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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은 매독에 몸 썩어갔다, 그 아들이 그린 ‘섬뜩한 누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12. 2. 14:17

부친은 매독에 몸 썩어갔다, 그 아들이 그린 ‘섬뜩한 누드’
카드 발행 일시2024.11.29
에디터
선희연


절단된 신체와 뒤틀린 근육, 적나라하게 노출된 성기.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화가 에곤 실레(1890~1918)의 그림은 왜 이토록 기괴할까요. 책『마흔을 위한 치유의 미술관』(다산초당)을 쓴 윤현희(53) 작가는 “그림보다 화가에 주목하라”고 말합니다. 화가가 삶에서 느낀 좌절과 시련, 상처와 결핍이 그림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는 이야기죠.

윤 작가는 “화가들의 삶 속에, 내 마음을 단단하게 해 줄 단서들이 있다”고 하는데요. 화가들은 어떤 삶을 살았길래 빛나는 작품을 만들어 냈을까요. 우린 어떤 단서를 찾아서 일상으로 가져와야 할까요.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1912)은 에곤 실레의 대표적인 자화상이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임상심리학자로 활동 중인 윤 작가는 심리 치료가 치료실을 벗어나 일상생활에서도 이뤄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미국 텍사스 아동청소년 정신건강클리닉에서 인지 재활 치료를 하던 중 선택적 함구증을 지닌 6세 소녀와 그림으로 대화하며 극적인 치료 효과를 경험했는데요.

그때 국경과 언어를 뛰어넘어 소통하는 그림의 진짜 힘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후 심리학과 시각 예술을 접목해 심리치료 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연구하고 있죠. 윤 작가는 “마음 프로파일링하는 느낌으로 화가들의 삶을 보면 그림이 더욱 재미있다”고 하는데요. 오늘 ‘더, 마음’에서는 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상처와 결핍에 대해 이야기해봅니다.

심리학자이자 『마흔을 위한 치유의 미술관』을 쓴 윤현희 작가는 심리학과 시각예술을 접목한 심리 치료를 발전시키기 위해, 현재 휴스턴 현대예술박물관 아트 스쿨에서 그림을 배우고 있다. 김성룡 기자

이런 내용을 담았어요

📌1.미술관에 가면 진짜 치유가 될까
📌2.에곤 실레, 왜 뒤틀린 누드화 그렸나
📌3.죽음의 불안에 사로잡힌 화가, 뭉크
📌4.어둠 속에서 빛을 뿜은 화가, 반 고흐

🎨1. 미술관에 가면 진짜 치유가 될까

책 제목이 『마흔을 위한 치유의 미술관』입니다. 미술관에 가면 진짜 치유가 될까요?  

실제 미술관에서 미술 작품을 접할 때, 우리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 연구한 결과가 있어요. 2021년 미국 오클랜드대 연구진이 밝힌 내용인데요. 미술관에 들어간 후 20분이 지나니 코르티솔(스트레스 받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 수치가 떨어지면서 심박수가 안정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흔히 미술관 다녀오면 ‘힐링’된다고 하잖아요. 그게 과학적으로도 검증된 이야기인 거죠. 몇 년 전부터 캐나다 몬트리올과 벨기에 브뤼셀에선 신경질환·정신질환을 가진 환자에게 ‘미술관 방문’을 처방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마흔’이란 나이에 집중한 이유가 있을까요?  

유엔에서 매년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를 비롯해 각국의 관련 데이터를 훑어봤어요. 40대 행복도가 가장 낮더라고요. 그걸 뒤집어 얘기해보면, 정신과적 약물을 가장 많이 복용하는 연령도 40대인 거죠. 유럽 국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도 40대 중반이 항우울제나 항불안제를 가장 많이 먹고 있었어요. 모두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때가 마흔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래서인지 올 한 해 한국에선 ‘마흔’ 키워드가 열풍이었어요.  

저는 미국에 있어서 마흔 키워드가 화제인 줄 몰랐어요. 다만 제 일생을 돌아봤을 때도 마흔에 가장 큰 시련이 오더라고요. 40대에 박사 마치고 나니 몸이 아프기 시작했어요. 인대 끊어지고, 허리 디스크가 파열되고요. 그 상태로 강의까지 했더니 성대 결절이 오더라고요. 우울증도 심하게 왔어요. 그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거예요. 그게 딱 40대 중반. 제 삶이 그냥 부러지더라고요.

어둠의 시간을 어떻게 견뎠나요?  

심각한 트라우마가 와서 한동안 말을 못했어요.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었죠. 내 상처를 잘 돌보고 싶은데, 직접 건드릴 자신은 없고…. 그러다 화가들의 삶을 돌아보게 됐어요.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 주옥 같은 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일까 심리학자로서 궁금하기도 했고요. 그들의 삶을 보다 보니 어느 순간 내 상처를 보듬을 수 있게 되더라고요.

수백 년 전 작품을 보면 확장된 시간 감각을 가질 수 있어요. 삶을 좀 더 긴 호흡으로 대할 수 있고, 마음도 한결 여유로워지죠. 그럼 삶의 더 많은 부분을 품을 수 있을 겁니다.

🎨2. 에곤 실레, 왜 뒤틀린 누드화 그렸나

책에 ‘현대인의 초상은 에곤 실레가 그린 자화상과 흡사하다’고 썼어요.  

지금 한국 사회, 너무 살기 힘들잖아요. 게다가 의학이 발전하면서 수명이 길어졌어요. 앞날이 불안한 채 몇십 년을 더 살아야 해요. 불안정한 시대에 놓인 개인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에곤 실레만큼 적나라하게 담은 화가는 없을 거예요. 누구나 속마음엔 실레의 그림처럼 말라비틀어지고 외로운 모습을 갖고 있을걸요.

실레는 어떤 사람이었길래 이런 기괴한 그림을 그리게 된 거죠?  

아마 가장 영향을 받았던 건 매독에 걸린 채 죽어간 아버지였을 겁니다. 철도역장이었던 아버지는 실레가 10살이 됐을 무렵 매독에 걸렸어요. 뇌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극심한 감정 기복과 망상·환각 등 정신착란 증세를 보였거든요. 나중엔 다리까지 절단합니다. 실레는 아버지의 몸이 썩어가는 걸 보면서 자랐을 거예요. 어느 날 아버지는 주식과 채권을 모두 불태운 뒤 죽음을 맞거든요. 실레가 14살일 때에요. 한창 예민할 나이, 얼마나 충격이겠어요. 이게 트라우마가 돼 세상을 왜곡해 보게 된 것 같아요.

아버지가 실레의 성격을 만드는 데 영향을 끼친 거군요.  

특히 성애에 관심이 싹트던 시기의 소년에게 매독에 걸린 아버지의 죽음은 양가적인 감정을 만들었을 거예요. 성애에 관해 자연스레 관심이 생기면서도 한편으론 아버지처럼 매독에 걸려 미쳐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히게 된 거 같아요.

어린 시절 경험한 트라우마를 치유하지 못하고 어른이 되면, 내면에 그 상처받은 아이가 자라지 못한 채 남아 있거든요. 성인이 된 후에도 그 상처가 건드려지면, 당시 상처받은 아이가 뛰쳐나와 미숙하게 대응하는 거죠. 청년이 된 실레 마음속에도 14세 소년이 자라지 못한 채 웅크리고 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뒤틀린 몸을 그렸던 걸까요?  

그림을 도구 삼아 내면의 불안한 감정을 다 쏟아낸 거 아닐까요. 뒤틀린 근육, 앙상하게 불거진 관절, 괴사한 피부, 무기력한 눈빛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그림들이죠. 게다가 ‘이상한’ 그림을 그린다는 나쁜 소문이 실레를 항상 따라다녔어요. 10대 어린 화가에겐 버거운 일이었죠. 당시 실레가 그린 자화상은 신체가 잘려 있거나 비관적인 모습을 하고 있어요. 특히 ‘앉아 있는 남성 누드(1910)’가 대표적인데요. 급소와 성기를 무방비하게 노출한 데다 손발은 다 절단돼 있죠.

                      에곤 실레의 자화상 중 하나인 ‘앉아 있는 남성 누드’(1910). 사진 오스트리아 빈 레오폴트 미술관

그럼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치료하고 성장시킬 방법은 없나요?

일상을 기록하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글도 좋고 그림도 좋아요. 일상을 기록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거든요. 실레도 내면 아이를 찾아 본능적으로 그렸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 결혼 후 작품을 보면 이전의 자화상과 많이 달라져 있거든요. ‘가족’(1918)이란 그림에서 실레는 팔다리로 가족을 감싸고 있어요. 잘리고 비틀리던 신체가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죠.

우리는 모두 남몰래 앓았던 상처로 웅크리고 있는 어린아이 하나씩 품고 살잖아요. 그 아이를 방치하지 않고 잘 보듬어줄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인 것 같아요.

                                                        에곤 실레가 그린 ‘가족'(1918). 사진 빈 오스트리아 미술관

🎨3. 죽음의 불안에 사로잡힌 화가, 뭉크

에드바르 뭉크(1863~1944)는 어떤 삶을 살았나요?

노르웨이 표현주의 화가 뭉크의 삶은 늘 좌절과 시련으로 가득했던 거 같아요. 어린 나이에 가족 대부분을 잃어요. 5세에 결핵으로 어머니를 잃고, 13세엔 누나도 같은 병으로 죽죠. 광신도였던 아버지는 이 죽음이 ‘자녀들의 죄로 인한 신의 처벌’이라며 남은 아이들을 학대하거든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자녀들에게 어머니의 유서를 반복해서 읽게 해요. 20대엔 아버지와 남동생이 폐렴으로 사망하고, 여동생마저 조현병으로 정신병원에 입·퇴원하길 반복해요. 이 가정사를 알면 뭉크가 느꼈을 불안과 공포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어요.

그래서 뭉크의 작품에 불안이 묻어나는군요.  

어릴 적 경험 때문인지 아픔·죽음·공포가 늘 뭉크를 따라다녔어요. 피해의식과 불안에 사로잡힌 뭉크의 세계관은 자화상에도 잘 드러나요. 뭉크는 누구보다 많은 자화상을 남긴 화가로 유명한데, 자화상 속 그는 늘 어딘가 상처 입거나 피 흘리며 괴로워하거든요.

                                                        뭉크의 ‘절규'(1893). 사진 오슬로 국립미술관

뭉크의 대표작 ‘절규’는 공황발작의 순간을 표현한 그림이라던데.  

실제로 뭉크는 조현병이 심했어요. 조울증, 공황장애, 알코올 의존증도 있었고요. 어느 날 친구들과 산책하던 뭉크는 갑자기 죽을 듯한 공포를 느꼈다고 해요. 피처럼 빨갛게 불타는 듯한 구름을 보고, 비명을 들었다고요. 공황 발작이 엄습하던 그 순간의 모습을 ‘절규’라는 그림으로 기록한 거예요.

대중이 이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순간 얼마나 무섭고 절망적이고 두려웠겠어요. 근데 그 고통을 에둘러 미화하기보다는 날것 그대로 그렸어요. 자신의 감정을 처절하게 직면한 거예요. 감정을 솔직히 바라보는 거, 생각보다 되게 어려운 일이에요. 이건 보통 강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작업이거든요. 내 안의 어둠을 맞닥뜨렸을 때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 뭉크의 그림 분위기도 나중엔 많이 밝아져요. 아마도 본인의 그림자를 직면하는 일을 평생에 걸쳐 했던 것 같아요. 그랬기 때문에 어둠에 잡아먹히지 않고 자신만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요.

자신의 어둠을 보는 게 왜 중요한 건가요?  

위기에 잘 대처하기 위해서예요. 내가 어떤 걸 두려워하고 힘들어하는지, 어떨 때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지를 보면 내 행동 패턴이 보이거든요. 나라는 운영체계를 파악할 수 있는 거죠. 그럼 번아웃되거나 과열되어 터지기 전, 징조를 알 수 있어요. 내가 나를 잘 아는 것 같지만 막상 회사 다니고 가정생활 하다 보면 내가 어떤 상태인지 잘 몰라요. 그러다 보면 ‘펑’ 터지는 거죠. 내 어둠을 바라보는 건 나를 잘 관찰하는 일이고, 나를 더 아끼는 일인 거죠.

🎨4. 어둠 속에서 빛을 뿜은 화가, 반 고흐

‘불멸의 화가’로 불리는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19세기를 대표하는 후기 인상파 거장 반 고흐는 고통 받는 예술가의 원형이죠. 살아생전 딱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했거든요. 사실 반 고흐는 인간을 사랑하고 싶어하는, 엄청난 사랑의 소유자였어요. 안타깝게도 대부분 짝사랑으로 끝났지만요. 아마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법을 몰랐던 거 같아요. 섬세하고 예민한 기질까지 있어 쉽게 어울릴 수 있는 성격도 아니었죠. 그래서 수많은 사람에게 거절을 당합니다. 사랑했던 여성뿐만 아니라 동료들에게도 매번 거절 당했어요.

반 고흐는 조울증이 있었어요. 조울증을 가진 그는 어떤 그림을 그렸나요?  

조울증은 호르몬 불균형으로 오는 병이라 본인이 통제할 수 없거든요. 반 고흐는 극심한 감정 기복을 느끼며 일시적인 환각 상태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어요.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그린 ‘별이 빛나는 밤’(1889)이 그런 작품이죠. 조증의 흥분 상태를 나타내는 노란색과 차분함을 나타내는 푸른 색이 함께 있죠. 그의 격정적 심리 상태가 잘 느껴지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1889). 사진 뉴욕 현대미술관

세상에 거절 당했지만, 그림은 계속 그렸습니다. 

반 고흐는 조울증으로 탈진 상태가 돼 병실에 갇힌 처지가 됐을 때조차도 그림을 그리겠다는 열망을 잃지 않거든요. 정신병원에 있던 1년 동안 200여 점을 그린 걸 보면 알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결국 사랑 받는 화가가 된 거 아닐까요. 만약 반 고흐가 생전에 실망하고 좌절해서 그림 그리기를 그만뒀으면 우린 이런 멋진 작품을 볼 수 없었을 거예요.

포기하지 않는 열망이 빛나는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말씀이군요.  

모두에겐 긴 암흑의 터널이 있어요. 저 같은 경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였죠. 그 터널을 지나기 위해 책을 쓰기 시작했고 그 시기에만 4권의 책이 나왔죠. 돌이켜보면 반 고흐의 그림처럼 인류를 위로한 위대한 작품은 대부분 그 예술가가 가장 밑바닥에 엎드려 있던 시기에 탄생했어요. 다산 정약용(1762~1836)의 『목민심서』『흠흠신서』 같은 명저도 유배 생활 때 나왔잖아요. 사회에서 매장 당했다고 생각했지만, ‘매장’이 아니라 ‘파종’이었죠.

가장 어두운 곳에서 쏘아 올린 노력의 빛이 나중엔 높은 곳에서 가장 환한 빛을 뿜을 겁니다. 그러니 지금 힘들다고 좌절하지 마세요. 반 고흐 같은 빛을 쏘아 올릴지 누가 알겠어요.

                                    윤 작가는 “내 삶을 어루만질 각자의 그림을 찾으라”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956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