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운다
나호열
거역할 수 없는 슬픔이 있다
예정되어 있으나 슬그머니 뒤로 밀쳐놓은
정답이 없다고 스스로 위안한
풀지 않은 숙제처럼
달려드는 파도가 있다
못질 소리
똑닥거리는 시계의 분침 소리
바위가 모래로 무너져 내리는 소리
이 나이에 사랑은 무슨
이 나이에 이별은 무슨
가슴이 울 때에는
이미 살아온 날들 보다 더 많은
혀를 닮은 낙엽이
길을 지우고 난 후
거역할 수 없는 슬픔은
그것이 이미 예정되어 있는 슬픔인 까닭
짐짓 잊어버릴 수 있을까
세상을 엿보았던 커다란 오해를 받아들인 까닭
가슴이 운다
높은 처마 끝에 매달아 놓은 풍경이
바람 앞에 속절없이 속을 내놓듯이
창조문예 2012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