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 ! 抑 ! 憶 ! 臆! 억 ! 抑 ! 憶 ! 臆! 어느 사람이 물었다 지금 눈 앞에 억이 생긴다면 무얼하겠소? 등짝 휘어지게 만드는 빚도 갚고 나와 같이 늙어서 힘 못쓰는 달구지도 바꾸고 멋드러진 캠핑카로 선경에 몸 담구고 그 일장춘몽이 지나가고 난 후 나는 그 돈을 제단 위에 올려놓고 날마다 무엇에 쓸까 꿈을..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9.08.02
장마 장마 벼락이 한 번 치고 천둥이 울자 그대가 내게 왔다 그대가 내게 가르쳐 주었는지 나는 밤을 사랑하고 밤을 기다렸다 그대가 잠들기를 나는 그대의 잠 속으로 들어가 생의 모든 방에 불을 심었다 꿈을 꾸리라 잠에서 깨어나면 그대의 몸을 애무하며 지나간 한 사내의 그림자가 지워지..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9.07.26
의자 4 의자 4 사람은 의자가 되기 위하여 태어났는지 모른다 사람이 사람이라 불려지는 순간이 있다면 그 순간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으면서 기꺼이 제 몸을 내어줄 때 일 것이다 의자는 오랜 시간 홀로의 시간을 견디고 자신에게 아무런 고마움을 느끼지 않고 잠시 고단한 발걸음을 멈춘 이..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9.07.05
매미 매미 오랫동안 꿈만 꾼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새로 태어났기에 바다를 건너는 게 꿈이었는데 온몸이 부서질 듯 아픈 게 날개가 돋히는 까닭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너에게 불러줄 세레나데는 성대가 없어 그저 날개를 부르르 떨어야 울음 삼키는 몹쓸 날개 그래도 너는 오겠지 웃음소리가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9.06.02
고시원 고시원 개천의 지렁이가 용이 되려면 고시 考試가 외길이었지 청춘을 불사르고 가는 벼랑길 십 년 전 쯤 우연히 만난 친구가 고시원에 있다길래 면박을 주었지 이제 용이 되기엔 너무 늦은 나이 허튼 꿈을 버리라고 했지 그믐달처럼 휘어진 그의 등이 마지막 모습 언젠가 고시원에 불이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9.05.28
천국 천국 가보지는 못했지만 가 보았다 오르고 또 오르면 하늘에 닿을듯하여 자전거 페달을 밟듯 제 발등에 눈물만 던지고 있는 나무들처럼 벌 서고 기도하는 법만 배웠다 허공은 깊고 또 깊어서 승천의 기개만으로는 어림없겠지만 며칠을 굶어 마주한 한 그릇의 밥 노동의 야행에서 마주한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9.05.06
마천루와 신기루 사이 마천루와 신기루 사이 살다 보면 신기루가 보인다 높이 솟아올라 하늘에 닿는 집이 길도 없는 사막 저 멀리에 흘러가는 영화의 앤딩처럼 하늘거린다 하염없이 걸어와 이윽고 내 마음에 닿고보니 그저 감옥에 불과했구나 평생을 미워했던 한 사내도 그토록 찾아 헤매던 오아시스도 내가 ..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9.04.01
허튼 꿈 2 허튼 꿈 2 아스팔트 틈새 사이로 강아지풀 돋아올랐다 기껏해야 한해살이인데 보잘 것 없는 저것도 꽃이라고 달리는 차들에게 손을 흔든다 다음 생엔 너른 풀밭에 살아야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무심한 차 바퀴가 뭉개고 간 자리 아스팔트 틈새 사이로 슬픔 대신 살빛을 닮은 흙내음이 피..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9.03.29
안녕, 베이비 박스 안녕, 베이비 박스 안녕 이제 떠나려해 혹한과 눈폭풍 속에서도 서로의 황제가 되었던 짧은 며칠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부화를 꿈꾸는 돌을 닮은 생명 난 뒤돌아 보지 않아 이제 저 푸르고 깊은 바다로 갈꺼야 나의 몸부림이 멋진 자맥질이라고 오해하지는 마 봄이 오면 다시 돌아올 수 있..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9.02.26
제 잘못인가요 제 잘못인가요 공중무덤 같은 고층빌딩이 이빨과 발톱을 세우고 밤이면 붉은 눈을 껌뻑이며 내게 달려드는 공룡이에요 내가 미친 것인가요 고압이 흐르는 전선들 너머에 내 목을 조르는 거미가 숨어있어요 내가 미친 것인가요 공포에 질려 땅을 내려다보면 또아리를 튼 하수관과 가스관..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9.01.28
그 그 어둠이 켜켜이 쌓여 짓눌린 반 지하방에서 그는 죽었다 늦은 밤 컵라면을 먹으며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맛 집을 찾아다니며 행복을 외쳐대는 티브이 프로를 볼 때 행복하다고 언젠가는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낯 선 이방인이 되어보는 꿈을 꾸고 싶다던 그가 죽었다 이미 이 세상의 이방인..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9.01.21
물끄러미 물끄러미 매일 벽을 밀다가 끝내 절벽 앞에서 새가 되어 날아간 사람을 알고 있다. 또 먼 수 억 광년 너머의 별이 잘게 부서지며 새로 날아와 이윽고 지상에 내려앉은 천사를 알고 있다. 소리 없이 내리는 빗방울이 손가락 끝에 닿을 때 태어나는 물끄러미는 사람과 새와 별과 천사를 품은..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9.01.18
숲으로 가는 길 숲으로 가는 길 오래 전 떠나온 초원을 그리워하는 낙타처럼 먼 숲을 향하여 편지를 쓴다 하늘을 향해 무작정 기도를 올리는 나무들과 그 나무에 깃들어 사는 새들의 순정한 목소리를 알아 듣게 될 때가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날이 오면 나는 숲으로 숨어들어가 그저 먹이에 충실..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9.01.15
개소리 개소리 멍 멍멍 멍멍멍 한 단어로 희로애락을 드러내는 이 기막힌 은유를 그냥 개소리로 듣는다면 얼마나 슬픈 일이냐 아무리 울어대도 울림을 주지 못하는 개소리 멍 계간 『시에』 2018년 겨울호 신작특집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8.12.27
바람과 놀다 바람과 놀다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들이 더 많이 살고 있는 고향으로 갑니다 어느 사람은 서쪽으로 흘러가는 강이냐 묻고 어느 사람은 죽어서 날아가는 먼 서쪽하늘을 그리워합디다만 서천은 애둘러 굽이굽이 마음 적시고 꿈을 입힌 비단강이 어머니의 품속 같은 바다로 잦아드는 곳 느.. 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2018.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