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과 배경
누군가의 뒤에 서서 배경이 되는
그런 날이 있다
배롱나무는 풍경을 거느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경이 될 때 아름답다
강릉의 육백년 배롱나무는 오죽헌과 함께, 서천 문헌서원의 배롱나무는 영정각 뒤에서 여름을 꽃 피운다 어느덧 오죽헌이 되고 영정각이 되는 찰라 구례 화엄 산문의 배롱나무는 일주문과 어울리고 개심사 배롱나무는 연지에 붉은 꽃잎으로 물들일 때 아름답다 피아골 연곡사 배롱나무는 가파르지 않은 돌계단과 단짝이고 담양의 배롱나무는 명옥헌을 가슴으로 숨길 듯 감싸 안아 푸근하다
여름 한철 뙤약볕
백일을 피면 지고 지면 또 피는
배롱나무 한 그루면 온 세상이 족하여
그렇게 슬그머니 누군가의 뒤에 서는 일은
은은하게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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