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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를 쓰는 이유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8. 27. 23:34

내가 시를 쓰는 이유

 

나호열

 

 

‘달필과 달변으로 뭇 사람을 현혹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라고 가까운 시인은 내게 말했다. 그 말은 지독한 비아냥일 수 있지만, 나는 그 말을 정수리에 깊이 꽂힌 비수로 새겨두고 아파하면서 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누구에게도 문학에 자질이 있다는 평가를 받은 적이 없다. 또한 글로서 대성하겠다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30년 동안 시를 쓰고 있고, 시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문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풍부한 지식을 갖춘 학자들이 반드시 인격적으로 훌륭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지식을 전수해야하는 사람들에게 달변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정해진 시간 안에 가르쳐야 할 내용을 효율적으로 학습자에게 전달하는 능력은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문학에 입문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알기 쉬운 강의를 진행하기 위해서 노심초사했다. 어려운 내용을 어렵게 전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염화시중의 미소 하나로도 석가釋迦와 가섭은 불법佛法을 주고 받았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들에게 가능한 일인가?

 

위에서 언급한 달필은 아마도 글은 그럴싸한데 사람 그릇은 그렇지 않다는 말일 것이다. 나는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일은 가급적 피하면서 살아왔다. 불우한 젊은 날을 보냈고, 지금도 넉넉하지 못한 생활에 부대끼고는 있지만 남의 생활을 엿보는 일은 나를 더욱 불행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15년이 넘는 문학지망생의 시련을 겪으며 늦깍이의 등단을 거쳤고, 변변하지 못한 작품 활동으로 그 흔한 상 하나 받지 못하며 문단의 언저리를 맴돌았지만, 그것이 내 정신의 미성숙, 또는 문재文才의 부족에서 비롯되는 아둔함으로 알았지, 문단의 구조적 패거리 문학의 횡행, 상업주의의 추수追隨 등으로 자신을 변호한 적 없다. 그 대신 나는 끊임없이 습작을 게을리 하지 않고, 문학의 비전공자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창피를 무릅쓰고 문학 공부에 매달렸다. 그리하여 겨우 도달한 지점이 바로 이 곳, 겨우 어쩌다 발표하는 작품들이 시인일만 하다는 평을 들을 만큼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문단을 뒤흔들만한, 이 세계의 통일적 구조나, 미래를 예견하는 견자見者의 변辯을 토하지 못하였으므로 내가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고 험하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문학에의 입문을 권유하거나 스스로 문재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대학신문에 되먹지 않은 꽁트를 발표함으로서 담배 값이나 벌어볼까 하는 꼼수로 시작한 글쓰기가 시인으로서 행세하는 첫걸음이 되었을 뿐이다.

 

빈한하였으므로 또래의 대학생들이 향유하는 놀이문화에 합류할 수 없었고, 돈 들지 않고 나를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을 뿐이다. -나는 아직도 트럼프나 화투 놀이를 할 줄 모른다- 문학의 기능을 배설排泄의 기쁨으로, 또는 정화淨化의 능력으로 주장하는 바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글이 되고, 안되고의 문제는 나에게 당면한 문제가 아니었다. 글을 씀으로서 나는 나와 대화할 수 있는 통로를 갖게 된 것이었고, 작고한 국문과의 은사는 나에게 소설 쓰기를 권유했음에도 굳이 시인의 길을 걷겠다고 작정한 것도 소설보다 시가 가지고 있는 정화와, 배설의 효용에 매력을 더 느끼고 있었는지 모른다.

 

사회적인 불평등과 모순에 가득 찬 주위의 환경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신적 귀족주의에 함몰되어 그 당시 젊은이들이 가졌던 사회에의 울분과 현실 참여 의식은 희박했다. 밥을 굶으면서도 고대광실을 들락거리는 꿈을 신기루로 안고 살았던 것이다. 그것이 오늘에 되비쳐보면 시인으로서의 치명적인 결점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 대신 나는 시인이 되는 꿈을 안고 사는 것이 아니라 시를 꿈으로 여기며 기나긴 습작시절을 보냄으로서 참고 견디는 일, 물질적 풍요와 무형의 가치를 가늠하는 일, 스스로 버려야 얻어지는 생명의 기쁨을 소중히 배웠다고 생각한다.

 

나는 수 없이 많은 시 같지 않은 시를 써 왔다. 생활이 주는 고단함, 좌절을 시에다 버무리면서 뾰족하고 단단하며 관용에 인색한 나의 심성이 급격히 완화되었음을 나는 감사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시인의 진정성眞正性을 매우 소중히 여기는 편이다. 아무리 빼어난 시를 생산해도 그 시가 그 시를 생산한 시인의 삶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독자들은 쉽게 그 시인에 대해서 절망하게 될 것이다. 시만 좋으면 그만이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시를 하나의 향유하는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한 편의 작품을 부지불식간에 상품화하는 전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시인 또한 그러한 사태를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시는 좋은데 인간성은 그게 아니야!’ 순간 나는 절망에 빠져 버린다. 없는 탑이 아득히 부서져 내린다.

 

회사후소繪事後素와 교언영색巧言令色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나의 시 쓰기에 있어서 금과옥조金科玉條같은 논어의 구절이다. 훌륭한 인격을 갖추고 난 후에 글을 쓰자?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백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삶에 깨끗한 백지를 구하기는 너무 어렵다. 흙탕물 같은 심상을 맑게 한 후에?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훌륭한 화가나 문인은 더러워진 심상을 맑게 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여야 하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 질박質朴의 단계로 접어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문文이란 어차피 장식裝飾의 절차이다. 질박質朴과는 반대편에 있는 것이다. 교어영색巧言令色은 글을 출세의 도구로 생각하고 명예를 구하는 절차로 자신의 작품을 내보일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나는 독자들을 믿지 않는다. 독자들은 나의 작품만을 읽어야 할 권리와 의무가 없다. 더 좋은 작품과 더 좋은 작가들이 등장하면 그들은 기다리지 않고 그 곳으로 쏠려가 버리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인터넷의 발전은 독자들과 작가들이 좀 더 쉽게 가까이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 덕분에 나도 약간의 독자들을 가지게 되었고, 그 독자들의 일부분은 나와 시를 공부하는 관계를 맺기도 하였다. 나는 시인으로서의 자질과 품격을 그들에게 보여줌으로서 문학의 엄숙성과 존귀함을 일깨워주는데 힘을 기울였다.

 

나는 위대한 시인이 아니다. 나의 시로 남의 마음을 얻거나 움직이게 하고자 한 적이 없다. 나의 모든 일상사는 그리고 나의 모든 시의 소재素材는 인생의 궁극적인 본질本質과 그 본질의 아름다움에 향하여 있다. 나는 위대한 시인은 아니지만, 시인으로서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거나 일시적인 명예에 현혹되어 본 적이 없다.

 

달필達筆의 비수匕首는 가슴에 꽂혀 피를 흘리고 있다.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나는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본다. 나의 시는 단순히 자연을 탐미하고 예찬하는 시였나? 나의 시는 사랑의 황홀과 기쁨에 바쳐진 헌시였던가? 독자들이 바라마지 않던 정형화된 골동품화된 시이던가? 그로 인하여 나의 시를 흠모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욕망의 분출을 토로하며 그들을 농락하였는가?

 

나는 아직 걸어야 할 길이 멀었다고 다시 생각한다. 나의 시는 아직 내 몸에 관류하는 피의 총량이 아니며, 정신은 불순한 기류로 가득 차 있다. 교언영색으로 가득찬 시라면 마땅히 폐기처분해야 할 터!

 

나는 가슴에 꽂힌 비수를 성급히 뽑으려고 하지 않겠다. 비아냥과 멸시로 가득찬 언사를 던진 그 사람의 말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나는 위대한 시인이 아니므로 얼마든지 침묵하고 얼마든지 험로를 다시 걸을 수 있다.

 

* 오래 전『문학의 즐거움』이라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었다. 동일한 폼에 약 300명의 시인이 각자의 방을 가지고 활동을 했었다. 이 글은 그 사이트에 올렸던 글이다.

 

*문즐의 10만 번 째 시가 나의 시라는 확인에 몹시 부끄러워졌다. 화룡점정, 그 완성의 구두점은 훌륭한 다른 시인의 시로 채워져야 했다.

10만을 넘어 20만 편의 시를 향하여 가는 첫 걸음이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모국어를 사랑하는 오정방 시인의 시로 시작되었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면서 일전에 마음을 다잡으며 썼던 글을 올린다.

⊙ 발표문예지 : 문학의 즐거움

⊙ 수록시집명 :

⊙ 수록산문집 :

⊙ 수록동인집 :

⊙ 수상문학상 :

⊙ 발표일자 : 2002년07월 ⊙ 작품장르 : 시인의 수첩

⊙ 글 번 호 : 100222 ⊙ 조 회 수 : 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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