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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와 시집에 대한 평론

산다는 것 / 나호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11. 13. 16:22

산다는 것 / 나호열

집으로 돌아가는 촌로 부부를 태웠다. 직업이 뭐요? 학

교에서 학생들 가르칩니다. 아!. 그거 좋지. 난 배우는 사

람이요. 땡감만 열려 매년 골탕 먹이는 감나무한테. 삽질,

쇠스랑질에 돌만 솟아오르는 땅한테. 제멋대로 비 뿌리

고 제멋대로 비 거두어가는 하늘에......

옆에서 할머니가 거들었다. 소득 없는 일에 저렇게 매

달리는 법만 평생 배워야 소용없소. 거두어들일 줄 알아

야지.

논둑에 들깨가 한창이었다. 아, 저 깨들 좀 봐. 정말 잘

영글었네. 내 새끼들 같다니까. 올해 깨 심었는데 내 눈에

는 깨밖에 안 보여. 온통 깨밖에 없다니까. 말 못하는 저

것들도 사람 정성은 알지. 마음 좋게, 편하게 정성을 다하

면 보답을 한다니까, 아! 저 영근 깨들 좀 봐요, 저 주인

네 참 실한 사람이겠구먼.

 

산소 가는 길, 집도 보이지 않는 산길을 두 노인네 다시

터벅터벅 사라져 갔다.

[시인의 詩 읽기] 농사를 짓는 일은 사랑 아닌가요

노부부의 말씀이 한 권 짜리네요. 농사를 지으며 매번 허탕을 치는 자기 자신을 배우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또 잘 여물어가는 들깨를 보고 주인 참 실한 사람이겠다 말씀하시는 것도요. 우연히 마주친 두 분 말씀에는 우주의 기운이 가득합니다. 나호열 시인의 <산다는 것은>이라는 시에서 만난 한 장면입니다.

저도 가끔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커다란 말씀을 들을 때가 있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의 짧은 말 한마디가 머리를 치고 내려와 심장에 고일 때가 있습니다.

저는 지금 중국 칭다오의 문학 행사에 와 있는데 어제는 산책길에 너무나도 거대한 모란 나무를 봤습니다. 나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정도로 커다란 키와 덩치의 모란이었습니다. 큰 꽃 삼백송이가량을 매달고 있었고 작은 집의 작은 마당에 온몸을 다 드러내놓고 자신을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라도 늦게 그 나무를 마주쳤다면 저는 모란이 연주하는 교향곡의 클라이맥스를 놓치고 말았을 테죠.

마침 그때 노부부가 나와 작은 화분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이 모란의 나이를 물었습니다. 52년 되었다고 했습니다. 신혼 시절에 집을 꾸미며 작은 마당에 작게 심었을 거란 생각이 스쳤습니다. 얼마나 정성을 다했을까요? 얼마나 이 모란을 애지중지 아끼며 온 사랑을 다 주었을까요? 그것을 짐작하기 쉬운 것은 엄청난 크기의 모란 더미가 주는 압도적인 감흥에 다리의 힘이 풀릴 정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란향은 온 동네를 다 덮고도 남아서 두 노부부를 오래오래 덮어줄 것입니다. 농사를 짓는 일도 다, 사랑하는 일 아닌가요?

- 이병률 시인

/ 농민신문 20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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