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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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항재

중앙선데이입력 2024.11.16 00:01만항재황동규하늘 한가운데가 깊어져대낮에도 은하(銀河)가 강물처럼 흐르는만항재 늦가을저 밑 침엽수림들이 물속처럼 어두워지는 것을 보며바람에 손을 씻었다.은하 가운데 머뭇대던 구름 한 장 씻은 듯 사라지고열 받은 차가 하나 서 있다얼마나 높은 데 길들이면자신의 신열(身熱) 들키지 않고삶의 고비들을 넘을 수 있을 것인가?『꽃의 고요』 (문학과지성사 2006)기후와 환경의 영향으로 나무가 살지 못하는 곳, 이 시작점을 사람들은 수목한계선이라 부릅니다. 위도가 높아 추운 극지방, 고온과 낮은 습도의 사막, 혹은 고도가 높은 산악지대 등에 이 수목한계선이 형성됩니다. 하지만 수목한계선이라 하더라도 전혀 나무가 자라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곳의 나무들은 스스로 키를 낮추..

공부할 시 2024.11.19

[68] 아날로그 민주주의의 미래

[김대식의 미래 사피엔스] [68] 아날로그 민주주의의 미래김대식 카이스트 교수입력 2024.11.18. 23:52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민주주의’라는 대담한 실험이 시도된다. 왜 민주주의가 ‘대담한’ 실험이었다는 걸까?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를 따르지만, 동시에 다른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서만 생존이 가능한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서로 역설적인 두 가지 본능을 가진 인간에게 민주주의는 너무나도 어려운 방식이라는 말이다.소수의 친척들로만 구성된 원시시대 공동체에서는 큰 문제가 안 됐을 것이다. 하지만 더 많은 이들과 협업할수록 더 큰 혜택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인류는 치명적인 문제를 하나 발견한다. 모두의 노력을 통해 얻은 공동체의 혜택은 어떻게 나눠야 할까?신석기시대 농사와 정착을..

김대식의 과학 2024.11.19

‘아내 패고 버린 우산 아깝다’ 시인 스스로 고백한 죄와 벌 [백년의 사랑]

‘아내 패고 버린 우산 아깝다’ 시인 스스로 고백한 죄와 벌 [백년의 사랑]카드 발행 일시2024.06.28에디터이경희김수영 시인의 아내, 김현경 여사가 들려주는 ‘백년의 사랑’(4)지난 이야기김수영(1921~68)이 첫사랑에게 버림받고 방황하던 1942년 일본 유학 시절, 김수영과 동숙하던 이종구가 ‘사랑하는 조카딸’이라며 예뻐하던 여섯 살 아래 김현경을 소개한다. 김현경은 이종구와 김수영을 모두 ‘아저씨’라 부르며 문학을 논한다.김현경은 첫사랑 배인철 시인을 총격으로 잃고 신문에 실리며 구설에 오른다. 김수영 시인은 고립된 김현경을 가장 먼저 찾아와 “문학 하자”고 말한다. 문학이 사랑이자 구원이었던 둘은 관습을 뛰어넘어 동거하고, 결혼한다. 임신한 김현경을 두고 의용군으로 끌려간 김수영은 가까스로 ..

카테고리 없음 2024.11.19

탑이라는 사람-선림원지 3층 석탑

탑이라는 사람 -선림원지 3층 석탑   해서는 안 될 말들과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말들을강심을 알 수 없는 마음에 던져놓기 수 백 년그 말들이 굳고 단단해져허물 벗듯 육탈肉脫하기또 수 백 년바람이 마름질하고달빛이 갈아낸 말들은폐허의 정적에 우뚝 서 있다이제는 무너질 일만 남은 고독한 사내 심장의 박동이 묵정밭에 푸르다

산따라 강따라 비경들 사이사이 비밀의 역사들이

산따라 강따라 비경들 사이사이 비밀의 역사들이중앙일보입력 2024.11.15 00:02최승표 기자 경기도 연천의 상징인 옥녀봉 그리팅맨. 2016년 유영호 작가가 설치한 작품으로, 자존심을 지키면서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연천군은 경기도이긴 하나 멀다. 서울시청에서 연천군청까지는 약 83㎞. 인구(4만950명)는 경기도에서 가장 적고, 지방 소멸 위기 지역으로 분류돼 있다. 이런 조건은 걷기여행을 할 때 도리어 장점이 된다. 지난 6~7일 ‘DMZ 평화의 길’ 연천 구간을 걸어보니 고요히 만추를 즐기기에 제격이었다. 임진강 너머 북녘땅이 아른거렸고 이따금 우리 군의 사격 소리가 들렸지만, 풍경만큼은 더없이 평화로웠다.천혜의 요새 당포성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질 명소로 지정된 임진강 주상절리...

걷는 사람들- 기벌포에서

걷는 사람들 - 기벌포에서  사라지기 위하여 걷는 사람이 있다두루미의 다리로 휘청거리며절대로 뒤돌아보는 일 없이밀려오는 파도를 온 몸으로 받는 자세로하염없이 걸어간다그러나 그는 저 강이 시작된 눈물에 닿기 전에길이 끊겨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고요에 닿기 전에발걸음을 되돌린다 그리움이라는 집은 이미 불타고 없는데탕진한 생生의 목마름으로 이미 껍데기만 남은 알 속으로 몸을 버린다오늘도 그는 사라지기 위하여 걷는다

벼슬 멀리한 장인, 연암이 과거 포기하자 오히려 기뻐해

벼슬 멀리한 장인, 연암이 과거 포기하자 오히려 기뻐해중앙일보입력 2024.11.15 00:32연암 박지원의 청빈했던 친·인척이숙인 동양철학자·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명분과 절개를 닦지 않고, 가문과 지체를 밑천 삼아 조상의 덕을 판다면 장사치와 뭐가 다를까. 이에 양반전을 짓는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스무살 무렵의 연암 박지원은 ‘양반전’ ‘학문을 팔아먹는 큰 도둑놈전’ 등 작품 9편을 짓는다. 병을 이기기 위해 시도한 글쓰기가 시대의 아픔을 해학으로 풀어낸 명작으로 탄생한 것이다. 44세(1780년)의 연암은 연행 사절단에 끼여 청국을 방문하는데, 그 5개월의 여행 기록 『열하일기』는 우리 시대의 고전이 되었다.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우리나라에 박지원이 있다고 할 만큼 그를 우리나라 최고의 대..

[13] 꽃잎의 색처럼 시대의 색도 변한다

[정수윤의 하이쿠로 읽는 일본] [13] 꽃잎의 색처럼 시대의 색도 변한다정수윤 작가·번역가입력 2024.06.12. 23:52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수국이어라쪽빛으로 변하는어제와 오늘 あじさい紫陽花やはなだにかはるきのふけふ 나의 일본인 친구 마이코는 홋카이도에서 중학생에게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십몇 년 전쯤 도쿄에서 같이 문학 수업을 들으며 친해진 사이다. 그때 마이코는 하이쿠를 쓰는 시인이 되고 싶다고 했고, 나는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지금 마이코는 삿포로의 정서를 담은 하이쿠를 동인지나 작은 모임에 발표하며 학교에서 아이들을 지도한다. 하루는 그런 마이코와 라인으로 통화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슌챵, 요즘 학교에서 보면 어린 친구들이 한국을 얼마나..

친구 0명, 전화도 한달 한번…관계빈곤, 가난만큼 무서운 이유

친구 0명, 전화도 한달 한번…관계빈곤, 가난만큼 무서운 이유중앙일보입력 2024.11.13 00:56업데이트 2024.11.13 09:40신성식 기자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구독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이 지난해 12월 서울 동대문구의 한 1인 가구를 방문해 건강 음료를 전달하고 애로사항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이렇게 전화해 준 게 고맙지요."광주광역시 서구 정종문(53)씨는 11일 오후 기자의 전화를 받고 이렇게 말했다. 한 달에 한 번 전화가 올까 말까 한데, 기자의 전화가 오니 반가웠던 모양이다. 정씨는 2017년 6월 뇌출혈로 쓰러져 우측이 마비된 후 요양병원 세 곳을 전전했다. 지난해 6월 5년 넘는 병원 생활을 접고 지금의 임대주택으로 나왔다. 정씨는 친구도 이웃도 없다. 전화나 카카오톡 통화하..

일제 때 고향 떠난 지광국사탑, 113년만에 돌아와 섰다

일제 때 고향 떠난 지광국사탑, 113년만에 돌아와 섰다중앙일보입력 2024.11.13 00:01강혜란 기자 일제에 의해 반출된 지 113년 만에 강원도 원주에 우뚝 선 국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이 12일 복원 기념식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보존처리 과정에서 탑 기단석 네 귀퉁이의 사자상 네 개도 되찾아 ‘완전체’를 이뤘다. [사진 국가유산청]일제강점기인 1911년 반출됐던 국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이하 지광국사탑)이 113년 만에 고향인 원주의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경복궁 야외에 서 있던 것을 2016년 보존처리를 위해 해체한 뒤 8년 만이다. 높이 5.39m, 무게 39.4톤에 달하는 이 탑은 고려시대 석탑 가운데 가장 조형미가 뛰어난 걸작으로 불린다.“마치 늙고..

유물과의 대화 2024.11.14

서포에서

경남 사천시  서포에서 바다 앞에 서면 우리 모두는 공손해진다.어떤 거만함도, 위세의 발자국도멀리서 달려와 발밑에 부서지는 포말에 눈이 먼 기도문이 된다. 바다의 푸른 팔뚝에 문신처럼 박힌 거룩한 포용을 가슴에 담을 뿐. 바다 앞에 서면 우리 모두는 서로의 섬이 된다.보지 않으려 해도 볼 수밖에 없는 수평선으로 달려가위태로운 줄타기의 광대가 되는 자신을 떠올리거나수평선의 끝을 잡고 줄넘기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거나무의식적으로 손을 길게 내밀어 고무줄처럼 수평선을 끌어당기고 싶다면아직 우리는 살아 있는 것이다.좀 더 살아야 하는 것이다. 시작 메모>오랜만에 바닷가에 닿았다. 짙은 어둠 속을 더듬거리다 보니 문득 섬에 닿았다. 바다의 낭만 속에 숨은 온갖 생명들의 숨소리와 힘겨운 노동의 거룩함이 밤새 마음..

안부 安否

안부 安否 안부를 기다린 사람이 있다안부는별일 없냐고아픈 데는 없냐고 묻는 일안부는잘 있다고이러저러하다고 알려주는 일산 사람이 산 사람에게산 사람이 죽은 사람에게고백하는 일안부를 기다리는 사람과안부를 묻는 사람의 거리는여기서 안드로메다까지 만큼 멀고지금 심장의 박동이 들릴 만큼 가깝다꽃이 졌다는 슬픈 전언은 삼키고꽃이 피고 있다는 기쁨을 한 아름 전하는 것이라고안부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날마다 마주하는 침묵이라고안부를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다그러나 안부는 낮이나 밤이나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리지 않고험한 길 만 리 길도 단걸음에 달려오는작은 손짓이다어두울수록 밝게 빛나는개밥바라기별과 같은 것이다평생 동안 깨닫지 못한 말뜻을이제야 귀가 열리는 밤안부를 기다리던 사람이내게 안부를 묻는다기다..

안부 (2021.12) 2024.11.12

햄릿이냐 돈키호테냐

[김진영의 자작나무 숲] 햄릿이냐 돈키호테냐 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입력 2024.11.11. 23:58   일러스트=이철원 우디 앨런의 30년 전 영화 ‘부부일기’(Husbands and Wives)가 떠오른다. 남편과 헤어진 여자가 새 애인을 만나 침대에서 사랑을 나누던 중 머릿속으로 두 남자를 여우와 고슴도치에 비교하는 장면이다. 여자는 이어서 주변 친구들마저 두 유형으로 분류하기 시작하고, 그 바람에 사랑은 시들해진다. 무릇 모든 피조물이(그들의 사랑 방식마저도) 여우와 고슴도치로 나뉜다는 우디 앨런식 유머를 제대로 음미하려면, 고대 그리스 시인 아르힐로쿠스의 다음 명제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여우는 많은 것을 알고, 고슴도치는 큰 것 하나를 안다.’이 명제의 본질은 상반된 두 기질을 비..

[200] 하정투석(下井投石)

[정민의 세설신어] [200] 하정투석(下井投石)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입력 2013.03.06. 03:05  홍대용(洪大容·1731~1783)이 1766년 연행(燕行)을 다녀왔다. 그는 연경에서 만난 엄성(嚴誠)·육비(陸飛)·반정균(潘庭筠) 등 세 사람의 절강 선비들과 필담으로 심교(心交)를 나누고, 의형제까지 맺고 돌아왔다. 홍대용은 귀국 후 그들과 나눈 필담과 서찰을 정리해서 책자로 만들어 가까운 사람들에게 돌려 보였다. 이 일은 당시 지식인 사회의 단연 뜨거운 화제였다. 박제가는 안면이 없던 홍대용을 직접 찾아가 실물 보기를 청했고, 이덕무는 그 글을 읽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반발과 비방도 만만치 않았다. 김종후(金鍾厚·1721~1780)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홍대용이 비린내 나는 더러운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