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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의 맛 (해장국편)

도봉시장의 추억, 전남집과 자매집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2. 26. 16:17

도봉시장의 추억, 전남집과 자매집

도봉시장을 아시나요?

 

도봉에는 여러 시장이 있다. 창동의 신창시장이나 방학동의 도깨비 시장처럼 아직까지 성업 중인 큰 규모의 시장은 다양한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제공한다. 이와 더불어 각 동에는 동네의 골목을 책임지는 작은 규모의 시장들도 여럿이다. 얼마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무대가 되었던 쌍문동의 백운시장이나 도봉옛길 인근에 위치한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신도봉시장이 그러하다. 여기 언급되지 않은 여러 시장과 지금은 사라져버린 시장까지 더하면 정말 많은 시장이 도봉구에 있었다. 도봉의 어느 곳에 살더라도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시장은 있었다.

이렇게 시장이 많았던 것은 도시화 산업화와 관계가 깊다. 전통시대의 사람들은 비록 거래가 있었다고는 하나 자급자족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딸을 낳으면 아버지가 집 뒷마당에 나무를 하나 심었다가 딸이 시집갈 때 그 나무로 가구를 만들어 보냈다는 이야기는 당시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일화다. 하지만 서울이 도시로서 성장하고 일거리를 찾아 서울에 온 사람들에게는 자급자족할 수 있는 충분한 면적이 허락되지 않았다. 농사를 지을 땅도 산나물을 캘 산도 도시에는 없었다. 노동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이 유일한 생존 방법이 된 도시에서 돈과 필요한 물건을 바꿀 수 있는 시장의 존재는 필수였다.

그렇게 서울 곳곳에는 수없이 많은 시장이 형성되었다. 인구 규모가 비교적 적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면적이 허락된 지방은 5일장처럼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이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었지만 인구가 밀집된 서울에는 맞지 않았다. 60년대 이후 서울 곳곳에서는 언제든 장을 볼 수 있는 골목 단위의 상설 시장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매일매일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장을 보는 어머니의 모습과 모자란 재료가 있으면 지폐 한 장 들고 심부름을 가던 모습은 그 당시에 익숙한 모습이었다.

도봉시장 역시 그렇게 생겨난 시장이었다. 1968년에 태어난 도봉시장은 인근 시장 중 최초로 설립된 전통시장이라고 한다. 도봉2동 중랑천 변에 있었던 도봉시장은 지역주민이 살아가는 터전이었다. 더구나 인근에 도봉역이 생기면서 시장은 더욱 번성했다. 전성기에는 90여 개의 상점이 도봉시장에 자리하고 있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1990년대까지 차근차근 성장한 도봉시장의 미래는 밝아보였다.

하지만 도봉시장을 비롯한 전통시장은 위축되기 시작했다. 그 배경으로는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냉장고, 자동차의 보급과 대형마트의 등장이었다. 냉장고가 가정에 보급되기 이전에는 그때그때 필요한 물건을 시장에서 사는 것이 일반적인 소비 형태였다. 아무리 장을 보지 않더라도 2~3일에는 한 번 시장에 나가야 생활이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냉장고가 보급되며 한 번에 사는 양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남은 것들은 모두 냉장고에 넣어버리면 그만이었다. 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그 수가 조금씩 줄어갔다.

자동차의 보급과 대형마트의 등장은 전통시장의 본격적인 쇠락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자동차를 소유한 집들이 많아지고 사람들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자 동네 시장은 사람들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조금만 더 나가면 더욱 큰 규모의 좋은 시장이 있다는 사실은 골목 시장에게는 큰 타격이었다. 더불어 거대한 규모의 건물에 쾌적한 소비가 가능한 대형마트의 등장은 전통시장의 성장에 종지부를 찍었다.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고 대형마트에 가서 온갖 물건을 많이 산 다음 냉장고에 넣었다. 이 과정에서 골목 시장이 설 자리는 없었다.

결국 도봉시장은 다른 시장들과 함께 점차 쇠락해갔다. 시장을 떠나는 사람이 늘어났고 상점도 점차 줄었다. 나름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다시 도봉시장을 찾도록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거나 보다 쾌적한 소비 환경 조성을 위해 재건축이 시도되기도 했지만 큰 흐름을 돌이키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도봉시장은 도봉사람의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시장이 품고 있던 것들 역시 본래의 자리를 잃고 흩어졌지만 조금만 눈 여겨 본다면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아직 도봉을 떠나지 않은 전남집과 자매집은 도봉시장의 흩어진 조각들이다.

순대국 먹으러 갑시다

 

전남집과 자매집은 도봉동에 자리하고 있는 순대국집이다. 찾아가는 길을 한 곳씩 소개하자면 우선 전남집은 지하철 도봉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 나온 후 쭉 직진하다가 처음 만나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된다. 그렇게 다시 걸어가다보면 길 건너편에 있는 전남집을 찾을 수 있다. 자매집은 버스를 타고 도봉로를 따라 올라가다가 신도봉사거리 정류장에서 내려 동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넌 후 철길 아래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직진하면 만날 수 있다. 대중교통을 타고 갈 수 있는 방법을 글로 설명하다보니 그렇지만 마들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위치해있는 두 식당은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인접해있다.

두 식당은 지금도 가깝지만 옛날에는 더 가까웠었다. 지금의 자리가 아닌 도봉시장에 있던 시절엔 바로 옆에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주 메뉴가 명시된 다른 식당의 이름과 달리 ○○집이라는 이름도 범상치 않다. 보통 이런 이름은 자부심의 상징인 경우가 많다. 오랜 시간 이어온 업력으로 누구나 그 집이 뭘 파는지 알고 있다는 걸 전제한 것이다. 또한 이런 이름은 특정한 대표 상품을 파는 가게들이 집적되어 있을 때 사용한다. 바닷가의 수산시장이나 특정 음식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먹자골목을 떠올리면 쉽다. 전남집과 자매집은 이 두 가지 요건, 자부심과 대표성에 모두 해당하는 집이다.

옛날 도봉시장은 순대국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인근 지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순대국 먹으러 갑시다.’하면 기사님들이 알아서 도봉시장에 내려 줄 정도였다고 하니 그 유명세를 짐작해볼 수 있다. 한 때는 건물 하나에 9개의 순대국집이 있었는데 이렇게 많은 순대국집에 모두 사람이 가득했다고 하니 단순히 동네 장사의 규모는 아니었던 거다. 실제로 당시 찾아오는 손님 중 70~80%에 해당하는 비율이 외지인이라고 했다. 도시화에 따라 도봉에 이주해 온 사람들, 도봉산을 등산하기 위해 도봉을 찾은 사람들, 중랑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도봉시장의 순대국을 찾았다. 바야흐로 도봉시장 순대국의 전성기였다.

하지만 도봉시장의 쇠락에서 순대국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사실 물건이야 더 좋은 곳에서 살 수 있다고 해도 맛집은 내 입맛에 맞는 곳을 굳이 찾아가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따라서 도봉시장의 순대국은 기운을 잃어가는 시장의 마지막 동력이었다. 시장은 대형마트에 밀려 사람이 점차 줄어갔지만 식사시간이 되면 순대국을 먹으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주말이면 더 많은 사람들이 도봉시장을 찾았다. 하지만 이런 순대국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도봉시장은 사라졌고 시장 일대는 재개발 이야기에 술렁였다. 전남집과 자매집은 정들었던 삶의 터전을 떠나야했다.

최후의 순간까지 도봉시장을 지켰던 순대국집은 전남집과 자매집 그리고 할매집이었다. 그리고 결국 20225월 이 세 식당은 정들었던 도봉시장과 이별하고 도봉구 곳곳으로 흩어졌다. 각 식당이 가진 저력이 대단해서였을까. 이 식당들은 이전한 곳에서도 성업 중이다. 장소와 외관은 변했지만 그래도 찾아볼 수 있는 옛 흔적들이 있다. 그 시절의 사진, 도봉시장에서 사용했던 입간판 등은 단골손님이 추억을 소환하기에 충분한 재료다. 그리고 그 추억의 가장 핵심에 있는 은 한 치의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이제 한 집씩 그 맛을 따라가보자.

 

내장에 대한 자신감, 전남집

 

전남집은 1980년에 개업했다. 현재 사장님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부모님께서 시작한 이 식당은 부모님 고향이 순천, 나주였기 때문에 전남집으로 이름 했다. 4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도봉시장에서 장사를 이어 온 전남집은 시장을 대표하는 순대국집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단골도 많아 도봉구 순대국 맛집으로 항상 꼽히는 집이기도 하고 유명 연예인들이 찾기도 하는 식당이다. 오래도록 일 하신 부모님을 대신해 현재는 아들 사장님이 가업을 이어 운영하고 있다.

순대국을 주문하고 조금만 기다리면 음식이 나온다. 뚝배기에 팔팔 끓여 나오는 순대국과 반찬으로 나오는 김치, 깍두기 그리고 새우젓과 양파 등 외관상으로는 다른 순대국집과 별 차이가 없다. 다만 순대국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금세 알아챌 수 있는 차이가 있다. 바로 순대국의 내용이다. 뚝배기를 조금만 뒤적거려보면 머릿고기보다 내장이 훨씬 많이 들어가 있다. 보통 내장은 머릿고기보다 단가가 더 비쌀뿐더러 손질이 번거로워 조금씩만 들어가기 마련이다. 근데 내장 가득한 순대국이라니 왠지 소소한 사치를 하는 마음이 든다.

내장은 다루기가 녹록치 않은 부위다. 아무리 시간을 들여 씻어낸다 해도 기술이 없으면 특유의 잡내를 잡을 수 없다. 기술이 있다고 해도 꼼꼼히 하나하나 공들여 손질해야 하는 내장은 기술과 정성이 모두 필요한 부위인 것이다. 특유의 기름진 맛으로 사람들이 좋아하긴 하지만 만약 옛날부터 우리가 풍족했더라면 과연 이 번거로움을 견뎌내고 내장을 먹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대충 적당히 넘어갈 수도 없다. 잘못 손질된 내장은 음식 전체를 망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장은 온갖 노력을 들여 그 맛을 최대한 끌어내야만 하는 원석과도 같다.

전남집의 사장님은 매일 새벽에 가게에 나와 내장을 손질한다. 무더운 여름에도 매서운 추위의 겨울에도 하루도 거르는 일이 없다. 내장을 비롯한 고기는 마장동에서 최상급으로 가져오는데 가게에서 추가 세척 및 손질 작업을 한다. 귀찮고 힘든 일임에도 무릅쓰는 이유는 그것이 맛의 비결이기 때문이다. 과하게 기름지지 않고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내기 위해 내장에 붙은 기름은 모두 제거한다. 가게를 연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40여 년 동안 거르지 않는 성스러운 의식 같은 일. 사장님의 신념이자 손님과의 약속이다.

그렇게 만든 순대국의 국물을 마셔보니 그 맛이 독특하다. 다른 순대국처럼 묵직하고 기름진 국물이 아니라 맑은 맛이다. 흡사 순대국이 아니라 설렁탕을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장이 많이 들어가서 더 묵직하고 쿰쿰한 느낌이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펼쳐지는 전혀 다른 맛이 놀랍다. 아마도 사장님이 손수 모든 기름을 다 없앤 내장 덕분이지 않을까. 뚝배기에 충분히 올라가 있는 파는 고기 국물의 맛을 더한다.

국물의 맛을 봤으면 건더기 차례다. 한 점 집어 먹으면 내장 특유의 고소하게 기름진 맛이 입맛에 감돈다. 국물에서 예상했던 대로 내장하면 생각나는 묵직한 맛보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맛이다. 좋은 술안주로도 손색이 없는 내장은 한 점 먹다보면 자꾸 젓가락이 가는 매력이 있다. 식당에는 순대국 한 그릇씩 시켜놓고 이른 시간부터 소주 한 잔 하시는 어르신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왠지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 맛있는 내장을 먹고 메뉴판을 다시 봤다. 다행이도 전골이나 볶음 등 내장 메뉴가 가득하니 저녁 시간에 술 한 잔 하러 와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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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예전 그 자리가 아니어도 손님이 찾아오는 게 이해가 됐다. 이 집만의 특별한 맛은 대체할 무언가를 찾기가 쉽지 않다. 처음 가게를 이어받으면서 이래저래 변화를 생각했던 사장님은 금세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했다. 가게를 찾는 단골손님, 그리고 부모님이 일평생을 들여 가꿔놓은 맛 앞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보다 그 본질을 계승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지금도 식당의 단골손님을 보며 혹여 부모님의 그 맛을 훼손할까 노심초사한다는 사장님은 맛의 전승을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 했다. 이전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던 부모님의 고집, 그 속내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전남집을 사랑하는 단골손님 덕분이었다.

순대국하면 떠오르는 그 맛, 자매집

 

다음은 자매집으로 가보자. 2002년 도봉시장에 처음 문을 연 자매집은 순대국과 곱창을 주력으로 하는 식당이었다. 그로부터 20여 년 넘게 도봉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자매집은 20225월 마지막까지 그 자리를 지키다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 자매집 역시 단골손님이 많은데, 이전한 후에 손님이 줄었다는 사장님의 말씀이 엄살로 느껴질 만큼 식사시간이면 수많은 손님으로 북적인다. 비록 공간은 바뀌었어도 식당이 가진 저력은 어디가지 않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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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집의 순대국은 하나다. 양 차이에 따라 순대국과 특순대국으로 나뉠 뿐 차이가 없다. 주문하면 얼마 되지 않아 뚝배기에 팔팔 끓는 순대국이 나오는데 그 냄새부터 이 집은 맛집이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보글보글 끓는 뽀얀 국물과 듬뿍 올려진 파, 그리고 한 스푼 무심한 듯 뿌려진 들깨가루가 우리가 익히 보고 먹고 자란 그 순대국의 모습이다. 순대는 당면 순대가 들어가 있고 뒤적이면 온갖 내장과 머릿고기가 함께 들어있다.

다른 집과 비교하면 자매집 역시 내장이 많이 들어가 있다. 앞서도 말했듯 내장은 머리고기보다 비싸서 내장을 듬뿍 넣은 순대국은 단가가 높게 올라가 버린다. 그럼에도 다른 집과 비슷한 가격의 순대국이 어떻게 유지되는지 여쭤보니 역시나 사장님의 노력이 그 뒤에 있었다. 사장님은 마장동에서 고기를 가져오는데 결제일을 엄수하는 대신 좋은 재료를 보다 저렴한 가격에 제공받는다고 한다. 무심한 듯 얘기하시지만 장사를 하다보면 저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알 수 있다. 더불어 가져온 재료는 사장님이 직접 손질하기 때문에 지금의 가격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장이 듬뿍 들어간 순대국의 맛은 어떨까. 앞서 전남집의 맛을 보고난 터라 비슷한 맛을 예상하고 먹었지만 전혀 다른 맛이었다. 내장 특유의 기름지고 묵직한 국물은 이게 바로 순대국이지.’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맛이다. 육향이 충분하다 못해 넘쳐흐르는 국물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적절히 들어간 마늘향이 느끼함을 잡아주고 정말 내가 고기를 먹고 있구나 싶은 맛이 직관적으로 혀에 느껴지는 순대국. 어설픈 순대국집이나 시중에 판매되는 레토르트 순대국에서 절대로 느낄 수 없는 순대국 본연의 맛 그대로다. ‘순대국에서 순대국 맛이 난다라는 문장이 얼마나 우스운 지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사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 명제를 충족시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우리는 안다.

자매집의 순대국은 힘이 넘치는 맛이다. 녹진한 국물은 혀에 감기는 순간부터 심한 중독성이 있다. 한 숟가락이 다음 숟가락을 부르게 되는 묘한 매력. 자칫 느끼할 수도 있는 내장의 기름기는 사장님의 정성 어린 손질로 정제된다. 그럼에도 힘이 넘치는 육향은 후추로 잡는다. 실제로 자매집 순대국의 특징 중 하나는 후추다. 먹다보면 화하게 느껴질 정도로 들어가 있는 후추는 고기와 내장이 듬뿍 들어간 국물의 풍미를 한껏 끌어올려준다. 이런 국물을 먹고 있자니 과장 좀 보태서 말하자면 왜 대항해시대에 서양인들이 후추를 얻으러 바다를 건넜는지 이해가 될 정도다.

 

순대국 안에 들어가 있는 내장 맛이야 설명할 필요가 없다. 잘 손질된 내장은 국물만큼이나 가득한 육향이 특징이다. 쫄깃하게 씹히는 내장과 부드러운 고기는 역시나 술 한 잔 생각나는 맛이다. 느끼함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옆에 있는 양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 햇고춧가루를 사용한 양념은 잘 말린 태양초의 맛이 난다. 기름진 국물에는 이런 양념이 참 잘 어울린다. 뜨거운 국물에 한 땀 빼고 나면 속이 풀린다. 해장음식의 본질이란 이런 게 아닐까.

같은 곳에 있었지만 다른 맛

 

전남집과 자매집은 도봉시장의 순대국을 대표하는 두 집이었다. 그래서 직접 먹어보기 전에는 두 식당의 맛이 이렇게 다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좋은 재료를 쓰고 내장을 많이 쓴다는 것도 사장님이 직접 하나하나 손질하는 것까지 모두 똑같다. 근데 순대국의 맛의 차이는 확연하다. 우열을 가릴 수 없이 각자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 두 식당의 순대국은 같은 순대국인데도 따로따로 생각나는 맛이다.

먹는 사람마다 느낌이 다를 것이라 함부로 이야기가 조심스럽지만 두 집의 맛을 표현하면 이렇다. 전남집의 순대국은 잘 정제된 맛이다. 추구하는 맛을 위해 갈고 닦은 재료들은 각각의 자리에서 딱 적절한 정도의 역할을 수행하는 잘 훈련된 팀 같다. 목표달성을 위해 모든 재료가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느낌. 그렇게 완성된 맛은 얄미울 정도로 깔끔하다. 순대국이 이럴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익숙하지만 다른 맛은 전남집만의 매력이다.

자매집의 순대국은 힘이 넘친다. 정제되어 있기보다는 분출하는 것에 가까운 맛은 모든 재료가 각자 잠재된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내고 있는 것 같다. 스타플레이어가 모여 만든 드림팀 같다고나 할까. 각기 다른 곳으로 튀어나갈 수 있는 야성은 후추가 잡아준다. 느낄 수 있는 맛도 다채롭다. 기름진 맛, 고소한 맛, 향신료의 맛 등 다양한 맛이 모여있는 순대국은 우리가 익히 먹어온 그 맛이다. 순대국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맛.

각기 다른 맛을 가진 두 식당의 순대국을 보고 있자면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을 보는 것 같다. 두 탑은 단순함과 화려함, 를 추구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그 궁극적인 목적지는 아름다움으로 귀결된다. 전남집과 자매집의 순대국도 그렇다. 정제하거나 분출하거나, 방식은 다르지만 그 궁극적인 목적지는 좋은 맛에 대한 추구에 있다. 두 집의 순대국을 맛보면서 식사에 대한 즐거운 선택지가 늘어 흐뭇하다. 지금은 사라진 도봉시장이 두 집을 통해서 도봉사람의 기억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전남집과 자매집

1) 위치

전남집: 서울특별시 도봉구 마들로 732

자매집: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로15622

 

2) 찾아가는 길

전남집

지하철: 도봉역 2번 출구에서 도보 11

버스: 서울북부지방법원·검찰청·성우아파트에서 도보 2

146, 1127, 8146, 도봉09

 

자매집

지하철: 방학역 1번 출구에서 도보 8

버스: 신도봉사거리에서 도보 4

36, 56, 72, 72-3, 118, 133, 106, 107, 140, 141, 142, 150, 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