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행방 말의 행방 소문이 한바탕 지나간 뒤에 벙어리의 입과 귀머거리의 귀를 버리고서 잘못 들으면 한 마리로 들리는 무한증식의 말을 갖고 싶었다 검고 긴 머리카락과 길들여지지 않은 그리움으로 오래 달려 온 튼실한 허벅지를 가진 잘못 들으면 한 마디로 들리는 꽃을 가득 품은 시한폭탄이..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7.02.18
용오름 용오름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물기로 젖어 있을 때가 있다 부르르 악몽을 털어낼 때마다 사슬에 묶인 낯선 언어가 긴 꼬리를 물고 하늘에 삿대질을 할 때 물 속을 유영하는 새이거나 하늘을 나는 물고기이거나 자꾸 헝클어지는 문장이 누구는 물음표라 했고 누구는 허공을 거는 갈고리..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7.02.15
큰 산 큰 산 어느 사람은 저 산을 넘어가려 하고 어느 사람은 저 산을 품으려 하네 어느 사람은 높아서 큰 산이라 하고 어느 사람은 품이 넓어 큰 산이라 하네 발 힘이 흔들거려 쉬어야겠다 넘지도 안기지도 못한 사람들은 저 홀로 산이 되었네 넘지도 안을 수도 없는 산 내게도 있네 한올문학 201..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7.02.12
토마스네 집 토마스네 집 배부른 개가 되기를 거부한 늑대가 그립다 숲에서 버림받고 외톨이인지 떠돌이인지 눈 안에 가득 푸른 눈물을 담은 늑대가 가끔 아주 가끔 내 영혼의 유배지에서 울고 가는 것을 그저 완성되지 않은 문장으로 부끄러운 상처를 더듬을지라도 기꺼이 굶주림마저 나눠 가지려..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7.02.10
겨울비 겨울비 오랜만에 아궁이에 불을 지피나 보다 저 푸스무레하고 아스므레한 턱없이 부족하지만 온가족이 둘러앉아 몇 숟갈 들 수 있는 눈빛으로 한 봉지 쌀을 일고 있나 보다 눈물도 가난해져서뜨물같이 얼굴 가리며 내리는 비 내 몸의 꽃눈을 짚으며멀리서 오는 사람처럼 달그락거리는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7.01.14
파티,파리,빨리 파티,파리,빨리 파티에 가실래요? 와인이 있고 흥겨운 노래도 있어요 길 잃을 염려는 없어요 원점회귀의 개선문 앞은 사통팔달이에요 쟌느가 말했다. 영어선생은 파티가 아니라 파리로 발음해야 한다고 지적해 주었다. 쟌느는 파리가 아니라 빨히라고 발음해야 한다고 면박을 주었다. 나..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7.01.08
후일담 後日譚 후일담 後日譚 어떤 사람은 나를 쇼핑카트라고 불렀고 어떤 사람은 짐수레라고 나를 불렀다 무엇이라 불리우든 그들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나는 기꺼이 몸을 열었다 내 몸에 부려지는 저 욕망들은 또 어디서 해체되는 것일까 지금 나는 더 이상 열매 맺지 못하는 살구나무 아래 버려져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6.12.06
내가 하는 일 내가 하는 일 오욕칠정을 담은 심장이 여의주만한 둥근 한 덩어리로 응집되려면 삼백하고도 육십오일을 기다려야 한다 뜨겁고도 붉은 늙은 풍선 하나가 부풀어올라 바닷가에서 산정에서 감옥의 철창 너머로 이 세상 어디에서나 잘 뵈이는 곳을 밤새 달려 희망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다..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6.11.06
우리 동네 마을버스 1119번 우리 동네 마을버스 1119번 사슴이 물마시다 흘린 연두 마음속에서 새싹처럼 돋아 오른 마을버스는 이 마을 저 골목을 둘러서 가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지 한 순간이면 깨달을 인생을 평생을 살아야 겨우 닿는 것처럼 빠르게 가는 법이 없지 나는 지금 종점으로 가고 있어 419 국립묘지가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6.10.12
수평선에 대한 생각 수평선에 대한 생각 그리워서 멀다 외로워서 멀다 눈길이 먼저 달려가도 닿을 수 없는 너를 향하여 나는 생각한다 목을 매달까 저 아슬한 줄 위에 서서 한바탕 뛰어볼까 이도저도 말고 훌쩍 넘어가 버릴까 매일이라는 절벽을 힘들게 끌어당기며 나는 다시 생각한다 아직도 내게는 수평선..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6.10.11
덤 덤 오늘을 살아내면 내일이 덤으로 온다고 내가 나에게 주는 이 감사한 선물은 가난해도 기뻐서 샘물처럼 저 홀로 솟아나는 사랑으로 넘친다고 길 가의 구부러진 나무에 절을 하는 사람이 있다 먼지 뒤집어쓰고 며칠 살다갈 작은 꽃에 절을 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시 2016년 10월호 기획특..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6.10.10
석류나무가 있는 풍경 석류나무가 있는 풍경 심장을 닮은 석류가 그예 울음을 터뜨렸을 때 기적을 울리며 떠나가는 마지막 기차가 남긴 발자국을 생각한다 붉어서 슬픈 심장의 고동소리가 남긴 폐역의 녹슬어가는 철로와 인적 끊긴 대합실 안으로 몸을 비틀어 꽃을 피운 칡넝쿨과 함께 무너져 내리는 고요가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6.10.07
가을을 지나는 법 가을을 지나는 법 가을은 느린 호흡으로 멀리서 걸어오는 도보여행자 점자를 더듬듯 손길이 닿는 곳마다 오래 마음 물들이다가 툭 투우욱 떨어지는 눈물같이 곁을 스치며 지나간다 망설이며 기다렸던 해후의 목 매인 짧은 문장은 그새 잊어버리고 내 몸에 던져진 자음 몇 개를 또 어디에..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6.10.05
객이거나 그림자이거나 객이거나 그림자이거나 나를 부르면 그가 온다 절뚝이며 먼 길을 꼬리로 달고 초식도 아니고 육식도 아닌 퇴화의 이빨을 드러내며 오는 사람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굶주린 사막의 아가리 속으로 기꺼이 사라지는 수많은 그는 내가 호명했던 나 어둡고 긴 골목 같은 목울대를 치고 올라오..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6.10.04
오래된 밥. 2 오래된 밥. 2 세탁기가 투덜대는 동안 포트에선 물이 씩씩거리고 있고 밥솥에 살고 있는 아가씨가 취사가 끝났다고 밥을 잘 섞어달라고 내게 말했다 열기가 사라져버린 심장과 얼룩 하나 지우지 못하는 팔뚝은 또 어디로 간 것일까 주인이 버린 옷처럼 혼자 식어가는 커피처럼 나는 오래..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6.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