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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동인문학상 수상자] ‘완벽한 생애’ 소설가 조해진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10. 27. 15:15

“냉소는 그만… 소설 쓰면서, 나는 ‘희망’ 쪽으로 개종했다”

[2022 동인문학상 수상자] ‘완벽한 생애’ 소설가 조해진

입력 2022.10.26 03:00
 
 
 
 
 
2022 동인문학상 수상자 조해진은“수상 소식을 전화로 들은 날, 놀랍고 기뻐서 집을 나와 걸었다. 글쓰는 것에 확신이 옅어질 때도 있었지만,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2022년 제53회 동인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소설가 조해진(46)은 “한국 문학의 열렬한 애독자인 제가 한 번씩 사랑에 빠졌던 작가들은 대부분 동인문학상 수상자였다. 그분들과 나란히 이름을 불리게 되었다는 것은 작가로서의 저의 사명을 일깨운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수상작인 장편소설 ‘완벽한 생애’(창비)는 삶의 터전에서 도망친 인물들을 통해 “생애는 완벽할 수 없고 완벽할 필요도 없다”고 말하는 작품이다. 홍콩의 반정부 민주화 시위, 제주 신공항 건설 등 시대의 아픔을 겪은 인물들이 서로 연결되며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2004년 등단한 조해진은 장편소설 6권, 단편소설집 4권 등을 내며 대산문학상을 비롯해 주요 문학상을 받았다. 동인문학상 최종 후보에 수차례 오른 끝에 올해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는 “첫 소설집이 문학상 후보로 처음 오른 곳도 동인상이었다. 후보로 거론될 때마다 그것만으로도 제게 큰 힘이 되곤 했다”며 “이번 수상을 ‘완벽한 생애’를 뛰어넘는 더 좋은 작품을 쓰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희망을 노래하는 작가는 아니었다.

 

“초기작에서도 소외된 사람을 그렸지만, 어둡고 폐쇄적인 인물이 많았다. 저는 희망이라는 단어에 무심한 사람이었는데 소설을 쓰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희망을 믿는 사람으로 개종했다. 문학이 세상에 큰 변화를 이끄는 시대는 아니다. 그렇지만 제 소설을 읽은 다음 고독을 함께 나누고, 소설에 등장하는 제주·홍콩 이야기를 되새기는 사람들이 한 명이라도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쓴다.”

 

-작품을 1~2년 간격으로 계속 써 왔다.

 

“소설 쓰는 게 아직까지는 즐겁다. 어떤 내용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그 순간이 저를 살게 한다. 물론, 쓸 때는 아니다.(웃음) 꾸준히 쓰는 기술은 없다. 다만, 많이 읽고 쓰는 것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직접 경험하는 시간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수상작 제목 ‘완벽한 생애’란 무엇인가.

 

“작품에는 사랑에 실패하거나, 신념을 지키지 못해 도망가는 등 인생의 허무함을 느낀 인물들이 등장한다. 우리는 실패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생애도 완벽하기 힘들다. 그러나 실패가 정해져 있다 해도, 그것이 우리 생애에는 필요하다. 그 실패가 더해지고 더해지는 그 자체가 역설적이게도 생애의 완벽이 아닐까.”

 

-사회적 문제와 맞닿은 개인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등단 초기엔 제 소설을 시대나 역사를 증언하는 도구로 삼고 싶진 않았다. 그러다 14년 전 폴란드 대학의 한국어 강사로 일하면서,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인 ‘프리모 레비’를 좋아하게 됐다. 어떤 시대를 한 사람의 얼굴을 통해 증언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앞으로도 시대가 필요로 하는 소설을 쓰고 싶다.”

 

-희망에 냉소적인 독자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저도 냉소적일 때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나 혼자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나의 고통과 삶이 누군가의 그것과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제 단편소설 ‘문래’에 “상처의 고유함을 믿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공평한 특권”이라고 썼다. 우리 모두 고유한 상처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모두의 공평한 특권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우리가 더 인간적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상금은 어디에 쓸 계획인가.

“감사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있다. 사회에 어려운 이들이 많다. 코로나가 지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파산했다든지, 산업 현장에서 죽음이 끊이질 않는다든지. 창작을 계속하라는 의미로 준 것이지만, 개인적으로 상금을 의미 있게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최종 후보 4편… 1차 투표서 과반 얻어

[선정 과정]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정과리·구효서·이승우·김인숙·김동식)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8월까지 매달 독회를 거쳐 본심 후보작 16편을 골랐다. 심사위원회는 지난달 다시 한번 독회를 열어 16편 가운데 강영숙 ‘두고 온 것’, 김태용 ‘러브 노이즈’, 정용준 ‘선릉 산책’, 조해진 ‘완벽한 생애’를 최종심 후보로 확정했다.

심사위원들은 지난 14~15일 강원도 속초에서 최종심을 열고 무기명 투표로 수상작을 결정했다. 심사위원 각자 한 편씩 써내서 과반수 득표자를 뽑는 방식으로 진행한 심사에서 조해진 ‘완벽한 생애’가 3표를 얻어 수상 영광을 안았다. 심사위원들은 “오늘날 주요한 사회적 문제들을 깊은 시선으로 파헤치며, 따뜻한 문체의 힘으로, 더불어 이겨내는 협동의 길을 모색했다”고 호평했다.

“완벽한 생애를 이루기 위한 작은 배에 승선하라”

[선정 이유]

14일 강원도 속초에서 열린 동인문학상 최종심.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동식·김인숙·정과리·이승우·구효서 심사위원. /이영관 기자

 

사람들 마음속에는 언제나 완전한 인간에 대한 소망이 봄바람처럼 일렁인다. 그 소망은 ‘칼로카가디아’ 같은 고전적 용어로뿐만 아니라 ‘완전체’ 같은 청년들의 유행어에도 배어 있다. 인간의 내장에 각인된 본능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세월은 소망을 퇴색시킨다. 문명이 발달하고 거대해질수록 인간은 점점 왜소해진다. 어느 날 그는 수레바퀴 자국에 깔린 붕어처럼 납작해진 자신을 보고 절망한다.

 

조해진의 ‘완벽한 생애’는 말한다. “모든 삶은 흘러갔다.” 이제 “낙원이 있다고 믿는 희망은 기만적”이다.

그러나 희망을 단념할 때 비로소 진정한 결심이 선다. 작가는 가난, 정치적 자유, 사내 왕따, 동성애, NGO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기웃거리게 하면서도 그것들을 그 문제들의 최종적 블랙홀인 고독과 허무의 극복이라는 문제에 집중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그는 무의미한 삶을 견디는 힘은 동정도, 위안도, 투쟁도, 고행도 아니라, 온갖 종류의 끝없는 고백과 대화임을 믿고 지속해 나간다. 낯선 사물들, 모르는 사람들과의 접촉과 허심탄회한 교환을 통해서만 출구가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사소한 발견과 음미라도 그것들은 의미 발생의 단초가 된다.

 

그렇게 조해진의 인물들은 정신적 교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허무의 격랑을 더불어 헤쳐 나갈 작은 배들을 띄운다. 그 배들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기에 수량이 무한하다. 작가도, 인물도, 독자도 선단을 이룰 것이다. 독자들이여, 완전한 인간이라기보다는 완벽한 생애를 이루기 위해 그 배에 어서 승선하시라.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 (정과리·구효서·이승우·김인숙·김동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