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편지] 죽음의 고비를 넘고 넘어 30년… 아주 특별한 은행나무(2)
★ 1,262번째 《나무편지》 ★
주말에 기온이 오르면서 길 위에 쌓였더 눈이 녹아내리자 그 아래에는 수북히 쌓여있던 낙엽이 드러났습니다. 폭설 아래 낙엽! 이런 일은 정말 처음입니다. 폭설로 쏟아진 주중의 눈은 단풍잎, 아니 아직 채 초록인 나뭇잎 위에 쌓였습니다. 날씨의 변화를 이야기할 때마다 ‘사상 최초’ ‘역대급’ 등의 수식어는 이제 그냥 ‘일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놀라운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지금 이 《나무편지》를 보시는 시간에, 나는 일본을 대표하는 식물학자인 마키노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마키노 식물원〉의 나무들을 살펴보고 있을 겁니다. 어제 일본 시코쿠에 왔습니다. 일본 나무 답사는 목요일인 5일까지 이어질 겁니다. 일본 답사에서 찾아본 좋은 나무들 이야기는 돌아가 천천히 전해드리겠습니다.
지난 번에 이어 죽음의 고비를 이겨낸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이야기, 이어갑니다. 1987년에 나무에 죽음의 위기가 찾아왔다고 지난 번 《나무편지》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게 ‘안동 임하댐 건설 계획 발표’였습니다. 댐 건설이 완료되면 이 나무가 성황당 되어 7백 년 긴 세월을 지켜온 용계리 마을은 고스란히 물 속에 갇히게 됩니다. 깊은 산골에서 별 욕심없이 하늘이 주는 만큼 먹고, 나무가 지켜주는 만큼의 평화를 누리며 살아온 마을 사람들은 하릴없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떠난 뒤에 마을을 지켜준 ‘할배’의 안부가 궁금했지요.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는 씨앗을 풍성하게 맺는 암나무입니다만, 그와 무관하게 마을 사람들은 나무를 ‘할배’라고 부릅니다.) ‘할배’ 덕에 수백 년을 평화롭게 살아온 마을 사람들의 당연한 궁금증이었습니다. 그러나 별 도리가 없다는 게 공사 담당자들의 답이었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할배’를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했습니다. ‘할배’가 물 속에 갇혀 죽는다면 사람들도 따라 죽는 수밖에 없다며 간절하고도 강경하게 호소했습니다. 당시 댐 공사를 담당한 한국수자원공사 측에서는 민원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용계 마을 사람들의 청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에게 더 다행스러웠던 건 한국수자원공사의 이상희 사장이 유난히 나무를 아끼는 분이었다는 겁니다. 이상희 사장은 마을 사람들의 민원을 받아들여 나무를 살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높이 31미터 굵기 14미터의 이 큰 나무를 옮겨갈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으려 애썼지요.
그때 나무 이식 공사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내던 ‘대지개발’이라는 회사가 소식을 듣고 이 공사에 나섰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그때의 대지개발 사장은 ‘이철호’라는 분이었는데요. 그 분은 나무 이식과 관련한 몇 가지 탁월한 특허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특별한 기술들을 활용해 나무를 살리겠다고 나선 겁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예산이었습니다. 수자원공사로서는 최종적으로 얼마가 들지 모르는 자금을 조달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이상희 사장은 국가 예산을 받아서라도 나무를 살리겠다고 작정하고 ‘청와대’를 찾아갔습니다. 정부로부터 예산 활용의 허락을 받으려 한 거지요. 당시 대통령은 모두가 아시는 대로 생명이나 나무를 존중하는 데에 남달리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었기에 불안했지만, 놀랍게도 수자원공사의 요청이 받아들여졌습니다.
정부 예산을 이용하기로 확정되면서 공사는 시작됐습니다. 청와대에서는 ‘용계 은행나무 살리기 위한 대통령 령’을 발표했고, 곧바로 공사 담당자를 공개 입찰 방식을 통해 확정했습니다. 당연히 대지개발이 공사를 맡기로 했지요. 계약 조건은 무시무시했습니다. 공사를 다 마친 뒤에 나무의 생육을 확인해서 만일 나무가 제대로 살지 못한다면, ‘공사비 전액을 변상’하는 공포의 계약이었습니다. 한국수자원공사도 조달할 수 없을 만큼인 거액의 공사비를 토해내라는 겁니다. 그래도 공사는 시작됐습니다.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게 불가능한 이 큰 나무를 임하댐이 완성되고, 만수위까지 물이 차올라도 아무 지장이 없는 높이까지 들어올리는 방식으로 나무를 살리기로 한 겁니다. 그리고 이같은 방식에서 대지개발 이철호 사장은 ‘H빔 공법’ ‘생명토 공법’ 등의 특허 기술을 활용하기로 한 겁니다.
사전 조사 끝에 1990년부터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어찌 됐든 나무를 땅에서 들어올려야 하겠지요. 그래서 나무를 뿌리째 땅으로부터 들어올렸는데, 그때의 무게가 무려 680톤이나 됐다고 합니다. 최근 기사에는 500톤이었다고도 하지만, 초기 자료에는 680톤으로 돼 있습니다. 이 엄청난 무게의 나무를 한꺼번에 들어올리는 게 아니라 대략 30~50센티미터 정도로 살짝 들어올린 뒤에 H빔으로 고정한 뒤에 땅에서 들어올려진 틈에 흙과 돌과 모래를 채워넣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댐에 물이 가득차도 무너지지 않게 하려면 그것만으로는 모자랐습니다. 그래서 흙과 돌과 모래 사이에 석회도 함께 섞었습니다. 그건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지는 효과를 내기 위한 것이었지요. 그러나 그 방식에 의하면 나무가 나중에 다 살아난다 해도 땅 깊은 곳과 나무 뿌리 사이에 콘크리트 층이 막히는 결과가 됩니다. 결코 나무의 생육에 좋을 게 없는 방식이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30센티미터, 50센티미터씩 들어올리고는 틈에 채워넣은 흙이 양생되기를 기다리고, 공중에 떠 있는 나무에는 생명토를 이용해 양분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나무의 상태를 건강하게 유지한 겁니다. 그렇게 지금의 위치인 15미터 높이까지 수직으로 들어올리는 데에 걸린 시간은 1993년까지 무려 4년이나 걸렸습니다. 옮겨 심은 게 아니라, ‘올려 심는’ 방식의 이 공사는 그래서 ‘이식공사’라 하지 않고 ‘상식(上植)공사’라고 합니다. 시간은 더뎠지만, 공사는 성공적으로 진행됐습니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무가 죽으면 안 되는 조건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상식이 끝나고 1년 뒤에 식물 전문가들의 감정이 있었습니다. 그때 다행히 나무는 ‘잘 살아있다’고 판명되어 마침내 모든 공사를 성공적으로 완료하게 된 겁니다.
이 공사에 들인 비용도 궁금하시겠지요. 당시 돈으로 무려 23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투자됐습니다. 이를 현재의 화폐가치로 계산하면 통계청의 물가 흐름 수치를 바탕으로 대략 8배 정도 된다고 보시면 맞을 겁니다. 그러면 한 그루의 나무를 살리기 위해 투여된 자금이 무려 180억원 정도 됩니다. 비용으로 봐도 아마 전 세계적으로 한 그루의 나무를 살리기 위해 이만큼 큰 돈을 투자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나무는 “상식공사 방식으로 살려낸 나무 가운데에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라는 명분으로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죽음을 이겨내고 우리 곁에 살아남은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는 명실상부하게 우리 안에 자랑스러운 나무입니다.
오늘 《나무편지》로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했는데, 아직 남아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나무를 둘러싼 사람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떠나도 나무는 남는다”는 나무 답사의 기본 화두를 오래 기억하게 하는 뭉클하고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인데요. 그건 어쩌는 수없이 다음 《나무편지》에 한번 더 이어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4년 12월 2일 아침에 1,262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 고규홍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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