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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나무편지] 닷새 동안의 일본 큰 나무 답사 잘 다녀왔습니다만, 지금은……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12. 9. 14:06

[나무편지] 닷새 동안의 일본 큰 나무 답사 잘 다녀왔습니다만, 지금은……

  ★ 1,262번째 《나무편지》 ★

   닷새 동안의 나무 답사를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지난 주 《나무편지》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일본의 대표적 식물학자인 마키노 도미타로를 기념하기 위해 설립한 ‘마키노 식물원’을 비롯해 시코쿠 지역의 크고 아름다운 나무들을 많이 바라보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예고해드렸던 것처럼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살아온 ‘용계리 사람들’ 이야기를 전해드려야 하는데, 글 한 줄이 잘 쓰이지 않네요.

   지난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의 답사로 미루어두었던 일들을 서둘러 마무리해야 하는 일에 분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지금 우리 국민 모두가 그러신 것처럼 뒤숭숭한 이 땅의 사정에 온갖 생각과 감정들이 치밀어 올라, 도무지 하나의 단어, 한 줄의 문장에 마음을 모을 수가 없습니다.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이야기를 글로 적기 위한 최소한의 여유, 마음의 틈이 찾아지지 않았습니다. 나라 밖에서 말도 안 되는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떠오르는 청춘 시절의 온갖 기억들로 치가 떨렸습니다. 분노와 참담함으로 아찔해진 심정으로 내내 불면의 밤을 지새웠습니다.

   유난히 크고 아름다운 나무들을 많이 만났던 이번 답사 때에 촬영한 사진들은 아직 갈무리도 못했습니다.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이야기도, 일본 시코쿠 지역의 크고 아름다운 나무 이야기도 모두 미룰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잘 다녀왔다”는 인사로 이번 답사에서 만난 첫 번째 한 그루의 아름다운 나무(이 나무는 이번 답사에서의 그저 ‘시작’에 지나지 않습니다)와 주변 풍경을 보여드리는 것으로 그치겠습니다. 덧붙여 우리 땅보다 훨씬 남쪽인 일본 시코쿠 지역에서 뒤늦게 만난 환상적으로 아름다웠던 단풍 풍경까지 보여드리겠습니다.

   해 넘어가기 전에는 마음 가다듬고 다시 웃으면서 그 동안 답사한 나무에 대한 생각을 되새기며, 나무 향한 마음에 집중할 날이 올 겁니다. 분명히 곧 다가올 그 날을 위해 우선은 이 거리에 불어오는 매운 바람 맞을 채비부터 단단히 하겠습니다. 함께 맞잡을 손 차가워지지 않게 핫팩도 넉넉하게 준비해야 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이 아니라 형형색색 반짝이는 ‘응원봉’도 찾아 배낭에 차곡차곡 넣어두겠습니다.

   다음 《나무편지》를 드릴 즈음에는 아무리 예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다 해도(그럴 듯도 합니다만)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가 됐든 일본 시코쿠의 노거수가 됐든 나무 이야기를 성실하게 담아 전해올리겠습니다.

   오늘 《나무편지》에 담은 사진을 간단히 소개합니다. 위부터 두 장의 사진은 이번 답사에서 맨 처음 만난 어느 ‘오래된 술도가 마당의 녹나무’이고, 세 번째 사진은 일본의 어느 사원에서 만난 은행나무이며, 그 아래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사진은 답사 중에 만난 풍경입니다. 일본 시코쿠 지역은 우리 땅보다 남쪽이어서 단풍은 지금이 절정이었습니다. 사진으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단풍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024년 12월 9일 아침에 1,263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 고규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