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의 ‘나를 치유하는 여행’>
삼례문화예술촌에 가면… 활판인쇄기·압착기 등 책 제작 도구 전시
- 문화일보
- 입력 2015-05-13 15:18
익산에서 출발해 여수까지 운행하던 전라선이 복선화되면서 폐선이 된 만경철교의 침목 위로 담쟁이넝쿨이 뻗어나가고 있다.
삼례문화예술촌을 이루는 창고 건물들은 일본인 대지주였던 시라세(白勢)라는 사람이 1926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시라세는 삼례역을 통해 군산으로, 만조 때는 바다를 통해 양곡을 실어 나른 장본인이었다. 건축물 대장에도 일제강점기 세운 건물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 창고 건물들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것은 2013년 6월 5일이었다. 농협에서 비료와 쌀 창고로 쓰던 것을 완주군이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매입해서 개조작업에 들어갔다. 나날이 쇠퇴해가는 삼례지역을 다시 살린다는 취지였다. 2011년 기본 용역을 수립하고 주민·전문가·공무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거친 끝에 기본 틀을 잡았다.
문화예술촌 조성은 유형의 재산을 재활용하여 지역이 간직한 역사를 기억하고 되살리는 데 초점을 두었다. 원형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면서 독특한 문화콘텐츠를 담아내, 과거와 현재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공간을 구성했다. 공간 조성은 입주자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했다. 문화예술촌은 6명의 관장(구 삼례역사 자리에 있는 막사발 미술관을 합하면 7곳)으로 구성된 삼삼예예미미협동조합에서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삼삼예예미미는 삼례미술관을 재미있게 표현한 이름이다.
VM아트미술관은 미술작품과 영상미디어매체를 접목한 새로운 장르의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창고의 원형을 잘 보존해서 젊은 현대미술작가들의 작품과 조화를 모색한다. 문화카페 오스는 삼례문화예술촌의 쉼터로 커피와 다양한 수제 차·와플·쿠키 등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다양한 전시도 관람할 수 있어 지역 주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책공방북아트센터는 유럽식 북아트 공방을 국내 최초로 도입한 곳으로, 보는 전시뿐만 아니라 책 만드는 문화를 체험하는 복합문화센터다. 활판인쇄기·압착기·호침기·재단지 등 책을 만드는 각종 기계와 도구들이 전시돼 있다. 디자인뮤지엄은 디자인 국제 공모전에서 입상한 작품들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서울 인사동에서 ‘못과 망치’와 함께 설립된 김상림 목공소는 나무가구 제작과 오랜 시간 모아온 목공연장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아울러 목수교실을 통해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목공예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책박물관은 고서를 중심으로 책 문화에 관한 자료를 발굴하고 전시하는 공간으로 책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그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것에 역점을 둔다. 책을 주제별·시대별로 전시하는 전시공간과 아이를 위한 양서만을 전시·판매하는 박물관 서점, 그리고 소설·잡지 등을 국내 최초로 무인 판매하는 헌책방 ‘정직한 서점’을 운영한다.
야외공연장에서는 주말마다 인근 동아리들의 공연이 펼쳐진다. 문화예술촌 관람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완주군 고산면 남봉로에 위치한 고산미소시장은 완주군이 조성한 문화경관형 테마장터다. 5일장인 고산장터 옆 연면적 2083㎡의 부지에 한우판매장·로컬푸드 판매점·체험공방을 포함, 유가공품과 농산물가공품 등을 파는 30여 개의 점포가 입주해 있다. 축제와 각종 문화공연도 펼쳐진다. 인근에 만경강수변생태공원이 있다.
아슬아슬 구름다리 콩닥콩닥 뛰는 가슴 푸른 세상을 건넌다
- 문화일보
- 입력 2015-05-13 15:18
고산자연휴양림 에코어드벤처. 휴양림의 빽빽한 나무 사이사이로 지상에서 3, 4m 높이의 구조물을 설치해 몸에 와이어를 묶고 보드타기를 비롯해 집라인, 외나무다리건너기 등 여러 가지 형태의 레포츠를 체험할 수 있다. 난이도별로 세 가지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일제강점기 양곡창고를 개조해 만든 삼례문화예술촌의 디자인뮤지엄. 곽성호 기자 tray92@munhwa.com
완주 삼례문화예술촌·고산자연휴양림
계절이 깊어간다. 풀은 분주하게 키를 키우고 나무는 부지런히 암청(暗淸)의 염료를 길어 올린다. 이맘때면 깊고 푸른 강으로 가고 싶어진다. 강은 세상 모든 푸른 것들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그리움과 희망 역시 강에서 나고 자랄 테다. 바람조차 푸르게 부는 날, 만경강으로 간다.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율치의 밤샘에서 발원, 새만금을 지나 바다와 몸을 섞는 강. 총 길이 74㎞로 그리 길지는 않지만 김제·익산·군산을 지나면서 여러 하천을 불러 모아 넉넉한 품을 갖는다. 평야지대를 흐르는 강들이 그렇듯, 만경강 역시 오랜 시간 사람을 품어 기르고, 사람들은 그 품에서 숱한 이야기를 낳았다. 강과 길은 손이라도 잡을 듯 나란히 흐르다 이별한 연인인 양 서로를 외면하기도 한다. 그들을 따라 거슬러 오르다 만경강과 만경철교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비비정을 거쳐 삼례에서 멈춘다. 꼭 한번 가보리라 벼르던 삼례문화예술촌이 거기 있다.
#삼례문화예술촌 = “무슨 문화예술촌이 이렇게 생겼어?” 성질 급한 사람이라면 한마디쯤 던질 법하다. 첫눈에 들어온 건, 말 그대로 무뚝뚝하게 생긴 창고다. 1970∼80년대까지도 흔히 보던, 매력 없이 크기만 한 목재창고. 심지어 시커먼 벽에는 ‘협동생산 공동판매’ ‘삼례농협창고’ 같은 글씨까지 고스란히 남아있다.
족보부터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 건물들은 문화예술촌으로 탄생하기 전까지 무려 100년 가까이 창고로 쓰였다. 거기에도 아픈 역사가 있다. 만경강 상류의 삼례는 토지가 비옥하고 기후가 온화한 고을이다. 농사가 잘된 탓에 일제강점기에는 양곡 수탈기지라는 수모를 겪었다. 삼례역은 군산으로 양곡을 나르는 거점 역할을 했다. 그래서 당시 삼례역 주변 주민들은 밤마다 “한 말 한 섬” “한 말 한 섬” 쌀 세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고 한다.
그 당시의 양곡창고를 개조해 문화복합공간으로 꾸민 것이 바로 삼례문화예술촌이다. 원형 보전에 역점을 두었기 때문에 겉모습이 창고 그대로다. 이곳은 모두 여섯 곳의 문화예술공간이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삼례역이 이전한 자리에 있는 막사발미술관을 합하면 일곱 곳이 된다.
한 곳씩 차례로 돌아보기로 한다. 먼저 찾아간 곳은 VM(Visual Media)아트미술관. 문을 밀고 들어서자, 놀랄 만한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순식간에 100년을 이동한 느낌이랄까? 아니, 아날로그의 세계에서 디지털의 세계로 뚝 떨어진 기분이다. 창고 그대로의 외관을 배신이라도 하듯 ‘첨단 예술’의 세상이 펼쳐져 있다.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기에 안성맞춤이라 ‘날 비’ 자를 연속해 쓴 비비정(飛飛亭)에서 바라본 만경강과 만경철교. 그 너머로 만경평야가 끝없이 펼쳐지고 있다. 곽성호 기자 tray92@munhwa.com
쓰레기통에서 건져낸 재료로 만들었다는 정크아트 작품들을 하나씩 살펴본다. 창고 건물이 문화예술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듯이, 일회용 빨대나 링거줄 같은 쓰레기들이 작품으로 변신했다. 인터랙티브 아트라는 물 속 체험도 신기하다. 나 스스로가 물고기가 되어 천으로 된 물 속을 유영한다. VM아트미술관은 벽과 천장의 원형을 그대로 살린 채 내부 디자인을 했다. 벽을 구성한 통나무들의 배열 자체가 예술작품이다. 바람이 잘 통하고 여름에는 서늘하다고 한다.
두 번째로 책공방북아트센터를 찾아간다. 책을 읽고 나만의 책을 만들고 책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체험센터다. 요즘은 보기 어려워진 각종 인쇄 장비들도 눈길을 끈다. 특히 100년은 너끈히 넘어 보이는 목궤선(가계부 등에 줄을 긋는 기계) 등은 언뜻 봐도 문화재급 유산이다.
동과 동 사이를 나비처럼 옮겨 다니며 문화예술의 향기를 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색다른 음식을 이것저것 집어먹어보는 기분이랄까. 세 번째 찾아 들어간 곳은 책박물관. ‘전라도 여자’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프랑스어로 번역된 손바닥만 한 춘향전도 있다.
상설전시 공간에는 ‘한국 북디자인 100년’을 주제로 1883년부터 1983년까지 출판된 책을 전시해 놓았다. 북디자이너가 별도로 없던 시절, 화가들이 그린 책 표지가 눈길을 끈다.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김환기가 디자인을 했다. 30년간 교과서 삽화를 주로 그린 김태형 작가 코너에서는 오래 잊고 있었던 ‘철수와 영희’를 만날 수 있다.
삼례문화예술촌의 김상림 목공소에 가지런히 정리된 연장들.
김상림 목공소를 찾아 들어간다. 조선 목수들의 철학이 스며있는 나무가구를 재현해 놓은 것은 물론 각종 연장을 전시해 놓았다. 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짙은 나무 향이 우르르 밀려와 안긴다. 오래 그리워하던 고향의 향기처럼 왈칵 반갑다. 내부가 깔끔한데다 조용해서 목공소라기보다 문화공간으로서의 품격이 읽혀진다. 전시해 놓은 작품들은 우쭐거리지 않고 담백한 느낌이라 마음이 편안해진다.
디자인뮤지엄은 한국산업디자인협회 수상작품들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갤러리다. 국내외 제품 중 디자인과 기능·경제성·기술 등이 우수한 것들을 전시해 놓았다. 젊은 방문객들이 무척 좋아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커피 볶는 향이 물씬 풍기는 문화카페 오스는 방문객이나 지역주민들의 휴식공간뿐 아니라 커피와 관련된 다양한 교육도 담당한다. 카페의 통유리로 내다보이는 풍경이 눈을 떼지 못할 만큼 매력적이다.
카페에서 나오니 세상은 다시 디지털에서 아날로그로 변신한다. 하지만 이젠 낯설지 않다. 창고 건물들과 조금 떨어져 서있는 삼례성당도 애당초 한 식구였던 듯 잘 어우러져 있다. 오래된 것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소통해서 친구가 된다. 마당 곳곳에 설치한 조형물도 원래 거기 있었던 듯 풍경 속으로 스며들었다. 봄바람처럼 느긋해진 몸과 마음으로, 오래된 것들과 새로운 것들 사이를 거닌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남남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시간 위의 모든 것들은 하나로 이어져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이다. 고통의 시대가 남긴 유산과 이 시대의 문화예술이 공존하는 삼례문화예술촌에서 그 증거를 본다.
우리나라 목어의 백미 중 하나라 일컫는 화암사 목어.
#고산미소시장 = 삼례문화예술촌에서 나와 만경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서부터 강의 발원지까지는 온전히 완주 땅이다. 잠시 헤어졌던 길과 강은 다시 만나 봄노래를 합창한다. 가로수 잎들은 강물을 닮아가고 강은 가로수의 손짓에 출렁, 신명을 낸다.
고산면에는 미소시장이 있다. 미소시장은 완주군이 문화경관형으로 조성한 시장으로, 지역주민들과 귀농한 젊은이들이 함께 꾸려나간다. 전통시장의 정겨움과 문화의 향기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장 구경만큼 재미있는 게 또 있을까. 음식점들을 지나 길을 건너면 한가운데 대형 파라솔이 펼쳐진 휴식공간이 나타난다. 이곳에서는 토요일마다 주말장터가 열린다. 광장과 간이점포들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상설 점포들이 늘어서 있다. 순서대로 돌아본다. ‘담벼락’이라는 청소년문화공간을 지나면 짚·가죽공예품 매장이 있다. 완구·팔찌 같은 소품과 밀짚모자·소쿠리·멍석 등 향수를 부르는 짚공예 작품들이 진열돼 있다.
청과와 약초를 파는 곳, 곶감·효소·누룽지를 파는 곳, 유제품·잡곡을 파는 곳, 수제 햄이나 버거류를 파는 곳 등 각양각색의 가게들이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귀촌한 젊은이가 운영한다는 카페 ‘농부의 딸’은 떡갈비를 판다고 써놓았다. 국수나 국밥을 파는 집, 젓갈과 채소를 파는 집도 나란히 있다. 낯선 사람 틈에 섞여 있을 때 가장 자유로운 익명의 나를 따라, 이리 기웃 저리 기웃 모처럼의 휴식을 즐긴다.
#고산자연휴양림 = 다시 만경강을 따라 오른다. 상류 쪽으로 갈수록 강줄기는 조금씩 가늘어진다. 이제 이별할 때가 되었다. 고산자연휴양림을 향해 방향을 꺾는다. 이곳은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사계절 가족휴양지로 명성이 높다. 방문객은 넓게 펼쳐진 휴양림의 규모에 놀라고 아름다운 풍경에 다시 놀란다. 낙엽송·잣나무·리기다소나무 등이 빽빽이 들어선 조림지와 활엽수·기암절벽 등이 잘 어우러져 있다.
또 캠핑장·테마식물원·에코어드벤처·밀리터리파크가 조성돼 있어 캠핑족들에게 인기가 많다. 특히 집슬라이드·구름다리 등을 갖춘 에코어드벤처는 스릴을 즐기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고산무궁화오토캠핑장과 고산자연휴양림에서는 ‘자연과 사람의 약속’이라는 주제로 오는 7월 31일부터 8월 9일까지 열흘간 완주 세계캠핑·카라바닝대회가 펼쳐진다. 오는 23일부터 25일까지는 사전행사인 프리랠리(PreRally)가 진행된다.
#그밖에 가볼 만한 곳 = 완주 북쪽의 불명산 깊은 골짜기에는 ‘곱게 늙은 절’ 화암사가 있다. 안도현 시인은 그의 시 ‘화암사, 내 사랑’에서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아예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잘 늙은 절 한 채’라고 예찬했다.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찾아가 보라고 권하고 싶은 절이다.
특히 올라가는 산길이 마음을 당긴다. 화암사에 가면 꼭 챙겨봐야 할 곳이 극락전의 처마 쪽에 있는 하앙이다. 하앙이란 처마를 지탱하기 위한 일종의 지렛대로 이 절에서만 볼 수 있다.
여행작가
전북 완주 가는 길·묵을 곳·먹을 것
- 문화일보
- 입력 2015-05-13 15:18
삼례문화예술촌 가는 길 = 경부고속도로→천안논산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삼례나들목에서 빠져 삼례·우석대 쪽으로 오른쪽 길을 택한 뒤 삼례읍사무소를 지나 삼례역 방향으로 좌회전하면 바로 나온다.
묵을 곳·먹을 것 = 고산자연휴양림(063-263-8680)에서는 숲속의 집과 카라반 등 다양한 숙박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한옥체험을 하고 싶으면 아원(063-241-8195)에서 묵으면 좋다. 경남 진주의 250년된 한옥을 종남산 자락 아래로 옮겨 지은 고급 한옥게스트하우스다. 전통 한옥스테이 소양고택(010-3641-7941)도 가볼 만하다. 고향의 맛이 담긴 음식을 맛보고 싶으면 봉동읍 한식뷔페 새참수레(063-261-4276)를 찾아가면 된다. 마을 어른들이 모여서 준비한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다. 고산미소시장에는 완주한우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고산미소한우(063-261-4089)가 있다. 저렴한 가격에 육즙이 풍부하고 육질이 부드러운 한우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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