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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소원의 나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고속도로 휴게소 느티나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11. 12. 14:14

[나무편지]

‘소원의 나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고속도로 휴게소 느티나무

  ★ 1,259번째 《나무편지》 ★

   지난 주말에는 바깥으로 나가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토요일의 라디오는 “경부고속도로의 143킬로미터 구간이 정체”라고 알리는 걸 봐서는 거의 모든 도로가 정체라고 봐야 하지 싶었습니다. 주말 도로 정체를 조금이라도 덜 겸(사실은 정체를 견디기 어려워서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렇게 이야기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평소에 주말 이동은 피하는 일상입니다만, 지난 주말에는 남녘에서 일정이 있어서, 고속도로에 올랐습니다. 금요일 춘천에서 학교 강의를 마친 뒤부터 토요일 늦은 밤까지 경상남도의 최남단까지 거의 한반도 한바퀴를 도는 일정이었습니다. 그 길 곳곳이 정체였습니다. 늦은 단풍을 느낄 수 있는 올 가을 마지막 시간으로 여긴 많은 분들이 한꺼번에 나온 모양이었습니다.

   고속도로 곳곳에서 쉬엄쉬엄 갈 수밖에요. 오늘 《나무편지》에 담은 한 그루의 느티나무는 바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날 수 있는 큰 나무입니다. ‘소원의 나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나무나이 500의 이 느티나무는 중부내륙고속도로지선을 지나다보면 거치게 되는 대구시 달성군 현풍읍 성하리의 마산 방향-현풍휴게소입니다. 이 길을 가게 되면 이 느티나무를 만나서 인사 나누고 싶다는 생각으로 정체의 지루함과 운전의 피로를 견디며 현풍휴게소까지는 가서 잠시 쉬게 됩니다. 엊그제 토요일 오전, 이 고속도로가 그리 심한 정체를 보인 건 아니었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이틀 동안의 답사에서 몇 그루의 나무를 만났습니다. 특히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은행나무를 만나기도 했지만, 이미 노랗게 물들었던 은행잎을 모두 떨군 상태여서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가볍게 현풍휴게소의 소원의 나무를 보여드립니다. 엊그제 만난 아주 특별한 은행나무는 다음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현풍휴게소의 느티나무는 오래 전부터 마을 당산나무로 살아온 나무였습니다. 그런데 고속도로가 이 마을을 통과하게 되면서 마을은 해체되어야 했고, 당산나무는 홀로 남게 됐습니다. 자칫하면 나무도 쓰러질 뻔했던 위기였지요. 그때 이 느티나무가 있는 자리에 고속도로 휴게소를 짓고, 나무를 그 휴게소의 상징으로 삼기로 한 겁니다. 좋은 결정이었지 싶습니다.

   현풍휴게소는 애시당초 건물 자체를 느티나무와 어우러지게 설계하고 건물 뒤편 언덕 위에 남겨놓았습니다.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지키며 오백 년을 살아온 이 느티나무에 ‘당산나무’의 현대식 이름이라 할 만한 ‘소원의 나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고속도로 개통 전에 마을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던 당산나무였다는 사실을 현대화한 이름이지요. 거기에 몇 가지 이벤트를 덧붙이며 현풍휴게소는 느티나무를 널리 알리려 했습니다. 현풍휴게소를 알리기 위한 작업이기도 했을 겁니다. 휴게소 측에서는 나무 앞에 ‘소원의 우체통’을 설치하고, 누구라도 자신의 소원을 빨간 우체통 옆에 비치한 엽서에 적어 우체통에 넣게 했습니다. 휴게소 측에서는 이 소원 엽서를 모아 전시회도 하고, 그걸 책으로 낼 계획도 발표했습니다.

   현풍휴게소에 들른 사람들은 짬을 내 나무를 찾아보고, 엽서에 소원을 적어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엽서를 꺼내 살펴본 사람들의 소원은 참 다양했습니다. “밤에 이불에 쉬 하지 않게 해 주세요”라는 어린 아이의 소원이 있는가 하면, “병든 아버지의 완쾌를 빈다”는 착한 딸의 소원이 있었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게 해 달라”는 엄마의 자식 향한 소원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소원 성취 여부와 무관하게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범한 살림살이를 그대로 엿볼 수 있는 단면이 될 겁니다. 그 ‘소원 엽서’ 전시회 뒤로, 책을 펴내겠다는 계획이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뒷 소식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일단 그 생각이 소중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원의 나무’와 ‘소원 엽서’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지난 2012년에 KBS-TV 의 장수프로그램인 〈6시 내고향〉의 한 코너인 〈나무가 있는 풍경〉을 진행하던 때에 이 나무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도 벌써 10년이 훌쩍 지났네요. 그 뒤로도 몇 차례 이 고속도로를 지날 때마다 잠시 들러 나무를 찾아보곤 했지요. 엊그제 토요일도 그런 거였습니다. 처음 이벤트를 벌일 때에 비해 조금은 한가로워진 듯합니다만, 나무는 예전 당산나무 시절에 마을 사람들의 소원을 담아냈던 것처럼 현풍휴게소 건물을 거느리고 여전히 뜸직하게 버티고 있었습니다. 지나는 사람들의 관심도 휴게소 관리팀의 관리도 조금 소홀해진 듯한 느낌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나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먼저 변하는 건 사람입니다.

   번거롭고 분주한 고속도로를 지나면서 사람살이의 소원을 생각하고, 또 그 소원을 기댈 큰 나무를 떠올릴 수 있다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마을 사람들의 소원을 이뤄주는 일을 맡았다가 이제는 지나가는 나그네들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한 그루의 큰 나무가 굳세게 버티고 서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중부내륙고속도로지선의 현풍휴게소는 즐거운 곳으로 기억됩니다. 큰 나무 한 그루가 있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들르게 하는 아름다운 고속도로 휴게소입니다.

   고맙습니다.

2024년 11월 11일 아침에 1,259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 고규홍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