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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왼손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12. 15. 23:13

 
 
 

 

국가의 왼손

 

주원규

 



  




 

1

 

   나의 하나뿐인 작은아버지, 그가 다시 돌아온 건 정확히 일주일 만이었다. 작은아버지, 그는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직접 현관문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요란법석한 소리에 못 이겨 문을 열었을 때, 나는 문 밖의 그가 작은아버지일 거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왜 하지 못했을까’라는 점을 돌이켜보면 그 감정은 괴이하게도 죄책감 탓이 컸다. 그랬다. 죄책감이 분명하다. 작은아버지가 돌아올 거란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으니까. 그 문제를 좀 더 근본적으로 들여다보면 작은아버지가 돌아오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에 대한 모종의 합의가 내재된 것이기도 했다.

   작은아버지는 일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의외의 차림새였는데, 그는 그저 평범했다. 일주일전에 입었던 작업복 차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복장으로 탈바꿈한 것도 아니었다. 폴로티에 주름진 면바지와 유사 나이키 브랜드 운동화를 신고 등장한 그는 조카인 나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일주일 동안의 행적에 대해서도 아무 언급이 없었다. 답을 하지 않는다는 건 질문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작은아버지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자신과 나, 그리고 아버지 그 셋 모두 민감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질문을 생략해 버린 작은아버지는 꽤 익숙하게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부재중일 것 같은 가출한 어머니의 드레스 룸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가 방 한구석에 잔뜩 웅크린 자세로 몸을 뉘었다. 그는 그렇게 웅크린 자세 그대로 잠들었다. 늦은 오후에 벌어진 이 사소하지만은 않은 작은아버지와의 상봉 후, 그는 그날 당일, 그 다음날, 그 다음날의 다음날도 드레스 룸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물론 나는 작은아버지가 일주일 만에 들어온 그날 당일 언제나 정시 퇴근하는 아버지에게 그의 귀환을 알렸다. 작은아버지가 자발적으로 틀어박힌 드레스 룸을 가리키며 ‘지금 저 안에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특히 ‘화 같은 건 더더욱 내지 않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버지는 내 말을 잠자코 듣기만 했다. 아버지의 얼굴은 그야말로 포커페이스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좀처럼 알기 힘든 얼굴이다. 우울한 것도, 기쁜 것도 아닌 표층의 감정과 내면의 속내마저 거세된 낯빛이었다. 평소에도 그러한 아버지는 작은아버지의 귀환에 대해선 더더욱 오리무중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버지는 평소와 다름없이 내게 햇반 두 개와 즉석 미역국을 내올 것을 명령했다. 지겨울 정도로 변함없는 저녁 레퍼토리는 그날도 어김없이 반복되었다. 아침엔 육개장, 저녁엔 미역국, 모두 즉석요리들이다.

   그렇게 이틀간 아버지와 난 드레스 룸에 처박힌 작은아버지를 유기한 채 3분 미역국에 햇반을 말아 끼니를 해결했다. 아버지는 지역 케이블 방송사에서 사은품으로 제공한 소형 티브이로 9시 뉴스를 시청한 후 안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눅눅한 곰팡내가 가시질 않는 거실 소파에 누워 잠이 들었다. 드레스 룸에 작은아버지가 있는 것은 알았지만 나는 애써 모른 척 하고 싶었다. 모른 척하고 싶은 그 의지는 대체 내 마음 무엇으로부터 기인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버지의 포커페이스가 나로 하여금 그를 무시하도록 강요한 건지, 아님 또 다른 그 무언가가 그를 내 정신 속 투명인간으로 만들어버렸는지 정말 모를 일이지만 그 모호한 원인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나와 아버지는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나도록 작은아버지가 스스로 걸어 잠근 어머니의 드레스 룸을 열어 보거나 노크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흘이 지난 저녁, 아버지와 내가 햇반과 즉석 미역국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약간 예외적으로 9시 뉴스가 아닌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1차전을 시청하던 중이었다. 그 순간, 심장이 멎을 듯한 외부 자극, 비약이 허락된다면 나란 인간이 이제껏 의존해 오던 존재의 기반이 송두리째 뒤틀리는 소리가 억눌린 함성처럼 터져 나왔다.

 

   ‘꽝’ 소리와 함께 드레스 룸 문이 열린 것이다.

 

   문이 열리자 나와 아버지, 그리고 작은아버지, 이렇게 셋은 정지화면처럼 서로가 서로를 노려보는 데 집중했다. 그때 나는 뜻 모를 비굴함에 사로잡혀 작은아버지의 시선을 차마 마주하지 못하고 고갤 푹 숙이고 애꿎은 리모컨만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마주하지 않았다 해서 그의 섬뜩한 안광마저 실감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작은아버지는 의심의 여지없이 아버지를 노려봤다. 아버지를 노려보는 치열함 속엔 ‘나’란 녀석도 함께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 나흘 동안, 아니 실종기간까지 포함해 도합 열하루 만에 얼굴을 마주한 작은아버지와의 조우에서조차 말문을 열지 않았다. 원래 아버지란 인간이야 쓸모없이 과묵해 그런 거라 할 수 있지만 의외인 건 작은아버지의 침묵이었다. 그 역시 아버지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노려보기만 할 뿐, 말 한 마디 건네지 않았다. 이상했다. 고성이 오가거나 상대를 향한 날선 비난이 쏟아질 것이 마땅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나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두 사람의 침묵만이 심화되었다. 나만 그렇게 느꼈던 걸까. 정말이지 그 침묵은 극도의 공포를 낳았다. 둘의 침묵은 견디기 힘든 공포와 불안을 꾸역꾸역 생산해 내었고, 그 불안의 수혜자는 고스란히 내 몫인 것만 같았다. 사반세기를 살아온 내 평생 지금처럼 두렵고 피가 마르는 순간은 다시없으며, 앞으로도 절대 없어야 한다고 확신하던 그 순간, 극한의 불안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단 한 가지. 작은아버지가 현관문을 열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는 것. 그 뒤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는 걸 제외하곤 둘 사이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 일이 있은 후 더 깊은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어쩌면 허망하게 작은아버지가 사라지고 난 뒤 난 잠시 생각이란 걸 해보았다. 도대체 그 일주일 전, 아니, 그보다 한 발 더 멀리 생각해서 한 달 전, 작은아버지와 아버지, 아버지와 나, 그리고 나와 작은아버지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

 

 

2

 

   그야말로 무에서 유가 창조되듯 폭풍처럼 출몰한 작은아버지는 내 작은 소망과 꿈이 무엇인지 알고 난 뒤 내 뒤통수를 있는 힘껏 후려쳤다. 썩 반가운 것도 아니지만 몇 년 만인지 모를 간만의 만남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던 내게 밀려든 그때의 황망함은 단지 뒤통수를 얻어맞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좀 더 본격적으로 재고되어야 할 대목은 작은아버지가 뒤통수를 후려친 이유에 있다.

   썩 넉넉지 못한 우리 세 식구의 반지하 보금자리로 작은아버지를 데리고 온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의 유일한 혈육인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왼손엔 작은아버지의 낡고 오래된 가방이 대신 쥐어져 있었다. 작은아버지는 씻는다는 개념을 잊었는지 몸 전체에서 오물 쏟은 냄새가 진동했다. 차림새로만 보면 영락없는 걸인이었는데, 눈빛만큼은 살아 있었다. 오랜 시간 길거리에 방치되었는지 역한 냄새에 찌든 노숙자 같은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작은아버지의 눈빛은 지금도 쉬 지워지지 않는 잔상으로 남아 있다.

   작은아버지의 여장은 아버지의 지시에 의해 어머니의 드레스 룸에 풀어졌다. 그녀의 드레스 룸에서 당분간 지내게 될 그는 지나칠 정도로 씩씩한 활력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활력은 뜬금없이 조카를 대하는 태도에서부터의 자신감으로 발전되었다. 저녁시간 내내 작은아버지는 나에 대해서 이것저것 묻기에 바빴다. 고등학교는 제대로 졸업했는지, 대학은 들어갔는지, 대학에 진학했다면 전공은 무엇인지, 군대는 갔다 왔는지, 여자 친구는 있는지 등등. 그에겐 그토록 궁금해 하는 항목들에 대한 답은 내게 있어 지극히 평범한, 너무 평범해 주눅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작은아버지, 그에게 그간 살아온 이력을 풀어낼 때의 나의 음성은 점점 가라앉아만 갔다.

   연일 저녁, 나와 작은아버지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대충 데운 즉석 미역국에 햇반을 말아먹은 다음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리곤 했다. 나는 못내 아버지가 신경 쓰였지만 작은아버지와의 대화를 중단할 순 없었다. 나는 그에게 고등학교는 그럭저럭 졸업했고, 경기도 인근 2년제 대학에서 소방관리란 방재 분야 실용학문을 공부했으며, 육군 병장으로 군복무하고 현재는 제대한 지 두 달 지났으며, 갓 제대한 까까머리 사내에게 관심 줄 이성이 있을 리 만무하지 않느냐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이어지는 작은아버지의 질문.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앞으로 무얼 하고 싶으냐는 것. 다시 말해 너의 꿈이 무엇이냐. 비교적 구체적으로 말해 보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그런 종류의 질문을 받은 나는 순간 당혹스러웠다. 무엇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답은 전혀 어렵지 않지만 꿈이니 비전이니 하는 걸 말한다는 게 어딘가 모르게 낯 뜨거운 일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현재 아버지가 일하는 곳에 용역업체 신분으로 단기 취업해 아버지와 함께 일하고 있으며, 앞으로 그곳에서 잘리지 않고 계속 일해 별정직 공무원이 되어 국가의 녹을 받아먹으며 살고 싶다는 뜻을 담담히 게워냈다. 나는 내 꿈이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아버지가 내 꿈을 들으면 격려해 줄 것으로 믿었다. 요즘 세상에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우는 아들이 어디 있으며, 또한 성실함을 인정받는 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적당히 현실적인 수위의 꿈을 가진 청년이 어디 흔하겠는가. 나는 작은아버지가 대견해 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줄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작은아버지는 내 뒤통수를 쓰다듬어 주는 건 고사하고 있는 힘껏 내리치고 말았다. 표정은 험하게 일그러졌고, 얼굴엔 한 가득 분노가 담겨 있었다. 뒤통수를 때린 작은아버지는 내가 인생 초입부터 굴종과 패배의 미덕을 숭배하며, 급기야 벽에 똥칠할 구차한 연명의 마지막까지 굴욕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을 거란 나로선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독설을 퍼부었다. 내가 자신의 말을 제대로 알아먹지 못했다고 느꼈던지 작은아버지는 쉬지 않고 부연설명을 내뱉었다. 그는 아버지, 자신의 형이 일평생 몸담아 온 공무원교육원에서의 위생관련 별정 공무원직을 노골적으로 폄하하진 않았다. 언뜻 듣기만 했을 땐 분명 그랬다. 하지만 가만히 듣고 있자니 작은아버지가 나를 책망한 이유는 아버지가 평생을 몸 바쳐 일해 온 국가의 녹을 받아먹게 될 이들을 교육시키고 교육받는 이들이 싸고, 먹고, 버리는 정화조 탱크로 모여든 온갖 오물을 관리하는 일을 그대로 대물림하는 이유가 못마땅하다는 거였다. 무엇보다 나 역시 대를 이어 국가가 싸고 버리는 오물,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해 똥 치우는 일을 함으로써 인간 자체를 국가에 종속시키는 사육장의 하급 관리자로 정년을 보장받고자 하는 의욕이 한 개인의 삶 전체의 꿈이 되어버린 그 어리석음에 소름이 돋는다고 힘주어 말할 때, 난 솔직히 완전한 공감도, 완전한 부정도 하지 못했다.

   완전한 공감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자명했다. 청년실업문제가 대세인 세상에서 정해진 시간에 출, 퇴근하는 직장이 있다는 게 어디며, 업무가 특별히 어렵거나 까다롭지도 않고 단지 평생 공무원이 되기 원하는 이들의 똥을 치우는 일 자체가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닌 데다 계속 눌러 앉아 있기만 하면 정년 동안 빠짐없이 국가의 녹을 받아먹을 수 있는 일이 어째서 어리석고 수치스런 일인지 아무리 머릴 굴려도 설득이 되질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작은아버지의 느닷없는 공격에 일관되게 기분이 상해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뭔가 찜찜한, 공감할 순 없지만 그래도 씁쓸한 뒷맛을 남기며 어딘가 모르게 그가 했던 말들을 곱씹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강한 인력이 나를 잡아당겼다.

   작은아버지는 자신의 말에 공감하지 못하는 내게 좀 더 알아듣기 쉬운 설명을 거듭했다. 그렇게 얘기하다 소가 뒷걸음치다 잡은 꼴인 이야기꺼리가 바로 어머니의 ─ 그에겐 형수가 되겠지 ─ 가출 얘기였다. 작은아버지가 내게 먼저 질문했고 답을 요구했다. 그는 나를 드레스 룸으로 데리고 들어간 다음 가출한 어머니가 남긴 백여 벌이 넘는 옷들이 걸린 행거를 가리키며 왜 형수가 집을 나갔는지 그 내막을 제대로 알고 있느냐며 내게 따지듯 물었다. 나는 답하지 못했다. 쉽게 답할 성질도 아니며, 한 아들의 어머니이자 한 남자의 아내가 이십 년 넘게 살 비비며 살아온 삶의 터전을 홀연히 등지고 사라진 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할 만큼 정확한 답이 과연 있을 수 있겠는가. 어머니의 예기치 않은 가출 동기가 모호한 것만큼 작은아버지가 던진 질문의 저의도 어렵고 그만큼 의뭉스러웠다. 그는 형수가 이 드레스 룸을 포기하고 아버지와 나의 품을 떠난 이유가 바로 내 자신의 한심함 때문이었다고 단정하듯 못 박았다. 그렇게 말하고선 조금 미안했던지 ‘너를 이렇게 한심하게 만든 건 국가이며, 국가를 조성한 체제, 그 체제를 숭배하는 전체주의자인 형의 아둔함이 낳은 비극이며, 형과 같은 기계를 닮아버린 노동자들을 붕어빵 찍어내듯 찍어대는 사회, 국가의 심각한 폭력이며 더 나아가 그 폭력이야말로 인간이 품어야 할 최소한의 인권마저 유린하는 살해행위!’라고 힘주어 말했다. 작은아버지의 어려운 말을 듣고 있자니 나의 혼란은 가중되었고 가중된 만큼 그가 말하는 국가에 대해, 어머니의 가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먼저, 어머니의 가출 이유가 우선 고려 대상이었고 또 한 가지, 작은아버지가 말한 나의 어리석음, 그 실체가 무엇인지 퍽이나 알고 싶어졌다.

 

 

3

 

   작은아버지가 우리의 작고 비좁은 다세대 반지하 집에 들어온 후, 결정적으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식사시간의 활력을 꼽을 수 있겠다. 어머니의 드레스 룸에 여장을 푼 그는 나로 하여금 형제가 이처럼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좋은 예를 보여주었다.

   1년이 다 되도록 ‘밥 먹자’ ‘자자’ ‘일어나라’ 그 정도의 일상 언어를 그것도 스무 단어 이상 사용하지 않는 아버지의 종교수행에 가까운 과묵함과는 달리 작은아버지의 언어구사 능력, 소위 말빨은 현란하다 못해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 미묘한 의미들의 카니발이었다. 나는 그가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한때 학생운동 비슷한 것에 열광했으며, 주로 재야 정치인들의 보좌관이나 무엇무엇 연구소의 간사 활동을 전전해 온 이력에 비추어 그의 말을 평가하지 않았다. 작은아버지의 언어구사 능력은 특화된 사회학자의 그것보다도 더 전문적인 전문용어의 활용 폭을 갖고서 자신의 말을 능란하게 확산, 융합하여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경지를 과시했으니 말이다.

   나와 아버지, 작은아버지가 하루 중 함께 모이는 유일한 회합의 자리인 저녁 식사 시간이 도래할 때마다 그는 한번 발동 걸리면 결코 멈추지 않는 재봉틀처럼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처음에도 그렇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도 주기적으로 그의 말에 추임새를 넣던 나와 다르게 아버지는 시종일관 그의 상당히 공격적 성향으로 무장된 시국비판에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그의 말들이 전문 사회과학 용어의 숲 속에 스스로 유폐되어 동어반복이 거듭되는 건 분명했지만 동시에 하고자 하는 말의 주제가 한 대상, 하나의 체제, 하나의 편견을 향한 집요한 성토에 집중된 것 역시 부정하기 어려웠다. 솔직히 처음엔 작은아버지의 말이 뭘 뜻하는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시종 나와 눈을 맞추며 상대가 알아듣든 못하든 상관없이 쏟아내는 작은아버지의 냉소적 수사로 일관된 비난의 주제가 바로 ‘국가’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작은아버지가 떠들어대는 ‘국가’란 개념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거창하고 거시적인 개념과는 확연히 달랐다. 작은아버지가 맹렬히 씹어대는 국가는 다름 아닌 아버지, 더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가 하는 일, 직장이었고 그에겐 형인 아버지가 일하는 지루함이었으며 그 아버지가 일관되게 지향하는 강고한 프레임이었다. 논리의 비약인지, 혹은 논리의 축소인지 정확히 모르겠는데 작은아버지가 비판한 국가는 항구적 폭력체로서 우리 보금자리의 일부가 되었으며, 급기야 그 국가가 싸구려 옷 수집을 즐겨하고 최신 가요 부르길 좋아하는 어머니를 추방시켰다고 주장했다. 대체 무슨 근거가 있는지 나는 그 논리의 근거에 대해 캐물을 용기도 이유도 몰랐다. 현란함의 롤러코스터 위에서 질주하는 작은아버지의 언어 축제 속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존재 의미가 국가라는 이름의 시스템에 의해 사육되는 국가 사육체들의 똥을 치우며 살아가는 국가의 잉여라는 표현으로 격하게 재단되었다.

   그런 말들이 이해되기 시작했을 처음엔 뭐랄까 섬뜩했다. 한 번도 아버지가 하는 일들을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놓고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어도 아버지가 하는 일이 누군가의 잉여가 되는 일이란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고약한 악취 가득한 오배수 배관 청소를 시행하고 헐거워진 배관 이음새를 고정하고 그러다 몇 년 더 지나면 꽉 채워진 정화조 속 오물을 대대적으로 치워내는 아버지의 일련의 업무를 작은아버지는 집요하게 전체주의에 세뇌된 종말론적 풍경이라고 비하했다. 그 맥락에서 작은아버지는 내가 보기에도 공통분모가 없어 보이는 어머니란 존재를 끌어들여 어머니는 아버지가 쉼 없이 배출해 내는 국가의 역한 악취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탈국가, 탈권력, 탈체제의 길을 선택하고 만 거라고 주장하며 입을 열 때마다 그녀를 혁명투사로 칭송했다. 사실 아버지가 ‘국가’ 중에서도 최악의 나쁜 예란 주장은 그런대로 들어줄 만했지만 어머니가 국가의 악취에 저항했다는 식의 해석엔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작은아버지는 끝없이 되풀이되는 자신의 논리에 대해 그 역시 부단하게 나의 동의를 요구했다. ‘그렇지?’ ‘내 말이 맞지?’ 그런 질문에 내가 그저 어색한 웃음으로 얼버무렸던 것도 나의 마음속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한 구석이 남아서였다. 지금은 부재중인 어머니의 지적 수준을 결코 낮게 보는 건 아니지만 단지 그녀는 홈쇼핑과 대형 아울렛에서 자신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갓 스무 살을 넘긴 아이들이나 사 입을 법한 저렴한 가격의 옷을 수집하듯 사 모으는 소소한 낭비벽의 소유자일 뿐이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그 보잘 것 없는 낭비벽을 집요하게 추궁했고 추궁의 방법들이 때론 이건 정말이지 아니다 싶을 정도로 과격한 폭력으로 발전된 문제를 어머니 가출의 결정적 이유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가 작은아버지의 세 치 혀 속에선 투사로 변신한다. 억압하는 국가권력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그런 어머니에 대한 새로운 의미 규정의 말미엔 ‘나’란 존재에 대한 비난과 질타가 꼬리표처럼 이어졌다. 작은아버지는 답답해했다. 아버지를 따라 별정직 공무원이 되겠다는 소박하고, 최대한 좋게 보면 건실하기만 한 내 꿈을 미친 자본주의의 껍데기에 종속된 국가주의의 타협이라고 매도했다. 그렇지만 점점 더 비판의 수위를 높이던 당신에게 더 이상 집에서 밥이나 축낼 생각이라면 당장 짐 싸들고 나가버리라고 경고한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작은아버지는 이율배반적이게도 아버지가 일하는 곳에서 때마다 대대적으로 진행하는 정화조 청소 일일(一日) 아르바이트에 참여해야 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은 한 번도 이런 일들을 나의 목표나 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묵묵히 공무원 교육생들의 똥을 치우는 나의 입장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자기합리화에 골몰했다.

   일단 나는 긍정하기로 했다. 작은아버지의 말이 단지 화려해서만이 아니라 다르게 반박할 이견이나 명분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사실에 대한 해석, 이를테면 결정적 팩트라 볼 수 있는 어머니의 부재에 대한 원인을 국가주의에 함몰된, 좀 더 격하게 표현해 광기의 체제에 세뇌되어 버린, 그래서 인간의 존엄 따윈 우습게 깔아뭉개는 학살의 국가성에 대한 최소한의 항거라는 식의 해석에 토를 달거나 ‘뭘 그렇게 거창하게’라는 식의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죄’스럽다 해야 할지 설명하긴 힘들지만 작은아버지의 수다를 대하는 나의 감정은 한 마디로 말해 죄책감이었다. 물론 아버지는 어떤 생각일지 알 길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매일 저녁마다 되풀이되는 혹독한 사상비판 속에서도 침묵을 견지하는 아버지의 태도 역시 작은아버지의 논리에 대한 나름의 긍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렇지만 그 거창하고 신랄한 작은아버지의 세 치 혀에 대한 긍정과는 또 다른 별개의 궤적이 나의 눈을 사로잡는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마냥 충격적이진 않았지만 작은아버지에 대한 나의 감정을 비교적 일관된 것으로 지속시켜 오던 흐름에 분명한 파문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작은아버지가 나와 함께 다가오는 일요일 오후 아버지의 책임업무로 할당된 공무원교육원 정화조 청소 일일 아르바이트에 투입되기로 하기 전 날 오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릴없는 저녁. 무료하게 거실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던 내게 티브이 화면 너머로 아른거리는 조금 문이 열린 드레스 룸, 언제나처럼 식사 시간 외엔 드레스 룸에 틀어박히던 작은아버지의 몸이 꿈틀거리는 모습을 발견한 것은 분명 의도된 결과는 아니었지만,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발견이었다. 나는 꼼짝하지 않고 소리만 켜놓은 채 티브이 화면을 꺼놓았다. 온통 칠흑같이 변한 화면 너머로 더욱 선명하게 드레스 룸 내부 모습이 목격되었다. 나의 시선을 작은아버지는 눈치 챘을까. 어땠을까. 드레스 룸 문은 바람 탓인지 미세하게 움직였고, 그러자 작은아버지가 내뱉는 평소의 현란한 독설처럼 적나라한 그의 벗은 하체가 목격되었다. 검은 화면 너머에 비친 작은아버지, 그는 고요하지만 격렬하게 몸을 비틀고 있었다. 때론 주먹을 힘껏 움켜쥐거나 허벅지의 푸른 힘줄이 거세게 부풀어 오르기도 하고, 발끝을 발레리나처럼 곧추세우기도 하며 제 몸에 파고드는 보기에도 절박한 감각의 실현을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이 발각되었다. 그리고 그 행위의 절정에 작은아버지가 지금은 집에 없는, 언제 돌아올지 모를 가출한 어머니의 팬티스타킹과 속옷, 저렴한 옷들을 부여잡고 다른 한 손으론 자신의 자지를 힘껏 움켜쥐면서 세상 그처럼 절박할 수 없는 수음에 열중하는 그를 본 순간 나는 정말이지 눈을 감아버리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끝내 눈을 감지 않았다. 암흑이 되어버린 티브이 화면 속에서 작은아버지의 눈빛의 방향이 어쩌면 처음부터 나를 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느낌이 확신으로 굳어 갈 즈음 나는 국가의 전체주의를 혐오하고 체제를 부정하고 한 개인의 절대적 자유를 찬양하는 작은아버지의 진심을 처음으로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4

 

   그리고 그날, 작은아버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알바’란 것을, 그것도 아버지가 뼈를 묻을 각오로 일하는 공무원교육원의 똥 치우는 일을 위해 투입되던 그날 말이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말을 주절거렸던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아버지의 오래된 1톤 트럭에 장비를 챙겨 넣을 때부터, 비좁은 트럭 조수석을 두고 나와 자리다툼을 벌일 때도, 작업현장인 공무원교육원 경비실 앞에서 신분증을 제시할 때도 작은아버지는 그야말로 단 한 숨도 쉬어감 없이 무언가를 말하고 또 말했다. 물론 그가 중얼거리는 말의 전체적 내용은 한사코 일관된 것이긴 했다. 이전보다 한 차원 더한 냉소주의로 무장한 날선 비판의 말들이었던 것이다. 일단 겉 내용으로만 보면 작은아버지의 비판은 거시적인 문제에 매달려 있었다. 그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국가의 무능, 정부무용론에 집착했고 누가 들어도 황당하다 싶을 국가기관들의 총체적 실정을 질타하고 또 질타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겉 내용의 비판은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당연하게 씹어대도 될 만한 것들이었지만 나는 비교적 또렷하게 작은아버지의 날선 비판, 그 칼날이 전적으로 아버지를 향하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작은아버지는 형, 동생 사이에서조차 공과 사를 구분하는 아버지란 작자가 보여준 야속함의 극치인 휴일 아르바이트 동원을 비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서운함에 대한 비판, ‘한 달 가까이 아무 일도 않고 주둥이만 나불거리며 먹고 자고 쌌으니 너도 양심이란 게 있다면 한 달에 하루만큼은 밥값을 해야 하지 않느냐’며 윽박지르는 ─ 이 표현들은 순전히 아버지에 대한 편견으로 무장된 그의 머릿속 표현들을 옮겨 담은 것뿐이다 ─ 아버지의 원색적인 비난에 대한 그 역시 직접적인 저항은 평소 아나키즘을 옹호하고 신자유주의 폐해를 성토하는 자신의 세련된 스타일과 영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선지 크게 에둘러 공격하고자 했던 것이다. 나는 그런 작은아버지의 투정을 애써 이해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해 못 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순전히 작은아버지만의 스타일이니까. 게다가 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제의 산만함과 수다스러움을 차치한다면 그의 말 속엔 충분한 일리가 녹아들어 있기도 했다. 아주 가끔, 나 역시 어머니의 가출을 이해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어머니가 무슨 이유로 가출해야 했는지, 또한 그 문제에 대해 국가의 녹을 먹고 살아가는 아버지는 무슨 이유로 침묵으로만 일관하는지, 거기에 하나 더, 작은아버지는 무슨 이유로 그에겐 형수가 되는 여자의 저렴한 옷을 붙잡고 수음에 몰두해야 했는지. 사실 이런 종류의 공론화하기 매우 껄끄러운 문제에 대해 한 번도 국가가 나선 적이 없었으니 그런 맥락에서만 보면 작은아버지의 주문과도 같은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국가비판도 아예 쓸모없는 건 아니란 생각도 들었더랬다. 적어도 그날, 교육원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된장찌개 백반을 먹고 그 역시 무상으로 제공되는 맥스웰 믹스커피를 셋이서 꽤 사이좋게 나눠 마실 때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그날 오후, 앵무새처럼 조잘거리던 작은아버지의 말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상황의 출몰 탓이다. 아버지는 교육원들이 쉬지 않고 누어대는 똥을 담아 나르는 배관의 대대적 청소 업무를 별도의 용역 공사를 맡기지 않고 분기마다 자신이 직접 도맡아 해왔다. 아들인 내가 파견업체 직원 신분으로 투입될 때는 나와 아버지 둘이서 했지만, 그날은 특별히 한 달 동안 밥만 축내던 자칭 혁명가인 작은아버지까지 추가 투입되어 우리 셋은 오배수관을 묻어 놓은 지하 피트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작은아버지가 자연스럽게 입을 다물게 된 시점도 바로 지하 4층 피트로 빨려들듯 내려가기 시작한 시점부터였다. 역한 악취만이 가득한 지하 4층 피트는 랜턴을 켜놓지 않으면 한 치 앞도 나아가기 어려운 철저한 암흑이었고 동시에 미로였다. 피트 사이사이로 청색 테이프를 감아 놓은 배관이 눈에 들어왔는데, 제일 먼저 앞장 선 아버지가 배관 이음새 부분을 단단히 조이고 누수 흔적을 점검하고 나면 나와 작은아버지가 갖고 온 세척기와 걸레로 낡은 배관의 녹슨 부위나 이끼를 제거하는 극도로 단순한 작업을 시작했다. 이 작업은 정말 한심할 정도로 단순했지만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사람이 직접 피트 안으로 들어가야 했고, 한번 들어서면 사방 갈라지고 만나는 통로들이 미로처럼 계속되었기에 도면을 갖고 있거나, 아님 오랜 시간 숙달되어 입출입로를 정확히 파악한 사람이 아니면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고 영원히 피트 속에서 길을 잃은 미아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품고 있었다. 물론 ‘영원’이란 시간 개념을 도입한 표현은 다분히 감상적 견해일지도 모른다. 그래 봐야 건물 지하 배관에 불과한데 말이다. 그런데 빛 한 점 발견할 수 없고, 더욱이 낙후된 배관 이음새나 표면에서 균열이 일어나 관 속에 꽉 들어차 있던 오물이 터져 나오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잠정적으로 길을 잃어버린 이에겐 한 시간, 두 시간이든 상관없이 그 순간순간이 출구를 상실한 영원이 되고 말 거란 게 나만의 평소 지론이었고, 동시에 아버지의 확신이기도 했다. 빛을 유일하게 소유한 아버지가 오배수관 이음새 하나를 그대로 지나쳤을 때, 그리고 묵묵히 아버지의 뒤를 따르던 나의 뒤통수로 내내 침묵하던 작은아버지의 외침이 들려온 순간, 도리어 아버지는 내 손목을 힘껏 붙잡고서 뒤돌아보지 않고 자신을 따라올 것을 강요했던 것을 나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그나마 희미한 랜턴 불빛은 점점 더 뒤따라오던 작은아버지로부터 멀어져 갔고 더욱이 어느 순간부턴 ㄱ자형으로 구부러진 피트 방향이 뒤바뀌는 통에 작은아버지와 우리의 거리감 또한 넘을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수준까지 이르고 말았다. 작은아버지의 외침이 계속해서, 절박하게 들려왔다. 그렇지만 나는 독재자처럼 앞장서서 걷기만 하는 지하에서의 유일한 빛의 소유자인 아버지 뒤를 묵묵히 따라야만 했다. 작은아버지의 외침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일 것이다. 하지만 굳이 변명하자면 애써 그의 외침에 뒤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역한 분뇨 냄새가 점점 더 강해졌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질퍽거리는 피트 바닥에서 오배수관 중 어느 하나가 균열을 일으켜 이제 곧 피트 통로 전체를 속된 말로 똥물 천지로 만들어버릴 것을 알게 된 그 순간 나는 내 손을 붙잡고 빠른 걸음을 옮기는 그렇게 서둘러 출구를 향해 달려 나가는 아버지의 결단, 아버지의 신념, 아버지의 길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제법 시간이 흐르자 그의 외침도 점점 멀어져 갔다. 어느새 나란 존재는 아버지에게 이끌려 지상 1층 하수처리장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아버지는 작업일지에 ‘녹슨 오배수관 균열 발생, 추가보강공사 요망’이란 단문의 업무 과제를 적은 뒤 내게 만 원권 지폐 한 장을 쥐어주며 목욕탕에 다녀오라고 명령했다. 만 원을 손에 쥔 나는 아버지보다 한 시간 먼저 퇴근해 집 근처 목욕탕에 들러 목욕을 했고, 그날 저녁 집으로 들어온 아버지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햇반과 즉석 미역국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그날의 저녁식사 풍경에서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작은아버지가 복귀하지 않았단 사실과 한 가지 더, 아버지가 오랜만에 박장대소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겠지만 그날 아버지는 9시 뉴스를 시청했고, 뉴스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뉴스에선 언제나 그렇듯 크고 거대한 국가에 관한 이야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이던 중이었다. 대통령선거, 국가신용등급, 유력 정치인의 대형 정치 스캔들 등등. 나는 뉴스를 보며 웃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단지 공중파 방송에서 송출하는 9시 뉴스엔 공무원교육원에서 똥을 치우기 위해 지하 4층 배관 통로까지 기어 들어간 제법 말 잘하고 냉소적인 사십대 중반의 직업미상의 남자가 실종되었다는 따위의 기사는 결코 보도되지 않을 거란 사실을 실감한 게 전부였다.

 

 

5

 

   그 작지만은 않은 두 가지 소동이 있은 후 작은아버지는 다시는 우리 집, 조카와 형이 살고 있는 곳을 찾지 않았다. 아버지도 애써 작은아버지를 찾지 않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나와 아버지는 예의 지루한 침묵을 재개했다. 아침을 먹고 출근부터 퇴근 때까지 똥을 치우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저녁을 먹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작은아버지에 대한 생각이나 미련, 아쉬움, 궁금증 따위도 사라져 갔다. 의미가 사라진다는 건 서글픈 것도 그렇다고 마냥 무의미한 것도 아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작은아버지는 비록 어머니 경우처럼 가출의 길을 감행했지만, 오히려 좀 더 명백한 행동의 좌표를 심어 주었다. 그 좌표는 나로 하여금 질문하게 했다.

   묻고 싶었다. 어머니가 왜 집을 나갔는지. 그날 아버지는 왜 작은아버지를 버렸는지, 아버지는 어떻게 9시 뉴스를 보면서 폭소할 수 있는지, 거기에 하나 더, 나와 아버지, 작은아버지에게 국가란 어떤 의미였는지 묻고 싶고 알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나 사이에 있어서 질문과 답, 소위 대화란 것은 마냥 어렵고 절대적으로 서툰 일이었다. 침묵으로만 모든 것을 설명하려 드는 아버지와 나에게 직접적인 표현은 어울리는 소통수단이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대화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질문하기로 했다.

   작은아버지가 황망하게 사라지고 난 뒤 한참이 지난 평일 저녁,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손, 발만 간단히 씻고 식탁에 앉아 햇반 두 개와 즉석 미역국으로 저녁을 해결한 아버지에게 나는 비록 독창적이진 않지만 내 방식대로 의미를 담은 질문을 던져 보고자 했다.

   식사를 마치고 방에 들어갔다가 다시 거실로 나온 아버지가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어머니의 드레스 룸에 다가섰을 때, 그런 그가 반쯤 열린 문 앞에 두 발을 딛고 서서 더없이 근엄한 표정으로 뜬금없이 드레스 룸에 있던 날 내려다볼 때, 나는 부러 연출하지 않고 애쓰지 않아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두 손에 어머니의 저렴하고 다양한 철지난 옷들을 움켜쥐고서 거칠면서도 절박한 수음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묻고 있었다. 먼저는 아버지에게, 그 다음 여전히 부재중인 어머니에게,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은아버지의 표현을 전적으로 빌려 ‘저 빌어먹을 국가’에게 나는 어머니의 옷을, 내 자지를 부여잡은 왼손으로 묻고 또 묻고 말았던 것이다.

 

   너무 말이 많은 이와 너무 말이 없는 그 누군가들에게.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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