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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주차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10. 28. 15:10

 

 

 
 

 

불법주차

 

김숨

 

 

 



 

   벌써 20분 가까이 상훈은 골목을 헤매고 있었다. 차를 세워 둘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서였다. 골목들이 원체 불길에 오그라든 먹장어처럼 좁고 구불거리는 데다, 평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곳에는 차가 대 있었다. 어쩌다 차가 대 있지 않은 곳에는 큰 화분이나 ‘주차금지’라고 휘갈겨 쓴 고무통 따위가 초소병처럼 지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다녀간 게 이태 전이던가. 정초 즈음이었고 이슥한 밤이었다. 대낮에 그가 광선이 사는 동네를 찾은 건 처음이었다. 다녀갈 적마다 먹지 같은 어둠에 덮여 있던 골목 후미진 곳까지 가을빛에 적나라하게 까발려 있었다. 체기 올라오듯 슬슬 짜증이 치미는 그의 시야에 미장원 앞 자투리 공간이 들어왔다. 그는 그곳으로 천천히 차를 몰았다. 미장원 유리문을 막지 않으려 신경 쓰면서 차를 세웠다. 어수선한 미장원 안을 흘끔 살핀 뒤 차 시동을 껐다. 조수석에 던져 둔 잠바 주머니를 뒤적여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전화번호목록을 살피다 통화버튼을 눌렀다.

   “저, 상훈이요. 네…… 근처예요. 집 근처라니까요, 잠깐 들를까 하는데…… 집 근처요. 왜요? 갑자기 찾아오면 안 돼요? 네, 지금요, 지금…… 네…… 집 근처라니까요. 준헤어 앞이에요. 미장원이요. 네…… 집 아니에요? 암튼 지금 집으로 갈게요. 얼굴도 좀 보고 할 얘기도…….”

   그가 안전벨트를 풀자마자, 검은 앞치마를 두르고 통굽 샌들을 신은 여자가 미장원 유리문을 드르륵 밀고 밖으로 나왔다. 당장 차를 빼라는 손짓을 했다. 그는 차창을 반쯤 내리고 여자에게 사정조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잠깐만 댈게요.”

   여자는 그러나 더욱 완강하게 손짓을 했다.

   “차 댈 데가 없어서 그러는데 20분만…….”

   여자가 미장원 안으로 들어가더니 빨래건조대를 들고 나왔다. 여차하면 그것을 차 앞유리로 던질 듯 그를 쏘아보았다.

   “정말 어지간하지 않아요?”

   그러나 노인네는 일언반구 없었다. 흘끔 돌아보았지만 운전석 의자 뒤에 따개비처럼 웅크리고 있어 모습마저 잘 보이지 않았다. 골목을 빠져나가자 왕복 6차선 도로가 나왔다. 도로변에 바짝 차를 댔다.

   “어쩔 수 없잖아요. 골목에는 차 댈 데가 없으니…….”

   웬만하면 도로변에는 차를 세우지 않으려고 그렇게나 골목을 헤매고 다닌 것이었다. 그렇잖아도 엊그제 도로가에 잠깐 차를 세웠다가 주차위반 과태료 딱지를 뗐다. 편의점에 들어가 담배를 사고 거스름돈을 건네받는 사이 주차단속원이 나타나 단속을 했다. 그는 혹시나 CCTV나 주차단속원이 없는지 주변을 살핀 뒤 시동을 껐다.

   “금방 올 테니까, 아버지는 차 안에서 기다리세요.”

   노인네는 역시나 아무 대꾸가 없었다.

   “차 안에 계셔야 해요.”

   그는 운전석 차창을 올리려다 말고 차에서 내렸다. 주차단속원이 언제, 어디서 부지불식간에 나타날지 몰랐다. 그러나 백발성성한 상노인이 타고 있으니 주차위반 과태료 딱지를 야멸치게 붙이지 못하리란 게 그의 생각이었다. 차창마다 막 코팅이 짙게 되어 있었지만, 조금만 신경 써서 들여다보면 노인네가 버젓이 타고 있음을 알 것이었다.

   딸깍 차 문을 잠그는 순간 그는, 악어 주둥이만큼 악착스런 자물쇠가 채워진 방 안에 노인네를 감금하는 듯해 움찔했다. 떨어지지 않으려는 발길을 재촉해 골목으로 휘적휘적 걸어 올라갔다. 스무 발짝쯤 걸어 올라가던 그는 주춤 멈추어 섰다. 방향을 돌려 도로 차 있는 곳까지 내려왔다. 혹시나 이야기가 길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서였다.

   “혹시 말이에요. 주차단속원이 나타나서 차에 종이딱지 같은 걸 붙이려고 하면 절대 못 붙이게 하세요.”

   노인네가 입을 우물우물 실그러뜨려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절대…….”

   그는 시비 붙은 사람처럼 양손을 허리에 얹고, 차들이 무심히 내달리는 도로를 향해 고개를 절망적으로 내저었다. 노인네가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그는 도대체 판단이 서지 않았다. 혹시나 노인네가 차 밖으로 나오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수저조차 제대로 들지 못할 만큼 악력이 부쩍 약해졌으니 차 문을 쉽게 열지 못하리라. 오늘 새벽만 해도 화장실 문을 못 열어 그 앞에 넋 놓고 서 있지 않았나. 노인네를 생각해 화장실 문을 항상 열어 두라는 그의 당부에 아내는 질색했다. 화장실 문을 조금만 열어 두어도 변기와 배수구에서 올라오는 악취가 집 안에 진동한다는 것이었다.

   “운전자가 어딜 갔냐고 물으면…… 담배를 사러 갔다고 하세요. 담배요, 담배…….”

   차 안 노인네에게 눈길을 한 차례 준 뒤, 그는 기껏 걸어 내려온 골목으로 다시 발을 내딛었다. 10월 초순이지만, 겨드랑이에 땀이 차도록 날이 후덥지근했다. 아까 미장원 앞에서 그가 통화한 사람은 둘째 광선이었다. 그는 그녀의 집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가 차 댈 곳을 찾아 헤맨 골목들 어딘가, 그녀가 살고 있는 다세대주택이 있었다. 불쑥 찾아온 용건을 그녀는 대충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빚쟁이 대하듯 시큰둥하니 반기는 기색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게……. 그러나 노인네를 모시고 왔으리라고는 미처 예상 못 했으리라.

   근 4년 만이었지만, 그는 어렵지 않게 그녀가 살고 있는 다세대주택을 찾을 수 있었다. 1층에 침 놓는 집이 있는데 ‘침’이라고 쓴 간판이 표지판 역할을 해주었다. 침이라는 글자는 지나치게 네모나고 붉어 글자가 아닌 부적 같았다.

   “웬일이냐?”

   그녀는 현관문을 열어 주자마자 따지듯 물었다. 텔레비전 소리가 웅성웅성 어수선하게 떠돌았다.

   “매형은요?”

   거실을 둘러보는 그의 얼굴이 장마철 습기 먹은 벽지처럼 구겨졌다. 텔레비전에서 방청객들 특유의 과장되고 호들갑스런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잔다.”

   그에게 앉으라는 말도 없이 그녀는 부엌 쪽으로 걸어갔다.

   “여태 자요?”

   “나이는 생각도 않고 술이 떡이 되도록 퍼마시고 다니니 몸뚱이가 배겨나겠냐.”

   그의 눈길이 저절로 안방을 향했다. 한 뼘쯤 열린 문 너머로 군데군데 뜯기고 떨어져 흉물스런 자개장롱이 보였다. 광선이 쟁반을 들고 그의 앞으로 와 철퍼덕 앉았다. 물기 흥건한 손으로 과도를 쥐고 사과를 깎기 시작했다.

   “집에 있는 과일이라고는 달랑 요것뿐이다.”

   그제야 그는 빈손으로 덜렁덜렁 찾아온 것이 민망했다.

   “먹어라.”

   광선이 사과 조각을 포크로 찔러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내키지 않았지만 그것을 받아 입으로 가져갔다. 스펀지처럼 푸석푸석한 사과를 말없이 씹고 있으려니, 홀로 차 안에 있을 아버지가 걱정되었다.

   “커피라도 한 잔 타주래?”

   내내 눈을 마주치지 않던 그녀가 쌜쭉이 그를 쳐다봤다.

   “아침에 한 잔 마셨어요.” “하긴, 커피가 뭐 그리 몸에 좋은 거라구…… 마셔야 밤에 잠만 안 오더라.”

   그녀가 한숨과 함께 왼다리를 쭉 뻗었다. 폐식용유로 만든 빨랫비누처럼 크고 볼품없는 그녀의 발에 그는 흘끔 눈길을 주었다. 그녀를 비롯한 그의 형제들은 2년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닮아 발 생김이 다들 그렇게 험했다. 어쩔 수 없는 혈육지친이라는 생각에 환멸 비슷한 씁쓸하고 역겨운 감정이 치밀었다.

   “저기, 누나. 아버지 말이에요…….”

   “뭔 볼일인가 했더니만 아버지 얘기 하러 온 거냐?”

   갈치 뒷지느러미처럼 가늘어진 그녀의 두 눈이 질책하듯 그를 흘겼다.

   “누나가 당분간 좀 모시고 있었으면 해서요…… 한 서너 달 누나가 모시고 있으면 안 되겠어요?”

   “네 처가 그러라고 시키든?”

   “시키긴 누가 시켜요,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그 사람도 힘들어요. 천방지축인 사내애 둘에 아버지까지…… 더군다나 생전 이렇다 저렇다 말이 있는 사람이에요?”

   집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부드럽게 잘 상의하자고 단단히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목 핏대가 칡덩굴처럼 뻗쳤다.

   “사람이 말도 적당히 해가면서 살아야지, 속을 모르도록 말이 없는 게 무조건 좋은 건 줄 아냐?”

   “누나…….”

   “이왕 말 나온 김에 한 마디만 더 하자. 시아버지 모신 지 2년밖에 더 됐냐? 10년, 20년 모신 것도 아니구, 아버지 모시겠다고 해서 우리 형제들이 얼마나 고마워했냐? 어머니 장례 치르고 남은 돈도 싹 밀어 주지 않았냐. 아버지 모신다고 큰언니가 내내 김치도 대주었다던데…… 그런 건 깡그리 잊고 치매기가 있으니까 어디로든 쫓아 보내지 못해 안달이 난 게지.”

   “무슨 말을 그렇게…… 그리고 장례 치르고 남은 돈이 몇 천만 원도 아니고…… 겨우…… 그리고 큰누나가 김장 한 번 담아 준 걸 가지고…….”

   “내가 일 나가면 아버지하고 네 매형하고 단둘이 집에 있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쉽겠냐? 네 매형 보고 늙고 병든 장인 밥 차려 주라는 말을 어떻게 하냐? 그렇다고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아버지가 알아서 차려 드시지도 못할 테고…… 그렇지 않냐?”

   “매형은 요즘도 그렇게 일이 없어요?”

   박차고 일어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고 그는 물었다. 매형은 도배공이었다. 여기저기 알음 있는 지물포에서 도급으로 일을 받아다 했는데, 백수건달이나 매한가지였다.

   “술 사 마실 돈이나 겨우 벌까!”

   두리번거리던 그녀는 걸레를 움켜쥐고 신세한탄 같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슬렁슬렁 바닥을 훔쳤다. 그는 아무래도 매형이 자고 있다는 말이 거짓 같았다. 매형이 일을 나가고 집에 없을 것 같았다. 어머니의 장례식 이후 사이가 껄끄러운 매형과 얼굴을 마주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그녀가 잘 알기에 부러 그렇게 둘러댔을 것 같았다. 어머니 장례식 내내 술에 쪄들어 정신 못 차리던 매형에게 그는 얼굴을 붉혔고, 만취 상태이던 매형은 처가식구들이 죄다 자신을 벌레 보듯 한다면서 상주인 그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그때를 떠올리면 그는 죽는 날까지 매형의 얼굴조차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불쑥 찾아와 사정을 하고 있으니…….

   “차는 어디에 세워 뒀냐?”

   “저 아래 도로변에 세워 뒀어요. 뭔 동네가 주차할 데가 그렇게 없대요. 20분도 더 넘게 헤맸지 뭐예요. 게다가 골목이 오죽 복잡해요.”

   도로변에 차를 불법으로 세워 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 광선 탓인 듯 그는 원망을 담아 투덜거렸다. 사남매 중 가장 잇속이 빠르고 이기적이던 그녀가 어째서 이 꼴로밖에 못 사나 싶어 한심하고 짜증났다.

   “아무데나 대지 그랬냐.”

   “글쎄 차 한 대 댈 데가 없었다니까요.”

   그는 아버지가 지금 차에 있다고 말하려다 관두었다. 말한들, 그녀의 마음이 바뀌지 않을 게 뻔했다. 그녀가 냉장고로 가더니 냉동실에서 검정 비닐봉지를 꺼내왔다.

   “매형 깨어나기 전에 얼른 가라. 저 인간 깨어나면 괜히 골치만 아프지…… 아버지 갖다 드려라.”

   그녀가 검정 비닐봉지를 그에게 비죽 내밀었다.

 

*

 

   골목을 내려와 차 쪽으로 걸어가던 그는 욕설을 내질렀다. 분을 못 이겨 하마터면 검정 비닐봉지를 길바닥에 내팽개칠 뻔했다. 차 앞 유리에 보란 듯 노란 주차위반 과태료 딱지가 붙어 있었다. 운전석에 오르자마자 그는 손에 들린 검정 비닐봉지를 조수석으로 던졌다. 헐렁하게 묶인 입구가 벌어지더니 과메기 서너 마리가 토해졌다. 그는 과메기들을 주워 도로 검정봉지에 쑤셔 넣었다.

   “구경만 하셨던 거예요?”

   그는 차 열쇠를 꽂고 시동을 걸었다

   “벌금이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4만 원은 내야 할 거예요. 딱지를 붙이려고 할 때 내려서 좀 말리시지 그랬어요. 설마 노인이 말리는데도 붙이겠어요.”

   그는 좌회전 비상깜박이를 넣었다.

   “그 자식들도 그렇지, 노인네가 타고 있는데 딱지를 붙이다니…….”

   그는 차를 몰아 1차선으로 진입했다. 앞에서 달리고 있는 차가 아주 천천히 달리는 것도 아닌데 주먹으로 클랙슨을 때렸다.

   “제발 좀 그 따위로 살지 말라고 벌써 말했을 거예요…… 친형만 같았어도 벌써…… 둘째 매형 말이에요. 그나저나 큰누나는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어요…….”

   그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휴대전화 버튼을 이리저리 눌렀다.

   “식당은 잘 되는지…….”

   큰누나 순선은 휴대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날 밤부터 집 전화와 식당 전화, 휴대전화 모두 신호만 갈 뿐 도대체 받지 않았다. 통화가 되었다면 그는 광선이 아니라 그녀를 먼저 찾아갔을 것이었다.

   “큰누나나 보러 다녀올까요? 벌써 12시니까…… 가다 보면 식당 문을 열었을 거예요. 점심 장사도 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 아무리 고기집이라지만 저녁 장사만으로는 월세 맞추기 빠듯하지 않겠어요…….”

   노인네가 도통 말이 없어서 그는 불안했다. 정신이 온전한 상태인지 아닌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석 달 전 불쑥 시작된 노인네의 치매는 불안정했다. 상태가 심할 때는 아들인 그조차 알아보지 못했지만, 양호할 때는 누구보다 사리가 밝았다.

   “큰누나 식당에 들러 밥이나 한 끼 얻어먹어야겠어요.”

   월요일, 평소 같으면 거래처인 약국과 병원들을 바쁘게 돌아다닐 시간이었다. 제약회사 영업부 직원인 그는 오늘 하루 작정하고 휴가를 냈다. 아버지를 다만 서너 달만이라도 다른 형제에게 맡기기 위해서였다. 보행자 신호가 켜진 횡단보도에서 그는 차를 세우지 않고 그냥 통과했다. 건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광선을 향한 서운한 감정이 뒤미처 시척지근한 신물처럼 올라왔다. 집에 있기는 있었던 걸까? 그는 둘째 매형이 집에 없었을 것 같은 의심이 들었다. 그녀의 집을 다시 찾아가 안방 문을 열어젖히고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고 싶을 만큼.

 

*

 

   “아버지, 여기서부터는 구리예요…… 십 리에서 조금 모자란 구리요…….”

   식당 부근에 도착했을 때 오후 1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작년 추석 무렵 순선은 돼지갈비 식당을 차렸다. 개업식 날 그는 아버지를 모시고 식당에 다녀갔다. 시댁 식구들로 북적거리는 식당 한구석에서 그와 아버지는 돼지갈비를 뜯는 둥 마는 둥 먹다 돌아왔다. 그게 벌써 10년 전이던가, 은행에 잘 다니던 매형이 돌연 사표를 내고 퇴직금을 투자해 휴대전화 대리점을 차렸다. 생각만큼 잘 안 되자 대학가 근처에 베트남쌀국수 체인점을 크게 차렸다 말아먹었다. 이래저래 재산이 반 토막 나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남편을 대신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결혼 후 내내 살림만 하던 그녀인 데다 광선과 친자매가 맞나 싶게 온순했다. 식당 손님들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그녀에게 아버지를 떠맡기려 하는 자신이 경멸스러웠지만, 그녀라면 어쩐지 거절하지 않으리란 믿음이 있었다.

   점심장사도 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 식당 셔터는 굳게 내려져 있었다. 식당 유리문 앞에는 신문과 각종 고지서들, 광고지가 어수선히 널려 있었다. 통유리 너머 식당 안은 피서지의 철 지난 횟집처럼 횅했다. 식당 앞 도로는 일방통행로로 후진이 불가능했다. 일방통행로를 따라 음식점과 부동산, 술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고기 전문 식당만 해도 서너 개는 되었다. 식당 앞 차 한 대 겨우 댈 만한 공간에는 다른 차가 세워져 있었다. 순선의 휴대전화는 아예 전원이 꺼져 있었다. 얼결에 기어를 후진으로 가져가던 그는 얼른 중립에 놓았다. 운전 경력 15년에도 불구하고, 후진이 금지된 곳에 들어서면 그는 초조해졌다. 후진을 하다 아이를 친 뒤부터였다. 좁은 도로나 골목에 들어서면 후진이 꺼려지고 두려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후진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심리적으로 그를 압박했다. 후진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 오히려 후진을 해 그곳에서 당장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으로 작용했다. 멀리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가능한 일방통행로를 피해 차를 몰았지만, 지금처럼 불가피할 때가 더러 있었다. 도로 바닥에 표시된 직진 화살표와 일방통행이라는 흰 글자가 눈에 들어오자 그는 그때 그 순간이 떠오르면서 조급증이 났다. 룸미러에도, 백미러에도 아이가 담겨 오지 않았다. 툭 하는 소리와 아이 엄마의 비명소리를 듣고서야 그는 급정거를 했다. 차 범퍼에 떠밀려 뒤로 넘어간 아이는 두개골에 금이 가는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뇌는 안전했지만, 아이 아버지는 합의금으로 지나친 액수의 돈을 요구했다. 아직 결혼 전인 데다, 그는 모아 둔 돈이 없었다. 아버지가 아들인 그를 대신해 아이의 아버지를 찾아가 사정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때 합의금을 해결해 준 이가 순선 누나였다. 그녀는 신혼 초부터 남편 모르게 조금씩 모아 온 비상금을 선뜻 내놓았다. 벌써 12년 전 일이니, 당시 6살이던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기억 속에서 아이는 여전히 6살에 머물러 있었고, 직진과 후진만 가능한 곳에 들어설 때마다 불쑥 튀어나왔다.

   순선의 식당은 하필 일방통행로 중간쯤에 있었다. 앞으로도, 뒤로도 나가지 못하고 서 있는데 클랙슨이 시끄럽게 울렸다. 그의 차 뒤에 정수기통을 그득 실은 트럭이 서 있었다. 그는 비상깜박이를 넣었다. 트럭이 지나갈 수 있게 꼼장어 식당 앞으로 바짝 차를 붙였다. 파라솔 의자를 출입문 앞에 탑처럼 쌓아 둔 꼼장어 식당 역시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트럭 운전사가 투덜거리는 소리가 차 안까지 들려왔다. 트럭이 간신히 그의 차를 비켜 지나갔다. 승용차와 오토바이가 연이어 지나갔다. 부동산에서 기지바지 차림의 늙수그레한 남자가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오더니 구경하고 서 있다 들어가 버렸다. 차 두 대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나갔다. 일방통행로임에도 차량 통행이 적지 않은 곳이었다.

   “아버지, 저 식당이 누가 하는 식당인지 아시겠어요?”

   그는 순선의 집으로 전화를 넣었다.

   “간판 보이세요? 돼지갈비…….”

   신호음 소리를 들으면서 식당 간판에 적힌 글자를 읽었다.

   “큰누나가 하는 식당이잖아요.”

   노인네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차 안에 좀 계세요, 어디 가시면 안 돼요.”

   그는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차 안에 꼼짝 말고 계셔야 해요.”

   광선의 집 근처 도로변에 차를 세워 둘 때보다 마음이 놓였다. 꼼장어 식당이 오후 늦게야 장사를 시작할 것 같은 데다, 이미 주차위반 과태료 딱지를 붙였는데 또 붙일까 싶었다. 순선의 집은 식당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고장 났는지 초인종은 울리지 않았다. 주먹으로 현관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 통 대꾸가 없었다. 현관문에서 돌아서려다 말고 그는 조금 전보다 더 세게 두드렸다. 현관문 너머에서 웅성웅성 텔레비전 소리가 들려오는 듯해서였다.

   “누나, 저예요…… 상훈이요!”

   그러나 여전히 아무 대꾸가 없었다. 돌아서서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현관문이 덜컥 열렸다. 자주색 트레이닝 차림의 남자애가 그를 멀뚱히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누군가 했는데 조카 녀석이었다.

   “잘 있었니?”

   안경알 너머 눈 초점이 풀린 조카는 대꾸가 없었다.

   “어머니는 집에 안 계시니? 집에 너 혼자 있는 거니?”

   그가 잠시 아무 말이 없자 조카는 숫제 현관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 버리려 했다. 그가 어서 가버리기를 바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근처에 왔다가 어머니 좀 보고 가려고…….”

   당연히 학교에 있어야 할 녀석이 어째서 집에 있는지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어 그는 말끝을 흐렸다. 왜 학교에 가지 않았는지 물으려다 관두었다. 고등학생인 둘째 녀석 때문에 순선이 속을 끓인다는 소리를 아버지로부터 들은 기억이 나서였다.

   “식당 문을 아직 안 열었던데…….”

   조카는 그런 걸 왜 자기에게 묻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빤히 쳐다봤다. 저 녀석이 혹시 내가 누군지 모르는 게 아닐까 싶은 의심이 들면서 그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가 누군지 알려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명동이나 동대문 같은 복작복작한 곳에서 마주쳤다면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일 만큼 조카 역시 훌쩍 자라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용돈을 풍족히 준 적은 없어도, 나름 조카들에게는 정을 주었다고 그 딴에는 생각했다. 오래 전이지만, 어린이날 함께 서울대공원에 놀러간 적도 있지 않은가. 기린 우리 앞에서 명색이 외삼촌인 내가 목말 태워 준 걸 저 애는 기억이나 할까? 자기 자신도 까마득히 잊고 있던 그날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라 그는 회상에 잠겼다. 어머니가 아직 살아 있을 때였다. 평생을 막노동판에서 살아온 아버지는 이삿짐센터 인부로 일할 만큼 정정했다. 은행에 잘 다니던 큰 매형은 처가 식구들에게 너그러웠다. 큰누나와 조카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매형이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서울대공원으로 향하던 시간이 그는 꿈만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에게 의미 있는 가족 소풍이었다. 그날만큼 행복했던 날이 아버지에게 또 있었을까. 아버지는 그날 기린과 낙타를 처음 보았다고 했다. 풀밭에 돗자리를 펴고 둘러앉아 큰누나가 손수 싸온 김밥과 과일을 먹다 말고 어머니는 생전 처음 행복에 겨워 눈물을 찔끔 훔쳤다. 그때만 해도 그는 그러한 날이 자신의 가족에게 다시는 없으리란 걸 몰랐다. 그러한 날이 그는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또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지금 타고 다니는 차는 그때 그 승용차였다. 매형은 승용차를 새로 바꾸면서 자신이 타던 승용차를 처남인 그에게 넘겼다. 그때 그 승용차에 지금 아버지가 홀로 타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는 기분이 이상했다. 아버지가 승용차가 아닌 서울대공원 풀밭에 홀로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식들과 손자들이 하나 둘 떠나고 누렇게 시든 풀밭에서, 늙고 병든 짐승들이 토하는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덩달아 엉엉 울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가 회상에 젖은 그 잠깐 새를 못 참고 조카는 스마트 폰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어머니 휴대전화가 꺼져 있던데, 뭔 일 있는 건 아니지……?”

   조카가 그를 흘끗 쳐다봤다. 시큰둥한 그 애의 얼굴에 웃음인지 비웃음이지 분간이 좀처럼 안 가는 표정이 스쳤다.

   “저기…… 식당은 잘 되니?”

   “망했는데요.”

   내내 아무 말 없던 조카가 복화술 하듯 입을 거의 벌리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망했다니……?”

   “식당, 망했어요.”

   금시초문이었다. 큰누나로부터 그 어떤 말도 듣지 못한 것이다. 잘 될까 싶으면서도, 그럭저럭 먹고 살 만큼은 장사가 되겠지 했다. 하루에 한 통 아버지에게 안부전화를 넣던 그녀가 한 달쯤 전부터 도통 전화가 거의 없어 이상하다 싶기는 했다. 아버지가 정신이 흐릿하다가도 맏딸인 자신의 전화를 받으면 반짝 정신이 돌아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화하지 않았던 것이다. 식당 일이 바빠 전화할 짬이 없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걸까.

   “어머니는 어디 계신 거냐?”

   “몰라요.”

   조카가 외삼촌인 자신을 경계하는 것이 느껴졌다.

   “집에 있으면서 왜 전화를 받지 않은 거냐?”

   “엄마가 아무 전화도 받지 말라고 했어요.”

   그 말에 그는 확신할 수 없지만, 어떤 상황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큰누나 내외가 빚쟁이를 피해 은신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혹시나 사채업자 돈을 끌어다 쓴 것은 아닌지 걱정과 동시에, 그렇다 해도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현실적인 판단이 들었다.

   “어머니는 어디……?”

   “모른다니까요.”

   조카의 입에서 침이 튀었다. 저 애가 날 잊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다시금 들었다. 내가 누군지 알려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기린 우리 앞에서 목말 태워 주던 순간을 어떻게든 기억나게 해서라도 똑똑히 알려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외삼촌인 내 어깨 위에 올라타 기린을 향해 손을 흔들던 순간을…….

   “절벽 앞에 서 있던 기린, 기억나니?”

   그 말이 불쑥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조카 녀석이 그의 어깨에 올라타 손을 흔들 때, 우리 안 기린은 인공으로 만든 절벽 앞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기린이요?”

   “절벽 앞에 서 있던 기린…… 그 왜…… 절벽 앞에 기린이 서 있지 않았니?”

   조카에게 어떻게든 그 순간을, 외삼촌인 자신의 어깨에 올라타 노란 운동화 신은 두 발을 가만가만 엇갈려 흔들던 순간을, 솜사탕 같은 구름이 머리 위로 둥둥 떠가던 순간을 기억나게 해주고 싶은 오기가 치밀었다.

   “기린이 왜 절벽 앞에 서 있었는데요?”

   조카가 제 아버지를 닮아 뿔처럼 긴 편인 턱을 쳐들었다. 저 애가 지금 날 놀리나?

   “그러게…… 기린이 어째서 절벽 앞에 서 있었을까…… 어머니 오시면 내가 다녀갔다고 해라. 전화 좀 달라고…… 상의할 게 있으니까 꼭 좀 전화를 달라고 전해라…… 내가 누군지 설마 모르는 건 아니겠지?”

   그는 농담인 척 억지웃음을 지었다. 조카가 따라 웃기를 바랐지만, 그 애의 얼굴은 오히려 벽돌처럼 굳었다. 무색해진 그가 돌아서자마자 현관문이 거칠게 닫혔다. 근데 저 자식이……? 뒤따라 나오려는 욕설을 그는 간신히 삼켰다.

 

*

 

   차로 돌아온 그는 자신도 모르게 후진 기어를 넣었다. 차가 뒤로 밀리는 순간 당황해 가속페달을 꾹 밟았다. 차가 낭떠러지로 떨어지듯 덜컥 흔들렸다. 그는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고 차를 천천히 앞으로 몰았다. 미도迷途에서 벗어나듯 허둥허둥 일방통행로를 빠져나와 너른 편인 골목을 지날 때였다.

   “저기다 대면 되겠구나!”

   흥분한 노인네가 손으로 차창을 요란하게 두드렸다. 잡풀 우거진 공터가 차창 너머로 보였다. 60평쯤 될까. 꽤 너른 공터에 왜건이 한 대 버려진 듯 세워져 있었다. 미숫가루 같은 먼지를 뒤집어쓴 왜건의 네 바퀴는 잡풀에 집어삼켜져 있었다. 어디서 날아왔나 싶게 허다한 잠자리가 낮고 어지럽게 날아다녀서일까. 스산스러운 공터 풍경이 나른하도록 평화롭게 보였다.

   “저기다, 저기다 차를 대지 그러냐.”

   “저기다 왜 차를 대요.”

   그는 짜증을 냈다.

   “저기다……!”

  그가 빈 공터를 그냥 지나쳐 버리자 노인네가 차창을 부술 듯 두드렸다.

   “가만 좀 계세요!”

   노인네가 흥분했을 때 덩달아 흥분해서는 안 된다는 걸, 그러면 오히려 불길에 휘발유를 끼얹는 꼴이나 다름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그는 윽박질렀다.

   “제발 가만히 좀 계세요. 갈 길이 멀단 말이에요…… 갈 길이…….”

   그는 애원하듯 노인네를 달래면서 차 속도를 높였다.

   “아직 다 온 게 아니란 말이에요.”

   차는 공터를 품은 골목을 벗어나 대로로 들어서 있었다. 그제야 그는 공터에 차를 대고 잠깐 눈이라도 부칠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노인네에게 잠자리 구경이나 실컷 시켜 줄 걸 그랬나…… 늙고 병든 소를 풀밭에 풀어 두듯 차를 공터 잡풀 속에 세워 두고……. 주행거리가 20만 킬로를 넘어 폐차 직전인 차는 늙고 병든 소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전날 동창 모임이 있어서 새벽 1시에나 집에 돌아온 탓에 그는 몹시 피곤했다. 술이 지금에야 깨는지 두통이 몰려왔다.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아내의 잔소리에 못 이겨 무작정 차에 노인네를 태우고 나선 것이었다. 노인네의 옷가지가 든 보따리 수준의 가방은 벌써 사흘 전부터 그의 차 트렁크에 실려 있었다.

   설마 내가 차 댈 곳을 찾아 이리 헤매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치매 증상이 심할 때는 아침저녁조차 분간 못 했으니 그리 착각하는지도 모르지. 차 댈 곳이 마땅히 없어 이리 아버지인 자신을 짐짝처럼 태우고 멀고 낯선 동네까지 찾아와 헤매는 것이라고…….

   아들인 그가 주차 때문에 이틀이 멀다 하고 애를 먹인다는 것을 노인네는 알고 있었다. 그는 주차장이 딸리지 않은 빌라에 살고 있었다. 퇴근이 늦으면 차 댈 곳을 찾아 집 주변 골목들을 헤맸다. 차 세워 둘 곳을 찾지 못해 남의 빌라 주차장에 몰래 차를 세워 둔 적도 여러 번이었다. 남의 빌라 주차장에 세워 두었다가 새벽 4시에 그 빌라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차를 뺀 적도 있었다. 주차금지구역에 차를 세워 두었다가 과태료를 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차를 없애고 싶지만, 하는 일이 영업일이라 차를 두고 다닐 수 없었다. 더구나 그가 영업을 맡고 있는 지역은 서울 시내가 아니라 경기도였다. 밤새 골목 아무 곳에나 세워 두는 탓에 차는 성한 곳이 없었다. 차 문짝이나 범퍼 쪽이 송곳 같은 날카로운 것에 긁혀 있기 일쑤였다. 차바퀴에서 오줌 냄새가 진동하기도 했다. 밤새 운전석 쪽 백미러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적도 있었다. 그는 차를 몰고 도로로 들어서서야 백미러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날 새벽까지 마신 술이 덜 깨 정신이 없는 탓에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운전석 쪽 백미러 없이 강변북로를 내달렸다. 그때를 생각하면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흐를 만큼 아찔했다. 반포대교로 진입하기 위해 차선을 바꾸려다 하마터면 트럭과 부딪칠 뻔한 위태로운 순간이 저절로 떠올라서였다. 트럭이 재빠르게 피하지 않았다면 크게 사고가 났을 것이었다. 백미러를 떼어간 놈이 누군지 대충 짐작이 갔다.

   백미러가 사라지기 며칠 전 그는 이웃 남자와 골목이 떠나가도록 싸웠다. 그가 전봇대 뒤쪽에 차를 바짝 붙이고 있는데, 반바지 차림의 건장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무턱대고 차를 빼라는 것이었다. 그가 순순히 차를 빼지 않자, 남자는 차바퀴를 발로 걷어차면서 욕설을 쏟았다. 회사 일로 짜증이 극에 달해 있던 그도 참지 않고 욕설을 내뱉었다. 남자가 운전석 문을 열고 그를 끄집어 낸 것은 순식간이었다. 살벌하게 오가는 욕설에 사람들이 골목으로 몰려 나왔다. 주차 문제로 이웃 간 다툼이 잦은 골목이었지만, 경찰을 불러야 하는 게 아닌가 싶게 싸움이 벌어진 적은 없었다. 저게 뭐래? 식칼 아니야?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헤치고, 맨발에 파자마 차림의 아버지가 걸어 나왔다. 그의 멱살을 움켜잡은 남자를 향해 아버지가 뭔가를 들어 보였다. 한껏 추켜올려진 아버지의 손에 들린 것은 식칼이었다. 아버지는 여차하면 식칼로 남자를 찌를 듯 부들부들 손을 떨었다. 당황한 남자는 그의 멱살을 슬그머니 놓았다.

   “식칼은 왜 들고 나오셨어요, 어서 들어가세요.”

   아버지는 그러나 얼어붙은 듯 꼼짝하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들이 흩어질 줄 모르는 사람들 뒤에서 모든 걸 다 지켜보고 있었다. 놀란 작은 아이가 제 엄마에게 매달려 울고 있었다.

   “어서 집에 들어가시라니까요!”

   그는 하는 수 없이 아버지를 억지로 차에 태웠다. 기껏 주차해 놓은 차를 몰고 도망치듯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가 주차할 곳을 찾아 이 골목 저 골목 헤매는 동안에도 아버지는 손에서 식칼을 내려놓지 않았다.

   “제발 식칼 좀 그만 내려놓으세요!”

   그는 버럭 소리 질렀고, 아버지는 절대로 놓을 수 없다는 듯 더 단단히 식칼을 움켜쥐었다.

   “치매 걸린 노인네라는 걸 그렇게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니셔야겠어요?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미치광이 노인네라고 수군거리기밖에 더 하겠느냐고요!”

   그 일이 있은 뒤로 아내는 더는 아버지를 모실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렇잖아도 연년생인 두 사내아이를 키우느라 지쳐 있던 터였다. 식칼을 들고 부르르 떨던 광기어린 모습이 무서웠는지 아이들은 할아버지와 밥도 함께 먹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 금요일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휴대전화에서 다급히 흘러나오는 아내의 목소리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식칼을 들고 서 계셔…… 아버님이 식칼을 들고 골목을 지키고 서 계신다니까……!”

   그가 다급히 집에 갔을 때 아버지는 이웃의 신고로 파출소에 연행되어 있었다.

   “치매 노인이세요. 당신 자신은커녕 자식도 못 알아보는 치매 노인이라니까요. 아마 식칼인지도 모르고 들고 계셨을 거예요. 숟가락하고 칫솔도 구분 못 하는 분이 식칼이 뭔지나 아시겠어요.”

   아버지가 빤히 듣는 앞에서 그렇게 경찰들을 설득하고서야 그는 아버지를 집으로 모시고 올 수 있었다.

 

*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네요…… 통 소식이 없으니…… 어머니 기일 때 다녀간 게 마지막이니까, 얼굴 본 지 반년은 되었지 뭐예요. 서울이 크면 얼마나 크다고 얼굴 보기가 어쩜 그렇게 어려운지…… 아버지 막내아들 명훈이요…… 명훈 말고 또 누가 있겠어요.”

   꽝꽝 얼어 있던 과메기가 녹으면서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차 안에 역하게 떠돌았다. 역시나 받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과메기가 든 검정 비닐봉지를 차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었다. 휴대전화가 울려서 혹시나 큰누나인가 했는데 아내였다. 그는 받으려다 말았다. 조금 뒤 휴대전화가 또 집요할 만큼 길게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누구로부터 걸려온 전화인지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이름은 김창명…… 주민등록번호는 1937…… 집 주소는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

   구리를 벗어나 강변북로를 달리는데 아버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차 안에 환청처럼 떠돌았다. 가락도 없이 아버지는 신상기록카드를 읽듯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를 달달 소리 내 외웠다.

   “자녀는 2남2녀…….”

   노인네가 뜬금없이 왜 저러나 의아해하던 그는, 혹시나 지난 금요일 파출소에서 있었던 일 때문인가 싶었다. 치매에 걸려 당신 자신은커녕 자식도 모른다던 자신의 말을 가슴에 담아 두고 있다 저리 나오는 게 아닌가 싶었다.

   “처는 2004년 5월 30일에 사망…… 화장해서…….”

   노인네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그는 그날 아버지의 정신이 온전했던 게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들었다. 멀쩡한 정신에 그리 식칼을 들고 휘적휘적, 바리게이트처럼 둘러선 사람들을 헤치고 걸어 나온 게 아닐까.

   “아버지…… 그때 왜 그러셨어요? 식칼을 들고 나오시면 어떻게 해요…….”

   “…….”

   “어멈하고 애들이 얼마나 놀랐겠어요. 아버지가 그런 행동만 안 하셨어도 제가 이렇게까지…….”

 

*

 

   “오늘은 1이네요, 지난 금요일에는 3이었는데…… 목요일에도 3이었어요.”

   관광버스가 깜박이도 넣지 않고 그의 차와 앞차 사이를 벌리면서 끼어들었다. 순간 그는 차가 뒤로 밀려나는 듯한, 후진을 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직 오늘 하루가 다 간 것은 아니니까 또 모르지요…… 숫자가 언제 1에서 3으로 늘어날지…….”

   그는 라디오를 틀고 볼륨을 높였다.

   “오늘 하루 서울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 숫자가 말이에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그의 목소리가 묻혔다.

   “요즘은 확률이 아주 좋아요. 이곳을 지날 때마다 전광판에 떠 있는 사망자 숫자를 맞추는 게임을 하는데 열에 아홉은 맞춘다니까요……. 나름 재미있어요…… 나름이요…… 뭐랄까, 복권 숫자를 맞추어 보는 것 같은 스릴이 있다니까요. 하루하루 도대체 사는 재미가 있어야지요. 아버지도 그러셨어요? 저희 키우고 사는 내내 아버지도…….”

   노랫소리가 거슬리도록 시끄러워 그는 라디오를 껐다.

   “아버지도 아무 재미가 없으셨어요?”

   근육이 돌처럼 뭉친 어깨가 뻐근해져 왔다. 마흔 살 넘으면서 그는 부쩍 배가 나오고 어깨가 처졌다.

   “아버지 말을 들을 걸 그랬어요.”

   그는 팔십 킬로로 떨어진 차 속도를 백 킬로로 끌어올렸다.

   “아까 그 공터에 차를 댈 걸 그랬다구요…… 차를 세우고 잠자리나 잡을 걸 그랬어요……잠자리나…….”

   노인네 특유의 시큼하고 들척지근한 구취가 역하게 맡아졌다. 운전석 등받이 시트를 긁던 노인네의 손가락들이 느닷없이 그의 어깨를 감아 왔다. 송곳처럼 앙상한 손가락들이 파고들 듯 그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왜 그러세요?”

   노인네가 자신의 등에 악착같이 매달려 있는 듯한 기분이 들면서, 고려장이라도 치르러 가는 심정이었다.

 

*

 

   그와 여섯 살 터울인 동생 명훈의 회사는 공덕역 근처였다. 체대를 나온 동생은 선배들이 운영하는 태권도 도장을 전전하다 얼마 전 보험설계사가 되었다. 그가 동생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반년 전이 아니라 두 달 전이었다. 두 달 전 동생은 집이 아닌 직장으로 그를 찾아왔다. 보험을 들어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더 동생을 기다리게 했다. 느닷없이 회의가 잡히는 바람에 그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영업부 실적이 심각하게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어서 회의가 수시로 열렸다. 약속장소에 도착한 그가 차를 주문하기도 전에 동생은 노인 대상 보험 상품 설명서를 테이블에 펼쳤다.

   “내가 여유가 있어야지…….”

   순선과 광선이 친자매임에도 생판 남처럼 성격이 다르듯, 그와 명훈 역시 친형제임에도 달랐다. 어려서부터 체격이 발달하고 외향적인 동생은 어머니의 애를 끓일 만큼 친구가 끊이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가출을 해 아버지가 천안까지 내려가 끌고 온 적도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내내 혼자 자취를 했다. 마흔 가깝도록 결혼도 않고 반지하 원룸 신세를 못 벗어나고 있는 동생을 생각하면 그는 얼굴이 절로 알루미늄 포일처럼 구겨졌다.

   “주변에 보험설계사가 어디 한둘이라야지. 웬만한 보험은 들어나서 말이다. 몇 년씩 든 보험을 해약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막말로 아버지가 당장 사고로 돌아가시면 3천만 원이 나온다니까요. 그 돈 형이 다 가지면 되잖아요. 적금 드는 셈 치고 들어 놔요.”

   그따위로 하려면 당장 관두라고 따끔하게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그는 참았다.

   “형수하고 상의해 보고 연락하마. 어디 네 형수 모르게 할 수 있는 게 있어야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는 아내에게 보험 얘기를 아예 꺼내지 않았다. 몇 년 전 카드빚을 그가 몰래 갚아 준 사실을 알게 된 뒤로 아내는 시동생을 짐스러워했다. 동생 사무실이 있는 빌딩 뒤쪽 2차선 도로로 그는 차를 몰았다. 빵집 앞에 잠시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손에 잡히는 대로 빵을 고르고 흰 우유를 샀다. 허기가 졌는지 노인네는 빵을 베물었다. 그가 빨대를 꽂아 내미는 우유를 냉큼 받아 쪽쪽 소리 나도록 빨았다. 어찌나 허겁지겁 빵을 뜯는지 노인이 먹고 있는 것이 밀가루로 만든 빵이 아니라 짐승의 살점만 같았다. 단팥이 피처럼 노인의 입에 묻어났다. 설렁탕이라도 한 그릇 사 먹일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었지만, 명훈과 저녁을 할 수도 있었다. 시간이 벌써 저녁 6시였다. 노인네는 순식간에 단팥빵 한 덩이를 해치우고 곰보빵을 뜯었다. 노인네를 지켜보던 그는 차에서 내려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동생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넣었지만 큰누나 순선과 약속이나 한 듯 받지 않았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사무실로 전화를 넣었다. 두 달 전 만났을 때 동생으로부터 받은 명함에 사무실 전화번호가 있었다. 찢어버리기가 뭣해 명함을 지갑 속에 넣어 가지고 다녔다.

   “최명훈 씨하고 통화하고 싶은데요.”

   “누구요?”

   낯설고 앳된 여자 목소리가, 애써 다독인 짜증을 들쑤시듯 대뜸 그렇게 물었다.

   “최명훈 씨요.”

   “최명훈 씨요? 그런 분 없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그는 다시 전화를 넣었다.

   “저기, 최명훈 씨 부탁합니다.”

   “그런 분 없다니까요.”

   조금 전의 그 여자였다. 노인네가 차창을 두드려 그는 더 묻지 못하고 통화를 끝냈다. 그가 차문을 열어 주자 노인네가 허둥허둥 밖으로 나왔다. 화장실이 급한 몸짓이었다. 6시간 넘게 차에 꼼짝없이 타고 있었던 탓에 다리를 심하게 저는 노인네를 부축해 오피스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티브이를 보고 있던 경비원에게 사정해 화장실로 데리고 갔다.

   노인네를 다시 차에 태우고 그는 사무실을 찾아갔다. 사무실은 3층이었다. 너덧 사람이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아 배달시킨 중국 음식을 먹고 있었다.

   “저기…… 최명훈 씨를 찾아왔는데요.”

   “최명훈 씨요? 그만두었는데요.”

   녹말 물이 듬뿍 묻은 탕수육을 집어 입으로 가져가던 남자가 말했다. 그 남자로부터 대충 사정 이야기를 듣고 사무실을 나서는 그의 머릿속은 또다시 복잡해졌다. 자신이 선뜻 보험을 들어 주었으면 동생이 그리 쉽게 때려치우지 않았으리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는 동생이 다시 부탁한다 해도 보험을 들어 주지 않으리란 걸 알았다. 반년도 못 버틸 걸 아버지까지 팔아 가면서 그렇게 보험을 팔려고 애썼던가, 한심스럽기도 했다.

 

*

 

   차가 온데간데없었다. 전봇대에 붙어 나부끼는 종이쪽지가 심상치 않게 그의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견인통보서였다. 통보서에 적힌 차량번호 역시 그의 차 번호였다. 견인차가 차를 끌고 가면서 떡하니 통보서를 붙여 놓은 것이었다. 그는 전에도 집 근처 도로에 차를 세웠다 차를 견인당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견인차 기사는 전봇대에 견인통보서만 달랑 붙여 놓았다. 그의 차는 밤새 견인차량보관소에 있었고, 그는 한 달 치 점심값을 견인료와 보관료로 날려야 했다. 통보서에 적힌 자신의 차번호를 다시금 확인하고는 입에서 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어이없었다. 노인네가 버젓이 타고 있는 차를 견인해 갔을까 싶으면서도, 견인차 기사가 노인네를 미처 못 봤으리란 생각이 들면서 그는 등골이 오싹했다. 거의 모든 간판에 불이 들어왔을 만큼 거리는 어둑해져 있었다. 차 안을 유심히 살피지 않은 이상, 시동 꺼진 차 안에 사람이 타고 있지 않다고 판단하기 십상이지 싶었다. 더구나 운전석 뒤에 숨듯 웅크리고 앉아 있었을 노인네가 아무 기척 없이 잠자코 있었다면 십중팔구…….

   다급히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 그의 머릿속에 자신의 차가 견인차에 관棺처럼 끌려가는 광경이 절로 그려졌다. 그의 차는 더구나 장의차처럼 짙은 검정색이었다. 개새끼들! 사람들이 놀라 흘끔 쳐다보도록 그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견인통보서에 적힌 견인차량보관소까지는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야 했다.

   지하철 역 안으로 들어간 그는 도로 밖으로 나왔다. 택시를 타기 위해서였다. 개찰구를 통과하려는 순간, 견인될 때 노인네가 차에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무지막지 차를 끌고 가는데 노인네가 죽은 듯 가만히 있었을까 싶었다. 만의 하나 그렇다면…… 홀연히 사라져 차 안에 없었다면…… 노인네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차가 아니라 노인네를 먼저 찾아 나서야 하는 게 아닌가. 어쨌든 차 먼저 찾고 보자는 쪽으로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노인네가 곡두처럼 타고 있을지 모르니…….

 

   견인료와 보관 요금을 합쳐 5만 원 가까운 돈을 지불하다 말고, 그는 견인업체 직원에게 대뜸 물었다.

   “혹시 내 차에 노인이 타고 있지 않았나요……?”

   “노인이요?”

   따분한 얼굴로 돈을 받아 챙기던 직원이 무슨 소리냐는 듯 그를 쳐다봤다.

   “노인이 타고 있었을 텐데…… 내 아버지가…….”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직원이 질겅질겅 껌을 씹듯 건성으로 중얼거렸다.

   “당신네가 무지막지하게 끌고 온 차에 노인이, 그러니까 내 아버지가 타고 있었단 말입니다. 이것도 엄연한 유괴 아닙니까?”

   “뭐요? 유괴? 이 사람이 근데 큰일 날 소리 하고 있네. 미치지 않고서야 우리가 노인이 타고 있는 차를 견인해 왔을까 봐서 그래요?”

   직원이 갑자기 눈알을 부라리면서 험악하게 나왔다. 격앙된 직원과 옥신각신 몇 마디 주고받은 뒤 쫓기듯 사무실을 나온 그는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급히 걸어갔다.

   자신의 차를 발견하는 순간, 방전된 시계의 초침처럼 그의 걸음이 절로 멈췄다.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은 듯 서늘한 기운이 차에 감돌았다. 그는 재빨리 시선을 분산시켜 자신의 차와 같은 처지인 다른 차들을 살폈다. 차들은 전부 텅텅 비어 있었다.

   그는 한 발 한 발 지장指掌 찍듯 차로 걸어갔다. 급소를 찌르는 기분으로 열쇠를 꽂고 운전석 문을 땄다. 운전석에 앉아 잠시 묵념하듯 숨을 돌린 뒤 시동을 걸었다. 비상깜박이를 켜고 차들을 지나쳐 견인차량보관소를 유유히 빠져나갔다.

   “명훈이 사무실에 없지 뭐예요. 있으면 함께 저녁이나 먹으려고 했는데…… 사무실에 붙어 있을 새도 없이 바쁜가 봐요.”

   그는 뒤를 돌아다보거나 하지 않았다. 올림픽대로를 타기 위해 우회전 깜박이를 넣었다. 퇴근시간이 지난 올림픽대로는 차량 소통이 원활했다.

   “아무래도 없는 것 같았어요…… 누나는 매형이 자고 있다고 했지만…….”

 

*

 

   “어쩐지 3으로 바뀌어 있을 것 같지 않아요?”

   올림픽대로로 진입할 때까지 그는 비상깜박이가 켜져 있다는 사실을 깜박했다.

   “강변북로 전광판에 뜬 사망자 숫자가 말이에요. 하기는 1이나 3이나요…… 근데 이상한 건…… 3보다 1이 더 큰 숫자처럼 느껴진다는 거예요.”

   그는 심지어 1이 그 어떤 숫자보다 크고 거대한 숫자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별 쓸데없는 말을 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담배를 피워 물려는데 노인네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차 안에 울렸다.

   “아무렴, 1이 크지…….”

   “1이 크다고요?”

   초점이 절로 풀어지려는 눈에 힘을 주고 앞을 주시하면서 그는 노인네에게 물었다.

   “1이 크지, 커…….”

   그는 아버지로부터 숫자를 막 배우기 시작한 아이처럼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차량 불빛들이 흡사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한 전구 같았다.

   “그나저나 주차할 데가 있을지 모르겠어요. 당장 주차장 딸린 빌라로 이사를 가든, 무슨 수를 내야지.”

   공연한 소리라는 걸 잘 알면서 그는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전세 기간이 아직 일 년이나 남은 데다, 주차장 딸린 빌라는 전세금이 일이천 만 원은 더 비쌌다. 그렇잖아도 전세대란이라는 말이 유행하도록 전세금이 오르고 있었다.

   “어린이날 서울대공원에 놀러갔던 것 기억나세요? 매형 차 타고 동물원으로 소풍 갔었잖아요. 어머니하고 아버지하고…… 저하고…… 조카들하고…… 절벽 앞에 서 있던 기린도 봤잖아요, 생전 처음 기린을 보신다면서 신기해하셨잖아요.”

   불현듯 그날이 아니었으면 아버지가 죽는 날까지 기린을 보지 못했으리란 생각이 들자 그는 기분이 이상했다.

   “혹시 아버지는 아세요? 기린이 왜 절벽 앞에 꼼짝 않고 서 있었는지 아버지는…….”

   그는 어쩐지 노인네라면 그 이유를 알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노인네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큰누나는 여전히 전화가 없었다. 주차위반 과태료 딱지는 차 앞유리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

 

   그가 살고 있는 동네에 이르렀을 때 시간은 밤 10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그가 사는 빌라 근처 염소 뿔처럼 휘어진 골목 어귀, 그가 종종 차를 세워 두는 자리는 못 보던 트럭이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전봇대 밑에 첩첩 쌓인 음식물 쓰레기에서 역겨운 냄새가 풍겨 그는 차창을 올렸다.

   “잘하면 옆 골목에 차 댈 데가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는 핸들을 오른쪽으로 끝까지 틀어 옆 골목으로 차를 몰았다.

   “절벽이 아니라 모래였다…….”

   “모래요?”

   “모래…… 알…….”

   노인네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절벽이 아닌 모래알이라니…… 모래알 앞에 기린이 서 있었다는 말인가. 2미터가 넘는 기린보다 높고 가파르던 절벽이 노인네에게는 고작 모래알처럼 작게 기억되는 걸까.

   “차 댈 데가…….”

   그러나 꽤 긴 편인 그 골목 또한 웬만한 곳에는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그는 또 다른 골목으로 차를 몰았다.

  “찾아보면 있겠지요…… 차 댈 데가…… 암튼 찾아보면 있지 않겠어요.”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는 불현듯 조카 녀석이 전에도 자신에게 똑같이 물은 적이 있음을 기억해 냈다. 그 언젠가 그 애가 그에게 물었던 것이다. 기린이 왜 절벽 앞에 서 있는지 외삼촌인 그의 어깨 위에서 노란 운동화 신은 두 발을 엇갈려 흔들면서 물었던 것이다. 훌쩍 자란 조카 녀석이 오늘 낮에 자신에게 그렇게 물었을 때, 그는 전에도 그 애가 똑같은 질문을 했었다는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골목을 헤매던 그의 차는 사차선 도로로 들어서 있었다. 사차선 도로는 한산했다. 그는 속도를 높였다. 주황불이 빨간불로 바뀌는 순간, 그의 차는 사차선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했다.

   “차 댈 데가 어딘가 있을 거예요…… 가다 보면…….”

   차 속도를 높이던 그는 노인네와 함께 절벽을 찾아가는 듯한 착각에 순간적으로 휩싸였다. 기린이 미동도 없이 서 있는 절벽…… 그 모래알을…….

 

   《문장웹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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