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나를 치유하는 여행’>
풋과일 물고 송사리 쫓던 어릴 적 나를 보다
- 문화일보
- 입력 2015-06-17 15:57
충남 아산 외암민속마을 · 봉곡사 소나무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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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시 외암민속마을 입구의 개천에서 동네 아이들이 어설프게 만든 족대로 물고기를 잡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외암민속마을은 중요민속문화재 제236호로 지정돼 있다. 김동훈 기자 dhk@munhwa.com
구불구불 앞장서 가는 돌담이 걸음을 이끈다. 솟을대문이 우뚝한 기와집과 조개껍데기처럼 낮게 엎드린 초가집이 번갈아 객을 반긴다. 이곳에서는 그 무엇도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다. 껴안고 보듬어 절묘한 조화를 직조한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누구도 이방인이 아니다. 이 마을에서 오래 살아온 듯, 익숙한 걸음으로 이 집 저 집 들르기 마련이다.
충남 아산시 외암민속마을을 찾아가면 만나게 되는 풍경이다. 이 땅에 우리 고유의 풍경을 간직한 전통마을이 여럿 있지만, 그중 가장 정다운 느낌을 주는 곳이 외암민속마을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더욱 옛 정취가 웅숭깊게 다가선다. 많은 이들이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의 이 마을을 일러 ‘살아있는 생활박물관’이라 부른다.
#외암민속마을 =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마을은 고요 속에 잠겨 있다.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조차 안 들린다. 마을이 전하는 평화와 안온의 기운이 고스란히 안겨온다. 아! 하지만 모두 잠든 것은 아니었다.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서다 보니 아낙네들이 밭에서 김을 매고 있다. 새벽부터 시작한 모양이다. 농촌 일이 그렇지. 품앗이인지 놉을 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또한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다.
먼저 솔밭이 있는 언덕 위로 올라간다. 내를 따라 우회하거나 한가운데로 곧장 들어가는 길 등 마을 길이 몇 개 있지만, 내 경험으로는 왼쪽에서부터 걷는 게 가장 좋다. 뒤쪽으로는 설화산(雪華山)이 우뚝 서 있고 앞쪽으로는 너른 들이 펼쳐져 있다.
어린 벼들이 막 뿌리를 내리는 논을 지나면 마을의 초입이다. 초가집 몇 채를 지나 솟을대문이 우뚝한 기와집과 만난다. 담 앞의 안내판에 감찰댁이라고 써놓았다. 옛 주인의 관직에서 이름을 따온 모양이다. 문은 잠겨 있지만 담이 높지 않아 집 안이 환히 들여다보인다. 안채 동쪽에 대나무 숲이 있고 그 앞으로 정원과 정자가 있다.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전형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잡초가 키를 재는 마당에는 설화산에서 내려온 뻐꾸기 소리가 연신 들락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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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시 외암민속마을의 돌담길. 집집마다 돌담이 둘러쳐져 있으며 그 길이를 모두 합치면 5.3㎞에 이른다. 김동훈 기자 dhk@munhwa.com
고샅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간다. 눈은 집들보다 돌담에 빼앗긴 지 오래다. 외암마을을 빛나게 해주는 것은 누가 뭐래도 돌담이다. 마치 마을 전체가 돌담으로 된 미로 속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담장 길이를 모두 합치면 5.3㎞나 된다니, 어느 정도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담을 어쩌면 이렇게 정겹게 쌓았을까. 이곳의 담은 배척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서로가 불편하지 않을 만큼 그어놓은 최소한의 경계다. 까치발을 하지 않아도 어지간한 집은 모두 들여다보인다.
뜰 안의 나무와 장미·찔레도 낮은 담을 넘어 바깥세상을 구경하러 나왔다. 아무리 봐도 걷기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길이다. 이 풍경을 무슨 말로 그릴 것인가. 가난한 언어 앞에 다시 한 번 절망한다.
조선 후기 성리학자인 외암(巍巖) 이간(李柬)이 출생했다는 건재고택을 보고 난 뒤 바깥마당 은행나무 아래 놓인 벤치에 앉는다. 풍경과 그늘의 유혹을 도저히 물리칠 수 없다. 걸음이 좀 늦어지면 어떠랴. 조금 떨어져 앉으니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제야 담장 밑의 키 작은 꽃들이 보인다. 자칫 못 보고 지나갈 뻔했구나. 누가 특별히 챙겨주지 않아도 받은 몫의 생을 씩씩하게 살아가는 그들. 그들이 있어서 풍경은 완성된다. 사람 사는 세상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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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재고택 돌담 앞 보라색 야생화가 초여름의 싱그러움을 더해주고 있다.김동훈 기자 dhk@munhwa.com
다시 돌담을 따라 걷는다. 참새들이 부지런히 초가지붕의 처마를 드나든다. 아직까지 나락이 남아있을 리는 없고, 새끼들이 눈을 뜨고 먹이를 조르는 것일까? 희미하지만 생명의 기운이 느껴진다. 골목 끝에서 불현듯 뒤를 돌아본다. 아! 내가 지나온 길에, 지금까지 본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 앞으로 갈 때는 보지 못하던 것들. 자칫 그냥 지나갈 뻔했다. 언제 어디서든 가끔 돌아볼 일이다. 사는 것도 그렇지 않던가.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는지. 진정 아름다운 것은 내 뒤에서 머뭇거리며 따라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교수댁에 들른다. 건재고택, 송화댁과 함께 아름다운 정원을 자랑하는 집이다. 마당에 수로를 만드는 등 정교하게 조성한 흔적이 역력하다. 바깥마당에는 세월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버드나무들이 몇 그루 서 있다. 그 옛날 말이라도 매어 두었을까? 운치 있는 집은 발길을 오래 붙잡아 두기 마련이다.
다시 골목길 탐사에 나선다. 오랫동안 비워둔 어느 집 마당에 개망초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송화댁은 사람의 집이라기보다는 소나무의 집 같다. 사람 사는 공간을 최소화하고 정원 공간을 최대한 많이 확보했다. 옛사람들의 여유로운 마음을 확인한다. 소나무들도 그런 마음을 아는지 꼿꼿함보다는 자유분방함을 택했다. 구부러지고 휘어지고 저희끼리 얽히고…. 파격은 마음을 넉넉하게 해주는 미덕이 있다.
외암종가댁의 아담한 꽃밭과 사랑채 마루가 쉬었다 가라고 손짓한다. 이런 땐 모른 체 그냥 지나가면 결례다. 마루에 앉아 땀을 들인다. 여행 중에 누리는 이런 짧은 휴식은 또 얼마나 큰 행복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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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가 그네를 타며 외암민속마을의 한가한 오후 모습을 감상하고 있다. 김동훈 기자 dhk@munhwa.com
외암사당을 거쳐 마을 외곽 길로 빠진다. 너른 길옆으로 내가 졸졸졸 소리 내며 흐른다. 고종황제가 하사했다는 참판댁과 풍덕댁 등을 들르며 걷다 보면 마을 입구에 닿는다. 가뭄 속에서도 과일은 열매를 익히고 밭작물은 부지런히 키를 키우고 있다. 개복숭아와 보리수가 탐스럽게 익었다. 그곳에서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난다. 풋과일을 물고 냇가에서 송사리를 쫓던 작은 아이. 그리움이 울컥 고개를 든다. 노인 한 분이 밭을 매고 있다. 이 마을은 전시용이 아니라 삶을 꾸리기 위해 농사를 짓고 일을 한다. 그 또한 외암마을의 가치다.
중간에 느티나무가 서 있는 곳에 들른다. 600살이 넘은 이 나무는 마을을 지키는 당산목이다. 지금도 매년 음력 1월 14일이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목신제를 지낸다. 느티나무와 인사를 나눴으니 이제 구경할 건 다 한 셈이다. 그래도 발걸음에는 아쉬움이 잔뜩 매달려 있다. 마을을 벗어나는 다리를 건너기 전 지나온 길을 슬며시 돌아본다. 몸은 여기 와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저만치에서 서성거린다. 그리움 한 자락 맡겨두고 가는 수밖에 없다.
#봉곡사 소나무 숲길=‘천년의 숲길’ 봉곡사로 가는 소나무 숲길의 이름이다. 숲에게 1000년이 그리 길 리야 없지만, 거기에 ‘길’이 붙으면 무게가 달라진다. 1000년 동안 사람이 오간 길.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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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들어서니 서늘한 기운이 와락 다가선다. 언뜻 봐도 100년은 넘게 산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서 있다.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는 기세다. 하지만 얼마 걷지 않아 눈에 거슬리는 흉터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춘다. 소나무 밑동마다 V자 모양의 흠집이 깊게 파여 있다. 어느 것은 나무가 자라면서 ♡모양으로 변하기도 했다. 분명 누군가 도구를 이용해서 벗겨낸 자국이다. 보기 흉할 뿐 아니라 나무의 고통이 전이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안내판에서 쓰린 역사를 확인한다. 일제가 패망 직전에 연료용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 주민들을 동원해서 낸 상처라고 한다. 70년이 지나도록 가시지 않은 저 상처. 이 민족의 상처이기도 하다. 소나무들이라고 그 치욕을 어찌 쉽사리 잊을까. 하지만 원망의 기색 하나 없이 청정한 숲을 만들어주고 있다.
슬픔 때문일까? 이 숲은 솔 향이 유난히 짙다. 길은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며 숲을 열어준다. 주차장에서 봉곡사까지 이어지는 700m의 이 길은 산림청 주최 ‘아름다운 거리 숲’ 부문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생명의 숲 국민운동에서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그만큼 마음을 사로잡는 숲길이다. 다만 포장을 해놓은 게 눈엣가시다. 가까운 숲에서 꿩이 운다. 길가의 돌탑이 침묵으로 대답한다. 이런 숲에서는 말이 필요 없다. 생각마저 놓고 자연 속으로 스며들다 보면 저잣거리에서 지고 온 상처 정도는 금세 치유된다.
솔숲 사이 키 낮은 싸리나무가 수줍게 꽃을 피웠다. 그곳에서 쪼롱쪼롱 산새가 운다. 다람쥐 한 마리가 조심스럽게 길을 가로지른다. 모두가 사랑스러운 풍경이다. 오랜 가뭄 속에서도 숲은 끝내 푸른 기운을 놓지 않는다. 세상을 지키겠다는 의지인 것 같아 든든하다.
중간에 갈림길이 나타난다. 왼쪽으로 가면 봉수산 능선으로 가는 등산로고 오른쪽으로 내처 올라가면 봉곡사다. 조금 올라가니 나무들 사이로 절집들이 나타난다. 봉곡사다. 만공스님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 절은 규모가 단출하다. 언덕 위 삼성각을 다녀와 향각전, 대웅전, 요사채를 천천히 돌아본다. 시원한 바람이 뺨을 간질인다. 부르는 이 없고, 가라고 등 떠미는 이 없으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지금 이 시간은 오롯이 내 것이다. 마당의 잔디 위로 뻐꾸기 울음이 푸르게 내려앉는다.
여행작가
<이호준의 ‘나를 치유하는 여행’>
천년사찰 봉곡사 만공스님 깨달음 얻고 정약용이 공자 논하던 곳
- 문화일보
- 입력 2015-06-17 15:46
<이호준의 ‘나를 치유하는 여행’>
외암민속마을 가는 길·묵을 곳·먹을 것
- 문화일보
- 입력 2015-06-17 15:46
묵을 곳·먹을 것 = 외암민속마을 안에서 민박을 할 수 있다. 15명 이상 수용하는 독채(20만 원 이상)로는 소롱골, 느티나무집, 참판댁, 외암촌집, 풍덕댁 민박 등이 있다. 그보다 좀 작은 규모(10만 원 이상)로 사슴집, 신창댁, 할아버지네 등이 있고 수용인원 4명 정도(6만6000원)의 민박은 원두막, 병사댁, 솔뫼집, 교수댁 등이 있다. 예약은 모두 041-541-0848로 하면 된다. 인근의 온양온천 지역에 온양관광호텔(041-545-2141), 그랜드호텔(041-543-9711) 등 호텔 겸 대중탕이 여러 곳 있다. 외암마을 외곽에는 한옥으로 꾸며놓은 외암마을 저잣거리가 있다. 고촌에서는 소고기국밥, 병천순대국밥 등을 내놓는데 소가죽의 지방육으로 만든 수구레국밥을 많이 찾는다. 외암소야는 불고기정식과 차돌된장정식이 주 메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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