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문화마을 소식들

“지금은 악당·보안관 모호한 세계… 문학이 새 해석을”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10. 24. 16:09

“지금은 악당·보안관 모호한 세계… 문학이 새 해석을”

40년 인연 김주영·이문열, 경북 영양서 ‘창작의 길’ 행사

입력 2022.10.24 03:00
 
 
 
 
 
소설가 김주영(왼쪽)은 “돌아다니는 짐을 줄이기 위해 큰 노트에 아주 작은 글씨를 썼다. 다른 직업이 없어서 이 악물고 글쓰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문열은 “계속 쓰다 보니 어느 날 작가가 돼 있었다. 힘든 일 있었지만 글 덕분에 삶이 최악은 면했다”고 말했다. /성형주 기자,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어이.” 소설가 김주영(83)이 막걸리 잔을 들며 말하자, 이문열(74)이 소주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40여 년 전 문단에 나와 (김주영을) 뵀는데, 우리 형님 친구여가지고. 그때부터 확 잡혔다. 꼼짝도 못 하고(웃음).”(이문열) “이문열이가 출세했기 때문에 내하고 같이 술도 먹지(웃음). … 이문열이가 말은 잘 못 해도, 글은 정확하게 쓴다.”(김주영)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두 원로 작가가 지난 20일 경북 영양군에 있는 한 식당에서 만났다. 단국대 문예창작학과와 음식시학이 주최하고 경북문화재단이 후원한 ‘창작의 길’ 행사의 첫날 저녁 자리였다. 영양 출신 이문열과 청송 출신 김주영은 예비 문인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 주제는 당연히 문학과 인생.

 

“이문열 원래 이름이 ‘이열’이다.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연좌제로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고, 고생 많이 했죠.”(김주영) 서로의 일생을 꿰고 있을 정도로 둘의 인연은 깊다. 인접한 고향 출신의 선후배로, 14년 동안 본지 동인문학상 심사위원을 함께 맡았다. 고향을 사랑하는 문인이라는 점도 공통점. 김주영은 자신의 대표작인 대하소설 ‘객주(客主)’(전 10권)의 이름을 따서 객주문학관을 2014년 청송에 열었고, 이문열은 21년 전 영양에 집을 지었다. 비록 지난 7월 화재로 전소된 아픔이 있지만.

지난 20일 경북 영양군의 한 식당에 소설가 김주영(왼쪽)과 이문열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 /음식시학

 

강연·기자 간담회 등에서 보여준 두 소설가의 모습엔 열정이 깃들어 있었다. 이문열은 서울대 사대 문학회에서 기차역을 소재로 첫 수필을 쓴 당시를 회상하며 웃었다. “수필을 읽고 나니 (조용해서) 나를 무시하는가 싶었는데 한참 있다가 박수를 치더라. 만해의 시구처럼 ‘날카로운 첫 키스’를 받은 기분이었다.”

 

김주영은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니 에르노처럼 나도 내가 겪은 것만 쓴다. 장터 근처에서 살아서 장터 이야기를 쓴 거다”라고 말했다. 그는 전국 장터를 돌며 소설 ‘객주’를 쓸 때처럼, 지금도 수첩을 주머니에 들고 다닌다. 잊지 않고 기록하려는 것이다. 최근엔 집이 있는 서울, 객주문학관이 있는 청송, 바닷가 인근의 제주도 숙소에 열흘씩 머무르고 있다. 팔순을 넘긴 뒤에도, 작년 새 장편소설을 낼 정도로 강인한 체력이 그의 특기다.

 

두 소설가는 후배 문인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문열은 “원대한 꿈을 꾼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꿈 자체가 어려워졌고 세상을 섣불리 말할 수 없는 느낌이 든다. 지금까지처럼 좌우, 악당과 보안관이 구분되지 않는 낯선 세계”라며 “나는 능력이 안 되고, (이런 세계를) 먼저 잘 설명해 줄 이를 기다리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김주영은 “상식에 매몰되면 창의력을 잃어버린다. 글 쓰는 사람들은 그러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학교 다닐 적에 열등생이었지만, 큰 욕심 없이 살아 왔더니 남들보다 오래 살고 있다”며 “글 쓰는 사람들과 함께 돌아다니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두 소설가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던 술자리는 어느새 자정을 향해 달려갔다. 더 이상 이천행 발걸음을 늦출 수 없던 이문열이 동승자가 모는 승용차에 올라탔다. 10여 분 뒤 김주영의 휴대폰 전화벨이 울렸다. “형님, 저 아직 청송입니다. 택시 타고 돌아가겠습니다.” 주변의 만류에 재회는 성사되지 못했다. 다만, 이문열의 ‘변심’이 발그레해진 김주영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띠게 했다.