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개의 침대
방현희
K의 연인이었던 그녀와 그렉안나가 만난 것은 K의 장례식장에서였다.
누군가 죽기엔 어울리지 않는 날씨였다. 더구나 두 여자가 들어서서는 안 되는 곳임을 알아채고 장례식장을 빠져나와 이마에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걷기엔, 더욱 어울리지 않는 날이었다.
단풍이 몹시 진하게 들어서 장례식장 주변은 온통 꽃밭처럼 화사했고 햇살 역시 더없이 따끈했다. 둘 셋씩 짝 지어 장례식장을 찾은 여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눈웃음을 치며 어머, 벌써 이렇게 단풍이 들었네, 와, 너무 이쁘다, 하며 수다를 떨다가 서둘러 웃음을 지우고 어두컴컴한 낡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담배 한 대 피우고 들어가려고 주변에서 서성이던 남자들은 그런 여자들에게 눈길을 한 번씩 주곤 하늘을 향해 연기를 뿜어 올렸다.
그녀는 식당 문을 활짝 열고 삐뚜로 놓인 의자를 테이블 밑으로 바짝 밀어 넣고 주방으로 들어가 커다란 콩나물 봉투를 열어 소쿠리에 막 쏟아 붓다가 K의 부고를 받았다. K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모든 번호로 똑같이 보낸 듯, 용건만 간략한 부고 안내문이었다. ‘k, 금일 아침 사망. 장례식장은 영등포구청역 9번 출구 OO 장례식장 12호. 23일 오전 10시 발인’
부고를 받고 맨 처음 든 감정은, 장례식장이라는 생소한 공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그게 어찌나 컸던지 사귀던 사람을 잃은 사람이 느껴야 마땅할 경악, 슬픔, 아픔 같은 것을 잊을 정도였다. 장례식장이나 결혼식장에 가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 장례식장이라면 단 한 번, 남편의 장례식 뒤로는 한 번도 없었다. 남편의 장례식은 너무나 오래된 기억이고 하루빨리 잊고 싶었던 것이어서 마치 겪어 본 적도 없는 것 같았다. 그 다음에 든 생각은 누구랑 같이 가야 자연스러울까, 하는 것이었다. K, 나와 그 사람 사이에 누가 있지?
죽음을 통보받고 이 모든 생각이 들었다는 게 두고두고 이상했다. 왜, 슬픔보다 아픔보다 이런 것들이 앞섰을까?
콩나물 대가리를 떼지도 못하고 주저앉아 멍하니 전화번호를 들여다보느라 시간을 한참이나 썼건만 결국 한 사람도 찾아내지 못했다. 전화기를 떨구고 저녁에 가는 게 좋을까 지금 당장 다녀오는 게 좋을까 계산을 했다. 결국 사람들이 몰려올 저녁 시간을 비켜가는 게 나을 거라는 결론을 내리고 검은색 옷을 꺼내려 옷장을 열었다.
K가 그녀의 침대에서 자고 가는 날들이 잦아지면서, 함께 살고 싶다는 말 비스무리하게 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그녀 역시 갈팡질팡하고 있었으니 지금 그녀는 정신을 못 차리고 울어야 마땅했다. 옷장 속의 옷은 거의 다 검정색 아니면 검정색 비슷한 것들이었으니 마땅한 옷을 고르느라 시간을 들인 건, 옷 때문이 아니었을 게다.
교통사고였겠지? 갑작스런 죽음이 교통사고밖에 더 있어? 경기도에 있는 호텔 리모델링 현장과 서울을 오가느라 바빴으니까 사고 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서울에서 경기도로 가다가 사고가 났을까, 경기도에서 오다가 사고가 났을까? 그 사람, 오늘은 현장에 있을 예정이었다. 서울로 오다가 사고가 났다면 오늘 들른다고 미리 말했을 텐데 아무 연락도 없었다. K의 루트를 되짚다 보니 최소한 하루 반의 일정이 비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쯤 아주 평범한 검정 원피스와 검정 카디건이 손에 딸려 나왔다.
울지 않았어도, 서너 시간 만에 그녀는 완벽한 미망인이 되었다. 장례를 치른다는 건 그 아내에게조차 슬퍼할 시간을 단 하루도 주지 않는 것이니까. 두 시간 정도 마음껏 울게 해준다면 그건 정말 친절한 거니까.
갑작스런 소식에 망연자실해 사태를 파악하려 눈을 최대한 크게 뜨고 있는 최초의 몇 분을 보내고,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 소리쳐 묻고 달려가는 동안 다른 가족들에게 연락을 하고, 시신을 확인하고 나서 죽은 이를 흔들어대며 울다가, 영안실로 옮겨지는 시신을 따라가는 도중에 막 도착한 가족 중 서열 높은 사람의 의견에 따라 병원이 아닌 곳으로 장례식장을 정하고 옮기는 과정을 거치는, 그 짧은 두세 시간.
너무 정신없어서 아직 제대로 울지도 못했지만 제대로 울지도 못하게 만드는 이 현대적인 장례 시스템이 친절한 건지, 냉담한 건지 판단을 미루고 있는, 딱 그 상태의 미망인. 이제부터 무차별한 친절 속에 파묻힐 예정이라서 슬픔은 충분히 위로될 것이니 크게 아쉬워할 것도 없는, 그런 미망인. 그러나 어쨌든 상당히 넋이 빠진 미망인.
그래서 그녀가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가족들만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옮겨온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손에 상복을 막 받아들고 상복부터 입어야 하는지, 국은 육개장으로 하고, 반찬 종류는 여섯 가지로 할지 일곱 가지로 할지, 또 도우미 아줌마는 두 명을 써야 하는데, 밤 열 시까지 할 건지 열두 시까지 할 건지 결정해 달라는 사무실 직원을 먼저 상대해야 하는지, 아직 분간을 못 하고 있었다.
그녀가 장례식장에 불쑥 들어갔을 때는 조문을 받을 자리도 정리되지 않았고, 조문을 받을 상주도 자리에 없었다. 다만 그녀의 눈에 K의 아내일 것이 분명한 여자가 보였고, 순식간에 K가 숨긴 신변의 전모가 파악되자 그녀는 곧바로 뒤돌아섰다. 뒤통수에 누군가의 시선이 꽂혔다. 한 손에는 본인의 상복을 들고 다른 손으로 상주가 될 아들의 상복을 펼쳐 입히려다가 사무실 직원으로부터 결정을 재촉 받던, 넋이 빠져 있었지만 장례식장에 있던 사람 중에 가장 주체적인 인물의 촉빠른 시선이.
그녀는 서둘러 돌아서다가 불쑥 들어선 또 한 명의 여자와 부딪쳤다. 눈을 크게 뜨고 우뚝 서 있는 노랑머리 흰 피부의 그렉안나였다. 얼른 그렉안나의 손을 잡아끌고 밖으로 나온 것은 살아온 세월이 그녀에게 가르쳐준 빠른 판단력 덕분이었다. 그녀가 아는 한, K에게 아내는 떠나도 한참 전에 떠난 여자였다. 돌아서는 순간 문득, K의 아내는 지금 무슨 말을 들으면 가장 위로가 될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죽음의 사연을 모를 때, 모든 죽음에 공평하게 위로가 되어 줄 말은 무엇일까. 그런 말이 있기는 한 걸까?
그녀가 아는 장례식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아무도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고, 그저 닥친 일을 치른다는 표정의 장례식이란, 그녀가 알기로는 오래오래 잘사시다가 때가 되어 하늘이 불러서 가는 경우에나 있을 수 있는 것이었다. 젊다면 젊은 서른아홉 살 남자의 갑작스런 죽음도 평범한 분위기를 낼 수 있다면, 그건 어떤 죽음일까.
가족들로부터 망자의 죽음이 네 탓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는 미망인이란, 미망인 축에도 끼지 못하는 거 아닌가. 이런 미망인이라면 열 번도 더 치를 수 있을 것 같은 장례식장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고 돌아 나온 사람은, 한동안은 어떤 말도 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아무 말이나 쓸데없이 내던지기도 한다. 그렉안나를 끌고 나온 손을 슬며시 놓으면서 아무 말이나 하고 봤다.
─ 참, 안됐어.
어떻게 죽은 것인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말을 꺼내야 하는 게 참, 안됐지만 하는 수 없었다.
─ 참, 좋은 사람이었는데 말이야…….
이런 말이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망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는 무조건 좋은 말을 하고 봐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이렇게 말을 꺼냈다. 이런 식의 말은 그녀와 아무 관계없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계산도 깔려 있었다. 그렉안나에게 말을 붙이면서 뭐, 그런 계산까지 필요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왠지 켕기는 입장이다 보면 안 해도 되는 말을 덧붙이기 마련이다.
그렉안나야말로 완전히 넋이 나가서 눈을 깜박이는 것도 잊은 것 같았다. 아직 그녀가 손을 잡아끄는 것처럼 따라왔다. 지하철역에 와서도 그녀 발길을 따라갔고 합정역에서 그녀가 나, 이제 다 왔다는 뜻으로 손짓을 해도 그녀를 따라왔고, 결국 그녀의 가게까지 따라왔다. 그러니까 K의 죽음이 가장 큰 충격인 사람은 그렉안나인 것 같았는데 그게 또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눈치 빠른 자신이 싫었고 그렉안나도 보기 싫어서 방에 들어가 쉬라고 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손님들이 가게를 가득 채웠다. 이런 날은 덜 와도 좋으련만, 그래서 익숙하지 않은 감정일지라도 잠겨 있게 놔뒀으면 좋으련만. 서빙 아줌마가 오늘 왜 이렇게 손이 느리세요? 3번 테이블에서 화를 내는데요, 해서야 동태찜을 몇 번째 재촉 받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득 3번 테이블을 건너다보다가 머리가 핑 도는 것을 느끼고 하마터면 가스레인지를 붙잡을 뻔했다. 식당 가득 온통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뿐이었다. 장례식장에 와서 육개장을 먹는 사람들처럼 다들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숟가락을 움직일 뿐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내는 소리는 모두 한 가지로 들렸다. 웅웅. 뭐라고 위로를 드려야 할지, 웅웅. 뭐라고 위로를, 웅웅. 뭐라고, 웅웅.
가게 문을 닫고 새벽 두 시에 방으로 들어와 보니, 그렉안나가 침대 위에 앉혀 놓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녀는 그 어떤 미망인보다 슬프고 지쳐 보였다. 하는 수 없이 그녀의 침대에 눕혔다. 다른 데 옮겨 누울 힘도 없어 보였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바닥에 이불을 깔고 쓰러져 잠을 잤다. 장례식장에 갈 때 입었던 검은 옷을 입은 그대로였다. 장례식장 한쪽 구석에 마련된 작은 방에서 웅크리고 새우잠을 자듯, 잠이 들었다.
─ 열다섯 개째예요.
─ 뭐가?
─ 내가 누운 침대가요. 한국에 와서, 내가 누운 침대가.
늦은 아침 햇살이 안나 위로 내렸다. 베개 위에 펼쳐진 금발머리가 아름다웠다. 바닥에 깔았던 이불을 주섬주섬 개키는데 안나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이불을 든 채로 안나를 내려다보았다. 참, 아름다운 여자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물론이고, 그 나라에서도 그냥 지나치지 못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안나를 보아 온 일 년 사이 부쩍 늙어버렸다. 더욱이 지금은 피부가 바스라져 버릴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녀의 얼굴을 둘러싸고 펼쳐진 금발은 아름답게 반짝였다. 그러니 어제부터 내내 한 번도 깜박이지 않은 것 같은 눈동자만 보지 않는다면 그런대로 한참은 참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안나의 푸른 눈동자는 색이 완전히 바래서 동태를 막 얼리기 시작했을 때처럼 불투명했다.
─ 그게 무슨 말이야?
말을 하고 있는 사람과 눈을 맞추지 않는 것은 취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어서 그녀는 잔뜩 찌푸리고 안나를 봐야 했다.
─ K의 침대가 열네 번째였어요.
허, 무슨 뜻인지 단숨에 알았다. 기가 막혀서 한숨을 내지르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안나는 눈을 깜박이지 않는 것처럼 귀도 들리지 않는지 그녀의 기막힌 한숨소리는 듣지 않았나 보다.
─ 리모델링하고 있는 호텔 앞에 K가 방을 잡아 놓고 있었잖아요. 그 방에서 세 달 있었어요.
벌떡 일어났는데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더 듣고 싶지 않아서 말을 막은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K가 안나와 함께 그녀의 식당에 나타나지 않은 게 그 정도 되었다.
─ 밥이나 먹자.
가게로 나왔다. 손에 잡히는 대로 미더덕찜을 해서 한 김 올렸는데 안나가 나오지 않았다. 나올 리가 없어서 또, 하는 수 없이 밥과 미더덕찜을 쟁반에 얹어 방으로 들어갔다. 속에서 불이 난다고 매운 음식을 만든 그녀는 한국 사람이고, 아무리 속에서 불이 나도 미더덕찜을 먹을 수 없는 안나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유학생으로 온 여자다. 한국에서 취직하려고 백방으로 손을 쓴 지 사 년째인 미취업 백수 신세이고.
먹을 수 없는 음식을 코 밑에 받쳐 들고 금발 미녀를 일으켰지만 금발 미녀는 축 늘어진 채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늘어진 금발 미녀가 너무 무거워서 일으키다가 그만두고 혼자서 밥을 먹었다. 오도독, 오도독, 톡, 미더덕을 씹어 먹었다. 짠 갯내음과 바닷물이 입안에 가득 찼다.
─ 그 호텔, 그 호텔이 완성되면 저 거기에 취직시켜 준댔거든요.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섰다. K의 단 하나의 장점이 바로 그 호텔을 갖고 있다는 거였다. 권리관계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지만 친구와 둘이서 경매로 낙찰 받아 수리하고 있는 중이며, 오픈하면 그녀와 함께 살자고 했던 그곳? 한창 수리 중에 그녀를 데리고 가서 한 바퀴 휘둘러보며 방 하나 내줄까? 물었고 그녀는 기왕이면 스위트룸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가 호탕하게 웃으며 까짓 거 그러지 뭐, 그랬던, 그 호텔이라는 말 같았다. 그런데 안나를 거기에 취직시켜 줘?
─ 그 쪼끄만 호텔에? 그 호텔에 뭘로 취직시켜 줘?
─ 고객관리나 메이드 관리급으로.
내 자린데, 그건. 허, 코웃음이 막 나왔다. 참 좋은 사람이었구나 K는, 이런 말도 나오려고 했다. 한국말에 서투른 안나가 진담으로 알아들을까 봐 꾹 참고 미더덕을 오도독 씹었다. 그러니까 네가 이렇게 실신한 사람마냥 누워 있는 것은 K의 죽음이 슬퍼서가 아니라 취직이 물 건너간 것 때문이란 말이지?
K가 안나를 처음 데려왔던 게, 태국여행 전문업체 ‘Y투어’를 운영하는 강 사장이라는 사람과 함께였다. 태국만 집중적으로 마케팅하는 업체였는데 현지 가이드 겸 레저 행사요원이 필요해서 안나를 훈련시켜 현지의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컨덕터로 파견할 생각이라고 했다.
안나가 전공한 것은 호텔관광학. 호텔경영과 국제관광 업무를 주로 배웠다니 딱 맞는 업종에 취직하게 된 것인가 보다. 안나는 주로 신혼부부를 맡게 될 예정이라고 했다. 열대의 휴양지에 신혼여행 온 사람들이라, 상상만 해도 기분 좋지 않은가.
매운 동태찜을 시켜 놓은 강 사장은 기분이 아주 좋았다. 현지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고 조건을 맞추느라 오랫동안 끄라비에 머물다 갓 돌아온 상황이라 매콤한 게 무진장 당긴다고 했다. 동태 위에 덮인 콩나물과 양념을 걷어내면 새하얀 속살이 있었다. 잡자마자 급속냉동 시킨 동태를 다시 급속도로 해동시키면 물기도 촉촉하고 탱글탱글한 게 아주 맛있었다. 강 사장과 K는 참기름을 듬뿍 넣은 매콤한 양념을 덥석 덥석 집어먹는 사이사이 소주를 마셨고, 안나는 양념을 헤치고 하얀 속살을 먹었다.
─ 안나, 푸껫이나 파타야 가본 적 없지?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수영해 본 적 없지? 거기 완전 환상이야.
─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휴양지라고 알고 있어요. 저도 가보고 싶어요.
─ 그래, 이미 푸껫이나 파타야는 꽉 찼고, 안나는 끄라비에 가게 될 거야. 끄라비는 무려 130개나 되는 섬이 몰려 있는 군도群島인데 개발할 데가 어마어마해서 업체들이 몰려들고 있어. 원시적인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지. 카약 타본 적 있어?
─ 없죠, 당근.
─ 실컷 타게 될 거야. 온몸이 에메랄드색으로 물들지도 몰라. 안나는 하얘니까, 물속에 들어가면 진짜 물든 것 같을 거야.
강 사장은 한참 동안 끄라비 군도에 진출하는 것에 대해 열을 올리며 이야기하고 안나가 파견 나가기 전에 연수받아야 할 부분에 대해서도 열심히 설명했다. 그렇게 좋은 분위기에서 그들은 밥을 먹고 술에 취해 돌아갔다.
몇 달 뒤였나, 다시 그들이 식당에 몰려 온 것이.
다시 동태찜이 올려졌고, 찜을 먹는 속도와 술을 마시는 속도가 빨라졌다. 소주잔을 식탁에 탁, 내려놓는 소리도 점점 커져 갔다. 안나의 목소리도 점점 높아졌다. 오랜만에 본 안나의 얼굴에는 주근깨가 가득했다. 이마와 콧잔등은 일광화상을 입었는지 검게 탄 피부가 벗겨져서 얼룩덜룩했다.
─ 난 서울에서 살기 위해 한국에 왔어요. 끄라비인지 뭔지 정글에서 모기와 벌레에 물려가며 번지 점프하러 온 사람들 줄이나 매주려고 한국에 와서 대학에 다닌 게 아니란 말예요. 한밤중에 벌레가 있다며 방 바꿔 달라고 울고불고 난리치는 신혼부부를 위해 잠을 깨서 온갖 좋은 말로 달래려고 한국에 온 게 아니라구요. 거긴 호텔도 아니고, 호텔경영을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행객 끌고 왔다 갔다, 그걸 하려고 한국에 온 게 아니라구요.
강 사장이 소주잔을 턱, 내려놓더니 벌건 얼굴로 쏘아붙였다.
─ 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너, 졸업도 못 했잖아. 자격증도 하나도 없고. 뭘로 네 능력을 증명할 건데. 한국에서 대학만 들어가면 취직이 금방 될 줄 알았니? 너, 졸업하기 힘든 것도 알았잖아. 너네 나라에서 루즈하게 살다가 한국에 와서 뭘 할 수 있을 줄 알았어? 너, 우즈벡 고등학교 나와서 한국 대학교육은 따라갈 수 있을 거 같았니? 한국 애들 고등학교 때까지 꽉 짜인 시스템에서 공부해. 그런 애들이 대학 가서 또 열나 공부하고 몇 개씩 자격증 따고 그래. 대학은 뭐, 날라리로 다닐 수 있는 줄 알아? 한국에서 자격증 따기는 또 쉬운 줄 알아? 그런데 그걸 못 한다고 그래?
─ 호텔경영 가르쳐준다고 했잖아요. 당신이 그렇게 말했잖아요.
─ 그래, 그래, 했어. 그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가르쳐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관광업 전반에 대한 실질적인 경험이 쌓여야 되는 것이지, 그냥 되냐? 그냥 되냐고? 네가 그렇게 능력이 있는 것 같아?
강 사장이 참, 나 하면서 고개를 돌리자 K가 거들었다.
─ 안나, 넌 대학도 졸업하지 못했고, 자격증도 아무것도 없잖아. 영어를 잘하니, 한국어를 잘하니? 호텔경영은, 작은 호텔이라 해도 아무 경험도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냐. 밑에서부터 하나하나 차근차근 밟아서 올라가는 것이지. 공부 잘한 한국 애들도 취직하기 어려운 데야.
─ 당신이 해준다고 했잖아요.
─ 허, 참. 그게 그런 뜻이 아니잖아.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얘네들은 도대체…… 정신상태가 글러먹었어. 한국 사람들 살아가는 게 그렇게 만만해 보이던? 너희는 그래서 문제야…….
─ 당신은 너무 무례해요. 내게 예의를 갖추라구요.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구요.
─ 뭐시라?
셋이서 옥신각신하면서 밤이 깊어 갔고 술이 취해 갔다. 문을 닫아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말했을 때 강 사장은 두 사람을 떨치고 일어나 가버렸고, 그렇게 안나는 K에게 떠넘겨졌다. K가 곤란하게 되었다면서 어쩌면 좋지? 어쩌면 좋지? 몇 번을 중얼거리더니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면서 안나를 데리고 나갔다.
그러고는 며칠 뒤에 K가 와서 취직자리를 알아볼 동안 와인 바를 하는 친구 가게에서 잠깐 동안 아르바이트라도 하며 기다리라고 했다고 말했다. 숙식 가능한 곳이며 비슷한 처지의 러시아 여자가 한 명 더 있다고 했다.
그렇게 된 거군. 안나의 열다섯 개 침대는.
그녀는 속이 바짝 타서 맥주를 꺼내왔다. 먼저 시원하게 한 잔 마신 뒤에 안나에게 거품 가득 채워 권했지만 안나는 멍하니 열린 눈을 도대체 닫을 생각을 하지 않고 도리질을 했다. 안나의 눈에 매운 향이 번지길 바라며 바로 앞에서 와사비를 간장에 휘휘 저어 풀었다. 매콤한 양념에 파묻힌 콩나물을 듬뿍 건져 와사비 소스에 찍었다. 한입 가득 와삭 씹고 말했다.
─ 안나가 누웠던 침대가 열네 개라고? 나도 좀 세어 볼까? 그 집을 떠나온 지 일곱 개를 거쳤네. 그 집. 흥, 내 집이었던 적이 없으니 그 침대까지 합하면 여덟 개가 되겠군. 내가 결혼해서 남편과 함께 누웠던 침대.
그보다 몇 년 전, 엄마의 ‘달빛 소나타’ 삼층에 그녀의 침대가 있었다. 달빛 소나타는 자그마해서 이층까지밖에 올릴 수 없었다. 삼층에는 허가받지 못한 건물이 올려졌고, 그녀와언니와 남동생이 사는 방을 세 개 들였다. 방은 미닫이문으로 구분되어 있을 뿐, 숨소리조차 고스란히 들려서 나뉘어 있다고 할 수도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자 엄마가 침대를 사줬다. 침대가 생겼을 때 그녀는 처음으로 친구들을 집으로 부를 생각을 했다. 그때까지 친구들과 친하게 지낸 적도 거의 없었지만, 엄마의 술집 위, 엄마가 데리고 있는 여자들이 있는 이층을 지나 그녀의 형제들이 사는 삼층, 정확히 말하자면 이층 위의 가건물에 친구들을 데려올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녀의 형제들은 셋 다 공부를 잘했다. 거의 항상 반에서 일이 등을 다툴 정도였다. 예쁘기까지 해서 학교에서는 다른 애들을 부러워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녀는 친한 친구를 만들 수가 없었다. 친한 친구란 무릇 서로의 집에 왕래하는 사이를 말하는 것. 친구를 집에 데려오면 그날로 학교에서의 지위가 무너져 내릴 테니까, 그건 어떻게 해서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녀는 침대를 들여놓고 문가에 서서 침대를 보고 또 봤다. 침대는 하얀 공주풍이었고 이불은 부들부들한 핑크색이었다. 삼층 건물을 통틀어 맘에 드는 물건은 그것 하나밖에 없었다.
깊은 밤, 술에 취한 언니들의 코맹맹이 소리와 언니들의 허리를 휘감은 취한 남자들의 목소리가 끈끈하게 얽혀 계단을 올라오면, 그녀는 잠자리에 들었다가도 번쩍 깨곤 했다. 그랬던 것이 침대가 생기고부터 달라졌다. 침대에 누우면 일층의 달빛 소나타에서 그녀를 데리고 멀리멀리 떠나 줄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밤이면 밤마다 술집 문을 걷어차고 뛰쳐나와 엎어지고 자빠지며 싸우고 뒹구는 술 취한 언니들과 개보다 못한 남자들의 욕지거리가 조금쯤은 작게 들리는 듯했다. 남동생이 괴성을 지르며 책상 위에 손바닥을 펼쳐 놓고 송곳으로 내리찍는 것마저 예전처럼 놀라지 않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언니는 집을 떠났는데 언니도 집을 떠나기 전까지 가져 보지 못했고, 아직 동생도 갖지 못한 것을 가졌다. 그녀는 자기에게 어울리는 삶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일 학기가 거의 다 지나갈 무렵, 친구 세 명을 데리고 검은색 코팅지가 빈틈없이 발린 달빛 소나타의 문을 밀었다. 그녀의 집에 가려니 하고 따라온 친구들의 뺨이 굳어지는 것을 볼 수밖에 없던 타고난 눈치라니. 아무리 활짝 웃어도 눈썹 문신 때문에 무서운, 커다란 덩치의 엄마는 활짝 웃으며 그녀와 친구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가게에서 저녁을 먹고 올라가라고 했다. 엄마가 정성껏 차려 준 저녁은 꽁치김치찌개였다. 차라리 치킨을 줄 것이지. 엄마의 꽁치김치찌개가 얼마나 맛있는지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지만, 내 친구들은 그런 거 안 좋아한단 말이야. 속으로만 꿍얼거렸다. 말 한 마디 못 하고 어색한 얼굴로 열심히 먹고 있는 친구들이 밥을 남기지 않으려고 눈치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 먹지도 않았는데 데리고 일어났다. 조금 있다가 치킨 가져다줄게, 올라가자. 그녀는 일부러 명랑한 척 목소리를 띄웠다.
그녀는 친구들이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고 게스 티셔츠를 자랑할 때, 종로 5가에 있는 양장점에 갔다. 고급스러운 벨벳 몸판에 네크라인과 치마 밑단은 새틴으로 포인트를 준 조끼 원피스를 맞춰서 하얀 블라우스를 속에 받쳐 입었다. 어느 날, 계절마다 옷을 맞춰 입던 양장점에 문을 열고 들어섰다가 앞을 가로막고 우뚝 서 있는 금발머리 여자에게 꾸뻑 인사를 한 기억이 났다. 다시 보고 마네킹인 것을 알고 오히려 더 놀라서 조그맣게 비명을 질렀다. 그동안은 가봉할 때 옷을 걸쳐 놓고 바느질하는 검은 몸체만 구석에 놓여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진열창 앞에 세우는 마네킹을 들여놨던 것이다.
그녀가 부유한 일본 소녀 같은 예쁜 원피스를 입고 빨간 자전거를 끌고 도서관을 나서면 마침 길을 지나가거나 서성이던 남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쏟아지곤 했다. 그녀는 남학생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가방을 길게 사선으로 둘러메고 자전거에 올라타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집으로 가는 골목길에 들어섰을 때 남학생이 단 한 명이라도 보이면 그녀는 달빛 소나타 앞을 그냥 지나쳤다. 뒷골목으로 돌고 돌아 저 멀리에서부터 집 앞을 짯짯이 살펴보고 아무도 없을 때 후닥닥 달빛 소나타 옆 계단으로 자전거를 올리곤 했다. 계단 앞에 유리문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얼마나 바랐던지. 계단이 한낮에도 어두컴컴했던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녀가 친구들을 데려온 건 단지 침대를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매력적이어서 남자 선생님들까지 실실 웃음을 흘리며 녹아내리는 데다 항상 공주 같은 옷을 입고 다니던 그녀는, 처음으로 친해진 친구들에게 가정환경에 대해 고백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그녀는 그 친구들 집에 다 놀러갔었던 것이다. 평범한 주택에 사는 평범한 친구들이었다. 녹슨 철대문을 밀고 들어가면 하나같이 마당을 덮은 시멘트가 부서져 있었다. 두 명은 개가 뛰어나와 맞아 주었고, 한 명은 아무도 맞아 주지 않았다. 엄마들은 하나같이 딸들을 특별하게 대우하지 않았다. 과일도 대강 숭덩숭덩 썰어 내놓았고, 쟁반 위엔 흔한 과자봉지가 함께 올려 있었다. 바나나와 배와 포도를 구색 맞추고 바나나와 사과와 배를 그렇게 긴 접시에 모양내서 깎아 내놓는 집은, 달빛 소나타밖에 없었다. 그녀는 저녁 내내 엄마가 모양 낸 과일을 가져올까 봐 걱정을 해야 했으니, 특별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렇게 작은 것에서부터 달랐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은 저녁부터 한밤까지는 엄마가 가장 바쁜 시간이라는 거다. 삼층에서 남동생이 칼로 팔목을 그어도 올라오지 못했으니까.
그녀는 자라 온 환경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숨겨야만 했으니까. 그런데 이제 그 이야기를 안나에게 늘어놓고 있었다. 아침 시간에, 맥주를 홀짝이면서. 그녀가 향기로운 커피와 버터에 구운 모닝 빵을 침대에서 받는 아침을 갖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하지만 지금은 K도 없고, 아직 새로운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안나는 이야기를 흘려들을 게 분명한 데다 다른 누군가에게 옮길 가능성도 거의 없을 게다.
어느 새 접시가 깨끗이 비워졌다. 식당 문을 열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안나는 눈을 멀거니 뜬 채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코리안 드림을 이뤄 보려고 갖은 애를 쓴 사 년, 그동안 자기만의 방은 고사하고 후원자이자 애인인 남자의 침대에 끼어 자거나,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침대를 잠시 빌리거나, 아르바이트 동료와 함께 한 침대에서 구겨 자야 했다. 나눠 쓸 방이 널려 있는 곳은, 뒷골목의 술집뿐. 몇 달이면 네 방을 마련할 수 있다고 유혹하는 술집 알바 자리만 차고 넘쳤을 뿐. 안나가 힘겹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는 습관적으로 맥주잔을 건네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으로 나가서 프라이팬에 저민 마늘을 던져 넣었다. 홍합을 프라이팬 가득 넣고 다시물을 자작하게 부었다. 냉장고 안에서 익다 못해 물러터질 지경이 된 토마토를 네 조각 내서 팬에 넣고 으깼다. 버리려던 토마토 네 개를 처치했다. 다 삶아진 스파게티 면을 넣고 후루룩 뒤섞어 커다란 접시에 얹었다. 따뜻한 김이 오르는 접시를 안나 코 옆에 들이밀고 보니 눈물이 귓구멍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 우즈벡에서는 뭘 먹는지 알아야 흉내라도 내볼 텐데, 이거라도 먹어. 난, 식당 열 준비해야 돼. 맥주는 저 냉장고에 있어.
말은 했지만 혼자서는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그냥 놔두면 더 귀찮은 일 생길 것 같다는 이유를 대며 안나를 억지로 일으켜 앉혔다. 두 손 위에 접시를 얹고 스파게티에 포크를 찔러 주었다. 그러고 보니 안나는 어제 입고 있던 검은 정장차림 그대로였다. 그녀는 안나에게 옷을 주려고 옷장을 열었다. 그리고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 옷장 안에서 온통 검은 상복 차림의 사람들이 줄지어 조문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검은색 아니면 회색, 간간이 짙은 갈색. 무엇 땜에 이 옷장 속에서 조문에 맞는 옷을 찾느라 한참을 소비했던가, 싶었다. 손에 잡히는 것 아무거나 꺼내면 바로 상복인데 말이다. 숨을 고르느라 옷장 앞에 서 있었다. 안나가 포크를 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검은 티셔츠와 편안한 저지 천으로 된 플레어스커트를 꺼내 안나의 발치에 놓아 주었다. 카디건도 하나 꺼내 그 옆에 놓았다.
─ 갈아입고 누워 있어. 쌀쌀하니까 위에 걸치고.
손님을 한창 받고 있느라 언뜻 보기는 했지만, 막 닫히는 문 사이로 안나의 뒷모습을 본 것 같았다. 말도 없이 가는 건가,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딱히 신경 쓴 건 아니었다. 앞날을 의탁하려던 사람이 죽었으면 적어도 이삼 일은 근조 리본 정도는 달고 쉬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슬픔도 막막함도, 억눌린 감정도 없는 걸 보면 사랑했던 것도 아니고, 크게 기대했던 것도 아닌 거였다. 안나만큼의 기진맥진함도 없는 거라면, 안나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게 마땅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남은 감정이나 기억 따위를 없애기 위해서는 열심히 동태찜을 만들고 아구찜도 만들고, 설거지도 해야 했다. 지금 누구를 돌아봐도 그녀는 전혀 위로받을 처지가 아닌 것이다.
그녀는 동태찜을 좋아하기도 하고 잘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코다리찜은 보기도 싫었다. 코다리찜을 아주 맛나게 잘 만들던 엄마가 코다리찜 솥 앞에서 쓰러져서 그런 건 아닐 게다. 엄마는 회복되고 나서도 코다리찜을 잘 만들었고, 그녀의 남편이 된 그 사람도 엄마가 한 손으로 해준 코다리찜을 잘 먹었다.
일할 때는 오래 전 일 같은 건 생각하는 게 아니다. 쓸 데 없이 옛일이 줄줄이 기억나는 바람에 잠시 잠깐 멍하니 손을 놓고 있었고 동태찜은 밑이 눌었다. 손님이 동태찜이 왜 안 나오느냐고 두 번째 채근해서야 눌은 냄새를 맡았다. 아무리 위로가 필요한 처지가 아니라도 어제 오늘은 쉬었어야 하는 거다. 아니, 어제는 죽음이 실감나지 않았으니 일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K에게 오게 된 긴 시간이 되살아났다. 그러니 오늘은 쉬었어야 하는 거다. K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게 아니라 그녀 자신을 위로해야 하는 날이었던 거다. 그녀가 세웠던 계획이 또 한 번 수포로 돌아갔으니까.
저녁 아홉 시가 넘어가자 동태찜은 한 번도 싱싱한 채로 손님상에 올라가지 못했다. 단골들은 유난히 구수한 냄새가 난다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맛있다고 했지만, 그녀는 변명을 할 줄도 몰랐다. 어서 남은 손님들이 일어나기만 바랐다. 결국, 술을 더 시키는 단골손님에게 몸살이 났다면서 문을 닫아야겠다고 말하고 말았다.
방문을 열다가 뒤로 자빠질 뻔했다. 안나가 커다란 여행가방을 다리 옆에 세워 놓고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옷은 그녀가 준 것으로 갈아입었다. 간 거 아니었어?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 저, 며칠만 여기 있으면 안 될까요? 갈 데 마련할 동안만.
그녀는 안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 나도 힘들어, 너를 챙길 입장이 아니야.
말은 그렇게 했어도 너보다는 내가 낫지,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누구를 만나도 내게서 그 무엇이든 가져가려고 하지 마, 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었다. 해줄 때 해주더라도 미리 기대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게 어느 새 소신처럼 되어버렸다.
─ 내가 바보 같죠? 당신 생각은 어때요? 한국에서 내가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한국 남자와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은가요? 그리고, 내 동생들을 불러와서 자리 잡게 해줄 수 있을 것 같나요? 한국에 가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거의 다 돌아온다고 말렸어요. 한국에서 대학만 잘 졸업해서 돌아오면 그게 더 나을 거라는 말도 했어요. 그런데 우즈벡에서는 타슈켄트에 가도 일자리가 별로 없어요.
─ 다른 건 모르겠는데, 안나. 한국 사람들 출신 성분에 대해서 굉장히 보수적이야. 결혼이라면 특히. 한국 남자가 우즈벡 여자와 결혼한다는 것은, 미안하지만, 가정환경 좋고 스펙 좋은 남자는 어려울 거야. 그러니 네 처지를 완전히 새로 세팅하기는 어렵다는 거지. 재혼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 네, 당신 말이 맞아요. 젊은 남자들은 나랑 사귀었지만 자기 가족에게 인사시키려 하지 않았어요. 한 번 인사시킨 적이 있었는데 그 남자의 엄마는 너무 무례했어요. 나는 자기 아들의 여자 친구인데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감추지도 않고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었어요. 마치 자기 집에 들어올 가정부 대하듯 말예요. 우즈벡은 잘살지는 않지만 자녀의 애인에게 무례하지는 않아요. 내가 남자 친구에게 당신 엄마 너무 무례하다고 했더니 화를 벌컥 내며 한국에 왔으면 한국의 문화를 받아들일 생각을 하라고 했어요. 그 뒤로 그 남자는 자주 내가 한국문화를 익히려 하지 않는다고 화를 냈구요. 그 집의 분위기를 익힐 사이도 없이 얼마 뒤에 헤어지고 말았죠.
그녀야말로 출신 성분을 바꿔 보려고 공부를 열심히 했고, 좋은 남자를 만나려고 그녀만 보면 침을 흘리는 그 많은 남자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러면 뭐 하나.
친구들을 데려왔던 날, 이층 언니 중 한 명이 가게로 내려가기 전에 아기를 데려다 놓고 갔다. 처음 술집 여자를 본 친구들의 표정이 아직도 또렷하기만 하다. 친구들은 그녀가 아기를 받아 안을 때 아기보다 아기 엄마의 얼굴만 보았다. 천만 년은 동떨어진 곳에서 온 사람을 보듯 어쩔 줄 모르는, 그러나 호기심이 가득한 초롱초롱한 눈이 언니에게 고정되어 있다시피 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친구들의 얼굴을 보았다. 그래도 그녀는 명랑한 척해야 했다. 그녀는 정말 그 아기를 사랑했다. 친구들에게 아기 눈 좀 보라고 했고, 얼마나 이쁘냐고 했고, 볼 좀 보라고 했고, 깨물어 주고 싶지 않느냐고 했다. 그리고 아기 뺨이 얼마나 보드라운지 한번 만져 보라고 했다. 친구들은 어색하게 웃으며 어, 그래, 이쁘다, 하면서 마지못해 쓰다듬었다. 평범한 여학생들이라면 결코 마주칠 일이 없을지도 모르는 술집 언니. 그리고 술집 언니가 낳은 아기. 친구들 세 명 다 선뜻 어루만지지 않았다.
그녀가 먹여 주는 바나나를 넙죽넙죽 받아먹던 아기는 잠이 들었다. 밤이 깊어 가면서 아래층에서 어수선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얼른 일어나서 작은 오디오세트의 플레이버튼을 눌렀다. 친구들이 아무 소리도 듣지 않기를 바랐다.
─ 너네들, 이 노래 좋아하지?
스콜피온스의 Holiday가 흘러나왔다. 연달아 비지스의 Holiday와 마이클 폴나레프의 Holiday가 흘러나왔다. 당시 유행하던 노래란 노래는 다 따라 부르던 친구들은 평소답지 않게 조용히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다른 시디를 넣었다. 제럴드 졸링의 Ticket to the Moon이었다.
─ 나는 이 노래 좋아해.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역시나 노래가 다 끝날 때까지 조용히들 음악만 듣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그렇게도 명랑하게 재잘거리던 애들이 너무나 고분고분하게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녀는 친구들이 즐겁게 수다를 떨기 원했지만 이상하게도 점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 나는, 저녁만 되면 죽고 싶어. 내가 이런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게 정말 괴로워.
어쩌다가 그런 말이 튀어나왔는지 모른다. 친구들에 그렇게까지 고백하려고 하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 내 남동생은 중학교 삼학년인데, 가끔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자해를 해. 걔 손등에는 담뱃불로 지진 자국이 있어. 왼손을 책상 위에 쫙 펴놓고 칼로 손가락 사이를 찌르는 게임을 하기도 해. 하나, 둘, 셋, 넷, 하나둘셋넷, 점점 빨라지는 거 알지? 쟤 책상 위에는 칼자국이 엄청 나. 그애 방은 아무도 들어가면 안 돼. 걔 방에 있는 거 아무거나 건드리면 걔 미쳐, 아마 사람 죽일 거야. 나는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어. 그리고 책을 펴서 억지로 공부를 하는 거야. 외우는 과목 있지? 그걸 막 외워. 한참 동안 공부하다 보면 스르르 정신이 드는 것 같아. 그때, 너무 외로워서 사랑하는 남자 품에 안기는 걸 상상해. 너무나 외로워. 누군가 나를 꽉 안아 줬으면 좋겠어. 너희들은 외롭지 않니?
베개를 끌어안고 혼자 먼 곳을 바라보며 주절거리다가 그렇게 물으면서 친구들을 보았다. 친구들의 눈은 아마 그 사이 점점 커졌던 듯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녀와 친구들 사이에는 부암동의 소박한 주택가와 달빛 소나타만큼 먼 거리가 가로놓여 있었다.
안나가 침대에 스르르 몸을 눕혔다. 검은 플레어스커트가 펄럭, 침대 아래로 늘어뜨려졌다. 두 사람 다 검은 옷차림이었다. 둘 다 K의 죽음이 슬프다느니, 안타깝다느니 하는 말은 꺼내지도 않았지만 어쨌거나 K의 장례를 치르는 꼴이었다. 겨우 세수를 했을 뿐, 립스틱 하나 바르지 않은 두 사람 다 수척했고, 둘 다 목이 바짝바짝 탔다. 두 사람 다 지금 그대로 장례식장에 앉혀 놓으면 상주나 다를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침대에서 스르르 미끄러져 바닥에 앉아 등을 기댔다. 안나가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안나는 옆에 있는 사람을 만지작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그 누구라도.
─ 나는 나망간이라는 시골에 살았어요. 거기는 미혼모들이 정식 결혼한 여자들보다 많은 곳이에요. 나 역시 미혼모의 딸이었구요. 내 엄마는 열일곱 살에 나를 낳았어요. 그리고 나를 키우기 위해 남자들을 갈아탔어요. 그 남자들에게서 또 아들 둘을 낳았구요. 거기에서는 그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이를 하나쯤 낳은 여자가 자기 엄마에게 아기를 맡기고 다른 지역으로 가서 출산 경험이 없는 것처럼 속이고 결혼하는 일이 드물지도 않아요. 남자 하나를 두고 여자들이 질투하고 싸우는 건 예사였어요.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어요. 엄마의 마지막 남자가 내게 말해 줬어요. 대학을 다니라고.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타슈켄트로 나왔어요.
타슈켄트로 나온 안나는 대학에 가고 싶어서 대학 앞 서점에서 일을 했다. 안나가 터키에서 온 턱수염과 머리카락이 반쯤 하얗게 센 남자를 만난 것은 하늘의 도움이었다. 서점에 들러 책을 사서 학교로 가곤 했던 남자가 책을 읽는 안나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그 남자는 외국어대학에서 터키어를 가르치는 교수였다. 혼자 우즈벡에 온 그에게는 여자가 필요했고 안나는 그의 여자가 되었다. 그는 그 대가로 대학에 보내 주었고 한국어를 배워서 한국으로 가라고 일러주었다. 그녀는 그를 정말 사랑했다. 한국의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오기 전까지로 그와의 사랑은 한정되어 있었으므로, 사랑은 하루하루 더욱 불타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침대는 허리가 꺾일 정도로 푹신한 스펀지였다. 그가 몸을 뒤채면 그녀까지 뒤채는. 햇빛이 들어오는 날에 침대에 몸을 던지면 먼지가 뿌옇게 피어오르는. 하지만 그의 허리와 가슴의 굴곡에 맞춰 달라붙어 자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를 떠난 뒤로 오랫동안 자다가 뺨이나 목덜미에 닿는 그의 뻣뻣한 곱슬머리와 수염이 그리웠다.
─ 싱글맘이나 매춘을 했던 여자가 신분을 세탁하려면 다른 나라로 가면 돼요. 아주 좋은 핑계가 있더라구요. 다들 술집에서 잠깐 알바나 좀 하고 있으라고, 가볍게 권하던데요. 학비가 모자라서, 공부를 하는 데 체류비용이 필요해서, 와인 바에서 와인이나 위스키 따라 주고 이야기 나눠 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일 뿐이에요. 매춘 전문가가 아닌 거예요. 어쩌다 손님과 마음이 맞아서 잠을 자도 그건 매춘이 아니에요. 연애를 한 거지. 돈을 좀 주거나 방을 마련해 주면 그건 스폰을 해준 거지 화대가 아니에요.
─ 어허, 그렇구나. 그렇게 가벼운 걸, 나는 왜 그렇게 힘들었던 거지? 나는 왜 다른 나라로 가서 신분세탁을 할 생각을 못 했던 거지? 내가 매춘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도대체 매춘이란 뭐지? 전업이어야 하는 건가? 영원히 전업? 그 세계에 뼈를 묻어야? 허허 참.
─ 당신은 너무 답답해요. 당신 얼굴을 보세요. 당신은 미망인 같아요.
─ 너는 안 그렇고? 내가 보기엔 네가 더 미망인 같아.
─ 한국에 와서 대학을 나오고 자격증이 있어도 우리가 이 사회에 뿌리를 내리기는 참 어려워요. 우리에게는 아무런 네트워크가 없거든요. 대학에서 한국 학생들의 성적관리를 따라가기도 어렵구요, 시스템에 적응하기도 어려워요. 남자를 통하지 않으면 네트워크마저 이용할 수도 없어요. 한국은 사람으로, 특히 남자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일을 하기가 어려운 나라예요.
─ 그렇구나.
─ 내가 파트너가 필요한 이유죠. 잠자리를 할 남자가 필요한 게 아니라, 생계를 마련해 줄 남자가 필요한 거예요. 파트너의 네트워크를 이용해야 하니까요.
─ 그렇구나, 안나와 나는 별로 다르지 않았네. 나 역시 아무것도 없어서, 남편의 네트워크가 필요했거든. 그쪽으로 옮겨 타고 달릴 생각이었어. 괜찮아 보였거든.
그런 환경이었어도 계속되기만 했다면 그녀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공부를 잘했으니까.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초, 엄마가 뇌졸중을 일으키고 반신불수가 되어버렸다. 엄마를 간호하는 몫은 고스란히 그녀에게 돌아왔다. 고등학생이 된 남동생은 학교를 떠나 길거리로 나갔고, 집에 들어오는 일이 거의 없기도 했지만, 집에 왔다고 해서 엄마를 돌볼 리도 없었다. 전도사와 결혼한 언니는 아마도 집을 잊고 싶을 거라 짐작되었다.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다. 엄마가 왼쪽 몸이 마비된 채로 간신히 일어나 앉아 가겟방에 앉아서 다시 술 따를 언니들을 불러올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였다. 그녀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고 합격했다. 곧바로 세무서에 취직이 되었다. 그리고 국세청에 다니던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그녀에게 한눈에 반했고 완전히 헌신적이었다. 바로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9급 공무원인 그녀에게 헌신적인 7급 공무원. 또래에 비해 호봉이 높은 걸로 봐서 앞날이 밝아 마땅했던 남자. 좋은 점이 하나 더 있었다. 남자가 말했다. 세무사 시험을 봐서 독립하려고 해. 우리 식구들이 머리 하나는 좋거든. 7급 시험도 한 번에 붙었어. 그랬을 거다, 그는 아직 젊은 스물여덟이었으니까.
그녀의 가정환경에 관해서도 개의치 않았으며, 무엇보다 집에 왔을 때 반신불수인 엄마를 업고 삼층까지 올라와 준 점. 엄마를 편안히 앉혀 주고는 넙죽 엎드려 따님을 주십시오, 행복하게 해주겠습니다, 하고 말한 점. 그 점은 정말이지 다른 사람이 따라올 수 없는 점이었다. 체격이 당당하고 목소리도 힘찬 그 남자는 달빛 소나타를 벗어날 티켓 투 더 문이었다.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는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운 그를 따르기로 했으며 자연스럽게 초고속으로 결혼을 진행했다. 홀시어머니와 손위 시누이가 둘 있었다.
그녀가 결혼하자 친언니가 연락을 해오기 시작했다. 언니는 이제 지방의 작은 교회지만 목사님의 아내가 되었다. 언니는 그녀가 정상적인 삶의 궤도에 올랐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언니가 전화를 걸어왔을 때 그녀는 언니에게 엄마를 찾아보기는 하는지 은근히 떠봤지만, 언니는 아직 달빛 소나타에는 가지 않는 눈치였다. 언니는 그녀에게 남편과 함께 놀러 오라고도 했고, 시간 나면 자기 남편과 함께, 거의 본 적이 없어서 형부라는 말이 도저히 나오지 않는 남편과 함께 그녀의 집에 놀러 가겠다고도 했다. 그녀는 감이 멀어서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는 전화 통화가 짜증이 났다. 그래, 놀러 와, 라고 대답하고 마무리 지었다.
남편은 결혼하자마자 대학에 보내 주었다. 하지만 결혼하자마자 그녀는 시어머니에게 시달리기 시작했다. 시어머니가 그녀의 출신 성분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대기업 직원 아내들인 손위 시누이들은 대놓고 무시했고 말도 섞지 않으려 했다. 시험공부를 하느라 좀 늦게 들어온 날, 시어머니 입에서 방언 터지듯 멸시하는 말이 터져 나왔다. 넌 무슨 배짱으로 우리 집에 시집 올 생각을 다 했니? 딸을 키우는 집에서 어떻게 여자 장사를 한다니? 도대체가 무서운 게 없는 집일세, 쯔쯔.
세상의 모든 공격을 막아 주고 위로해 줄 것 같았던 남편은 홀시어머니의 귀하고 귀한 아들이었지, 믿음직스러운 남편이 아니었다. 그는 귀하게 키운 아들이 아까워서 그래, 네가 이해해, 이 따위 말을 늘어놓는 남자였다. 그러고는 밤이고 낮이고 그녀의 눈을 쪽쪽 빨고, 입술을 쪽쪽 빨았다. 다른 남자 앞에서는 절대 눈웃음치지 마, 다른 남자 앞에서 덧니 내보이며 웃지 마, 넌 나를 위해서 웃어 주기만 하면 돼, 하면서 그녀의 품에 파고들었다. 시어머니가 듣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고 격렬하게 정사를 치렀다.
시어머니는 공격의 고삐를 바짝 죄어 왔다. 그녀가 격렬한 정사를 치른 다음날 아침에 주방에 들어서면 시어머니가 방으로 들어가면서 문을 쾅 닫았다. 그리고 닫았던 방문을 다시 열어 놓고 시누이들에게 전화를 했다. 어디서 배운 짓인지, 잠자리 기술이 대단한가 보다고 했다. 저놈이 저년 집에서 저년을 만났나 보다는 말까지 했다. 시어머니에게 공격을 받으면서 그녀는 차디차게 식어 갔다. 남편을 받아 주지 않자 남편은 자기 엄마와 싸워댔다. 엄마가 기함을 하고 자지러지면 다시 그녀와 싸워댔다. 너 땜에 우리 집이 시끄러워졌어!
그녀는 가방을 챙겼다. 남편은 가방을 뺏고 울며불며 매달렸다. 너 없으면 나 죽어, 나 죽는 거 보려고 이러니? 남편은 그녀를 끌어안고 울었다. 시어머니가 문밖에서 가라고 해, 나가라고 해, 하며 소리를 지르건 말건 그녀를 끌어안고 침대로 갔다. 발버둥치는 그녀의 치마를 걷어 올리고 입술을 빨았다. 어린아이 같기도 하고, 힘센 남자 같기도 한, 남편에게 그녀는 몇 번이나 무너졌다. 그녀는 이런 남자들을 숱하게 봐왔고, 가장 경멸하는 남자도 이런 남자였다. 하지만 이런 남자를 쉽게 뿌리치는 여자 또한 거의 보지 못했다.
우리, 나가서 살자. 어느 날 남편이 그렇게 말했고 시어머니가 자지러졌다. 남편은 자기 엄마를 냉정하게 내려다봤다. 엄마, 우리 나가서 살게요. 이렇게는 더 이상 못 살겠어요. 낼 당장 집 보러 가겠어요. 마룻바닥에 드러누운 시어머니가 눈을 멀거니 뜨고 아들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와 함께 집 보러 나갔다가 남편이 길바닥에서 쓰러졌다. 얼굴 한쪽에서 그치지 않고 경련이 일어났다. 병원에 가서 보니 뇌종양이었다. 이미 상당히 진행되어서 수술도 할 수 없었고, 속수무책으로 죽어가야 했다. 한참 전부터 증상이 있었지만 하도 스트레스가 심해서 편두통이 온 거라고 생각하고 진통제를 먹어댔다고 했다.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날들을 보내고 남편은 죽었다. 그리고 장례식장에 발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험한 꼴을 겪었다. 남편 죽인 년이 어딜 감히 들어와. 내 아들 살려내, 이년아. 내 아들 등골을 빼먹은 년이 어딜 감히.
그녀는 상복을 입고 장례식장 앞 긴 의자에 앉아 있었다. 험한 꼴을 겪게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녀를 위해 목숨을 바친 단 하나의 남자였다. 하필 일요일이 끼어서 사일 동안 장례를 치렀다. 그녀를 지켜주지 못한 남편이었지만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다. 남편의 영정 앞에서 잘 가라고 절을 하고 싶었다. 사흘째 밤에 다들 지쳐 쓰러져 자는 동안 그녀는 도둑처럼 남편 앞으로 갔다. 하얀 국화를 올리고, 절을 했다. 엎드린 채로 잘 가라고 스무 번을 말했다. 명치끝에서 눈물이 솟구치려다가 도로 꾹꾹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여름이었고 너무 더웠다. 화학섬유로 지은 검은 상복은 땀을 흡수하지도 바람을 통과시키지도 못했다. 땀에 젖은 몸에 검은 물이 배일 것만 같았다. 그녀는 상복을 입은 채 날이 새기 전에 장례식장을 나왔다.
남편을 화장하는 동안 그녀는 남편의 집으로 갔다. 시어머니가 돌아오기 전에 가방을 챙겨 나올 생각이었다. 욕실에 상복을 벗어 놓고 샤워를 했다. 그리고 방을 나서기 전에 침대를 돌아보았다. 하루도 마음 편히 잠들어 보지 못했던 침대였다. 남편은 호텔처럼 하얀 침구를 고집했다. 너는 하얀 시트에 둘둘 싸여 있는 게 젤 섹시해. 하얀 시트에 네 알몸이 감겨 있는 걸 상상만 해도 죽을 거 같아. 회사에서 그 생각이 나면 미칠 거 같아, 내가 얼마나 헐레벌떡 달려오는지 아니? 남편과 정사를 치르고 하얀 시트를 걷어서 나올 때마다 시어머니에게 들킬까 봐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시어머니 방문이 열리지나 않을까 가슴 졸이며 살금살금 세탁기로 가서 무사히 시트를 집어넣고 나서야 숨을 들이켜곤 했다. 이제 저 시트는 버려지고 말겠지. 거기서 남편과 뒹군 날들이 마치 달빛 소나타 이층에서 벌어진 일처럼 생각되었다.
결혼한 지 삼 년 만에 그녀는 달빛 소나타로 돌아갔다. 학교도 다니다 말았고, 다시 취직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녀의 언니는 연락을 끊었다. 그건 그녀가 다시 부끄러운 위치로 내려갔다는 얘기였다.
─ K가 잠시 알바하고 있으라고 한 와인 바는 직장에서 퇴근하다가 바에 들러 한잔씩 하고 가는 젠틀한 사람이 주로 오는 곳이었어요. 러시아에서 온 소피아와 나는 혼자 온 손님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일을 했어요. 손님과 체스를 두기도 했구요, 다트 게임도 했어요. 순 거짓말이었지만 타로점을 쳐주기도 했구요. 대부분은 술을 따라 주고 같이 마시며 놀아 주는 걸 했죠. 손님이 슬쩍 뽀뽀를 해오면 그 정도는 받아 줬어요. 손님들은 취하면 손을 잡아끌고 허리를 감아 안고는 나랑 연애하자, 고 했어요. 하지만 대부분은 계산을 하고 나면 손을 흔들며 나갔구요. 문 닫을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게 하고 끈질기게 잡아끌며 연애하자고 하는 남자랑은, 같이 나가서 잤어요. 사장은 전혀 간섭하지 않았어요. 남자와 나가지 않는 날은 항상 사장의 침대에서 잤어요. 강요해서 그런 건 아니에요. 편하게 일하기 위해서 그런 거죠.
그녀는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는 안나의 손을 홱 치웠다.
─ 편하게? 남자와 자고 나면 편한 사이가 되는 거니?
거기까지만 말하고 꾹 삼켰다.
─ 아무래도 그렇죠. 남자와 자고 나면 좀 친해지잖아요. 사정 얘기도 할 수 있고. 도와달라고도 할 수 있고. 사장의 침대는, 아주 좋았어요. 라텍스 매트리스가 그렇게 포근하게 온몸을 감싸 주는지 몰랐네요. 이불도 너무 포근하다고 했더니 헝가리산 거위털이래요. 여름에 에어컨을 켜놓고 알몸으로 이불을 감고 자는데 무척 쾌적했어요. 그런 사람 있잖아요. 호텔처럼 아주 깔끔하고 간결하면서 뭐든 고급스럽게 하고 사는 사람. 내가 그런 걸 좋아한다는 것도 알았어요. 사람이 좀 차갑고 계산이 너무 분명한 사람이라 연애하기에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나도 나중에 이렇게 살아야지, 했어요. 잠자리 실력은 제일 형편없었지만 말예요.
K와의 잠자리 얘기가 나올까 봐 손을 탁탁 치며 그만 하라고 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맥주를 꺼내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따지고 보면 그녀나 안나나 매한가지였지만 그녀는 안나에게 맥주를 건네지 않았다. 그래서 K와 편한 사이가 되었고 K로 갈아탔던 거였구나. 와인 바 사장은 비전이 없으니까. K가 어느 날 안나와 잤다는 얘기를 했었다. 호기심에, 호기심에 한 번 잤어. 근데, 아무 느낌이 없더라? 이상했어. 정말 아무 느낌이 없더라구. 왜, 여자랑 자면 어느 순간에 서로 통하는 느낌도 있고, 그렇잖아. 근데 안나도 나랑 안 통하는 것 같더라구. 자기 나라말로 뭐라 하는데 말도 못 알아듣겠고, 나도 흥분하는 순간에는 우리말밖에 생각 안 나잖아. 내가 외국 여자하고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여자와 자는 것과는 너무 달랐어. 정말 아무 느낌도 없어서 다시 자고 싶은 생각이 안 들더라구.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그녀는 외국 여자에 대한 호기심을 한번 채워 봤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안나를 자기 숙소에 데려다 놓았다는 것이다. 취직시켜 준다는 말까지 하면서.
그녀가 아무리 남자에게 데어서 남자를 믿지 않게 되었다고는 해도, K가 친구에 불과했던 건 아니다. K는 그녀와 알고 지내는 동안 꾸준히 그녀의 문제를 들어 주고 해결할 방법을 가르쳐주는 역할을 해왔고 그녀는 상당부분 의지하고 있었다. 가게를 구할 때 이중계약에 휘말렸을 때도, 인테리어를 하는 과정에서 배관을 변경한 것이 문제가 되었을 때도, 손님이 적어지면 자기 일과 관련된 사람들을 몰고 오는 것도, 심지어 그녀의 푸념까지 기꺼이 들어 주었다.
K는 오랫동안 그녀에게 호의를 베풀었고, 그녀는 점차 K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죽어가는 모텔을 사서 리모델링을 한 뒤 가열하게 운영해서 매출을 올린 뒤에 팔아넘기는 사업이 제법 잘 되어 가는 것 같았다. 이젠 작은 호텔을 경매로 샀고 그걸 수리하느라 꼬박 달라붙어 있는 참이었다. K는 호텔을 경영하고 싶어 했다. 호텔을 안정적인 수입을 거두는 베이스로 삼고 빌딩을 사고 되파는 일은 계속하겠다고 했다. 그가 아주 신이 난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 호텔 사장님의 사모님이 되는 건 어떻게 생각해? 그런 말에 덜컥 넘어갈 그녀는 아니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회계장부를 넘겨주면 그럴 생각도 있어, 라고 대답했다. 내 식당을 넘겨달라는 것만 아니면, 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스물세 살 때까지 살았고 스물여섯 살에 다시 일 년 더 살았던 달빛 소나타 삼층은 마치 그녀가 직접 겪은 것처럼 남자들의 말과 행동 뒤의 것을 읽게 해주었다. 남자는 그 입에서 나온 것들을 바로 눈앞에 보여줄 때까지는 절대 믿지 말라. 내 주머니에 무엇이 있는지 네 옆에 누운 남자가 절대 눈치 채게 하지 말라.
K가 그녀에게 호텔 지분의 삼분의 일을 줄 테니 경영에 참여하라는 말을 언제 할지, 동업자의 입을 빌릴지, K가 직접 할지, 아니면 호텔이 완성된 뒤에 한참 동안 정상적으로 경영하는 것을 보여주고 할지, 파악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걸 알려주지 않은 채 죽은 K가 서운하기도 했다. 그녀가 K를 믿었어야 하는가? 그랬다면 예전처럼 뒷일은 모르는 채 행복에 겨워 그의 호텔 스위트룸에 들어갔을까? 어느 날, K의 아내라는 사람이 호텔 유리문을 밀고 들어올 때까지.
안나가 그녀의 손에서 맥주를 가져가더니 바짝 탄 목에 들이부었다.
─ 나, 여기서 며칠만 지내게 해줘요. 일자리 찾아볼 동안 머물 곳이 필요해요. 식당일 도와줄게요.
─ 안나, 우즈벡으로 돌아가는 건 어떻게 생각해? 여기서 별일 다 겪었고 여기 생활이 만만치 않다는 것도 알았잖아. 앞으로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거야. 안나, 세어 보니 말이야. 네가 거친 침대가 열다섯 개. 내가 거친 침대가 일곱 개야. 우리 스물두 개의 침대를 거쳐 여기까지 왔어. 앞으로 네가 얼마나 더 많은 침대를 거쳐야 할지, 너도 모를 거야.
─ 당신은요? 당신은 당신 어머니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나도 마찬가지예요. 여기서 산 것이 우리나라에서 산 것보다 나쁘지는 않았어요. 내가 기대를 좀 낮추면 될 거예요. 그리고 말이죠, 찾아보면 K 같은 사람이 또 있을 거예요.
안나가 누운 채 길고 단단한 허벅지를 번쩍 들어 올렸다. 다른 다리를 또 들어 올리더니 허공에서 자전거를 탔다.
─ 여기까지 왔는데 다른 나라라고 못 갈 거 같아요?
그녀가 탔던 빨간 자전거는 언제 멈췄는지 모르겠다. 흘끔거리던 그 순진했던 청년들 사이를 유유히 지나갔던 빨간 자전거, 그리고 부유해 보이는 원피스. 원피스를 맞춰 입지 않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옷장은 언제부터 저렇게 검은 옷으로 가득 차게 되었던 것일까.
안나는 그녀의 침대에 등을 눕힌 채 허공에서 계속 자전거를 탔다. 허벅지가 탄탄해서 대양도 건너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양을 건너갈지, 샛강을 건너갈지, 그건 두고 봐야 알겠지만. 그러나 그 사이 어디에서도 끝내 자기만의 침대는 갖지 못할 것 같았다.
《문장웹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