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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죽음의 고비를 넘고 넘어 30년… 아주 특별한 은행나무(1)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11. 26. 10:21

[나무편지] 죽음의 고비를 넘고 넘어 30년… 아주 특별한 은행나무(1)

  ★ 1,261번째 《나무편지》 ★

   워낙 유명한, 더구나 우리 《나무편지》를 살펴보시는 분들에게라면 너무너무 잘 알려진 우리의 은행나무를 오늘의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리렵니다. 두 주 전에 〈대구 현풍휴게소 소원의나무〉를 보여드렸지요. 그때의 답사길에 찾아본 나무입니다. 조마조마하게 단풍드는 시기를 손꼽으며 뉴스에 등장한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의 노란 단풍 풍경을 보고 재우쳐 찾게 된 것이었습니다. 노란 단풍잎이 화려한 사진이 첨부된 뉴스를 확인한 사흘 뒤의 주말이었습니다. 고작 사흘 지난 뒤이니, 은행나무의 화려한 단풍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사이에 기온이 뚝 떨어진 날이 있어, 조마조마하기도 했습니다.

   안개가 짙게 깔린 토요일 아침, 안동 길안면 용계리 골짜기의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풍경은 삽상했지만, 안타깝게도 사흘 전에 그토록 화려했던 노란 은행잎은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떨어졌습니다. 물론 단풍 든 은행잎이 없다고 해서 굳이 ‘실망했다’고 할 일은 아닙니다. 줄기와 나뭇가지만으로도 충분히 장엄한 풍경을 보여주는 우리의 특별한 나무이니까요. 아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의 하고한 내력을 일일이 풀어 쓰려면 한 통의 《나무편지》로는 부족합니다. 두 번으로 나눠 자세히 소개해 드리는 게 낫지 싶습니다. 어쩌면 두 번으로 모자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한번 더 써서라도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이야기를 제대로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는 나무높이 31미터, 가슴높이줄기둘레 14미터의 큰 나무입니다. 매우 큰 나무이고요. 가슴높이줄기둘레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나무에 속합니다. 여기서 드릴 말씀이 있어요. 지금은 이 나무의 가슴높이줄기둘레를 측정하는 게 어려워졌다는 말씀입니다. 그 자세한 사연은 차차 이야기하겠습니다만, 나무 줄기의 상당 부분이 복토로 덮였기 때문에 지금 이 나무의 줄기 굵기를 측정해야 할 부분의 줄기는 이미 여럿으로 갈라졌거든요. 14미터라는 측정 결과는 30여 년 전에 이 나무가 지금의 위치에 서게 되기 전에 측정한 결과입니다. 그때 이미 이 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던 상황이어서, 나무높이와 줄기둘레 등을 정밀하게 측정해두었던 거죠.

   우선 오늘의 《나무편지》에서는 이 나무가 이 자리에 보금자리를 틀게 된 과정부터 이야기합니다. 7백년 전쯤의 일입니다. 이 깊은 산골짜기에 마을이 형성된 때라고 합니다. 지금은 마을이 해체된 상황이지만, 처음에 이곳에 마을을 일으킨 사람들은 탁씨 성을 가진 분들이었다고 합니다. 마을이 형성되고, 잘 살아가던 중에 홍수가 일어났던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마을 앞을 흐르던 개울에 뿌리 째 뽑힌 한 그루의 작은 나무가 흘러내려왔습니다. 그걸 본 탁씨 성을 가진 한 소녀가 나무를 건져내 살리기 위해 자신의 집으로 가져가 따뜻한 부엌의 부뚜막 곁에 심고 정성껏 보살펴 살려낸 겁니다. 그게 7백 년 전에 나무가 사람과 더불어 이 마을에 살게 된 내력입니다.

   세월 흘러 나무를 돌보던 소녀는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에 마을 사람들의 꿈에 그 소녀가 나타났습니다. 소녀는 사람들의 꿈에서 “내 집 부엌에서 근사한 나무가 한 그루 자라고 있는데, 부엌의 담벼락과 지붕에 막혀 답답하다”면서, “부엌을 헐어내고 나무를 잘 보살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이 나무를 마을의 성황당나무로 삼고, 이 나무를 살려낸 나를 마을 성황당으로 삼는다면 내가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영원토록 지켜주겠다”고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꿈이 한 사람에게만 꾸어진 게 아니라,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차례차례 꾸어졌답니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그 집을 찾아가 부엌을 헐어내고 탁씨 소녀의 이야기대로 나무를 성황당나무로 삼고 제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탁씨 소녀 성황당이 지켜주는 마을 살림살이는 수백 년에 걸쳐 평화롭게 이어졌습니다. 깊은 산골짜기이지만, 사람들이 차츰 모여들어 아이를 낳고 잘 키웠습니다. 그러자 학교가 필요하게 됐고, 자연스레 학교를 세워야 했지요. 하지만 워낙 마을이 작고 아이들도 많지 않아, 가까운 길안면의 초등학교의 분교장으로 세웠습니다. 지금은 폐교한 ‘안동시 길안초등학교 용계분교장’이 그 학교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늘 모여서 사람살이를 의논했던 개울가 큰 나무 곁에 운동장을 조성하고 그 곁에 교사를 지어 학교를 완성했습니다. 그게 1973년의 일입니다. 마을 당산나무가 너른 학교 운동장 가장자리에 자리잡으며 마을 사람들에게는 더 좋은 자리가 됐습니다.

   나무는 마을 당산나무이자 학교 나무로 즐겁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나무에게 죽음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1987년의 일입니다. 그때부터 이 큰 나무가 죽음의 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과정은 숨가쁘게 진행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로부터 7년에 걸쳐 나무는 삶과 죽음의 고비를 넘나듭니다. 그리고 마침내 1994년에 모든 죽음의 위기를 이겨내고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남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이 과정은 복잡하지만 매우 흥미롭습니다. 아무래도 오늘 이야기하기에는 무리입니다. 다음 《나무편지》로 사연 이어가겠습니다. 이미 많이 알려진 이야기입니다만, 대강의 줄거리에 감춰진 디테일한 이야기들까지 톺아보면 정말 흥미롭습니다. 심지어 이 나무가 죽음의 위기를 이겨낸 이야기는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이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오늘 《나무편지》는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의 ‘들어가는 글’ 정도로 마무리하고 다음에 더 자세히 이어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4년 11월 25일 아침에 1,261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 고규홍 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