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으로 사는 이는 자유롭다…“병원이 수도원” 목사의 깨달음
카드 발행 일시2025.01.03
에디터
백성호
백성호의 궁궁통통2
세상에 문제 없는 인생이
과연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의 삶에는
나름의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그 문제로 인해
우리가 자유롭고, 지혜로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왜냐고요?
문제를 품고서 골똘히
궁리하고,
궁리하고,
또
궁리하는 과정을 통해
솔루션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게 결국
삶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궁리하고 궁리하면
통하고 통합니다.
‘백성호의 궁궁통통2’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담습니다.
#궁궁통1
감리교 목사인
고진하(71) 시인은
기독교 영성가입니다.
강원도 원주에서
낡은 한옥을 고쳐 짓고
‘불편당(不便堂)’이란
당호를 붙였습니다.
고진하 목사의 강원도 원주의 자택인 한옥에는 '불편당'이란 당호가 붙어 있다. 불편을 감수하고, 불편을 즐길 때 인간은 자신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법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작은 불편도
견디지 못하는
요즘 세상에서,
기꺼이
불편을 즐기자는
뜻입니다.
그가
『쿵쿵』이란
제목의 책을 낸 적이
있습니다.
쿵, 쿵!
무슨 소리일까요.
그렇습니다.
심장이 뛰는
소리입니다.
책 제목이
왜
심장 뛰는
소리일까요.
당시 그는
세브란스 병원에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3명을 만났습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눈으로
일종의 투병기를
썼던 겁니다.
#궁궁통2
고 시인의 이야기를
듣다가
저는 생각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인간의 삶이란
결국
아픔과 슬픔,
그리고
상실에 관한
끊임없는 투병기가
아닐까.
고진하 시인의 한옥 자택에 걸려 있는 글. 조금 불편하지만 제법 행복합니다란 글귀에서 고 시인의 영성이 느껴진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런
투병의 터널을
지나가는
치유기가 아닐까.
고 시인은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세 명의 이야기를
취재하며
‘아픔의 위대함’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아픔이
왜
위대합니까?”
“거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
그들의 삶에는
감사의 강물이
흐르더라.
나는 거기서
아픔의 위대함을
보았다.”
고 시인은
아픔이
아주 짧은 시간에
인간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주 짧은 시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왜냐고요?
그 짧은 시간은
수술실에서 보내는
시간일 수도 있고,
뇌를 절개하는
시간일 수도 있고,
대장암 수술을 위해
배를 모두 내보이는
시간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고 시인은
세브란스 병동을
돌아다니며,
심지어
수술실에도 들어가서
이 모든
‘짧은 시간’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고진하 시인이 직접 마련한 참나무 장작 앞에 앉아 있다. 고 시인은 인간의 아픔이란 참 위대하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런 뒤에
고 시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서 보니
병원이 수도장이고,
수도원이더라.”
#궁궁통3
고 시인에게
제가
물었습니다.
“삶과 죽음의
기로,
그 수도원을 다녀오면
무엇이
달라집니까?”
고 시인은
짧게 답했습니다.
“덤으로
살게 됩니다.”
덤으로 산다,
그리
간단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왜냐고요?
기독교의
눈으로 보면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할 때,
비로소
우리가
덤으로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덤으로
산다는 게
뭔가요.
홀가분하게,
집착 없이,
감사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입니다.
고진하 시인의 자택 마당에 걸린 빨랫줄. 그 뒤에 깔려 있는 하늘이 무척 푸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원래
우리의 삶이
그러지
않았을까요.
저 산의
나무들처럼,
저 들의
풀들처럼,
저 하늘의
바람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걸림 없이
덤으로
사는 삶이
아니었을까요.
태어나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던
삶이니까요.
그런데
살다 보면
달라집니다.
기대가 생기고,
욕심이 생기고,
집착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덤으로 살지
못합니다.
얼마든지
덤으로 살 수 있음에도,
도저히
덤으로 살지 못하고
맙니다.
그런
우리에게
고 시인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파 봐야 안다.
허우적거려 봐야 안다.
그래야
거기서 벗어나게 된다.
덤으로
살 수 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자유롭다.”
고진하 시인이 한옥 사랑채의 아궁이에 장작으로 불을 때고 있다. 중앙포토
그는
인절미를
예로 들었습니다.
“인절미를 봐라.
콩고물을 묻히면
콩 인절미가 된다.
팥고물을 묻히면
팥 인절미가 된다.
나는
인절미처럼
살고 싶다.
하늘이 묻히시는 대로
살고 싶다.”
주체성 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삶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삶에서
콩이 오면
콩고물을
받아들이고,
팥이 오면
팥고물을
받아들이는,
바다처럼
넓은
포용력을 말합니다.
고 시인은
그걸
“적극적 수동성”이라고
표현하더군요.
“나는 『노자』를
즐겨 읽는다.
『노자』에 나오는
무위(無爲)가
결국
덤으로 사는 삶이다.”
다들 바랍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그렇게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런 이들을 위해
고 시인은
이렇게
조언하더군요.
고진하 시인은 살에 닥치는 온갖 파도를 받아들이는 마음을 '적극적 수동성'이라고 표현했다 권혁재 사진전문 기자
“1주일에
한두 번만이라도
밤에 별을 좀 보시라.
답답하면
개울에 가서
물 흘러가는 것도
보시라.
자연이야말로
우리에게는
큰 경전이다.
성경과 불경의 문자가
우리를
구원하는 게 아니다.
그 속에 흐르는
생명이
우리를 구한다.
때로는
자연이 우리에게
그런 길을 보여준다.
덤으로
사는 법을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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