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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대한 내 생각

위기지학 爲己之學의 詩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2. 16. 14:20

위기지학 爲己之學의 詩

 

내게 던지는 가장 어려운 질문은 ‘왜 시를 쓰는가?’이다. 차라리 ‘왜 사냐?’ 묻는다면 사소하기는 하나 절실한 많은 이유를 들 수 있겠는데, ‘왜 시를 쓰는가?’의 질문이야말로 내가 평생 스스로에게 던진 풀리지 않는 화두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무수히 많은 시의 정의를 넘어서는 나만의 정의를 찾기 위해서? 그리하여 현상을 넘어서서 숨은 듯 존재하고 있는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서?

 

아니다.

 

내게는 타고난 문재文才도 이 세상에 대한 강열한 소명의식도 없다. 단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먹고 사는 일, 사람들과의 불화로부터 빚어지는 아름답지 않은 세상 풍경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뿐이고, 존재하지 않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간절히 염원하는 유토피아를 향해 나 자신의 무력함과 왜소함을 고백하고자 하는 일이 내 시쓰기의 전모일 뿐이다.

 

거슬러 올라가면『활』(1974)이라는,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삼인시집으로부터 출발하여 기성문단에 발을 들여놓은 1980년대까지 고고孤高하고 청아한 시인의 삶을 추구해 왔다. 힘든 역경 속에서도 게으르지 않게 시집을 펴내게 된 것도 입신양명과는 거리가 먼, 자기 수양의 업이 내가 걸어가야 할 길임을 깨달은 내게 주는 작은 선물이기에 소중함을 느낀다.

 

우리는 아직도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시와 시인의 관계에 깊은 관심을 가진다. 비평의 영역에서는 작품의 수월성을 따지는 것만으로 충분한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시와 그 시를 쓴 시인의 생활영역을 탐문하는 일에 관심을 가진다. 이를테면 후일담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한 개인의 언행일치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시인이라는 칭호는 무거운 함의를 지닌다. 교언영색 뒤에 숨어 있는 저열한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보여주는 것이 시의 본령이라고 감히 주장하고 싶어진다.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 부조리가 판치는 더러운 세상에 맞서는 일갈이, 시인 자신의 삶을 추동하는 힘이 되지 못한다면 한낱 말장난의 유희에 그치지 않겠는가!

 

공자가 이르기를 옛사람들은 오로지 자신의 극기를 위해 학문에 힘썼는데 요즘 사람들은 오직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출세하는 일에 힘쓴다고 하였다.(古之學者為己,今之學者爲人). 인생에 완성이 없으므로 당연히 시 쓰기도 멈춤이 없다. 완성이 없어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개별자인 나는 고독함이 마땅할 뿐, 나를 알아주지 않는데서 오는 외로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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