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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의 나를 치유하는 여행

경북 영주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8. 7. 16:54

<이호준의 ‘나를 치유하는 여행’>

‘단종 복위’ 실패로 참화당한 넋들 밤마다 통곡

 

문화일보입력 2015-05-27 15:30

 금성대군신단. 단종복위운동을 하다 처형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단이다.


경북 영주시 풍기읍과 충북 단양군 대강면의 경계에 있는 죽령옛길은 영남과 호서를 연결하는 고갯길 중 가장 동쪽에 있다. 고갯마루의 높이는 해발 698m. 이 길이 처음 열린 것은 1800여 년 전이었다. 삼국사기에 ‘신라 아달라왕 5년(158년) 3월에 비로소 죽령길이 열리다’라고 기록돼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아달라왕 5년에 죽죽이 죽령길을 개척하다 지쳐서 순사했고 고갯마루에는 죽죽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길을 연 죽죽을 기리기 위해서 죽령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죽령 일대는 고구려와 신라가 빼앗고 빼앗기는 각축을 벌였던 곳이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진흥왕 12년(551년)에 신라가 백제와 연합하여 죽령 이북 열 고을을 탈취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고구려 영양왕 1년(서기 590년)에 온달 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나가면서 “죽령 이북의 잃은 땅을 회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는 기록도 있다.

자동차도로가 개설되기 전까지 죽령고갯길은 무척 중요한 교통로였다. 경상도 동북지방에서 한양을 오갈 때는 모두 이 길을 이용했으니,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나 보부상들이 사시장철 넘나들었다. 오가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길손들을 위한 주막과 마방이 들어서서 문전성시를 이뤘다. 결국 산적까지 횡행하게 됐고, 그들을 소탕하는 데 일조했다는 ‘다자구할머니 전설’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1941년 중앙선 철도가 개통되고, 1960년대 들어 포장도로가 신설되면서 죽령고갯길은 세상에서 점차 지워지게 됐다. 그러다 옛길의 문화적 가치가 새롭게 부각되고 걷기 열풍이 불면서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2007년 12월 17일 명승 제30호로 지정됐다.

죽령옛길은 ‘소백산자락길’ 3자락의 한 구간이기도 하다. 소백산자락길은 소백산둘레에 있는 경북 영주시·봉화군, 충북 단양군, 강원도 영월군의 3도 4개 시·군 143㎞를 잇는 길로 모두 12자락으로 구성돼 있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중종 37년(1542년)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1495∼1554)이, 고려 말의 유학자이자 최초의 성리학자인 안향이 태어나 공부하던 이곳 백운동에 사당을 설립하고 사당 동쪽에 백운동서원을 설립한 데서 비롯됐다.

그 후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하여 명종 5년(1550)에 조정에 건의, ‘紹修書院(소수서원)’이라는 현판을 하사받아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다. 사액서원은 왕으로부터 책·토지·노비를 하사받고 면역의 특권을 갖는다.

죽계천변의 ‘敬자 바위’에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거사가 사전 밀고로 실패하면서 순흥도호부민들까지 참화를 당하게 된다. 희생당한 백성들의 시신이 이곳 죽계천에 수장된 뒤 밤마다 억울한 넋들의 통곡이 그치지 않았다. 이에 풍기군수 주세붕이 경자 위에 붉은 칠을 하고 정성 들여 제사를 지냈더니 울음소리가 그쳤다고 한다.

소수서원 경내에는 강학당·장서각 등의 옛 건물들이 있으며 국보 제111호인 회헌 초상과 보물 5점 등 많은 유물이 소장돼 있다.

 

온달도, 왕건도 걸었던 ‘역사의 길’ 과거를 되새기며 미래의 힘을 얻다

문화일보입력 2015-05-27 15:38

 

경북 영주 죽령옛길·소수서원

5월이 고개를 넘는다. 봄을 유기(遺棄)라도 하고 떠날 듯 돌아보는 법 한번 없다. 시간이 서두르니 사람도 덩달아 숨 가쁘다. 얼떨결에 달려가다 돌아보면, 잠시 아득해진다. 대체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진짜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모든 게 덧없어 보이는 날이 있다.

그런 때 찾아가는 곳이 있다. 역사의 길, 사색의 길, 치유의 길이라고 나 홀로 이름을 붙인 곳. 소백산이 치마 끝을 살며시 펼쳐 길 하나 내준 곳. 바로 죽령옛길이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세파에 찌든 몸과 마음이 순백에 가깝도록 탈색되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충북 단양에서 경북 풍기로 넘어가는 길. 세상은 머리를 감고 나온 새댁처럼 싱그럽다. 어제 잠깐 비가 내린 까닭이다. 나무는 바람에 몸을 맡겨 삶의 무게를 털어낸다. 산들은 농담(濃淡)을 앞세워 인생길의 원근(遠近)을 가르친다. 열어놓은 차창으로 아카시아 향이 쏟아져 들어온다. 기어이 차를 세운다.

# 죽령옛길 = 소백산역에 주차한 뒤 행장을 꾸린다. 귓전을 간질이는 물소리·새소리를 따라 소백산의 품에 든다. 5월의 산은 땅속 깊이 비축했던 푸른 물감을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발자국까지 푸르게 찍힐 것 같다. 산자락에 일궈놓은 과수원을 지난다. 사과 꽃은 어느덧 지고 손톱만 한 사과가 매달렸다. 아주머니 몇 명이 나무 아래에서 열매를 솎아주고 있다.

사과 꽃이 만발했을 때 이 길을 지난 적이 있다. 풍경에 넋을 빼앗겨 오랫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화려하지 않은 꽃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사과 꽃이 필 무렵에는 민들레도 절정을 이룬다. 이곳의 민들레는 유난히 탐스러운 데다 흰 꽃과 노란 꽃이 함께 어울려 핀다. 서로를 경계하거나 배척하는 기미는 없다. 사람살이도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에 오래 서서 바라보았다.

과수원을 벗어나면 산길이 본격적으로 열린다. 길은 가파르거나 각박하지 않고 넉넉하게 품을 내준다. 늘어진 다래덩굴 아래를 사열하듯 걷는다. 흙길의 부드러운 감촉이 굳어버린 몸을 풀어준다. 아직 짝을 찾지 못한 것일까? 뻐꾸기 하나가 진양조장단으로 목이 멘다.

 우리나라 최초 사액서원인 소수서원. 성리학의 시조로 불리는 안향과 서원을 세운 주세붕 등의 초상이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munhwa.com


죽령옛길에는 곳곳에 역사의 흔적들이 새겨져 있다. 과거에는 마방(馬房)과 주막이 들어설 정도로 큰길이었다. 걷는 내내 옛사람들과 만난다. 이 길을 뚫었다는 죽죽, 잃어버린 땅을 찾으러 왔던 온달, 통일을 꿈꾸던 왕건…. 어찌 이름 있는 이들만 걸었으랴. 이 고개를 넘어야 가족의 한 끼가 해결되는 백성도 있었을 테고, 보따리를 탐하는 산적도 있었으리라. 중간중간 역사적 사실이나 전설들을 입간판으로 세워놓아서 읽으면서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길은 작약이 흐드러진 모퉁이를 지나더니 숲으로 머리를 감춘다. 나도 걸음을 재게 놀린다. 다시 덩굴 터널을 지나고 침엽수림을 지난다. 등에 기분 좋을 만큼 땀이 밴다. 잠시 길가 벤치에 앉는다. 햇빛을 머금은 숲은 온통 금빛이다. 향기를 듬뿍 안은 바람과 계곡의 냇물소리가 금세 땀을 거둬간다.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는 경계 없이 조화를 이룬다. 누구도 앞질러 가려 하지 않는다. 1등을 꿈꾸지도 않는다. 누가 이곳에서 아픔과 슬픔과 불행을 이야기하랴. 마냥 게을러지고 싶다.

한결 가뿐해진 몸으로 다시 걷는다. 곳곳에 야생화가 피었다. 현호색·괭이눈·제비꽃·산자고·꿩의 바람꽃… 계절 따라 누구는 피고 누구는 지고. 그들과 눈을 맞추느라 걸음이 더뎌진다. 길가의 돌무더기에서 간절한 소망을 읽는다. 이름 있는 이들도, 이름을 묻어두고 하루하루 살아내야 하는 이들도 소망은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염원이 하나씩 쌓이고 쌓여 돌무더기가 되고 돌탑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 세월 따라 무너지고 또 쌓이고….

걸음은 어느덧 주막 터에 닿는다. 죽령고갯길은 사람의 왕래가 많았던 만큼 주막도 많았다. 무쇠다리 주막거리·고갯마루 주막거리·느티정 주막거리가 있었고, 이곳은 주점 주막거리라고 했다. 탁주 한 잔을 들이켜며 땀을 들이는 장사꾼, 점잖게 앉아 국밥으로 허기를 끄는 선비, 여기저기 부르는 소리에 종종걸음을 치는 주모…. 그들의 모습이 거기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둘러봐도 바람소리뿐이다. 여기저기 돌아보다 무너진 돌무더기에서 지나간 날들을 확인하고 돌아선다.

 소수서원 앞의 숙수사지 당간지주는 절의 위치를 알리는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느닷없이 침엽수림이 나타난다. 소나무와 전나무를 닮은 일본잎갈나무다. 이 나무에도 사연이 있다. 일제는 죽령고갯길을 통해 숱한 문화재와 물자를 수탈해갔다고 한다. 전쟁에 쓰기 위해 소나무도 베어 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심은 것이 일본잎갈나무다. 오욕의 역사는 이 깊은 골짜기까지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길이 가팔라지는 걸 보니 고갯마루가 머지않았다. 사위는 고요 속에 깊이 잠겨 있다. 고요할수록 나는 작아진다. 자연 속에 들고서야 내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 알게 된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내 안이 까닭 모를 희열로 충만해지기 시작한다. 버려야 채워지는 이치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숨이 가빠질 무렵 구름을 모자 삼아 쓰고 있는 죽령루(竹嶺樓)가 나타난다. 내내 진양조장단으로 흐르던 뻐꾸기 울음이 자진모리장단으로 바뀐다.

고개의 정상에 선다. 이곳이 죽령이다. 왼쪽으로 가면 충청북도고 오른쪽으로 가면 경상북도다. 소백산자락길은 계속 이어지지만 여기서 걸음을 멈춘다. 조금 전 올라온 길을 돌아본다. 걸음 빠른 사람에게는 한 시간이면 너끈한 길이지만, 결코 짧지만은 않은 길이다. 땀을 흘린 만큼 몸과 마음은 가벼워졌다. 비워진 자리에 내일을 살아갈 에너지가 가득 들어섰다. 바람 타고 올라온 고광나무 짙은 향기가 코끝을 간질인다.

# 소수서원 =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다. 이 땅에 세워진 첫 사립교육기관 소수서원. 의미가 가볍지 않다. 그 무게를 상징하듯, 입구에서 만나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조차 예사롭지 않다. 마치 용들이 몸을 틀며 비상을 꿈꾸는 듯, 기상이 하늘을 찌른다. 죽계천으로 내려가다 조금 어색하게 서 있는 당간지주 한 쌍과 만난다. 유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서원에 당간지주라니? 설명을 보고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소수서원 자리는 본래 숙수사(宿水寺)라는 절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유교가 융성하면서 터전을 빼앗긴 셈이다.

징검돌을 하나씩 건너 취한대로 향한다. 다리 중간에 서서 냇물에 비친 풍경을 눈에 담는다. 누가 소수서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물으면 서슴없이 이곳을 꼽을 것이다. 낙락장송과 취한대와 흘러가는 물이 어우러져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한다. 퇴계 이황이 세웠다는 취한대는 공부에 지친 선비들이 잠시 쉬며 휴식하던 곳이라고 한다.

서원으로 돌아와 500년도 넘게 살았다는 은행나무 아래 선다. 내 건너편 바위에 새겨놓은 글자들이 또렷이 눈에 들어온다. 붉은 글씨로 敬(경)자를, 흰 글씨로 白雲洞(백운동)이라 새겨놓았다. 경자는 공경과 근신의 자세로 학문에 집중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백운동서원은 소수서원의 본래 이름이다. 세월에 얹혀 사람은 떠났어도 품었던 뜻은 바위에 새겨져 생생하게 전해진다.

경렴정을 지나 지도문으로 들어선다. 맨 앞에 강학당이 있다. 수리 중이라 들여다볼 수 없는 이 공간은 유생들이 강의를 듣던 곳이다. 그 뒤로는 선비들의 기거공간인 일신재와 직방재가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학구재, 지락재와 만난다. 유생들이 호연지기를 기르던 곳이다.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과거의 장면들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얼마나 많은 젊은이가 청운의 꿈을 품고 이곳을 찾았을까.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제향영역을 거쳐, 영정각으로 들어가 선인들의 초상과 만난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로 불리는 안향과 서원을 세운 주세붕 등의 초상이 있다. 시공을 초월해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누구는 충의를 이야기하고 누구는 예를 이야기하고 누구는 인간의 도리를 이야기한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사람 사는 이치야 어찌 변할까. 오래전 유생들이 걸었을 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 그밖에 가볼 만한 곳 = 소수서원 바로 곁에 선비촌이 있다. 유교문화를 직접 학습할 수 있도록 조성해놓은 전통 민속마을이다. 선비촌을 이루는 12채의 고택은 영주시 관할 여러 마을에 흩어져 있던 기와집과 초가집을 복원한 것이다. 산책로를 따라 조선 시대의 전통가옥들을 둘러보며 각종 체험도 하고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소수서원 인근에 금성대군신단이 있다. 단종 복위를 추진하다 순흥으로 유배된 금성대군은, 순흥부사 이보흠 등과 거사를 도모하다 발각되어 참형을 당하고 말았다. 이곳에는 금성대군의 신단·순의비(殉義碑)와, 함께 처형당한 이보흠과 지역 선비들을 추모하기 위한 제단이 있다.

 

<이호준의 ‘나를 치유하는 여행’>

경북 영주 죽령옛길·소수서원 가는 길·묵을 곳·먹을 것

문화일보입력 2015-05-27 15:30


죽령옛길 가는 길 = 중부(경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단양나들목에서 빠져 풍기·영주 방면으로 왼쪽 길을 택해 달리다 죽령마루를 지난 뒤 수철리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곧이어 나타나는 소백산역(희방사역)에 주차하면 된다. 죽령마루에서 걸어 내려갈 수도 있다.

묵을 곳·먹을 것 = 선비촌 고택체험(054-638-6444)을 해볼 만하다. 김상진가옥, 해우당고택, 안동장씨종택, 두암고택 등의 한옥과 김구영가, 가람집 등의 초가집 중에 선택할 수 있다. 반드시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그밖에도 영주에는 괴헌고택(054-636-1755), 덕산고택(054-637-4529) 등 고택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여럿 있다. 죽령옛길 인근에는 죽령옛길펜션(054-634-7732), 죽령옛길초가집(054-638-9200) 등이 있다. 죽령 정상의 죽령주막은 주막정식과 비빔밥 등을 내놓는다. 선비촌에 있는 선비촌수랏간, 선비촌종가집 등에서는 한정식을 주메뉴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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