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고 치는 사내
저녁 이었다
배롱나무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지만
어느 새 기지개를 펴고 주먹을 내지를 것이다
가지를 단단히 움켜 쥔 새가 호르륵 호르륵
앞산 뒷산을 넘고 넘기는 기억의 씨는 더 깊게
무덤으로 파고들 것이다.
그가 굽이치며 걸어 올라왔을 길이
이제는 혼자 휘적이며 내려가는 시간
북 앞에 선 그의 뒷모습
가죽을 남기고 간 짐승의 혼 같다
지금은 일주문 같은 나무들이 모여들어
안팍을 알 수 없는 내력을 더듬을 때
피 묻은 소리들은 고요히 어둠 속에 몸을 섞었다
꽃이 피고 나비들이 찾아올 것이다
나그네에게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묻지 않는 법이다
*다시 개심사를 갔다. 불자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법문을 들으려는
것도 아니고 색다른 분위기를 맛보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다시 그곳에 들렀
던 것뿐이다. 이른 봄 저녁, 법고 치는 사내가 낯이 익었다. 절 밑에서 더덕구
이를 맛있게 먹고 있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