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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세상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5. 1. 24. 14:36

[카페 2030]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세상

입력 2025.01.23. 23:58업데이트 2025.01.24. 11:22
 
 

그 어떤 시사 고발 프로그램보다 활발하게 제보가 들어오는 곳이 있다. 바로 연애 예능 프로그램. 얼마 전 ‘나는 솔로’에선 한 여성 출연자가 첫 방송 이후 화면에서 자취를 감췄다. 과거 조건 만남을 빙자해 절도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나오자, 제작진이 사과하고 그를 통편집한 것이다. 논란은 곧 잦아들었지만, 두 달 뒤인 이달 초엔 또 다른 논란이 일었다. 이번엔 직업. 모 대기업에 근무한다고 밝힌 출연자가 ‘정규직이 아닌 비서’라는 의혹이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제기되며 “직업을 부풀린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시대.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파편화되면서, 자신의 취향과 생각을 타인에게 전파하려는 욕구는 커지고 있다. 그 수단으로 제보와 감시가 횡행하고 있다. 사건의 당사자가 온라인 공간에 폭로를 해 온 지금까지와 달리,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각종 폭로가 잇따른다. “일반인 출연자의 검증을 까다롭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되지만, 상황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일반인 연애 프로그램만 해도 형제, 성소수자, 환승 등 다양한 주제로 속속 늘고 있다. 여기에 요리 서바이벌, 이혼 상담, 육아….분야를 가리지 않고 일반인 출연자가 화면에 쏟아진다. 출연자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싶은 이들도 덩달아 화면에 문을 두드린다. 방송사 게시판이나 익명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접속하는 이유다.

연말·연초 인스타그램·페이스북을 비롯한 온라인 공간에서 벌어진 눈치 싸움도 한 단면이다. ‘사회적 참사와 국가적 혼란.’ 이 구호에서 벗어난 이들은 유명 연예인, 인플루언서, 일반인을 가리지 않고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덕분에 이번 계기가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이들의 이름도 알게 됐다. 누군가는 얼굴 사진을 온라인에 공유했다는 이유로 “애도는 둘째고 이미지 때문에 올렸냐” 같은 비난을 들어야 했다. 타인에게 재산적·물리적 피해를 준 이들에 대한 비난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다만 비난 중 상당수는 자신과 다르다는 ‘불편함’을 참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일을 자주 목도하게 된다.

 

정말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다면 어떨까. 장강명의 단편소설 ‘당신이 보고 싶어 하는 세상’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술이 상용화된 미래를 그린다. 증강현실 기술이 보고 듣는 것뿐 아니라, 모든 정보를 이용자의 입맛에 맞게 바꿔준다. 이 기술에 중독된 이들은 “대통령이 누구냐”와 같은 질문에도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모든 정보를 현실과 다르게 이해하면서,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것이다. 작가는 한 인물의 입을 빌려 말한다. “증강현실 기술 이전에도 꿈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많았어요. 아니, 인간은 모두 어느 정도 그래요. 우리는 매 순간 복잡한 우리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요.”

먼 미래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당장 우리의 유튜브 화면조차 옆 사람의 것과 같을 수 없다. 그러나 다르다는 불편함을 참지 못할 때, 당신의 세상은 한없이 작아질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