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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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짧은 시, 긴 여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3. 8. 12:38

 

아버지의 방

 

          이채민

 

함경북도 길주군 영기동의

 

푸른 하늘과

 

탱자나무 울타리 빠져나온

 

저녁 연기와

 

철책선 넘어 온 기러기 떼

 

발자국이 빼곡했다

 

- 계간 『시와 시학』 2012년 봄호

 

마음을 움직인 것들을 현미경으로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쓴 시는 강가에 와 닿는 잔물결 같은 감흥을 준다. 대체로 그와 같이 긴 시는 시인이 제시한 길을 따라가야할 것 같은 불편함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반면에 이것을 이야기하려고 저 것의 몇 개의 풍경을 객관적으로 던져놓는 짧은 시는 긴 여운을 남긴다. 고향의식을 상실한, 아니 아예 고향에 대한 애틋함조차 모르는 현대인에게 「아버지의 방」이 환기하는 영역은 편협하지 않다. 푸른 하늘과 저녁 연기와 기러기떼로 귀결되는 망향의 국면은 오랫동안 거실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밫바랜 풍경 액자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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