕이라고 내가 대답한다. 너는 끝까지 가난뱅이로 살 수밖에 없을 거라고 할머니가 말한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돈 없이 산다는 것. 어른이 되어서도 힘없는 존재로 산다는 것. 할머니는 온갖 노동을 했지만 노동의 겸손함을 배우지 못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악독해졌다. 아마도 학교에 가지 못한다면 나 역시 노동자로 살게 될 것 같다. 더러운 작업복을 입고 밤새도록 기계를 돌리면서 신발 공장이나 시멘트 공장에서 한 생애를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새로 들어온 노동자를 억압하고 텃세를 부리고 힘없는 자들에게 폭언을 퍼붓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노동을 계속해야 한다면. 지루하고 고단한 삶이 계속된다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할머니는 나에게 친구도 만들지 말라고 조언한다. 결국 시간 낭비만 하게 될 거라고. 나중에 배신당해서 눈물 흘리지 말고 애초부터 인간을 믿지 말라고 조언한다.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인간에 대한 비관적인 견해.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와 인간에 대한 혐오와 의심에 가득 찬 말을 하다니.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도덕적인 것이고 무엇이 비도덕적인 것인지 가치관에 혼란이 온다.

 

 

   할머니와 함께 대중목욕탕에 간다. 그곳에서 할머니와 같이 일하는 노동자들을 만난다. 할머니는 자신도 노동자면서 같은 노동자를 경멸한다. 할머니는 인간의 삶은 철저하게 돈으로 나뉜다고 주장한다. 경멸을 하지 않으면 결국 경멸을 받게 될 거라고.

   나는 귀담아듣지 않는다. 경멸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기엔 아직 어린 나이다. 그러나 환경이 자꾸만 나를 그쪽으로 끌어당기고 나는 쉽게 그 어둠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조금만 더 배우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으면 인간을 쉽게 경멸하지는 않을 텐데. 나는 모처럼 속내를 털어놓는다. 그러나 어림없는 말이라고 할머니는 얘기한다. 배운 것들이 더 잔인하고 사악하다고, 악마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고 할머니는 주장한다.

   문득 할머니의 과거가 궁금해진다. 할머니는 누구보다 끔찍한 과거를 겪었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애를 썼을 것이다. 잔인함을 배우면 인간은 결국 악독해져 간다. 나 역시 훗날 누군가를 쉽게 욕하고 억압하고 분노하고 약한 자들에게 화를 내게 될까 봐 겁이 난다.

   유년의 기억이 아름답고 처연하고 평화롭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부와 가난. 인간이 인간을 착취한다는 것. 공장장은 할머니의 노동을 착취하고 할머니는 그 대가로 얼마간의 돈을 받고 결국 그 돈을 교회에 쏟아 붓고 교회는 나 같은 불쌍한 아이에게 무상으로 밥을 준다. 밥을 먹고 싶지 않지만 나는 살기 위해 억지로 식사를 한다.

   때로는 교회 밖의 노숙자와 내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고 어디서나 잔뜩 주눅이 들어 있고 쉴 곳을 찾아 헤매는 것은 노숙자나 나나 크게 다르지 않다.

   밑바닥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것.

   그 시간을 살아낸다는 것. 지난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 숙명으로 받아들이기엔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든다.

   만약 어른들의 예감대로 훗날 내가 불행한 삶을 살게 되거나 절망에 지친 나머지 타인에게서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빼앗으며 살아야 한다면. 그건 누구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그 책임은 누구 것일까?

   악담은 듣고 싶지 않다.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는데. 어른들이 내뱉는 폭언과 모멸 섞인 눈빛을 더 이상 감당하고 싶지 않다. 어쩌면 그들 모두가 이상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그들에게 큰 잘못이 있는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온다. 긴 노동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할머니가 먼 길을 걸어온다. 할머니는 혼자가 아니다. 남자친구인 약장수 할아버지와 함께 있다. 전국을 떠돌며 약을 팔러 다니는 그 노인은 언변이 뛰어난 데다 외설적인 농담을 좋아한다. 할머니의 취향인가? 저런 타입에게 끌리는가?

   약장수 할아버지는 나에게 밖에 나가서 놀다오라고 말한다. 나는 조용히 밖으로 나간다. 때마침 바람이 몹시 불고 비가 오고 있다.

   이런 날은 놀이터 의자도 비에 젖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따뜻한 방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섹스를 하고 쫓아낸 아이 흉을 보고 섹스가 끝난 후엔 자장면을 시켜 먹으며 Tv를 볼 것이다. 약장수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노동을 이해하는 걸까? 내재된 폭력을 알고 있는 걸까? 인간의 사악함이 두렵지 않은 걸까? 약장수 할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다녀간 후에는 할머니는 평소보다 식욕이 늘어나고 좀처럼 욕설을 내뱉지 않는다. 아직 성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나는 다만 그들의 킬킬거림을 짐작할 뿐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예기치 않은 손님이 찾아온다. 약장수 할아버지가 자신의 남편이라고 주장하는 낯선 할머니가 나에게 삿대질을 한다. 그제야 모든 상황을 눈치 챈 나는 이 집에 아무도 없다고 주장한다.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다행히 할머니는 외출 중이어서 낯선 할머니와 마주치지 않는다. 뻔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온갖 언변으로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는 약장수 할아버지나 조강지처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몰래 정분을 나누는 할머니나 둘 다 우습고 뻔뻔하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스승을 만나고 싶으나 쉽게 만날 수 없고 이 세계에 대해 도덕이나 가치관에 대해 털어놓고 싶으나 이야기를 나눌 만한 대상이 없다. 비밀을 털어놓을 수 없다. 의지할 곳이 없다.

 

 

   뭔가를 잊기 위해 나는 책을 펼친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밤에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것들은 쓰레기들이야! 읽을 필요 없어! 할머니는 내가 지식인이 될까 봐 불안해한다.

   정말 그럴까? 책을 읽는 자들은 모두 쓸모없는 인간들일까? 그래도 나는 장발장을 읽는다. 죄와 벌을 읽는다. 가난한 사람들을 읽는다. 일부러 소외되고 약하고 힘없는 자들이 등장하는 책을 골라 읽는다. 사랑 얘기에는 관심이 없다. 인간의 사랑. 남녀 간의 사랑. 어쩌면 구원이 될 수도 있는 사랑. 그것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선생들에게 무시를 당할까 봐 일부러 그들을 피해 다니고 부잣집 아이들이 가진 것에 대한 자랑을 할까 봐 그들과 쉽게 어울리지 않는다. 누군가는 나에게 아웃사이더라고 말한다. 굳이 그렇게 살 필요가 없다고, 결국 외로움만 남게 될 거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나를 걱정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안도한다. 결국 나는 침묵한다.

   물론 그들의 말이 옳다는 걸 알고 있다. 나도 마음만 먹으면 그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고 농담할 수 있다. 하지만 내키지 않는다. 뚱뚱한 아이가 다가와 말을 걸어도 그저 무의미한 대화만 나눌 뿐이다. 내면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학교 수업에 대해, 밀린 숙제에 대해, 학원을 다니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만 나는 조심스럽게 말할 뿐이다.

 

 

   아이들의 세계에도 어떤 규칙이 있다. 부잣집 아이들은 부잣집 아이들과 어울리고 학대받은 아이들은 비슷한 아이들과 어울린다. 그건 너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따돌림이 두려워서 끼리끼리 뭉쳐 다니고 친하지 않은 상대를 험담하고 야유하고 비난하는 건 어른들의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들 제 멋대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같은 반 아이들에게도 저마다 꿈이 있다. 어떤 아이는 과학자가 되어서 훗날 노벨상을 타겠다고 하고, 어떤 아이는 30년 후에 일어날 전쟁을 막아 보겠다고 하고, 어떤 아이는 훌륭한 목사가 되겠다고 한다. 물론 좋은 일이다. 나는 누구에게도 미래에 대해 털어놓지 않는다. 무엇이 되어도 상관없고 어떤 일을 해도 상관없다. 다만 살아남는 일이 중요할 뿐이다. 좀 더 용기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고, 좀 더 대담해지고 뻔뻔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죽음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것이라면. 그 날이 좀 더 빨리 찾아와도 좋을 텐데.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할머니 스스로 목숨을 끊기를 바라지만 인생에 대해 미련과 욕심이 많아서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할머니와 함께 TV를 본다. 침묵한다. 할머니와 함께 마늘을 깐다. 침묵한다. 할머니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한다. 할머니와 함께 폐품을 수거한다. 누군가 내다버린 책을 줍는다. 콜라병과 소주병을, 남아 있는 재활용을 다 수거한다.

   누군가는 노동을 땀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노동을 착취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괴로움이라고 말한다. 노동에 대해서는 나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늦은 밤 골목을 돌아다니며 폐품을 수거해도 채 만 원도 받지 못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할머니는 나에게 신문 배달과 우유 배달을 하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아직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날 고용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나에게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불안한 아이라고. 사고를 칠까 봐 두렵다고. 하지만 그건 어른들의 편견일지도 모른다.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나는 알고 있다.

 

   어느 날 노동에 지친 할머니는 시름시름 앓는다. 나는 몹시 당황한다. 할머니는 힘이 없어서 더 이상 나를 때리지 않는다. 약장수 할아버지도 더 이상 할머니를 찾아오지 않는다.

   신발 공장에선 할머니가 출근하지 않으면 해고를 할 거라고 한다. 할머니 대신 내가 신발 공장으로 출근한다. 공장 사람들은 나에게 학교는 안 가느냐고 묻는다. 가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고 내가 대답한다. 공장장은 내가 다니는 학교에 자신의 조카도 다니고 있다고 말한다. 공장 한쪽엔 완성된 구두들이 놓여 있다. 할머니의 병이 나을 때까지 나는 완성된 구두의 먼지를 닦아낸다. 시간이 흘러간다.

   나는 눈치를 보면서 공장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근무에 대한 얘기를 듣는다. 하지만 이 공장에 대해, 신발에 대해 나는 아는 게 없다. 그저 반복된 일을 할 뿐이다. 노동의 고단함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어른들 사이에서 겪는 소외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나약함을 드러낼수록 고독을 드러낼수록 결국 어른들은 약자를 우습게 여길 것이다. 최대한 나는 담담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공장에선 쉬지 않고 똑같은 신발을 찍어내고 공장장은 지시하고 여공들은 쉬지 않고 기계를 돌린다. 공장장은 매출만 생각하고 여공들은 구두 한 켤레라도 몰래 집에 가져가려고 애를 쓰고 나는 침묵한다.

   공장장은 나에게 다가와 일자리를 마련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라고 말한다. 게으름을 피웠다간 못 나오게 할 거라고 엄포를 놓는다. 하지만 나는 주눅 들지 않는다. 그럴 필요는 없다. 어른들은 내가 무너지기만 바라고, 마음에 안 들면 트집을 잡고 이 모든 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고약하고 성질 더러운 노인 밑에 있어서 저렇게 된 거라고. 언제까지 이 공장에서 버틸 수 있을지 생각한다.

   공장 직원들이 퇴근할 무렵 나 역시 한 켤레의 구두를 훔친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더 대담해진다.

 

 

   어느 날 나는 공장장에게 뺨을 맞는다. 다른 여공들을 의심했는데 결국 멍청한 놈에게 당했다고 공장장은 화를 낸다. 공장장은 나를 발길질한다. 여공들도 달려와 삿대질을 한다. 할머니도 필요 없다고 네 까짓 것도 필요 없다고 그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알라고 그들이 겁을 준다. 유치장에 들어가게 된다 해도 나는 겁나지 않는다. 형사와 마주하게 되어도 두렵지 않다. 이미 너무 많은 일을 겪은 건지도 모른다. 이미 너무 많은 일을.

   벌레 같은 놈!

   누군가 내게 소리친다.

   저리 꺼져. 당장!

   결국 나는 공장 밖으로 쫓겨난다. 공기가 너무 탁하다. 세상의 공기. 쉴 곳을 찾아 한참을 헤맨다.

 

 

   그래도 할머니 대신 며칠 일했는데.

   돈을 받아야 할 텐데. 하지만 공장장은 나에게 돈을 줄 수 없다고 통보한다. 한 번만 더 얼씬거렸다간 콩밥을 먹일 거라고 그가 말한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공장 노동자들은 나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삶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체념. 그들이 말하는 체념. 그건 너무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인생은 무의미하고 어디에도 사랑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 누구도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노동자들이나 고위공무원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언젠가 한번쯤 학교 담임이 찾아와 주길 나는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아마도 담임은 나를 포기한 것 같다. 나 말고도 소외받은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그 애들을 신경 쓰느라 연락이 없는 건지도 모른다. 지금쯤 담임은 그 아이들을 찾고 있을 것이다. 분주한 날들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한번쯤 반 아이들이 나를 찾아와 주길 나는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해야 될 과제가 너무 많아서 저마다 꿈을 쫓아가기 위해 허덕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더 이상 나는 학교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교육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는다.

 

 

   지하철을 타고 나는 압구정으로 간다. 백화점과 높은 빌딩 사이에서 나는 한참을 헤맨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와 성형수술을 한 여자들 사이에서 한참을 헤맨다. 자본의 냄새가 난다. 여자들의 화장품과 고가의 핸드백에서, 그들이 들고 있는 쇼핑백과 그들의 걸음걸이에서 자본의 냄새가 난다. 피할 수가 없다.

 

 

   지하철을 타고 나는 파고다공원으로 간다. 갈 곳 없는 노인들이 모여서 장기를 두고 있다. 배고픈 노인들이 줄을 서서 무료 급식을 기다리고 있다. 노인들 속에 약장수 할아버지가 서 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 할머니의 안부를 전하지 않는다. 노인들 속에 있으니 어쩐지 나도 갑자기 늙어버린 느낌이 든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나 역시 급식을 기다리는 노인들 뒤에 줄을 선다. 봉사자들은 나를 내쫓지 않는다. 그들은 걱정과 연민의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말없이 식판에 밥을 퍼준다.

 

 

   나는 밥을 먹고 돌아선다. 비둘기들이 모여든다. 뒤를 돌아본다. 약장수 할아버지가 홀로 의자에 앉아 밥을 먹고 있다. 결국 혼자인 걸까? 나를 그렇게 내쫓고 할머니와 사랑을 속삭이더니. 조강지처를 버리고 남의 집에 찾아와 나를 그렇게 쓸쓸하게 만들더니.

   약장수 할아버지는 더 이상 할머니를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어쩐지 그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할머니는 날이 갈수록 야위어 간다. 잠을 자다가 헛소리를 하기도 한다. 병원에 데려다달라고 할머니는 사정한다. 하지만 나는 그 부탁을 들어 주지 않는다.

   할머니는 아프지 않은 데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나는 남아 있는 돈이 없다고 할머니에게 속삭인다. 할머니에게서 죽음의 냄새를 맡는다. 그래도 여전히 용서할 수가 없다.

   용서가 안 된다는 것.

   할머니는 더 이상 목사 흉을 보지 않고 해질녘이면 나를 괴롭히지도 않는다. 할머니는 더 이상 이 집 안에서 권력자가 아니며 나는 주눅 들지 않는다. 쓸쓸한 기분이 든다.

   하루 종일 누워 있는 할머니는 이따금 내게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소용없는 일이다. 할머니의 대변과 소변을 내가 처리한다. 할머니는 더 이상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죽어가는 할머니의 모습을 본다. 결국 나는 외면한다. 잘 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천국으로 가라고, 마음 편히 떠나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할머니는 손을 뻗는다. 나는 끝내 그 손을 잡지 않는다. 증오하고 복수하고 미워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한 번도 나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 본 적이 없다. 다만 유년이 끝나기만 바랐고 해질녘이면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랐을 뿐이다.

   정치에 대해서도 자본에 대해서도 노동에 대해서도 나는 아는 게 없다. 다만 어느 세계에 있어도 늘 소외감을 느꼈고 그로 인해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나는 하염없이 도심을 걷는다. 청담동을 걷는다. 그곳에서 우연히 나를 가르쳤던 담임을 만난다.

   그녀는 한눈에 나를 알아본다. 담임은 더 이상 들고 있던 고가의 핸드백을 뒤로 감추지 않는다.

   담임이 내 안부를 묻는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고 나는 담담하게 대답한다. 담임은 일 년 전 학교를 그만두었고 조만간 가족들과 함께 프랑스로 이민을 간다고 했다.

   담임은 나를 보더니 변한 게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나는 잠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표정을 도무지 숨길 수 없다.

   잠시 후 담임은 글을 써보면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럽게 권유한다. 다른 아이들보다 책 읽는 걸 좋아하지 않았느냐고, 이제와 고백하지만 늘 너의 눈빛이 두렵고 무서웠다고 담임이 말한다.

   훗날 작가가 되면 모든 것을 치유 받게 될 거라고, 어린 시절의 불행을 잊게 될 거라고 담임은 말한다.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가끔 생각이 나면 일기를 쓰긴 한다고 나는 말할 뿐이다.

   담임이 무슨 말을 하는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직업을 갖게 되어도 달라질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되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다.

   담임은 더 이상 권유하지 않는다.

   프랑스. 물론 좋은 나라다.

   프랑스에 가서 낭만적인 삶을 살라고, 문화를 즐기고 사색을 하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꼬박꼬박 집회에 참석하고 정치와 문화, 복지에 관심을 갖고 소외되고 억압받은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 달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프랑스에 대해선 아는 게 없다. 국가에 대해선 아는 게 없다. 다만 인간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인간에 대해서만.

 

 

   담임은 조용히 내 곁을 떠난다.

 

 

   해가 지고 결국 밤이 찾아온다.

   밤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담임이 했던 말을 나는 생각한다.

   오래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글을 쓰지 않고 할머니의 묘지로 간다.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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