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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의 맛 (해장국편)

방학동을 지키는 ‘머슴해장국’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4. 25. 11:59

방학동을 지키는 머슴해장국

도봉구의 산업화와 방학동

 

방학동은 도봉구 가운데에 있는 행정권역이다. 북쪽으로는 도봉동과 인접하고 남쪽으로는 창동, 쌍문동에 닿아있는 방학동은 도봉구의 중간에서 동서로 뻗어있는 지역이다. 동의 이름을 딴 지하철역 방학역이 있고 도봉구청이 자리한 동이기도 하다. 또한 동의 서쪽에는 다양한 역사문화유산이 자리하고 있다. 세종의 둘째 딸이자 한글 창제에 도움을 주었다는 기록이 전하는 정의공주의 묘, 조선시대 여러 일화로 유명한 연산군의 묘, 서울특별시 지정보호수 1호인 방학동 은행나무,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유산을 지켜낸 간송 전형필의 옛집과 이라는 시로 유명한 김수영 시인을 기리는 문학관까지. 다양한 역사문화유산이 있다는 것은 이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살아왔던 곳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방학동에는 동의 이름을 딴 방학사거리가 있다. 도봉구의 중심에 위치해 있기도 하거니와 강북, 노원이나 의정부를 비롯한 주변 지역으로 출입하는 진출입로가 이 사거리와 연결되어 있어 항상 교통량이 많은 곳이다. 방학사거리에는 거리의 네 면을 따라 방학사계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 여름, 가을, 겨울, 사계의 이름을 딴 공원은 지역주민이 일상 속에서 휴식과 여유를 누리는 공간이다. 이곳에선 다양한 지역문화행사가 개최되어 도봉사람들의 문화적 삶을 윤택하게 한다. 사계광장을 가로지르는 방학천은 동쪽으로 흘러 중랑천에 합류하는데 이 방학천 주변에 조성된 발바닥공원과 방학천문화예술거리는 독특한 매력을 가진 이 동네의 명소다.

사진1. 방학사계광장 겨울마당 ©박광보

사실 방학동의 과거가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1960년대 우리나라의 산업화 시기 서울에는 끝없이 인구가 몰려들었다. 그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지만 가장 큰 것은 이렇게 밀집된 인구를 포용할 만한 사회적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수도와 전기는 말할 것도 없고 애초에 사람들이 살 집이 없었다. 또한 서울로 몰린 인구는 대부분 일거리를 찾아 온 빈민층으로 주택이 있다 해도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결국 이들은 주변에 있는 재료들로 얼기설기 집을 지어 살았고 이런 집들이 모여 판자촌이 되었다. 도봉구에도 판자촌이 있었고 그 대표적인 곳이 바로 방학천이었다.

이와 더불어 80년대에 이르러 도봉구에 다양한 공장이 이전해 왔다는 이야기는 앞서 했었다. 공장의 설립은 도봉구의 모습을 꽤나 많이 바꿔놓았다. 공장을 따라 온 노동자들이 머물 주택과 빌라, 생활에 필요한 미용실, 세탁소 등 다양한 가게가 들어섰다. 문제는 이와 함께 생겨난 유흥업소였다. 방학천 주변에 유흥업소가 하나 둘씩 생겨나다가 결국은 밀집 지역이 되었다. 산업화의 그림자가 드리운 방학천은 동네 주민이 모두 꺼려하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도봉구 산업화의 그늘이 드리운 이 공간을 치유한 것은 바로 문화였다. 우선 노숙자가 많았던 방학사거리 일대는 주민들을 위한 공원 방학사계광장으로 변모했다. 유흥업소가 밀집해 있던 방학천 일대는 지역문화예술인들이 창작 및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방학천문화예술거리(이하 방예리)’가 조성되었다. 이로 인해 방학동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주민이 꺼리던 방학천은 이제 일상 속에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된 것이다. 그리고 방학천문화예술거리의 끝자락, 발바닥 공원으로 가는 길목에는 이 모든 변화와 함께한 식당 머슴해장국이 있다.

일꾼들이 먹는 머슴해장국

 

머슴해장국으로 찾아가 보자. 도봉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방학사거리 정류장에서 내리면 길 건너편에 방학천문화예술거리가 보인다. 거리를 따라 안쪽으로 쭉 끝까지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머슴해장국을 만날 수 있다. 노란색 간판에 파랑과 빨강으로 쓰인 글씨, 주황색으로 된 천막 모두 원색이다. 유리로 된 벽에는 식당에서 파는 메뉴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어 알아보기 쉽다. 이런 직관적인 가게 외관은 옛날부터 익숙하게 보고 자랐던 풍경이라 정겹다.

그치만 정겨운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간판도 천막도 다 새것의 느낌이 남아있다. 왜냐하면 머슴해장국이 현 위치에서 장사를 한 것은 20229월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지금의 위치가 아닌 방학사계광장 가을마당(남서쪽) 도로에 있었다. 이곳에서 시작한 머슴해장국은 20년 가까운 시간동안 주민에게 좋은 음식을 제공해왔다. 하지만 입주해있던 건물이 재건축되면서 어쩔 수 없이 정든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사진2. 머슴해장국 외관

현재 머슴해장국의 모습이 정겨운 이유도 거기에 있다. 과거 가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자 했던 사장님의 세심함이다. 혹여 가게가 옮겨가면 단골손님이 찾아오는 데 어렵지는 않을까 고민한 흔적이다. 당장 나도 머슴해장국이 이사한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 정확한 위치는 모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출근하다가 방예리 근처에서 이전 가게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머슴해장국을 발견했다. 뜻밖의 만남에 얼마나 반갑던지 그날 점심에 바로 찾아가서 해장국 한 그릇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머슴해장국의 사장님은 연세가 제법 많으신 분이다. 전남 장흥 출신의 사장님은 남도음식의 명성답게 음식 솜씨가 좋다. 사장님이 자신있는 것이 음식이기도 했고 여성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식당밖에 떠오르지 않아 덜컥 시작했다고 하셨다. 그렇게 방학사거리 머슴해장국의 역사는 시작됐다. 그리고 그 당시는 아직 방학동이 산업화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당시를 회상하면 방학사거리 공원에 늘상 있던 노숙자가 떠오른다고 했다. 머슴해장국은 200410월에 개업했는데 12월부터 방학사계광장이 정비되기 시작했다. 도봉구에서도 관심이 많은 사업이었던 터라 구청장을 비롯한 다양한 구청 관계자 그리고 공사 인부들까지 모두 머슴해장국을 찾았다. 의도치 않은 일이었지만 덕분에 장사는 순풍을 맞았다. 여기에 사장님의 음식 솜씨가 더해지니 금상첨화였다. 한 번 머슴해장국을 방문한 사람들은 줄곧 단골이 됐다. 멀리서부터 찾아오는 단골손님 중에는 이때 이곳에서 일하던 인부들도 제법 있다.

머슴해장국은 이름 그대로 일꾼들을 위한 식당이었다. 방학사계광장은 물론이거니와 이후 방예리가 조성될 때도 여러 인부들이 이곳에서 식사를 했다. 살기 좋은 도봉을 만들기 위해 땀 흘리는 사람들이 이곳을 거쳐간 것이다. 이는 비단 공사 노동자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른 아침부터 식당의 불을 밝히고 손님을 맞이하는 머슴해장국은 아직 덜 깬 몸을 깨우고 고단한 아침을 위로하는 국밥 한 그릇을 내어준다. 새벽부터 일을 하는 일꾼들에게 머슴해장국은 따뜻한 보금자리다.

때마다 돌아오는 선거철에는 정당을 막론하고 온갖 후보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밤낮없는 선거운동에 지친 후보와 수행원이 주로 아침을 먹으러 머슴해장국을 찾는다. 그러다 보니 도봉구의 유명한 정치인들은 모두 이 식당을 거쳐 갔다. 구청장을 비롯해 국회의원, 시의원, 구의원까지 한 번쯤은 이 식당에서 아침을 들었다. 거기에 구청 관계자나 지역 유지까지 도봉에서 이름난 사람들은 모두 머슴해장국의 손님인 것이다. 사장님께 유명인 많이 알고 계셔서 좋으시겠다고 여쭸다가 손님은 손님이지 다른 마음이 섞이면 안돼.’하고 쓴소리만 들었다.

사진3. 머슴해장국 사장님

사골머슴해장국과 북어국

 

머슴해장국 메뉴판의 가장 첫머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해장국이다. 이집 해장국은 선지해장국인데 잘 삶아낸 선지에 슴슴한 국물이 인상적이다. 요새 해장국은 그 종류를 막론하고 자극적인 맛이 많다. 짜거나 맵고 고기가 들어가 기름 가득한 맛은 입에선 즐거울지 몰라도 해장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해장은 말 그대로 속을 푸는 것이다. 어제의 음주로 지친 속을 달랠 때는 입에 좋은 맛보다는 속에 좋은 맛이 필요하다.

이집 해장국의 맛이 딱 그렇다. 첫 맛의 느낌을 단적으로 말하자면 짜지 않다. 자극적인 해장국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싱겁게 느낄 수도 있는 맛은 함께 나오는 새우젓으로 기호에 따라 염도를 맞출 수 있다. 하지만 별다르게 양념하지 말고 그냥 먹어보기를 권한다. 싱거운 국물은 먹다보면 오히려 부담 없이 적절한 편이고 짠 맛이 덜하다 보니 들어간 재료의 맛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속이 편하다.

이사하기 전 머슴해장국의 이름은 사골머슴해장국이다. 이름에서 느껴지듯 사골국물은 사장님의 자부심이다. 해장국에서 느껴지는 구수한 사골향은 다른 재료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함께 나오는 공깃밥을 국물에 말아먹으면 또 맛이 달라진다. 밥이 국물에 풀어지면서 내는 맛은 한층 더 부드럽다.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이 있듯 밥이 추가된 해장국은 비로소 국밥으로서 완전해진다. 먹다보면 왜 사람들이 이 식당에 아침을 먹으러 오는지 이해가 된다.

사진4. 머슴해장국 메뉴

두 번째 메뉴는 북어국이다. 다른 걸 다 제쳐두고 요새 북어국 먹기가 참 힘들다. 잊을만하면 뉴스나 신문을 통해 들려오는 동해안에 더 이상 명태가 없다는 소식은 마음을 울적하게 한다. 그 옛날 아버지가 소주 한 잔 거나하게 하시고 퇴근하면 다음날 아침에는 약속한 듯 콩나물국이나 북어국이 올라오곤 했다.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에 북어는 식탁 위에서 고기반찬의 역할을 하는 주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국뿐 아니라 조림이나 무침 등 다양하게 요리되었던 북어는 추억이 가득한 식재료다.

북어는 도봉구와도 관계가 깊다. 도봉구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봉옛길(경흥대로)에 대해서는 이미 설명했었다. 이 경흥대로에서 주로 교역되던 물품 중 하나가 바로 북어다. 이름부터 북녘 북자가 들어가는 북어는 한반도 동북지역의 주산물이었다. 조선시대 상인들은 북어를 가득 싣고 경흥대로를 따라 한양으로 향했다. 유교 국가였던 조선, 사대부 가문이 제사를 지낼 때에는 북어가 꼭 필요했기 때문에 한양의 북어 수요는 매우 높았다. 즉 북어는 장사가 되는 품목이었다.

뽀얀 국물에 하얀 두부, 노란 계란과 초록 대파가 어우러진 색감은 입맛을 돋운다. 먹기 좋은 크기로 손질한 북어를 들기름에 볶은 후 국물을 낸다. 우러난 국물에 두부를 넣고 계란을 뿌리고 송송 썬 대파로 마무리한다. 다소 크게 느껴질 수 있는 그릇에 나오는 북어국은 뭐라도 하나 더 챙겨주고 싶어하는 시골집 할머니의 인심 같다. 국의 맛은 어려서부터 먹으며 자랐던 그 북어국의 맛이다. 구수하고 시원한 북어의 맛과 들기름 향이 조화롭다. 부드럽게 씹히는 계란과 두부 역시 고소하고, 익은 대파의 달지만 알싸한 향이 맛을 완성한다. 원래도 맛있는 국이지만 어제 술을 한 잔 했다면 더 맛있는 북어국은 이 식당에 온 손님들에게 해장국과 북어국 중 오늘은 뭘 먹을지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한다.

사진5. 머슴해장국의 북어국

어머니가 해주신 그리운 집밥의 맛

 

머슴해장국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반찬이다. 보통 해장국집에 가서 주문을 하면 깍두기나 김치 그리고 양파나 고추 등 찍어먹을 거리가 나오는 게 고작이다. 하지만 머슴해장국에서 어떤 메뉴를 주문하든 기대 이상의 반찬이 나온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으면 그날그날 사장님이 좋은 재료를 사다가 직접 만든 밑반찬 대여섯 가지가 깔리는데 하나도 빼놓지 않고 맛이 좋다. 한 점씩 집어먹다 보면 기다리는 시간도 금방이다.

반찬은 우리나라 식문화의 특징이다. 다른 나라에도 물론 밥과 곁들여 먹는 음식이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소량의 여러 가지 찬을 먹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메인 요리에 밥을 곁들여 먹는 것이 주된 식사방식이다. 하지만 한국은 아무리 고급 요리를 먹는다 할지라도 반찬이 없으면 상이 부실하다고 한다. 식탁 가운데 놓인 반찬은 그 식탁에 앉아있는 모든 이들의 것이다. 특별한 누구의 소유가 아닌 모두가 나눠먹는 반찬은 한국 식문화의 독특한 점이다.

반찬에 대한 인심도 후하다. 우리나라 식당에서 반찬 좀 더 달라고 하면 흔쾌히 더 가져다준다. 추가 반찬에 대한 요금이나 제한이 있는 경우도 거의 없다. 심지어는 직접 맘껏 가져다 먹으라고 반찬통을 열어 놓기도 한다. 해놓은 반찬이 다 떨어져 주지 못할지언정 있는데 안줬다가는 야박하다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단골손님에게는 다른 손님에게 내가지 않는 특별한 반찬을 서비스로 주는 식당도 있다. 하나하나의 맛이야 어떻든 반찬을 통해 손님은 대접받았다고 느낀다. 손님을 향한 사장님의 정이 반찬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다.

하지만 요새는 이런 반찬을 만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사람들의 식생활이 점차 서구화되는 요즘,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래도 막상 식탁에서 반찬을 만나지 못하면 뭔가 아쉽다. ‘차린 게 없어도 많이 드세요하면서도 이것저것 다양하게 내어놓는 게 우리 정선데, 이제는 정말 차린 게 없다. 그 옛날 정말 흔하게 먹던 제철 나물도 이제는 쉽게 만날 수가 없다. 바뀌어 버린 식문화에 그 옛날 할머니가 차려주던 밥상이 그리워지는 건 나만 그런 것일까.

그래서 머슴해장국의 반찬에서는 정이 느껴진다. 성인이 되어 부모님 곁에서 점점 멀어지다보니 어머니가 해주시던 집밥을 먹을 일도 덩달아 줄었다. 나이가 들어 가정을 이룬 후에도 맞벌이로 인해 밖에서 사먹는 게 익숙하다. 점점 그렇게 변해가는 사회 속에서 집밥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간다. 조미료 가득한 식탁을 매일같이 접하면서 옛날에 먹었던 자연스러운 맛이 떠오르는 건 당연하다. 이집 반찬에는 그런 자연스러움이 담겨 있다. 머슴해장국처럼 분명히 식당에서 사먹는 음식인데도 집밥의 느낌이 나는 음식은 찾기 드물다.

 

항상 내 가족이 먹는다고 생각하고 음식을 해요.’

사장님은 매일같이 새벽 2시면 경동시장으로 간다. 좋은 재료를 직접 눈으로 보고 고르기 위해서다. 가서도 노점에서는 절대로 물건을 사지 않는다. 정식으로 가게를 내고 장사를 하는 곳만이 좋은 식재료를 판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주로 거래하는 좋은 가게도 많이 생겼다. 사장님이 시장에 나가면 그쪽에서 먼저 좋은 재료를 내놓는다. 오랜 시간 변함없이 좋은 맛을 유지하는 비결은 좋은 재료에 있었다.

그렇게 직접 사온 재료로 힘들게 요리를 해도 이상하다 싶으면 일말의 고민도 없이 바로 폐기한다. 사장님의 대쪽같은 성격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모든 일을 직접 하지 않으면 성에 안차는 사장님은 음식에 쓰이는 모든 양념을 직접 하신다. ‘전라도 음식이 맛있는 이유는 양념을 아끼지 않는데 있다며 아까운 마음 없이 뭐든지 듬뿍듬뿍 넣어 만든 음식이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머슴해장국의 음식에서 인공적인 맛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양념 하나하나까지 모두 손수 하시는 사장님 덕분이었다.

머슴해장국의 한 상은 이런 번거로움의 산물이다. 맛도 좋고 손님도 많으니 가게를 확장할 법도 하건만 사장님은 절대 안 된다고 손사래를 친다. 지금보다 가게가 넓어지면 손에서 벗어난다는 게 그 이유다. 딱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 정도만 하고 싶다는 사장님을 보면서 장인정신이 느껴졌다. 이 나이에 돈 많이 버는 것보다 하던 일 잘 하면서 잘 사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사장님의 신념을 존경한다. 이런 사장님이 운영하는 식당, 모든 음식이 맛있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아무쪼록 사장님이 건강하시어 두고두고 머슴해장국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