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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 (2021.12)

가벼워지기 위한 두 가지 방법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1. 28. 17:28

가벼워지기 위한 두 가지 방법

 

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

 

1.들어가며

 

우리는 모두 무게에 짓눌리며 살고 있다. 고통도 슬픔도 해야 할 일도 모두 무거운 중량으로 우리를 압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 이 무거움을 늘리며 살고 있다. 더 많은 재산을 쌓으며 더 무거운 차를 구입하고 더 많은 관계를 만들어 관계 속의 고통을 가중 시킨다.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쌓아두고 더 높은 지위의 무게를 가져야 더 큰 행복과 그 행복을 위한 능력을 얻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불행은 이 무게로부터 온다. 이 무게를 얻기 위한 인간의 욕망이 세상을 무겁게 만들고 우리를 분노와 고통의 무게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나호열의 시는 가볍다. 말에 말을 덧붙이는 중층의 언어의 두께도, 심오한 의미의 무게도 담지 않으려고 한다. 아니 가볍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 그의 시들은 가벼워져 가는 언어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아이러니한 힘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그의 시어들은 없어진 무게를 가지고 있다.

 

2. 날개를 달아 가벼워지기

 

나호열 시인의 시에서 인간은 무게에 짓눌려 살고 있다. 다음 시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저 멀리

한 마리 학이 앉아 있는 듯

가까이 다가가면

서로 포근히 기대어

사이 시옷

사람(人)들이네

 

흙이 물과 불이 만나 이룩한

우주를 향해 펼친 날개

사이시옷의 물결을 보네

- 「사이시옷」 전문

 

“기와를 노래함”이라는 부제가 달린 작품이다. 이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시인은 포개어진 기와를 보고 사람들이 사는 세상의 모습 떠올린다. 그것은 기와의 무게처럼 서로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시인은 그 무게에 짓눌린 모습에서 “한 마리 학이 앉아” 있는 형상을 보고 “우주를 향해 펼친 날개”를 상상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켜켜히 쌓여 서로의 무게를 감내하며 오래된 기와처럼 낡아가고 있다. 이 시에서는 “ㅅ”이 시의 정서를 표현하는 음성상징으로도 작용한다. 시옷은 가벼운 느낌을 준다. ‘사르륵’, ‘사뿐’ 등 가벼움을 표현하는 것에 시옷이 많이 들어간다. 하진 그 가벼움이 쌓여 있어 무거워지는 아이러니를 이 시는 잘 표현하고 있다. 이를 통해 무거운 인간사이지만 그 안에는 가벼움이 숨어있다는 이치를 시인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가벼워진다는 것은 세상의 짐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위 시에서처럼 이 모든 삶의 무게를 유지하면서도 자유를 얻는 방법 중 하나는 벗어날 수 있는 날개를 얻는 것이다.

 

길가에 뒹구는 돌멩이를

누구는 발로 차고

손에 쥐고 죄 없는 허공에

화풀이를 하네

 

볼품이 없어

이리저리 굴러다니지만

엄연히 불의 자손

하늘을 가르며 용트림 하던

그 청춘의 불덩이를 잊지 않기 위해

안으로 얼굴을 감춘 갑각류의 더듬이처럼

엉금엉금 기어서

오늘도 날개를 꿈틀거리는

돌멩이 하나

- 「돌멩이 하나」 전문

 

이 시에서 돌멩이는 세파에 찌들리며, 이러저리 채이며 사는 이 땅 민초들의 정서적 등가물이다. 오늘 이곳을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돌멩이처럼 아무도 귀하게 여겨주지 않고 화풀이를 위한 갑질의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돌멩이들이 뜨거운 용암에서 나왔듯이 그 안에는 원래 가지고 있던 “청춘의 불덩이”를 품고 있고 비록 바닥에 구르더라도 “날개를 꿈틀거리는” 꿈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고 시인은 보고 있다. 그게 사실이 아니더라도 그 날개의 꿈을 포기하지 않기를 그리고 그 가능성이 소멸하지 않기를 강렬하게 소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 시에서는 이를 좀 더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다시 나를 저 야생의 숲으로 보내다오

삵에게 쫒기며 도망치다 보면

날개에 힘이 붙고

휘리릭 창공을 박차 올라

매의 발톱에 잡히지 않으려는 수 만 년이 지나면

쓸데없는 군살과 벼슬을 버린

새가 되리라

진화론의 서문이 너무 길어

달걀을 깨버리는

이 무심한 밤

- 「진화론을 읽는 밤」 부분

 

시인은 달걀을 보고 닭의 운명과 진화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이미 날지 못한 새이지만 진화론을 거슬러 다시 날개를 사용하여 날 수 있는 새가 되기를 시인은 간절히 소망한다. 날지 못하는 닭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시인은 “달걀을 깨버리는” 행위로 저항한다.

그런데 날개를 달고 가벼워진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그냥 세상을 가볍게 여기고 낭비하는 것일까? 아니면 초월적인 것을 지향하며 현실도피의 삶을 바라는 것일까? 다음 시에서 시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날개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옷의 역사를 생각해 본다

동물에서 사람이 되었던 날은

부끄러움을 알게 된 그 날

감추어야 할 곳을 알게 된 그 날

옷은 그로부터 넌지시 위계를 가리키는

헛된 위장의 무늬로

입고 벗는 털갈이의 또 다른 이름으로

진화하였다

 

우화羽化의 아픈 껍질을 깨고

비로소 하늘을 갖는 나비를 꿈꾸며

 

...(중략)...

 

나는 벌거숭이가 되어

옷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싶다

부끄러움을 감추지 않고

가장과 위선의 허물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지는 문신으로

나를 향해 먼 길을 오는 이의 기쁨으로

이름 짓고 싶다

- 「허물」 부분

 

흔히 옷이 날개라고 말을 한다. “우화의 아픈 껍질을 깨고 / 비로소 하늘을 갖는 나비를 꿈꾸” 듯이 옷은 우리에게 위계를 만들고 자신의 가치를 드높이는 날개로서 기능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헛된 위장”일 뿐이라고 시인은 생각한다. 그럴 경우 옷은 벗어야 할 허물이 되고 만다. 진정한 우화는 날개라고 생각하는 이 옷을 벗어버린 데서 이루어진다. 시인은 이 허물로서 옷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지는 문신”으로서의 옷을 생각하고 그럴 때 옷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날개가 되는 것이다. 결국 가벼워지는 것은 진정한 사랑을 얻는 일이다.

다음 시가 그것을 좀 더 잘 말해준다.

 

저렇게 살아서는 안된다고 다짐했다 얼굴도 없이 뼈도 없이 맹물에도 풀리면서 더러운 것이나 훔치는 생을 살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늘만 바라보면서 고고했던 의지를 꺾은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무엇이든 맞서 싸우되 한 뼘 땅에 만족했던 우직함이 나를 쓰러뜨렸다

나무는 벌거벗어도 실체가 없음의 다른 말이다 벌거벗어도 보일 것이 없으니 부끄럽지 않다 당신이 나를 가슴에 품지 않고 쓰레기통에 넣는다 해도 잠시라도 나를 필요로 할 때 기꺼이 나는 휴지가 되기로 한다 나는 당당한 나무의 후생이다

- 「후생」 전문

 

나무가 날개가 되는 것은 휴지가 되는 것이다. 나무가 자신의 몸을 벗어나 아무것도 아닌 가벼움을 가지려면 베어져 휴지로 만들어져야 한다. 하찮고 보잘 것 없지만 남을 위해 쓰일 수 있는 이 가벼운 존재가 되는 길을 몸소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고 나무의 무게를 벗어나는 길이다. 시인은 그래서 그것을 “당당한 나무의 후생”이라고 멋진 이름을 붙여준다.

 

3. 꽃이 되어 가벼워지기

 

나호열 시인의 시들에는 특히 “꽃”이라는 단어와 꽃의 이미지가 많이 등장한다. 그의 시에서 꽃은 다양한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지만 모두 가벼워지는 것과 관련을 맺고 있다. 꽃의 이미지가 보여주는 가벼움과 꽃이 함축하고 있는 상승이라는 내포적 의미 때문일 것이다.

 

절벽 앞에 서 있었다

우울의 깊이를 가늠하려고

눈빛을 떨어뜨렸을 때

절벽 어느 틈새에

꽃은 보이지 않고

향기가 기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 꽃이 궁금하여

하늘을 우러러 보이는 곳으로 내려 왔다

꽃도 향기도 보이지 않는 절벽이

내게 말했다

모두 안녕?

 

- 「모두 안녕」 전문

 

우리의 삶은 절벽 앞에 서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앞도 보이지 않지만 자칫 잘못하면 나락으로 추락하는 파멸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절벽 앞에서 절망하거나 비통해하고 있을지 모른다. 또한 더러는 사업 실패라거나 불의의 사고를 통해 절벽에서 추락하는 절망을 경험하기도 할 것이다. 시인은 그 절벽 앞에서 꽃을 보고자 한다. 이때 꽃은 희망이기도 하고 절망을 견디게 하는 위안이기도 하고 삶에서 힘들게 찾은 아름다움이거나 행복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향기는 있지만 그것의 실체는 보이지 않는다. 존재하지만 만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아직 모두 “안녕”하다. “하늘을 우러러 보이는 곳” 즉 낮은 곳으로 내려올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아직은 우울을 견디며 꽃을 그리워할 수 있다.

그래서 시인은 사막 같은 현실의 삶에서 꽃에 대한 그리움을 포기하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어느 사람은 낙타를 타고 지나갔고

순례자는 기도를 남기고 사라져 갔다

그때마다

화염을 숨기고 뜨거워졌다가

밤이면 무수히 쏟아져 내리는 별빛으로

얼음 속에 가슴을 숨겼다

나에게 머무르지 않는 사람들의 발자국을

침묵과 고요 속에서 태어난 바람으로 지우며

육신의 덧없음을 일깨우곤 했다

오늘도 낙타의 행렬과 순례자들이

덧없이 지나갔지만

나는 꿈을 꾼다

그 사람이 오고

백년 만에 비가 내리고

백년 만에 내 몸에서 피어나는 꽃을

어쩌지 못한다

 

안녕이라는 꽃말을 가진 사람

 

- 「사막의 꿈」 전문

 

자신의 내부에서 꺼지지 않는 화염은 차가운 가슴 속에 숨길 수 있고 낙타의 행렬과 순례자들을 보면서 덧없는 꿈을 꿀 수 있는 사람은 백년 만이라도 자신에게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시인은 믿고 있다. 그 꽃은 바로 “안녕이라는 꽃말”을 가진 사람, 즉 시인 자신이다. 모든 것에 안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떠나보내고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사람이다. 꽃이 되어 가벼워진 사람이다. 어쩌면 그런 사람이 되는 과정이 바로 시를 쓰는 과정일지 모른다.

 

길 없음의 표지판을 믿지 않고 끝까지 걸어가야 비로소 태어나는 말이 있다 눈먼 더듬이가 짚어내는 모르는 단어는 가슴 어딘가에서 피어나는 꽃의 눈빛을 닮았으나 그저 입 안에서 맴도는 길들여지지 않은 바람의 영혼이다

길의 끝에서 우리는 강을 만나고 절벽을 만나고 사막을 만나기도 하지만 오늘 밤 태어나는 단어는 무엇이 될지 모르는 한 톨의 씨앗

하늘에 던지면 샛별이 되고 강에 던지면 먼 바다를 돌아 회귀하는 물고기가 되고 사막에 감추면 슬픈 낙타가 될지도 몰라 아직 여백이 남은 가슴의 편지지에 서툴게 감춰두고 마는 길 없음의 끝

 

- 「손금」전문

 

시인은 손금을 통해 시인으로서의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다. 그는 자신이 꽃과 바람 사이에서 방황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꽃의 눈빛을 닮았”다는 것은 아름다운 마음과 그것에 대한 소망을 지향하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완성된 아름다움으로서의 꽃은 자신의 삶에서 쉽게 만나지도 이루지도 못한다. 그래서 그것을 찾아 떠나는 “바람의 영혼”으로 살아왔다. 어쩌면 그것은 시인의 길이기도 할 것이다. 강과 절벽과 사막을 헤매다가 겨우 “한 톨의 씨앗” 같은 단어 하나를 만들어서 그것이 샛별도 되고 물고기도 되고 낙타도 됐다가 결국은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기를 바란다. 시인이 단단한 씨앗 같은 단어들을 모아서 시를 짓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길은 너무 멀고 어려운 길이다. 다음 시가 이것을 간략하게 잘 말해준다.

 

불쑥

당신 앞에

나무로 서는데 반생

문득

당신 마음에

꽃으로 피는데 반생

 

불쑥에서

문득까지 천리 길

길 없는 길

 

- 「토마스가 토마스에게 9」 전문

 

“토마스”는 시인 자신의 세례명일 것이다. 결국 이 시는 자신이 자신에게 하는 독백이다. 진정한 자신으로 돌아오는 길이 얼마나 힘든 일이고 오래 걸리는 일인지를 얘기하고 있다. 반생을 나무로 섰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성숙한 안 인간의 삶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말하고 있다고 해석된다. 어느 날 불쑥 자신의 삶이 익어갔다고 시인은 생각한다. 하지만 문득 꽃으로 완성된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또 다른 반생을 살아야 한다. 그것은 “길 없는 길”인 지난한 형극의 길임을 시인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시에서 시인은 “불쑥”과 “문득”이라는 부사를 적절히 사용하여 이 시의 의미와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다. ‘불쑥’이나 ‘문득’이나 다 한 갑작스러운 한순간의 어떤 것의 나타남을 표현하는 말이지만 ‘불쑥’은 나 아닌 다른 것이 나타났을 때 주로 사용하고 ‘문득’은 내 안의 어떤 것이 일어났을 때 주로 사용한다. 반생은 타인의 욕망에 지배받으며 그것에 맞추려고 살았다면 이제 반생은 꽃으로 피어나는 “문득”의 깨달음을 얻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문득 깨달아 얻은 꽃은 무엇일까? 다음 시가 그것을 잘 말해준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피어나기는 하나 지지 않는 꽃이다

하늘에 피는 꽃은 구름

그저 푸른 하늘만 있으면

사계절 가리지 않고 핀다

향기도 없고

벌 나비도 찾아오지 않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나그네 긴 발걸음 끌고 가는

구름이다

 

- 「구름」 전문

 

시인은 가장 아름다운 꽃을 구름이라고 말하고 있다. 구름은 있지만 실체가 없고, 정해진 형태가 없고 향기도 없고 “벌 나비도 찾”지 않은 어쩌면 쓸모없는 존재이다. 비어있는 실체이고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진실로 가벼운 존재이다. 그렇기에 구름이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고 시인은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은 시인이 시를 통해 도달하고자 한 무용성의 아름다움인 진정한 예술의 경지이다. 무용하기에 그것은 무게가 없고 무게가 없어 억압이 없다. 이 구름 꽃의 경지에 이르러 비로소 세상의 무게로부터 벗어나게 되므로 “지지 않는” 영원성을 가진 완성된 자유가 된다.

 

4. 맺으며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벼워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삶의 무게를 늘리며 살고 있다. 그래야 성공적인 삶이라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수치로 계량화되어 있어 더 놓은 수치에 도달해야 남들보다 더 높은 지위와 명예를 얻는다. 하지만 그 무게 때문에 우리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자유를 저당 잡히고 살고 있다. 나호열 시인은 이 삶의 무게를 덜어가는 과정으로 자신의 시 쓰기를 완성해 가고자 하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이미 그곳에 도달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과정의 마지막에는 바로 사랑이 있다.

 

사랑해

 

이 짧은 시를 쓰기 위해서

너무 많은 말을 배웠다

 

- 「토마스가 토마스에게 1」 전문

 

가시밭길 걸어도

멈출 수 없는 것은

뒤돌아보면 살아온 날들이

꽃밭이 되어

따라오기 때문이다

 

- 「토마스가 토마스에게 2」 전문

 

이 시집은 바로 이런 사랑의 마음으로 아직 삶의 무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안부를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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